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96

운동장의 밤

저녁을 먹고 운동장으로 산책을 나갔다. 코로나 때문이리라, 밤 운동하러 나온 사람이 확연히 줄었다. 저녁 8시밖에 안 됐으니 다른 때 같았으면 꽤 북적였을 터였다. 전주에 내려온 날이었다. 3년 전만 해도 장모님 모시고 함께 트랙을 돌았다. 이제는 걸음이 불편해서 나올 엄두를 못 내신다. 흐르는 세월은 야속하고 잔인하다. 누구나 예외가 없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내 두 발로 걸어가지 못할 때가 언젠가는 닥치리라. 그렇다고 인생이 끝나지야 않겠지만 어쨌든 슬프고 쓸쓸한 일이다. 혼자 걷는 걸음이 영 맥이 없다. 전주 경기장은 사용을 안 하는지 관리나 보수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겉에 페인트칠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너무 지저분하다. 새로운 종합경기장을 딴 곳에 짓고, 이곳은 다른 용도로 재개발할 계..

사진속일상 2021.10.08

추석날 동네 산책

추석이지만 연 이태째 고향에 못 내려갔다. 예전에 어느 정치인이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는데 지금 내 사정이 그러하다. 교통 정체를 안 겪고 번거로운 만남이 생략되니 몸은 편해도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쓸쓸한 추석 명절이다. 오전까지 비가 내리더니 오후가 되자 짙은 구름이 사라지고 밝은 가을 하늘이 열렸다. 비 내리다가 맑아지고, 맑다가 다시 흐려지고, 하는 것은 인생사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시름을 잊으려 동네 산책길에 나섰다. 집 앞 공터에 이제서야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뜸 들인지 10년 만이다. 이 동네에 이사온 뒤로 아파트가 엄청 많이 들어서고 있다. 전에는 상수원 보호 구역이라 아파트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모두 해제된 모양이다. 경기광주역 주변의 역세권 개발로..

사진속일상 2021.09.22

저녁 산책

35도를 오르내리는 더위가 열흘째 이어지고 있다. 더위 때문에 바깥출입도 뜸해졌다. 코로나 시대의 피서는 돌아다니기보다 집에 가만히 있기다. 덜 움직이고 뒹굴거리다 보면 더위도 잊는다. 며칠 전에 도쿄 올림픽이 개막해서 집안에서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따가운 햇살이 힘을 잃을 저녁 무렵에 아내와 동네 산책을 나선다. 먼저 텃밭에 들린다. 텃밭에는 손주가 심은 수박이 있다. 하필 수박이 제일 비실거리며 줄기가 뻗질 못한다. 이러다간 수박 달리는 걸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손주가 실망할까 봐 아내는 걱정이다. 둘이 페트병에 물을 가득 담아가서 수박에 듬뿍 준다. 올해는 텃밭에서 나오는 야채 덕을 톡톡히 본다. 고추, 가지, 상추, 깻잎, 방울토마토 등 식탁에는 텃밭에서 나오는 싱싱한 야채가 매일 오른다. 아..

사진속일상 2021.07.26

물빛공원 장미

물빛공원에는 장미 터널이 있다. 때가 지나기는 했지만 장미 구경 겸 산책을 하기 위해 물빛공원에 나갔다. 꽃잎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아직은 장미가 볼 만했다. 장미가 진다는 것은 봄이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이제야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올봄에 느닷없이 닥친 일들을 통해 나는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다 공부지요!"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여유를 찾을 것도 같다. 그동안 '봄장마'라 할 정도로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잦았다. 오늘은 모처럼 맑게 갠 화창한 날이다.

꽃들의향기 2021.06.04

빗속을 걷다

비 내리는 산길은 적막하다. 원래 뒷산을 찾는 사람이 드물기는 하지만 오늘은 완전히 인적이 끊겼다. 빗소리를 들으며 홀로 걷는 느낌도 괜찮다. 비가 오면 어지간해서는 바깥출입을 삼가는데 이젠 생각을 달리 해야겠다. 길에는 아까시 향기가 그윽하다. 비가 오니 더 진해진 것 같다. 비를 이기지 못해 떨어진 아까시꽃은 길을 덮고 있다. 자연의 순리에는 억지가 없다. 반면에 자연에 반하는 역리(逆理)는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나는 주문을 걸 듯 중얼거리며 걷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1시간 반 정도 마을과 뒷산 언저리를 산책한 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에 흠뻑 젖은 운동화를 빨아서 베란다 창가에 세워두었다. 며칠 햇볕을 쬐고 나면 보송보송해진 운동화를 신을 수 있겠지.

