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104

동구릉 산책

용두회 10월 트레킹은 동구릉이었다. 트레킹이라는 이름은 붙었지만 이젠 걷기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산책 수준이다. 오늘도 왕릉을 연결하는 평탄한 길을 1시간 30분 정도 산책하듯 걸었다.  경기도 구리에 있는 동구릉(東九陵)은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잠들어 있는 조선 최대의 왕릉군이다. 오늘의 왕릉 역사 답사 순서는 이랬다. ▽ 수릉(綬陵)추존 문조(文祖, 1809~1830)와 신정황후의 능이다. 문조는 순조와 순원황후의 아들로 왕세자가 되었으나 2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시호를 효명세자라 하였다. 뒤에 문조로 추존되었다.   ▽ 현릉(顯陵)문종(文宗, 1414~1452)과 현덕왕후의 능이다. 조선 5대 왕인 문종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아들이다.   ▽ 건원릉(健元陵)조선을 건..

사진속일상 2024.10.11

추석 연휴 첫날의 동네 산책

추석 연휴 첫날에 우리 동네와 뒷산길을 산책하다. 고향에는 내일 내려갈 예정이라 오늘은 태풍 전야처럼 고요하다. 내일은 교통 상황을 살펴 정체 없는 시간을 택해 출발해야겠다. 명절이 다가오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아내도 나도 마찬가지다. 도로 정체는 차치하고 우선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 피곤하다. 억지로 의무방어전을 치러야 하는 기분이다. 젊을 때도 그랬고 늙어서도 다르지 않다. 지금은 고향 상황이 서먹하게 변했고 찾아가는 설렘이나 활기가 사라졌다. 사람의 도리이니 안 할 수가 없는 그런 의무 비슷한 것이다. 숲길에 있는 벤치에 누워 나무 사이로 떠가는 구름을 바라본다. 나날살이가 부운(浮雲)과 같지 않으랴. 바람 부는 대로 정처 없이 흘러갈 뿐이다. 구름을 이루는 입자들은 제 잘 난 줄 알고 이리저리..

사진속일상 2024.09.14

여수천의 아침

야탑 모임에 나갈 때는 약속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간다. 그리고 예닐곱 버스 정거장 전에 내려 여수천을 따라 걸어서 약속 장소로 간다. 한적한 오전에 한가한 마음으로 걷는 행복한 시간이다. 여수천(麗水川)은 탄천의 지류다. 성남시 갈현동에서 시작하여 도촌동과 여수동을 지나 탄천과 합류한다. 길이가 4km 정도 되는 작은 하천이다. 관리를 잘해서 주변 환경이 깔끔하고 수질도 깨끗하다. 민물고기가 보이고 수량이 불어나면 탄천에서 커다란 잉어도 올라온다. 너구리를 주의하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다. 그만큼 야생동물의 서식 환경이 좋아졌다는 뜻이리라. 도시를 관통하는 살아 있는 하천의 존재가 무척 고맙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산책로가 한산하다. 사람이 들어간 사진을 찍자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느릿느릿 걸어도 몸..

사진속일상 2024.08.24

여름 탄천

당구 모임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반주로 소주 한 병을 겸한다. 뭐니뭐니 해도 술은 낮술이 최고다. 낮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장인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낮술에는 은퇴자라는 우리만의 특권이 있다. 주량이 많이 줄어 지금은 소주 반 병에서 한 병 사이가 적당하다. 반 병은 아쉽고 한 병이 넘으면 과해진다. 음주 실수가 잦은 편이라 절대 한 병은 넘지 않으려 한다. 낮술은 과음할 여지가 적어서 좋다. 식당에서는 마냥 죽치고 앉아 있을 수 없다. 밖에 나서면 환한 대낮인데다 술집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다. 동료와 헤어지고 탄천으로 산책을 나갔다. 알딸딸한 걸음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부드러웠다. 장마 그친 뒤 내리쬐는 염천의 땡볕도 상관 없었다. 여름 한낮의 산책..

