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5/06 (28)
먼. 산. 바. 라. 기.

외롭고 고단치 않은인생이 어디 있으랴 여기는사바세계다 (140901) 때가 되어피고 때가 되어진다 그뿐 (140902) 숲길에서환호성이 터졌다 금강초롱을처음 만난 날 (140903) 내 씨를 퍼뜨리려는수컷의 처절함 내 새끼를 보살피려는암컷의 지극함 본능의 집요함이 만든기하학적 아름다움 뭉클해진다 (140904) 커튼이 미세하게떨린다 아침 햇살이간지러운가 보다 (140905) 컴퓨터 바탕 화면에새겨두었다 忍! 이게 안 되고는만사가 도루묵이다 (140906)
"동료를 위해 가면을 써라." 인문학자인 엄기호 선생이 쓴 책을 읽고 있는데 눈에 확 들어온 문장이다. 동료를 대할 때는 가면을 벗고 진실된 마음으로 마주해야 할 텐데 가면을 쓰라니, 이건 무슨 말인가. 선생이 말하는 뜻은 동료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니라 세심한 배려라는 것이다. 의미를 추구하는 순간 친구들과의 관계가 깨지기 쉽다. 내 경우를 돌아보아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알게 모르게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나봤자 쓸데없는 소리만 지껄이고 아무 의미가 없는데 뭣 하려 나가느냐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끊은 모임이 여러 개다. 만나면 배울 점도 있고, 생각할 만한 점도 있고, 유용한 점도 있어야 하는데 만나면 하나마나한 말만 하니까 시간 낭비라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선생의 ..
'노익장(老益壯)'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기력이 왕성해짐. 또는 그런 사람'으로 나와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세월을 거꾸로 사는 듯이 보이는 사람이 있다. 95세인 권노갑 이사장(김대중재단)이 골프를 치다가 이글을 했다는 보도를 봤다. 그날 기록이 이글 1개, 버디 5개, 보기 2개로 총 2 언더에 70타를 쳤다는 것이다. 골프를 못 치니까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감이 오지 않지만 신문에까지 난 걸 보니 특별한 것인가 보다. 하긴 95세면 걷기도 힘들 나이인데 보통 사람이라면 골프 라운딩을 하면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것만도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말이다. 권노갑 이사장은 김대중 대통령 곁에서 정치를 한 분이다. 겉으로도 타고난 체력과 건강을 소유한 분으로 보였다. 관리도 잘..

수서에서 만나기로 한 면목회의 점심 모임에 이왕이면 걷기를 겸해 대모산을 넘어서 갔다. 대모산입구역에서 전철을 내리려 했는데 지나치는 바람에 개포동역에서 산에 들었다. 역에서 10여 분을 걸으면 들머리가 나온다. 살짝 는개가 내리는 산길이 고즈넉하고 예뻤다. 이럴 때는 "아,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며 삶에 대한 애정이 뿜뿜 솟아난다. 조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의 강남 지역이 뿌옇게 흐려 있었다. 지금은 장마 기간인데 날씨가 이만하길 다행이었다. 개포동 들머리에서 대모산 정상(293m)을 지나 수서까지 가는데 두 시간 정도 걸렸다. 현재의 내 체력에 딱 적당한 걸음이다. 모임에서는 9박10일의 일정으로 다녀온 G의 여행담에 귀를 기울였다. 여섯 명이 지인인 현지인 가이드를 고용하여 안내를 받으며 다녔다..
효문제 때 오나라 태자가 조정으로 들어가 천자를 뵌 다음 황태자를 모시고 술을 마시고 박(博)을 두게 되었다. 오나라 태부들은 초나라 사람들로서 경박하고 사나웠으며, 오나라 태자도 줄곧 교만하였다. 박을 두는 데 길을 다투는 것이 불손하므로 황태자는 박판을 끌어당겨 오나라 태자에게 집어 던져 죽이고 말았다. 그러고는 그 시신을 관에 넣어 돌려보내 장사 지내게 하였다. 태자의 시신이 오나라에 이르자 오왕은 노여워하며 말했다."천하는 같은 종족인데 장안에서 죽었으면 장안에서 장사 지내야지 무엇 때문에 꼭 오나라에 와서 장사 지내야 하는가!"다시 유해를 장안으로 돌려보내 그곳에서 장사 지내게 하였다. 이때부터 오왕은 점점 번신(藩臣)으로서의 예의를 잃고 병을 핑계 삼아 조정으로 나가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오왕..
초경(初經)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생이 끔찍해졌다딸의 일기를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바깥을 거닌다, 바깥,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