사진속일상 2021.05.17

물빛공원 두 바퀴

떡집에 쑥떡을 맡기고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겨 중대물빛공원을 찾았다. 가까이 있는 공원이건만 일 년 만에 와 본다. 전과 달라진 점 세 가지가 눈에 띈다. 1. 주차장이 유료화 되어서 주차 공간이 넉넉해졌다. 기본 2시간이 무료라 걷는 시간으로는 충분하다. 전에는 공원 이용객만 아니라 일반 주민이 장시간 주차하는 경우가 많아 늘 주차 공간이 부족했다. 아주 잘한 일이다. 2. 코로나 시대의 일방통행이 습관화 되었다. 입구에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으라는 화살표 표시가 되어 있다. 전에는 가끔 거꾸로 걷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한 방향을 잘 지킨다. 너무 일사불란한 게 오히려 기이하다. 3. 호숫가에 돌고래 조형물이 새로 생겼다. 약동하는 생명력을 표현했다 한다. 금방 비라도 쏟아질 듯 잔뜩 흐..

사진속일상 2021.04.30

가볍게 동네 산책

대상포진이 정점을 지나고 이제 잦아들고 있다. 병원 왕래를 제외한다면 아흐레 만에 동네 외출하다. 어느새 눈이 부실 정도로 봄은 한껏 부풀어 있다. "파랑파랑한 하늘과 초록초록한 땅", 오늘은 색깔을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로 쓰고 싶다. 이 계절을 왜 '봄'이라 했는지 알 것 같다. 가까운 주변에도 이렇게 신기한 볼거리가 많지 않은가. 느릿느릿 걷다가 앉을 데가 있으면 쉰다. 공기는 어디선가 묻어오는 향기로 달콤하다. 관목 숲에서는 지저귀는 새소리가 정겹다. 숲의 수다꾼인 직박두리들이다. 나뭇잎이 많아져서 새 보기가 점점 어렵다. 오늘은 고작 물까치 서너 마리와 눈 맞춤한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 아둔한 나는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깨우치곤 한다.

사진속일상 2021.04.26

올림픽공원에서 새를 찾다

서울에 간 길에 짬을 내서 올림픽공원에 들렀다. 넓고 나무가 많으니 새를 볼 수 있을지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집 주변에서 만나는 백로나 황새 같은 큰 새는 잘 보이고 사진 찍기가 쉬웠는데 작은 새는 소리만 들릴 뿐 발견하는 것부터 힘들다. 봤다 해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금방 사라져 버린다. 휴일의 올림픽공원은 산책 나온 사람이 많았다. 기온도 15도를 넘어서며 봄날처럼 따뜻했다. 반팔 차림으로 다니는 젊은이도 자주 보였다. 처음 만난 새가 물까치였다. 파스텔 톤의 깃털 색깔이 예뻤는데 여러 마리가 어울려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 직박구리 ▽ 곤줄박이 ▽ 박새 삼각대에 대포를 걸어놓고 한곳에 집중하는 사진사들을 우연히 만났다. 먹이로 새를 유인하며 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주로 어치가 들락거렸는데 나도 곁..

사진속일상 2021.02.22

왕숙천 산책

손주를 서울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구리에 있는 왕숙천에 들렀다. 함흥에 갔던 이성계가 환궁하면서 머물렀던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이라고 해서 왕숙천(王宿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저곳에 이성계와 관련된 지명이 상당히 많다. 우리나라 어디나 하천 주위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자전거 길도 사통팔달되는 것 같다. 휴일이라 걸으러 나온 사람이 많았지만 워낙 넓다 보니 북적이지는 않았다. 넓은 갈대밭도 있으면서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유심히 새를 살폈으나 그다지 눈에 많이 띄지는 않았다. 새가 깃들기에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다. 왜가리, 흰뺨검둥오리, 물닭, 참새. 우리 마을 경안천에서 다시 황새를 만났다. 이 황새는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게 신기하다. 시베리아로 떠날 때가 차차 다가오..