사진속일상 2024.08.02

영종도 드라이브

콧바람을 쐬기 위해 영종도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울적한 데다 아파트 외벽 도장 공사 중이라 창문을 닫아놓고 있어야 하니 답답함이 더해서였다. 집에 있을 때는 움직이기가 귀찮지만 밖에 나서면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늘 그렇다. 눈부시게 밝은 초여름 날의 드라이브였다. 영종도에 갈 때는 인천대교를 건너는데 이번에는 예전에 다녔던 영종대교를 이용했다. 2층으로 된 이 다리도 개통한 지 벌써 24년이 되었다.   어디에선가 소개하는 걸 봤던 예단포둘레길이 떠올라 먼저 예단포선착장으로 갔다. 영종도 북쪽에 있는 예단포는 강화도와 마주보고 있다. 언젠가는 강화도와 예단포를 잇는 다리가 만들어질 것 같다. 예단포둘레길은 바다에 연한 산길을 따라 걷는 짧으면서 아기자기한 길이다. 바다 조망이 아주 멋지다.   ..

사진속일상 2024.06.18

오전과 오후

오전 야탑 모임에 나가기 위해 아침을 먹고 나서면 대개 30분 정도 이르다. 집에서 뭉기적거리기도 뭣해서 대개 일찍 나와 몇 정거장 앞에서 버스를 내려 걸어간다.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비치는 천변 길을 나는 사랑한다. 오늘은 낯선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가 천변으로 내려가는 길을 잃었다. 골든 리트리버를 데리고 산책 나온 아주머니가 상냥하게 웃으면서 입구를 가르쳐 주었다. 오늘따라 골든 리트리버가 쓰다듬어 주고 싶은 정도로 이뻐 보였다. 개는 좋아하지 않지만 골든 리트리버는 예외다. 무심하면서 달관한 듯한 그 표정을 사랑한다.   오후 당구 네 판, 바둑 세 판을 두고 나니 기력이 다한 듯 기진했다. 더구나 공은 빗맞고 돌은 엉뚱한 데 놓여 전적이 좋지 않았다. 해가 무겁게 서쪽 마을로 가라앉고 있었..

사진속일상 2024.06.11

초여름의 짧은 산책

바람을 맞으면 눈물이 나고 따끔거리면서 충혈된다. 다음날 아침에는 눈곱이 잔뜩 껴서 눈을 뜨기도 힘들다. 병원에서는 눈물관막힘 증상이라고 한다. 눈물샘에서 나온 눈물은 눈을 적신 후 눈물관과 눈물주머니를 통해 코 속으로 배출되는데 그 경로가 막히면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들어 심해졌다.  이 증상이 왜 바람과 관계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밖에 나가는 게 조심스럽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외출을 피한다. 의사가 고글 안경을 쓰는 게 좋다고 해서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안경을 쓰고 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늙으니까 이곳저곳에서 탈이 생긴다. 병원에 가면 자주 듣는 말인 '노화 현상"이다. 생명에는 직접 관계되지 않지만 일상은 불편하다. 요사이 날씨..

사진속일상 2024.06.03

물안개공원 산책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 나갔으나 고니를 보지 못했다. 예년 같으면 지금 제일 많은 고니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번 달 초에 마실 나간 고니가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 텅 빈 경안천이 쓸쓸했다. 발길을 물안개공원으로 돌려 공원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았다. 어제 비와 눈이 내린 덕분인지 대기와 하늘은 더없이 맑고 청명했다. 영상의 기온으로 땅에는 눈의 흔적이 없지만 산에 내린 눈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마저도 하루이틀이 지나면 봄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연밭이 있는 곳에서는 오리들이 식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정물화 가운데서 오리들의 기운찬 동작이 돋보였다. 산책하며 나눈 대화 중에 '시절인연'이란 말이 따스하게 다가왔다. 저 오리의 날갯짓 하나도 귀하고 소중하다. 생명붙이를 비롯한 모든 만남에..

사진속일상 2024.02.16

탄천의 저녁

분당의 바둑 모임이 끝나니 저녁 시간이었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때가 해질녘이 아닌가. 발걸음은 자연스레 탄천으로 향했다. 이번주 초반의 강추위에 얼어붙었을 텐데 며칠간 날이 풀리더니 다 녹았는가 보다. 강물은 윤슬로 반짝였다. 겨울바람이 누그러진 탄천의 하늘은 고우면서 아늑했다. 캄보디아에서 돌아오고 나서 일주일 동안 두문불출했다. 몸이 피곤했지만 마음도 일말의 저기압 상태에 빠졌다. 폐허가 된 앙코르 유적이 준 느낌이 귀국 후에도 남아있었던 것 같다. 인생살이의 덧없음이랄까, 뭐 그런 쓸쓸함과 우울한 감정에 잠겼던 탓이다. 문명의 흥망성쇄를 축소하면 개인에게도 그대로다. 살아 애지중지 추구하는 것들이 결국은 바람에 흩날리는 지푸라기와 같지 않은가. 영겁의 시간 속에서 인간 존재와 행위의 의미..

