이런 작품을 쓰는 작가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생각한다. 야만의 시대 속 인간의 아픔에 스며들지 않고서는 써질 수 없는 작품이다. 피해자의 눈물과 비명을 직면하며 슬픔을 이겨내고 어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고발한다. 5.18 광주항쟁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맥을 같이 하는 소설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인 희생자들의 이야기다. 국가 폭력 앞에 인간의 생명과 삶은 얼마나 연약한지를 생각한다.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작가는 오죽했을까,라고 유추하는 것이다.
제주 4.3사건은 제주를 거점으로 한 남로당 무장대의 습격으로 시작하였지만 진압은 지나치게 잔혹했다.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주민이 많았다. 아무 죄 없는 아녀자와 어린이도 상당했다. 마을 전체가 불태워지고 학생 당했다. 전체 제주 주민의 10%가 넘는 3만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의 희생자의 딸인 인선과 그를 통해 비극을 접하는 경하의 이야기다. 생과 사를 넘나들고 사자와 교감을 하며 아픔을 재현해 낸다. 그러면서 하는 다짐이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죽은 자를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죽은 자를 살아 있게 할 수 있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한강 작가는 작년 12월에 노벨상 수상자 강연에서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할 때 미래를 구할 수 있다고 믿음이다.
이 책을 읽으며 비극을 서술하는 작가의 방식에 다시 한번 찬탄했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소설을 '시적 산문'이라고 했다. 부드러운 문체에 아픔을 담아내니까 효과는 배가된다. 소설은 내리는 눈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핏방울이 눈에 떨어지면 선명하고 섬뜩한 것과 같다. 작가의 시도는 노벨상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설을 쓰자면 폭력이 담긴 수많은 자료를 접했을 것이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지 않았을까. 작가는 목숨을 걸듯 작품을 쓰는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 그런 느낌이 절절이 와닿는다.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서로 대적하게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만 했는지를 생각한다. 도대체 이념이나 신념이 무엇이란 말인가. 역사는 이런 비극의 반복으로 되어 있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작가는 사랑과 희망을 말한다. 약한 성냥불이언정 다시 이어붙이며 나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이 소설 마지막처럼.
"숨을 들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려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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