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107

한강변 따라 드라이브

고향 마을 이웃분이 코로나로 돌아가셨다. 지병으로 쇠약한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어머니의 제일 가까운 친구였는데 어머니의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 전화기로 전해지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식사나 제대로 하시는지 모르겠다. 바람을 쐬면서 우울한 심사를 달랠 겸 아내와 드라이브를 나갔다. 집 부근에는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도로가 여럿 있다. 오늘은 한강변을 택했다. 달리다가 적당한 곳이 나오면 잠깐씩 쉬기로 했다. 퇴촌을 지나 342번 지방도를 탄다. 분원리에서 운심리까지 팔당호를 끼고 있는 이 길은 수도권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잠시 물안개공원에 들렀다. 전 같으면 공원을 한 바퀴 돌았겠지만 아내가 족저근막염 치료를 받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수청리 나루터도 빼놓을 수..

사진속일상 2022.09.01

열흘만에 외출하다

코로나로 감방살이를 하다가 열흘만에 탈출하다. 동네 산책을 하며 콧구멍에 바람을 쐬다. 그동안 너무 누워 지내서 허리가 아프고 머리도 띵 하다. 이 무기력증은 코로나 뒤끝이기보다 너무 몸을 안 움직인 결과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동안 책을 읽지도 못하고 블로그에 글을 적지도 못했다. 일상이 무너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그 과정을 관찰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은 개체적이지만 또한 보편적이다. 위대한 사람의 일기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리라. 죽을 때까지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몇 사람을 알고 있다. 그중 한 분은 암 투병의 고통 중에서도 글을 올리며 정신 승리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나는 코로나 따위에 일상이 망가졌다. 훗날에 대한 자신..

사진속일상 2022.08.14

비 내린 경안천

두 태풍 송다와 트라세가 연이어 한반도로 접근했으나 일찍 열대저기압으로 변한 탓에 둘 다 잔잔한 태풍이 되었다. 오히려 7월 말과 8월 초의 뜨거운 대기를 식혀주는 반가운 태풍이었다. 지난밤에 비가 많이 내린 뒤 경안천에 나가 보았다. 경안천변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친척 형님과 점심을 하고 난 후였다. 경안천은 흙탕물로 가득했고 둔치까지 물이 잠긴 흔적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천변을 따라 아내와 짧은 산책을 했다. 요사이 아내는 손발에 이상이 생겨 길게 걷지를 못한다. 집 거실은 물리치료실이 되었다. 점심에 만난 형님 부부네와도 대화의 대부분이 아픈 얘기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70줄을 넘고 있으니 몸에 탈이 생기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차례일 것이다. 이제는 병 자체보다도 병을 어떻게 받..

사진속일상 2022.08.04

동네 산책 한 시간

막바지 장마가 며칠간 소강상태다. 잔뜩 흐린 날씨지만 센 비는 내리지 않는다. 가끔 먹구름이 지나가며 몇 방울 후드득 떨어지는 정도다. 낮시간에 동네를 한 시간 정도 산책했다. 뒷산에 가는 것은 성가신 산모기들 때문에 꺼려진다. 동네길에서도 집요하게 달라붙는 모기 때문에 연신 손수건을 휘둘러야 했다. 모기는 느긋하게 산책하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얄미운 여름 모기다. 동네 뒤에 가면 산그리메도 볼 수 있다. 태화산까지 여러 봉우리가 겹쳐 보인다. 집 부근 두 군데에서는 아파트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돌아오는 길에 텃밭에 들러 토마토를 따가지고 왔다. 올해는 토마토를 사 먹지 않아도 된다. 매일 서너 개씩 수확이 나오니 항상 싱싱한 토마토를 먹는다. 다만 빨간 토마토는 새들이 쪼아 먹어서 완숙이 되기 전에..