사진속일상 2024.01.28

물빛공원 반영

롯데백화점 건대스타시티점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점심 모임이 있었다. 전 같으면 서울 나가는 데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했겠지만 요사이는 자가용을 끌고 나갈까 말까를 고민한다. 편하게 다녀오기 위해서는 자가용이 훨씬 낫다. 이번에도 유혹에 넘어가 결국은 자동차 키를 꺼내 들었다. 편한 게 선택의 우선순위가 된다는 것은 늙었다는 징후 중 하나다. 대중교통이 있는데 굳이 자가용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서 지구 환경은 생각하지 않은 채 제 한 몸 편하자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었다. 세상은 돌고 도는가, 그런 손가락질을 이제는 내가 받게 되었다. 어쩔 수 없지 뭐, 라고 불편해지는 마음을 외면할 정도로 철면피가 되어 가는 나를 본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물빛공원을 한 바퀴 산책했다. 호수 반영이 실..

사진속일상 2023.12.14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랑스의 철학자인 프레데리크 그로가 쓴 걷기 예찬서다. 걷기가 인간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자유, 느림, 고독, 침묵, 영원, 순례, 현존, 평안 등 책의 차례에 등장하는 용어만 봐도 이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동시에 걷기의 대표 주자라고 할 만한 여러 인물들(니체, 랭보, 루소, 소로, 네르발, 칸트, 프루스트, 벤야민, 간디, 횔덜린)도 소개한다. 이들은 걸으면서 사유하고 자기 세계를 완성해 나간 사람들이다. 지은이가 말하는 걷기는 소요나 산책에 가깝다. '몽상하는 고독한 산책자'라는 별명이 붙은 루소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므로 걷기는 고독해야 하고, 고독하기 위해서는 혼자여야 한다.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만의 리듬을 지키기 위해서다. ..

읽고본느낌 2023.11.16

전주천의 저녁

가을 저녁의 산책은 스산하다. 보이는 것, 느껴지는 것 모두가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런 멜랑콜리를 즐기려는 편이지만 가슴 한편이 착잡해지는 걸 어찌할 수는 없다. 시간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허물고 앗아간다. 누구나 활짝 피어나는 봄이 있었고, 눈부시게 찬란한 여름이 있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오고 찬바람이 불고 맨발로 동토를 걸어가야 한다.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외면할 수 없는 잔인한 현실이다. 힘차고 에너지 넘치는 분이었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기세가 왕성했다. 하지만 지금은 요양원에서 눈동자가 풀린 채 흐릿한 미소만 짓고 있다.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장수가 과연 축복인지를 묻게 된다. 어찌 세월만 야속하다 할 수 있으리. 인간이 자연의 길에서 멀어질수록 그만..

사진속일상 2023.10.17

가을을 느껴보는 산책

주말에 손주가 왔다가 코로나가 확인되어 일찍 제 집으로 돌아갔다. 늘상 있는 감기 정도로 알았던 모양이다. 요사이 코로나는 증세가 심하지 않고 전염력이 약한 대신 오래간다고 한다. 이젠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들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지혜를 얻은 것 같다. 근 일주일만에 집 밖으로 나와 동네 산책에 나섰다. 몸은 완전히 회복했다. 동네의 근린공원과 주변은 가을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길에는 낙엽이 보이기 시작하고 알을 꺼낸 빈 밤송이도 흩어져 있었다. 공원에서 가을물이 제일 먼저 드는 것은 벚나무 잎이다. 작은 구슬이 옹기종기 달려있는 좀작살나무 열매의 보라색도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색깔이다.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를 타고 노는 모습을 재미나게 지켜보았다. 딱새 암컷이 아닌가 싶다. 곧 산하가 울긋불긋..

사진속일상 2023.09.18

하늘이 달라졌어요

9월이 되니 하늘이 달라졌다. 어쩜 이렇게 일변할 수 있는지 신기하다. 아침저녁 기온도 뚝 떨어져서 이젠 침대의 전기 온열기를 켜고 자야 할 정도가 되었다. 가을이 되면 하늘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가을에 자주 나타나는 권형운은 상층운에 속한다. 반면에 여름의 적형운은 지면에 가깝게 떠 있다. 얼마 전 8월의 구름은 이랬는데.... 동네를 산책했다. 주변 여러 곳이 개발중이라 전처럼 호젓한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일부에는 옛 농촌 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을 정자를 지날 때는 노인네들이 둘러앉아 잡담을 나누는 모습을 본다. 때로는 막걸리병이 놓여 있기도 하다. 비위가 좋다면 말이라도 붙여 보고 싶지만 늘 못 본 척 지나치기만 한다. 뒤통수에 여러 사람의 시선을 느끼며. 우리 텃밭 작..