사진속일상 2021.02.20

겨울 설봉공원과 고달사지

지인을 만나러 이천에 내려가서 함께 설봉공원을 찾았다. 설봉호 둘레를 따라 잘 만들어진 산책로를 두 바퀴 돌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에 내린 눈이 은세계를 만들었지만 걷는 길은 눈이 잘 치워져 있었다. "어느 멋진 날, 눈부시게 빛나는", 겨울날이었다. 밤골 앞을 지나가며 잠시 차를 세웠다. 이제서야 이렇게라도 바라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고달사지에 들렀다. 눈 위에 우리가 첫 발자국을 남겼다.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년)에 지어진 절이다. 쨍한 겨울 햇살을 맞으며 고달사지를 한 바퀴 돌았다. 400년 된 고달사지 입구의 느티나무는 마치 죽은 듯 앙상했다. 그러나 곧 봄이 오고 있음을 나무는 온 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맑은 겨울 속의 짧은 나들이길이었다.

사진속일상 2021.02.06

첫눈(2020/12/13)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은세계로 변해 있다. 창 밖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오래 구경하다. 어딘가 쓸쓸해져서 우산을 받쳐 들고 동네 산책에 나서다. 눈 위에 내 발자국이 처음 찍히는 길이 많다. 산길에 드니 앞서 고라니가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고라니 걸음은 붓으로 찍은 듯 부드럽다. 같이 보조를 맞추어 걷다. 얼마간은 마음이 포근해지고 따스해지다. 2020년 12월 13일, 첫눈 내린 날....

사진속일상 2020.12.13

백운호수 한 바퀴

답답해서 집 밖으로 나왔다. 언뜻 생각난 게 의왕에 있는 백운(白雲)호수였다. 집에서 차로 30분이면 넉넉히 갈 수 있는 거리다. 호수 둘레로 산책로가 완성되고 나서는 처음 찾아가 본다. 백운호수 주변도 많이 변하고 있다. 호수와 백운산 사이 지역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대규모 쇼핑몰도 들어서는 것 같다. 예전의 시골스런 정취를 기대하긴 힘들게 생겼다. 산책로는 호수 둘레를 따라 나무 데크와 흙길로 되어 있다. 오르내림이 전혀 없는 평탄한 길이다. 전체 길이가 3km로 40분이면 한 바퀴를 돈다. 그런데 여름 한낮 땡볕 속을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장맛비가 호수로 흘러들어간 흔적이 남아 있다. 백운호수는 1953년에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도시인의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전..

사진속일상 2020.08.18

파란에서 부활로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소마미술관에서 류인 작가의 조각전이 열리고 있다[2020.5.19 ~ 10.4]. 전시 주제가 '파란에서 부활로'이다. '파란'은 한자로 '破卵'으로, '알을 깨고 나온다'는 뜻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말인 듯하다. 류인(柳仁, 1956~1999)은 요절한 천재 조각가다. 40대 초반에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고작 10여 년간 활동을 하면서 7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전통적 방법으로 인체를 다루면서도 현대적인 표현을 구사하여 한국 현대 구상조각의 독보적 자취를 남겼다고 한다. 입방체 속에 갇힌 인간이 굴레를 깨고 나오려는 몸부림을 표현한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작품 제목에 '입산(入山)'이나 '파란(破卵)'이 들어간 연작이 여럿 있다. 무척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사진속일상 2020.08.13

우중 산책

장마가 길다. 8월 중순에 들어섰는데도 장마전선은 물러갈 줄 모른다. 전국적으로 비 피해도 만만찮다. 장마에 관한 기록이 2020년에 여러 개가 갱신될 것 같다. 마을 산책하러 나갔다가 비를 만났다. 목현천에는 물안개가 뿌옇게 올라온다. 너무 비를 맞아선지 매미 소리도 힘이 없다. 한창 짝을 찾아 짝짓기할 땐데 매미는 평생 농사를 망치게 생겼다. 길에서 그저께 봤던 노부부를 다시 만났다. 걸음이 빠른 할머니는 멀찌감치 앞서가다가 개울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오늘은 캐리어 없이 할머니만 배낭을 메고 있다. 산책 나온 복장이 아니라서 이 노부부의 가는 길이 여전히 궁금한다. 비 탓인지 목현천 백일홍 꽃길에도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장마 기간에 태풍 '장미'가 올라왔다. 다행히 소형 태풍이라서 남해..