사진속일상 2022.07.20

설봉공원 산책

J 수녀님을 만나러 이천에 간 길에 한 시간 정도 짬이 나서 설봉공원을 한 바퀴 산책했다. 설봉공원은 갈 때마다 더 예뻐진다. 5월의 설봉공원에는 수련과 더불어 화사한 봄꽃들이 많았다. 작년에 만든 인공폭포도 있다. 공원 전체에 야간 조명 시설이 보이는 걸로 봐서 밤의 설봉공원도 아름다울 것 같다. 폭포 앞은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행히 어지럼증은 열흘 정도 지나니 진정되었다. 아직 머리가 완전히 맑아지지는 않았으나 이만하면 빨리 회복된 셈이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되었다. 예전 같으면 가벼운 나들이였을 텐데 이젠 쉽게 지친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하물며 나는 장사도 아니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사진속일상 2022.05.27

정평천 산책

둘째 집에 간 길에 이른 저녁을 먹고 가까운 정평천을 산책하다. 정평천(亭坪川)은 용인시 수지구를 지나는 약 5km 길이의 작은 하천이다. 성복천, 탄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간다. 하천 옆으로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나 있는데, 다른 하천에 비해서는 옹색한 편이다. 그래도 도시를 지나는 이 작은 하천의 가치는 값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사는 곳에서 이만큼만 벗어나도 풍경의 낯섦이 살짝 긴장하게 만든다. 어디를 가나 아파트와 상가, 비슷한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일말의 어긋남이 있다. 처음 만나는 것이라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게 보인다. 길 끝에 가면 어떤 풍경이 있을지 기대도 된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이런 낯선 경험을 하기 위해선지 모른다. 외국이라면 더욱 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 정보가 범람..

사진속일상 2022.05.15

숲의 즐거움

우석영 선생의 숲에 관한 철학 산문집이다. 숲을 산책하며 느끼고 사유한 사색의 단상들이 묵직한 무게로 담겨 있다. 숲은 '수풀'이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수풀은 '수(樹)'와 '풀'의 합성어다. 숲은 나무와 풀만 아니라 온갖 생물이 살아가는 다(多)세계의 총합이다. 또한 숲은 여러 삶의 주체들이 각자의 삶을 공생의 문법 속에서 살아가는 모두의 집이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어쩌면 인간 태초의 고향인지 모른다. 우리는 숲을 거닐며 마음의 고요를 회복하고 우주와 하나가 된다. 은 숲 산책의 행복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 몇 새로운 단어를 발견해서 기뻤다. 그중 하나가 '유산(遊山)'이다. 옛 사람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산의 숲길을 거니는 일을 유산이라고 불렀다. 거니는 전통이 소멸되면서 지금은 유산 ..

읽고본느낌 2022.05.12

저녁 산책

저녁을 먹고 주택가 골목길을 산책하다. 여기는 구시가지라 허름한 단독주택과 연립 형태의 집이 많다. 도로와 면한 곳은 정비가 되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6, 70년대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정감이 가서 자꾸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게 된다. 초저녁인데도 벌써 인적이 끊어지고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눈에 띈다. 멀리서 웅웅거리는 자동차 소음 외에는 조용하다. 저 불빛이 환한 창은 어느 집 부엌인가 보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음식 냄새가 골목으로 흘러나온다. 잠시 발을 멈추고 음악을 감상하듯 눈을 감는다. 고시원 작은 방들에도 불이 들어와 있다. '청운의 꿈'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푸른색의 구름이라는 청운(靑雲)은 젊은이의 야망을 표현한 아름다운 말이다. 우리 때는 많이 썼는데 요사이는 잘 ..