사진속일상 2023.09.03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인생의 허무에 대한 김영민 선생의 산문집이다. 인생의 허무를 주제로 한 많은 문학, 철학, 예술 작품을 소개된다.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줄기찬 노력들이었다. 결국 우리는 인생의 허무함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에 닿는다. 지은이의 진단을 보자. "현실은 복잡성과 딜레마와 역설로 가득하다. 외로워서 결혼을 했더니 더 외로워지는 역설. 배가 나와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역설. 포기했을 때 비로소 자기 것이 되더라는 역설. 미래를 예측한다며 약을 파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삶이 정녕 법칙과 예측대로 흘려가던가. 모르겠다. 대체로 인간은 어쩔 수 없는 큰 흐름과 우발적 사건의 비빔밥 속에서 선택과 습관을 오가면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지 않던가. 그러다가..

읽고본느낌 2023.09.02

당남리섬을 산책하고 천서리 막국수를 맛보다

아침에 처가 쪽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아내와 같이 외출을 했다. 멀리 나가지는 못하고 여주 당남리섬을 한 바퀴 도는 산책을 하고 천서리 막국수로 점심을 했다. 기온이 33℃까지 올라간 땡볕 속이었다. 당남리섬은 청보리는 때가 지나 모두 베어졌고, 수레국화 꽃밭도 대부분 꽃이 지고 씨를 맺고 있었다. 개망초, 금계국, 메밀꽃이 그나마 한창이었다. 멀리 남한강 이포보가 보인다. 볕이 따가워 쉼터에서 자주 쉬어야 했다. 사람들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인간은 운명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데 공감을 했다. 태어나자마자 얼마 안 돼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 년의 수를 누리면서 호의호식하는 악인도 있다. 세상은 선악의 결과가 공평하게 구현되는 곳이 아니다. 천도(天..

사진속일상 2023.06.19

장어로 보신하고 공원을 걷다

아내가 몸살(?)을 앓은 뒤끝이라 몸보신을 하러 장어집에 갔다. 큰 것과 중간 것, 두 마리를 시켜서 한껏 먹었다(8만 원). 오랜만의 장어 기름이 속에 부담이 되었는지 저녁에 같이 설사가 나와서 실소를 했다. 이래서 고기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먹는가 보다. 봄에 들면서 식사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겨울은 입맛이 없고 조금만 많이 먹어도 위에 부담이 돼서 소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식 소동(小食 小動)'의 생활이었다. 다행히 봄이 되면서 입맛이 돌아오고 위장도 괜찮아졌다. 덕분에 좀 더 활기차졌다. 식사 후 물빛공원을 찾아서 두 바퀴를 돌았다. 황사가 끼었지만 산책하기에는 무난한 낮이었다. 풍성하진 않아도 아담한 장미 터널이 있고, 물빛버즘도 공작 날개처럼 초록잎을 펼치고 있었다. 이즈음의 나..

사진속일상 2023.05.23

봄비 내린 뒤 탄천

봄비는 언제나 반갑다. 멀리는 산속 울창한 수목들에 산불 위험이 사라져 좋고, 가까이는 텃밭에서 올라오는 새싹들이 생기를 띄게 되어 좋다. 또한 비는 백내장을 앓는 눈처럼 희뿌연한 대기를 말끔히 청소해 준다. 아침에는 우산을 들고 나갔지만, 오후가 되니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S와 만나 당구놀이를 한 뒤 늦은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마침 비가 그쳐 탄천을 한 시간 정도 산책했다. 습기 가득한 풋풋한 내음이 상쾌했다. 저절로 깊은 심호흡이 되었다.