사진속일상 2020.08.11

광릉수목원 산책

아내와 봉선사 연꽃을 보고 인근의 광릉수목원을 산책했다. 수목원 안에서 제일 시원한 길은 전나무 숲길일 것이다. 이 길은 약 200m 길이로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 중 하나다. 1920년대에 오대산에서 종자를 가져와 심은 것으로 수령은 100년 가까이 되었다. 전나무 숲길을 따라 수목원 한 바퀴 돌게 되어 있지만, 중간에 공사로 통제되어 되돌아 나왔다. 숲 사이로 난 아담한 길이 있다. 이름이 '숲 생태 관찰로'로 길이는 460m다. 데크로 되어 있는데 숲의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수목원 안에는 호수(육림호)가 있다. 초기에는 발전 시설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저장하고 있다. 호수 둘레를 따라 있는 산책로 역시 좋다. 수목원과 봉선사를 연결하는 길이 3km의 '광릉..

사진속일상 2020.07.29

석촌호수 산책

서울에 나간 길에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두 시간의 여유가 있어 느릿느릿, 쉬엄쉬엄,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며 거북이걸음을 했다. 석촌호수의 정식 명칭은 송파나루공원이다. 원래 송파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한양에서 각 지방으로 이어지는 뱃길의 요지였다. 과거 잠실 쪽 한강에는 부리도(浮里島)라는 섬이 있었고, 한강이 두 갈래로 나누어져 흘렀다. 1971년에 부리도의 남쪽 물길을 폐쇄하고 섬을 육지화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그때 막은 남쪽 물길이 지금의 석촌호수로 남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석촌호수 옆에서 3년 정도 살았다. 8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는 휴일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자주 놀러 나왔다. 송파나루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한 초기 단계였다. 아득한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공원 벤치에는 ..

사진속일상 2020.06.20

불쑥 다가온 여름

어제는 31도, 오늘은 33도까지 낮 기온이 올라서 때 이른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올해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난데없이 불쑥 덮친 여름이 앞으로 석 달간 이 땅을 불가마니를 만들 모양이다. 여름에는 더운 게 당연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계절의 변화조차 심상치 않게 여겨진다. 봄의 코로나와 여름의 더위, 가을에는 또 뭐가 찾아올까. 인류는 앞으로 단단히 시달려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지구에 대해 저지른 못된 행태에 대한 인과응보가 아닌가 싶다. 몸이 기온 변화에 쉬이 적응하지 못한다. 무겁고 무기력하다. 나이가 든 탓이리라. 이럴 때는 열심히 움직여야 할까, 가만히 쉬어야 할까. 어느 쪽이든 지나치면 안 하니만 못 할 것이다. 적절한 균형점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 양생(養生)의 기본이리라. 목현천을 한 시간..

사진속일상 2020.06.09

탄천을 산책하다

치과 진료를 받은 뒤 근처에 있는 탄천을 산책하다. 천변은 개나리가 만발하고, 나무는 연초록 색깔로 화사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인간사의 일일 뿐, 자연은 어김없이 봄이다. 산책 나온 사람이 확실히 많아졌다. 코로나19가 바꾼 풍경이다. 멀리 나가지를 못하니 집 가까이서 하는 산책으로 대체한 탓이다. 이참에 우리 삶의 패턴을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천천히, 느리게, 덜 소비하고, 덜 움직이고, 욕심은 줄이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늘리는 방향으로 말이다. 탄천은 깔끔하게 단장이 잘 되어 있는 대신, 우리 동네 경안천과 달리 복잡하고 시끄럽다. 오래 살다 보면 누구든 제 사는 동네를 제일 편하게 여기게 되나 보다. 조금은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 한 시간여 산책하고 돌아오다.

사진속일상 2020.03.23

율동공원 산책

치과 진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율동공원을 산책했다. 율동저수지를 따라 2.5km 길이의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따스한 오후라 산책 나온 시민들이 많았다. 공원을 야트막한 산이 둘러싸고 있다. 이번에는 산길로 들어가 보았다. 걷기 좋은 길이 능선을 따라 얼기설기 뻗어 있는데, 실버 코스로는 최고의 길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가 진정세를 보인다. 어제부터 확진자수가 하루에 백 명 이하로 떨어졌다. 천 명 가까이 치솟았던 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반면에 유럽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초창기는 난리를 쳤지만 매를 먼저 맞은 우리가 지금은 느긋하다. 누구나 제 살 속에 가시 하나는 가지고 살아간다. 아무리 해도 뽑히지 않는 가시다. 가시가 어떠하든 인간이 감내해야 할 고통의 무게는 크..