사진속일상 2022.04.29

손주와 산책

코로나에서 벗어난 손주한테 찾아가서 집 주변을 함께 산책하다. 두 주 전에 제 어미가 밖에 나갔다가 코로나에 걸리고 손주도 따라서 감염되었다. 둘은 열흘 정도 격리 생활을 했다. 이제 회복되었지만 맛 감각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코로나에 걸려서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손주는 반대로 싱글벙글이다. 학교와 학원에 안 가고 엄마와 종일 함께 있으면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니 신이 날 만도 하다. 내일부터 학교에 가야 한다니까 시무룩해진다. 손주는 동네에 사는 고양이들과 친구가 되어 있다. 먹이가 든 봉지를 들고가니 서너 마리가 다가온다. 얘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는 걸 보니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들 같다. 먹이가 탐나서인지 산길까지 따라온다. 손주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난다. 할아버지한테는 손주에..

사진속일상 2022.03.21

차가운 물빛공원

분당에 나갔다 오는 길에 물빛공원에 들렀다. 요 며칠 강추위가 찾아와서 호수 물이 꽁꽁 얼었다. 어제 기온은 영하 18도까지 내려갔다. 40년 만의 최저 기온이었다고 한다. 집에만 들어앉아 있어서 뉴스로만 접했지 체감은 못했다. 오늘은 날이 풀어졌다는데도 남은 냉기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물빛공원 둘레길을 한 바퀴 돌면서 옆에 있는 야산 길도 조금 걸었다. 한 시간 조금 더 걸렸다. 집에 와서 늦은 점심을 하면서 반주로 소주 몇 잔을 즐겼다. 그리고 시공간의 환영(幻影)에 대한 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요사이 읽고 있는 책 탓인지 몰랐다. 시간이 직선상의 절대적인 흐름이 아님은 이미 밝혀졌다. 공간 역시 무한대로 펼쳐져 있지 않은지 모른다. 종이 두께로 겹쳐져 있어도 인간의 의식은 무한대로 인식할 수 ..

사진속일상 2021.12.27

양재 나가는 길

서울 양재에 나갈 때는 경강선과 신분당선 두 노선의 전철을 이용한다. 삼동역에서 타는 경강선은 손님이 적은지 20분에 한 대씩 운행해서 시간이 맞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때는 구내에서 대기하기보다 역 바깥으로 나가 짧은 산책을 한다. 산책 코스는 언덕의 텃밭 사이로 난 오솔길이다. 10여 분 정도 둘러보고 나면 전철 시간에 맞는다. 지금은 가을걷이가 끝나서 휑하지만 여름에는 온갖 푸성귀의 초록 물결로 넘실댄다. 군데군데 자리 잡은 농막에는 이불과 취사도구가 있어 노인들이 여기서 하루를 소일하며 보낸다. 신분당선으로 갈아탄 뒤 그래도 시간 여유가 있으면 목적지에서 한 정거장 전인 양재시민의숲역에서 내려 공원을 한 바퀴 돈다. 양재시민의숲은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도로를 경계로 나누어진 ..

사진속일상 2021.11.27

운동장의 밤

저녁을 먹고 운동장으로 산책을 나갔다. 코로나 때문이리라, 밤 운동하러 나온 사람이 확연히 줄었다. 저녁 8시밖에 안 됐으니 다른 때 같았으면 꽤 북적였을 터였다. 전주에 내려온 날이었다. 3년 전만 해도 장모님 모시고 함께 트랙을 돌았다. 이제는 걸음이 불편해서 나올 엄두를 못 내신다. 흐르는 세월은 야속하고 잔인하다. 누구나 예외가 없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내 두 발로 걸어가지 못할 때가 언젠가는 닥치리라. 그렇다고 인생이 끝나지야 않겠지만 어쨌든 슬프고 쓸쓸한 일이다. 혼자 걷는 걸음이 영 맥이 없다. 전주 경기장은 사용을 안 하는지 관리나 보수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겉에 페인트칠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너무 지저분하다. 새로운 종합경기장을 딴 곳에 짓고, 이곳은 다른 용도로 재개발할 계..