사진속일상 2023.04.30

동네 봄꽃 산책

어제 비 내린 뒤 대기가 깨끗해지면서 화창한 봄날이 열렸다. 그간 궂은 날씨가 이어지다가 오랜만에 환한 햇살이 반짝이는 날씨다. 아침 식사를 하고 동네 봄꽃 산책을 나선다. 동네 뒤편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복사꽃이 화사하다. 어느 집 정원에 핀 겹벚꽃이 눈길을 끈다. 마침 집 현관을 나오는 주인에게 양해를 얻고 들어가 나무 가까이에서 꽃을 감상하다. 눈부시게 고운 색깔이다. 정확한 이름은 왕겹벚꽃이라고 알려준다. 옆에 진홍색 꽃이 있어 물어보니 복숭아와 벚나무를 접 붙인 나무라고 한다. 사실인지 의아할 정도로 둘과는 느낌이 전혀 다른 꽃이다. 집에 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만첩홍도(꽃복숭아)인 것 같다. 이건 꽃사과겠지. 꽃잔디 색깔도 화려하고, 향기에 이끌려 가 보니 수수꽃다리가 ..

사진속일상 2023.04.19

봄 물드는 탄천

분당 토요 모임에 가는 길에 탄천에 들렀다. 개나리와 목련은 활짝 폈고, 벚꽃도 피기 시작했는데 만개한 벚나무도 있었다. 봄소식이 고속 KTX를 타고 북상하고 있는 듯하다. '소곤소곤 산책길'에는 미국제비꽃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의 벚꽃도 오늘 개화를 했다. 예년에 비해 열흘 가량 빠른 것 같다. 지구온난화 탓이 아닌가 싶어 꽃을 바라보는 심정이 편하지는 않다. 그만큼 3월 기온이 높았다. 다음 주면 수도권에서도 벚꽃이 만개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 야외에서는 반팔 차림을 한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씩씩한 새인 직박구리는 벚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가지 저 가지로 힘차게 날아다니면서 벚꽃을 쪼아먹는다. 언제 죽게 될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늦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S가 말했다...

사진속일상 2023.03.25

물빛공원을 걷고 달콤짜장을 먹다

날이 많이 풀어졌다. 오전 10시가 되니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다. 아내와 물빛공원에 나가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았다. 포근한 날씨가 사람의 마음도 따스하게 만든다.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다. 천천히 산책하려 하지만 누가 앞에서 끄는 듯 자꾸 속도가 붙는다. 저수지는 꽁꽁 얼어 있고 눈이 덮여 있다. 머지않아 남에서 봄바람이 불어오면 고요한 이곳도 생명의 활기로 가득해지리라. 저수지로 물이 흘러들어오는 입구에는 물닭들이 모여 있다. 쇠딱따구리 한 마리가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전혀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딱따구리를 이렇게 바로 옆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우리 동네에 서식하는 새들을 조사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다. 저수지를 배경으로 아내와 한 컷을 남겼다. 며칠 전에 산..

사진속일상 2023.01.07

늦가을 양재천

양재동 모임에 나가는 길에 시간 여유가 있어서 양재천에 내려가 보았다. 군데군데 지난여름의 수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으나 천에는 늦가을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영동1교와 영동3교 사이를 1시간여 어슬렁거렸다. 마침 점심시간 즈음이라 천변에는 식사를 마치고 산책 나온 직장인들이 많았다. 사위어가는 추광(秋光)을 쐬며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하나 같이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외국과 비교하면 늘 아쉽게 여겨진다. 그래도 가끔은 독서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양재천을 걷는 내내 시야에서 타워팰리스 빌딩군을 피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저 우뚝한 건물에서 받는 느낌은 위압감과 소외감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

사진속일상 2022.11.25

텃밭 고구마를 캐다

아내와 둘이서 텃밭의 고구마를 캤다. 작년에는 손주가 와서 체험을 했는데 올해는 다른 데 갈 일이 생겨 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겸하여 시들어가는 가지와 고추를 뽑고 밭 정리를 했다. 고구마는 18kg이 나왔다. 기대를 안 했는데 역시 수확량은 빈약했다. 올 텃밭 농사는 옥수수, 상추, 고구마, 감자는 흉작이고 호박, 토마토, 가지, 고추 등은 풍성했다. 일 하기는 귀찮았지만, 그래도 텃밭 덕분에 우리 식탁은 풍요로웠다. 오전에 텃밭에 나갔다가 오후에는 첫째네 집에 들렀다. 잠시 짬이 난 틈에 한 시간 정도 집 주변을 산책했다. 골목길 뒤로 123층의 롯데월드타워가 자주 보였다. 송파동에는 빌라가 많아선지 깔끔한 서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골목길의 전신주와 이리저리 뒤엉킨..