용문사 은행나무를 처음 만난 것은 50년 전인 1970년대였다. 당시 용문사는 당일 나들이나 야유회로 찾던 장소였다. 마의태자의 전설이 담긴 이 나무는 처음 봤을 때 크기에서 압도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수령이 1,100년 정도인데 실제 측정 결과는 고려 목종 때에 심어진 것으로 밝혀졌다니 100년은 감해야 할 것 같다. 이 은행나무는 줄기가 위로 곧게 뻗어 올라간 게 특징이다. 나무 형태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 이 정도 크기의 나무가 태풍이나 벼락에서 큰 손상을 입지 않고 천 년 세월을 버텨왔다는 게 볼 수록 대단하다. 영험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을 터니 사람들이 이 앞에서 기도를 하고 소원문을 붙이는가 보다. 지금은 여름이라 나무는 무성한 초록잎을 달고 있다. 가을에 노랗게 ..

중학 동기인 두 친구를 용문사에서 만났다. 둘 다 10여 년 전부터 양평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어 산책을 할 겸 함께 만나기에 용문사가 적당했다. 용문사관광단지에서 같이 점심을 하고 용문사로 향했다. 용문사은행나무길은 계곡을 따라 걷는 녹음 짙은 아름다운 길이었다. 전에는 아기자기한 산길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무슨 이유에선지 폐쇄되어 있었다. 졸졸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맑고 청량했다. A는 3년 만에, B는 15년 만에 만나는 참이었다. 50대 때는 자주 만났는데 그동안은 한참을 격조했다. 이렇듯 오랜만에 만나면 흐른 세월의 깊이에 잠시 멍해진다. 나이를 먹으니 다들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많아졌다. 할아버지들의 수다도 여자들 못지 않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만났으니 반가워서 그렇다고 치자. 하여튼 고성..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다. 2006년에 나왔으니 꽤 오래된 영화인데 비주얼이나 표현 방식이 독특해 재미있으면서 감동이 있었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작품인데 일본적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결이 다른 영화라 느꼈다. 마츠코는 삼 남매의 장녀인데 부모의 관심과 사랑은 아픈 여동생 쿠미에게 쏠려 있다. 아버지로부터의 애정 결핍에 시달린 마츠코는 교사가 되지만 행복도 잠시일 뿐 불운한 사건에 연루되어 교단에서 쫓겨난다. 학생을 감싸려 한 행위가 도리어 화를 부른 것이다. 착하고 순수한 마츠코는 험한 세상에 내동이쳐진 셈이다. 이후 만나는 남자들은 하나 같이 마츠코를 파멸로 이끌고, 그럴수록 마츠코는 더욱 애정에 집착한다. 결국은 몸을 파는 지경에 이르고 살인까지 저지른다.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심심할 때 TV 리모컨을 누르다 보면 종교 채널에 머물 때가 있다. 종교의식이나 설교, 강론, 법문을 들으면 재미가 있다. 어떤 때는 코미디 프로를 보는 것 같다. 어느 날 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는 중에 고개를 젓게 되는 내용이 있었다. 만약 부활이 없고 천국이 없다면 내가 미쳤다고 힘들게 목사짓을 하고 있겠느냐는 반문이었다. 술도 못 먹고 담배도 못 피우고 세상 재미도 못 보면서 사는 이유는 나중에 천국이 줄 보상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고작 내세의 보상에 대한 기대만일까. 인간이라면 보상 여부를 떠나 현재를 바르게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맹자는 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脩道之謂敎 道也者 不可須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