사진속일상 2021.10.08

추석날 동네 산책

추석이지만 연 이태째 고향에 못 내려갔다. 예전에 어느 정치인이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는데 지금 내 사정이 그러하다. 교통 정체를 안 겪고 번거로운 만남이 생략되니 몸은 편해도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쓸쓸한 추석 명절이다. 오전까지 비가 내리더니 오후가 되자 짙은 구름이 사라지고 밝은 가을 하늘이 열렸다. 비 내리다가 맑아지고, 맑다가 다시 흐려지고, 하는 것은 인생사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시름을 잊으려 동네 산책길에 나섰다. 집 앞 공터에 이제서야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뜸 들인지 10년 만이다. 이 동네에 이사온 뒤로 아파트가 엄청 많이 들어서고 있다. 전에는 상수원 보호 구역이라 아파트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모두 해제된 모양이다. 경기광주역 주변의 역세권 개발로..

사진속일상 2021.09.22

저녁 산책

35도를 오르내리는 더위가 열흘째 이어지고 있다. 더위 때문에 바깥출입도 뜸해졌다. 코로나 시대의 피서는 돌아다니기보다 집에 가만히 있기다. 덜 움직이고 뒹굴거리다 보면 더위도 잊는다. 며칠 전에 도쿄 올림픽이 개막해서 집안에서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따가운 햇살이 힘을 잃을 저녁 무렵에 아내와 동네 산책을 나선다. 먼저 텃밭에 들린다. 텃밭에는 손주가 심은 수박이 있다. 하필 수박이 제일 비실거리며 줄기가 뻗질 못한다. 이러다간 수박 달리는 걸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손주가 실망할까 봐 아내는 걱정이다. 둘이 페트병에 물을 가득 담아가서 수박에 듬뿍 준다. 올해는 텃밭에서 나오는 야채 덕을 톡톡히 본다. 고추, 가지, 상추, 깻잎, 방울토마토 등 식탁에는 텃밭에서 나오는 싱싱한 야채가 매일 오른다. 아..

사진속일상 2021.07.26

물빛공원 장미

물빛공원에는 장미 터널이 있다. 때가 지나기는 했지만 장미 구경 겸 산책을 하기 위해 물빛공원에 나갔다. 꽃잎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아직은 장미가 볼 만했다. 장미가 진다는 것은 봄이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이제야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올봄에 느닷없이 닥친 일들을 통해 나는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다 공부지요!"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여유를 찾을 것도 같다. 그동안 '봄장마'라 할 정도로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잦았다. 오늘은 모처럼 맑게 갠 화창한 날이다.

꽃들의향기 2021.06.04

빗속을 걷다

비 내리는 산길은 적막하다. 원래 뒷산을 찾는 사람이 드물기는 하지만 오늘은 완전히 인적이 끊겼다. 빗소리를 들으며 홀로 걷는 느낌도 괜찮다. 비가 오면 어지간해서는 바깥출입을 삼가는데 이젠 생각을 달리 해야겠다. 길에는 아까시 향기가 그윽하다. 비가 오니 더 진해진 것 같다. 비를 이기지 못해 떨어진 아까시꽃은 길을 덮고 있다. 자연의 순리에는 억지가 없다. 반면에 자연에 반하는 역리(逆理)는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나는 주문을 걸 듯 중얼거리며 걷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1시간 반 정도 마을과 뒷산 언저리를 산책한 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에 흠뻑 젖은 운동화를 빨아서 베란다 창가에 세워두었다. 며칠 햇볕을 쬐고 나면 보송보송해진 운동화를 신을 수 있겠지.