사진속일상 2022.10.18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돌다

손주를 만나러 잠실에 간 길에 짬이 나서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마침 호수에서는 'Rubber Duck Project Seoul 2022'가 열리고 있었다. 대형 오리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러버덕은 네덜란드의 공공미술가인 플로렌타인 호프만의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동심을 일깨워준다. 그는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대상을 - 주로 동물 - 거대한 크기로 재현하는 작업을 한다. 러버덕도 높이가 18m나 된다. 작가는 거대하게 변한 오리를 보여줌으로써 인식의 전환을 꾀하고자 하는 것 같다. 자연 앞에서 왜소한 인간을 느껴보라는 것일까. 어쨌든 어른, 아이 모두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여러 각도에서 찍어 보았다. 실제 호수 위의 오리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저희들끼리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호..

사진속일상 2022.10.03

조심스레 산책하다

허리가 결린 지 일주일째다. 차도가 아주 느리다. 어제는 밖으로 나가 마을 주변을 조심스레 산책했다. 올해 후반부는 너무 어렵게 시작된다. 8월에는 코로나로 두 주일, 9월 지금에는 허리 통증으로 한 주일 넘게 힘들어하고 있다. 연례행사로 잊지 않고 날 찾아오는 병이 셋 있다. 감기, 허리 결림, 어지럼증이다. 셋의 공통점은 예고도 없이 불시에 찾아온다는 점이다. 이번 허리 결림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전 아침에 일어났더니 허리가 뻐근하며 몸을 제대로 굴신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꿈을 꾸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심하게 뒤척이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었다. 얼마 전의 꿈에서는 상대와 싸우다가 실제로 발차기를 하는 바람에 침대에 부딪힌 소리에 놀라 아내가 달려오는 소동이 있었다. 감기..

사진속일상 2022.09.15

한강변 따라 드라이브

고향 마을 이웃분이 코로나로 돌아가셨다. 지병으로 쇠약한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어머니의 제일 가까운 친구였는데 어머니의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 전화기로 전해지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식사나 제대로 하시는지 모르겠다. 바람을 쐬면서 우울한 심사를 달랠 겸 아내와 드라이브를 나갔다. 집 부근에는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도로가 여럿 있다. 오늘은 한강변을 택했다. 달리다가 적당한 곳이 나오면 잠깐씩 쉬기로 했다. 퇴촌을 지나 342번 지방도를 탄다. 분원리에서 운심리까지 팔당호를 끼고 있는 이 길은 수도권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잠시 물안개공원에 들렀다. 전 같으면 공원을 한 바퀴 돌았겠지만 아내가 족저근막염 치료를 받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수청리 나루터도 빼놓을 수..

사진속일상 2022.09.01

열흘만에 외출하다

코로나로 감방살이를 하다가 열흘만에 탈출하다. 동네 산책을 하며 콧구멍에 바람을 쐬다. 그동안 너무 누워 지내서 허리가 아프고 머리도 띵 하다. 이 무기력증은 코로나 뒤끝이기보다 너무 몸을 안 움직인 결과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동안 책을 읽지도 못하고 블로그에 글을 적지도 못했다. 일상이 무너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그 과정을 관찰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은 개체적이지만 또한 보편적이다. 위대한 사람의 일기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리라. 죽을 때까지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몇 사람을 알고 있다. 그중 한 분은 암 투병의 고통 중에서도 글을 올리며 정신 승리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나는 코로나 따위에 일상이 망가졌다. 훗날에 대한 자신..

사진속일상 2022.08.14

비 내린 경안천

두 태풍 송다와 트라세가 연이어 한반도로 접근했으나 일찍 열대저기압으로 변한 탓에 둘 다 잔잔한 태풍이 되었다. 오히려 7월 말과 8월 초의 뜨거운 대기를 식혀주는 반가운 태풍이었다. 지난밤에 비가 많이 내린 뒤 경안천에 나가 보았다. 경안천변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친척 형님과 점심을 하고 난 후였다. 경안천은 흙탕물로 가득했고 둔치까지 물이 잠긴 흔적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천변을 따라 아내와 짧은 산책을 했다. 요사이 아내는 손발에 이상이 생겨 길게 걷지를 못한다. 집 거실은 물리치료실이 되었다. 점심에 만난 형님 부부네와도 대화의 대부분이 아픈 얘기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70줄을 넘고 있으니 몸에 탈이 생기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차례일 것이다. 이제는 병 자체보다도 병을 어떻게 받..

사진속일상 2022.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