사진속일상 2021.05.17

물빛공원 두 바퀴

떡집에 쑥떡을 맡기고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겨 중대물빛공원을 찾았다. 가까이 있는 공원이건만 일 년 만에 와 본다. 전과 달라진 점 세 가지가 눈에 띈다. 1. 주차장이 유료화 되어서 주차 공간이 넉넉해졌다. 기본 2시간이 무료라 걷는 시간으로는 충분하다. 전에는 공원 이용객만 아니라 일반 주민이 장시간 주차하는 경우가 많아 늘 주차 공간이 부족했다. 아주 잘한 일이다. 2. 코로나 시대의 일방통행이 습관화 되었다. 입구에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으라는 화살표 표시가 되어 있다. 전에는 가끔 거꾸로 걷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한 방향을 잘 지킨다. 너무 일사불란한 게 오히려 기이하다. 3. 호숫가에 돌고래 조형물이 새로 생겼다. 약동하는 생명력을 표현했다 한다. 금방 비라도 쏟아질 듯 잔뜩 흐..

사진속일상 2021.04.30

가볍게 동네 산책

대상포진이 정점을 지나고 이제 잦아들고 있다. 병원 왕래를 제외한다면 아흐레 만에 동네 외출하다. 어느새 눈이 부실 정도로 봄은 한껏 부풀어 있다. "파랑파랑한 하늘과 초록초록한 땅", 오늘은 색깔을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로 쓰고 싶다. 이 계절을 왜 '봄'이라 했는지 알 것 같다. 가까운 주변에도 이렇게 신기한 볼거리가 많지 않은가. 느릿느릿 걷다가 앉을 데가 있으면 쉰다. 공기는 어디선가 묻어오는 향기로 달콤하다. 관목 숲에서는 지저귀는 새소리가 정겹다. 숲의 수다꾼인 직박두리들이다. 나뭇잎이 많아져서 새 보기가 점점 어렵다. 오늘은 고작 물까치 서너 마리와 눈 맞춤한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 아둔한 나는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깨우치곤 한다.

사진속일상 2021.04.26

올림픽공원에서 새를 찾다

서울에 간 길에 짬을 내서 올림픽공원에 들렀다. 넓고 나무가 많으니 새를 볼 수 있을지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집 주변에서 만나는 백로나 황새 같은 큰 새는 잘 보이고 사진 찍기가 쉬웠는데 작은 새는 소리만 들릴 뿐 발견하는 것부터 힘들다. 봤다 해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금방 사라져 버린다. 휴일의 올림픽공원은 산책 나온 사람이 많았다. 기온도 15도를 넘어서며 봄날처럼 따뜻했다. 반팔 차림으로 다니는 젊은이도 자주 보였다. 처음 만난 새가 물까치였다. 파스텔 톤의 깃털 색깔이 예뻤는데 여러 마리가 어울려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 직박구리 ▽ 곤줄박이 ▽ 박새 삼각대에 대포를 걸어놓고 한곳에 집중하는 사진사들을 우연히 만났다. 먹이로 새를 유인하며 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주로 어치가 들락거렸는데 나도 곁..

사진속일상 2021.02.22

왕숙천 산책

손주를 서울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구리에 있는 왕숙천에 들렀다. 함흥에 갔던 이성계가 환궁하면서 머물렀던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이라고 해서 왕숙천(王宿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저곳에 이성계와 관련된 지명이 상당히 많다. 우리나라 어디나 하천 주위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자전거 길도 사통팔달되는 것 같다. 휴일이라 걸으러 나온 사람이 많았지만 워낙 넓다 보니 북적이지는 않았다. 넓은 갈대밭도 있으면서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유심히 새를 살폈으나 그다지 눈에 많이 띄지는 않았다. 새가 깃들기에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다. 왜가리, 흰뺨검둥오리, 물닭, 참새. 우리 마을 경안천에서 다시 황새를 만났다. 이 황새는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게 신기하다. 시베리아로 떠날 때가 차차 다가오..

사진속일상 2021.02.20

겨울 설봉공원과 고달사지

지인을 만나러 이천에 내려가서 함께 설봉공원을 찾았다. 설봉호 둘레를 따라 잘 만들어진 산책로를 두 바퀴 돌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에 내린 눈이 은세계를 만들었지만 걷는 길은 눈이 잘 치워져 있었다. "어느 멋진 날, 눈부시게 빛나는", 겨울날이었다. 밤골 앞을 지나가며 잠시 차를 세웠다. 이제서야 이렇게라도 바라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고달사지에 들렀다. 눈 위에 우리가 첫 발자국을 남겼다.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년)에 지어진 절이다. 쨍한 겨울 햇살을 맞으며 고달사지를 한 바퀴 돌았다. 400년 된 고달사지 입구의 느티나무는 마치 죽은 듯 앙상했다. 그러나 곧 봄이 오고 있음을 나무는 온 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맑은 겨울 속의 짧은 나들이길이었다.

사진속일상 2021.02.06

첫눈(2020/12/13)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은세계로 변해 있다. 창 밖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오래 구경하다. 어딘가 쓸쓸해져서 우산을 받쳐 들고 동네 산책에 나서다. 눈 위에 내 발자국이 처음 찍히는 길이 많다. 산길에 드니 앞서 고라니가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고라니 걸음은 붓으로 찍은 듯 부드럽다. 같이 보조를 맞추어 걷다. 얼마간은 마음이 포근해지고 따스해지다. 2020년 12월 13일, 첫눈 내린 날....

사진속일상 2020.12.13

백운호수 한 바퀴

답답해서 집 밖으로 나왔다. 언뜻 생각난 게 의왕에 있는 백운(白雲)호수였다. 집에서 차로 30분이면 넉넉히 갈 수 있는 거리다. 호수 둘레로 산책로가 완성되고 나서는 처음 찾아가 본다. 백운호수 주변도 많이 변하고 있다. 호수와 백운산 사이 지역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대규모 쇼핑몰도 들어서는 것 같다. 예전의 시골스런 정취를 기대하긴 힘들게 생겼다. 산책로는 호수 둘레를 따라 나무 데크와 흙길로 되어 있다. 오르내림이 전혀 없는 평탄한 길이다. 전체 길이가 3km로 40분이면 한 바퀴를 돈다. 그런데 여름 한낮 땡볕 속을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장맛비가 호수로 흘러들어간 흔적이 남아 있다. 백운호수는 1953년에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도시인의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전..

사진속일상 2020.08.18

파란에서 부활로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소마미술관에서 류인 작가의 조각전이 열리고 있다[2020.5.19 ~ 10.4]. 전시 주제가 '파란에서 부활로'이다. '파란'은 한자로 '破卵'으로, '알을 깨고 나온다'는 뜻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말인 듯하다. 류인(柳仁, 1956~1999)은 요절한 천재 조각가다. 40대 초반에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고작 10여 년간 활동을 하면서 7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전통적 방법으로 인체를 다루면서도 현대적인 표현을 구사하여 한국 현대 구상조각의 독보적 자취를 남겼다고 한다. 입방체 속에 갇힌 인간이 굴레를 깨고 나오려는 몸부림을 표현한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작품 제목에 '입산(入山)'이나 '파란(破卵)'이 들어간 연작이 여럿 있다. 무척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사진속일상 2020.08.13

우중 산책

장마가 길다. 8월 중순에 들어섰는데도 장마전선은 물러갈 줄 모른다. 전국적으로 비 피해도 만만찮다. 장마에 관한 기록이 2020년에 여러 개가 갱신될 것 같다. 마을 산책하러 나갔다가 비를 만났다. 목현천에는 물안개가 뿌옇게 올라온다. 너무 비를 맞아선지 매미 소리도 힘이 없다. 한창 짝을 찾아 짝짓기할 땐데 매미는 평생 농사를 망치게 생겼다. 길에서 그저께 봤던 노부부를 다시 만났다. 걸음이 빠른 할머니는 멀찌감치 앞서가다가 개울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오늘은 캐리어 없이 할머니만 배낭을 메고 있다. 산책 나온 복장이 아니라서 이 노부부의 가는 길이 여전히 궁금한다. 비 탓인지 목현천 백일홍 꽃길에도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장마 기간에 태풍 '장미'가 올라왔다. 다행히 소형 태풍이라서 남해..

사진속일상 2020.08.11

광릉수목원 산책

아내와 봉선사 연꽃을 보고 인근의 광릉수목원을 산책했다. 수목원 안에서 제일 시원한 길은 전나무 숲길일 것이다. 이 길은 약 200m 길이로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 중 하나다. 1920년대에 오대산에서 종자를 가져와 심은 것으로 수령은 100년 가까이 되었다. 전나무 숲길을 따라 수목원 한 바퀴 돌게 되어 있지만, 중간에 공사로 통제되어 되돌아 나왔다. 숲 사이로 난 아담한 길이 있다. 이름이 '숲 생태 관찰로'로 길이는 460m다. 데크로 되어 있는데 숲의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수목원 안에는 호수(육림호)가 있다. 초기에는 발전 시설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저장하고 있다. 호수 둘레를 따라 있는 산책로 역시 좋다. 수목원과 봉선사를 연결하는 길이 3km의 '광릉..

사진속일상 2020.07.29

석촌호수 산책

서울에 나간 길에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두 시간의 여유가 있어 느릿느릿, 쉬엄쉬엄,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며 거북이걸음을 했다. 석촌호수의 정식 명칭은 송파나루공원이다. 원래 송파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한양에서 각 지방으로 이어지는 뱃길의 요지였다. 과거 잠실 쪽 한강에는 부리도(浮里島)라는 섬이 있었고, 한강이 두 갈래로 나누어져 흘렀다. 1971년에 부리도의 남쪽 물길을 폐쇄하고 섬을 육지화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그때 막은 남쪽 물길이 지금의 석촌호수로 남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석촌호수 옆에서 3년 정도 살았다. 8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는 휴일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자주 놀러 나왔다. 송파나루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한 초기 단계였다. 아득한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공원 벤치에는 ..

사진속일상 2020.06.20

불쑥 다가온 여름

어제는 31도, 오늘은 33도까지 낮 기온이 올라서 때 이른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올해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난데없이 불쑥 덮친 여름이 앞으로 석 달간 이 땅을 불가마니를 만들 모양이다. 여름에는 더운 게 당연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계절의 변화조차 심상치 않게 여겨진다. 봄의 코로나와 여름의 더위, 가을에는 또 뭐가 찾아올까. 인류는 앞으로 단단히 시달려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지구에 대해 저지른 못된 행태에 대한 인과응보가 아닌가 싶다. 몸이 기온 변화에 쉬이 적응하지 못한다. 무겁고 무기력하다. 나이가 든 탓이리라. 이럴 때는 열심히 움직여야 할까, 가만히 쉬어야 할까. 어느 쪽이든 지나치면 안 하니만 못 할 것이다. 적절한 균형점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 양생(養生)의 기본이리라. 목현천을 한 시간..

사진속일상 2020.06.09

탄천을 산책하다

치과 진료를 받은 뒤 근처에 있는 탄천을 산책하다. 천변은 개나리가 만발하고, 나무는 연초록 색깔로 화사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인간사의 일일 뿐, 자연은 어김없이 봄이다. 산책 나온 사람이 확실히 많아졌다. 코로나19가 바꾼 풍경이다. 멀리 나가지를 못하니 집 가까이서 하는 산책으로 대체한 탓이다. 이참에 우리 삶의 패턴을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천천히, 느리게, 덜 소비하고, 덜 움직이고, 욕심은 줄이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늘리는 방향으로 말이다. 탄천은 깔끔하게 단장이 잘 되어 있는 대신, 우리 동네 경안천과 달리 복잡하고 시끄럽다. 오래 살다 보면 누구든 제 사는 동네를 제일 편하게 여기게 되나 보다. 조금은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 한 시간여 산책하고 돌아오다.

사진속일상 2020.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