사진속일상 2020.03.16

팔당 드라이브

집 가까이에 팔당호를 따라 난 342번 지방도가 있다. 분원리, 귀여리, 검천리, 수청리를 지나는데 드라이브하기 좋은 길이다. 특히 봄에는 벚꽃길로 유명하다. 아내와 이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몸이 좋지 않은 아내는 근 열흘 만의 외출이었다. 오늘은 날씨가 더욱 풀려 낮 기온이 14도까지 올랐다. 얼마나 따스한지 반팔 상의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중간에 물안개공원에 들러 한 시간 정도 산책했다. 원래 걸을 계획이 없었는데 간질간질한 햇살의 유혹을 이기기 힘들었다. 공원의 나무들은 벌써 봄물이 오르고 있었다. 살아가는데 제일 큰 스트레스가 윗집 올빼미 가족의 층간소음이다. 방학이 되어선지 겨울이 되면 그 강도가 서너 배는 세진다. 오늘은 새벽 세 시가 되어서야 잠들 수 있었다.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

사진속일상 2020.02.11

어린이대공원 산책

서울의 친지 결혼식에 참석한 뒤 마침 가까이에 어린이대공원이 있어 잠시 산책하다. 거의 15년 만에 들어와 보다. 더 옛날,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자주 놀러 왔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요사이는 갈 데가 많지만 그때는 어린이대공원이 놀이 시설과 동물원이 있는 대표적인 복합 나들이 장소였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옛 생각에 잠긴다. 둘이 유모차를 서로 타려고 싸우다가 언니가 혼이 나서 운 데가 여기였지. 저기쯤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고, 비스듬히 누워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코끼리 우리 앞에서 목말을 태워주면 엄청 좋아하던 아이들이었는데. 가볍게 번쩍 들어올리던, 얘들이 언제 클까 싶던, 그 시절이 좋았어. 놀이동산에서 청룡열차 타는 걸 좋아해서 긴 줄에 서 있곤 했지. 아이..

사진속일상 2020.01.12

서울 산책

친지 결혼식에 참석한 기회를 이용해 서울 길을 산책했다. 명동성당에서 서울시청,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거쳐 안국역까지 걸었다. 잔뜩 흐리다가 눈, 비 섞여 날리는 궂은 날이었다. 결혼식이 명동성당에서 있었다. 성탄절을 앞둔 때라 성당 앞에 아기 예수 구유가 설치되어 있다. 얼마 전에는 아기 예수가 누웠던 구유 조각이 1,400년 만에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허나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초라한 구유와 화려한 빌딩, 사람들은 어디에 경배하는 걸까? 옛 서울시청사는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되어 있다. 여러 문화 시설이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 이런 데 오면 서울특별시민이 부럽다. 세월호 기억의 공간도 있다. 시청 앞 광장은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 스케이트장을 정리하는 ..

사진속일상 2019.12.21

경의선숲길 산책

1906년 개통된 경의선은 용산역과 신의주역을 잇는 518km 길이의 철도다. 일제가 한반도 지배와 대륙 침략을 위해 건설했다. 당시에는 경부선 다음으로 운수교통량이 많았다고 한다. 경의선은 남북 분단으로 끊어졌다가 2003년에 연결식이 군사분계선에서 있었다. 2009년에 광역전철이 개통되면서 경의선 중 용산선 구간 6.3km가 지하화됨에 따라 지상 구역은 공원으로 만들었다. 2016년에 경의선숲길 공원으로 완공되었다. 경떠회원 다섯 명과 경의선숲길을 걷다. 서울로 진입하는데 너무 시간이 지체한 통에 나는 중간에서 합류하다. 철로를 따라 만든 공원이라 띠 모양으로 길게 뻗어 있다. 꽃과 나무로 잘 가꾸었고 도심이지만 숲에 들어 있는 느낌이다. 주변의 가게들도 아기자기하게 예쁘다. 옛 철로 풍경을 재현한 ..

사진속일상 2019.09.07

두물머리 산책

원래는 신원역에서 만나 부용산 능선을 따라 양수역까지 걸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H의 사정으로 취소하고, 가벼운 두물머리 산책으로 대체했다. 미리 연락만 해 주었어도, 시간 조절 등 다른 방법이 가능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쉬웠다. 그렇다고 불뚝한 내 성질도 문제다. 신현회 다섯 명이 같이 했다. 1973년에 준공된 팔당댐으로 이곳은 호수가 되었다. 수많은 마을과 농경지가 수몰되었을 것이다. 원래 강이 흐르던 풍경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한때 여기서 친환경 유기농 운동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것은 딸기 체험장과 아이들이 타고 온 관광버스들이 차고지처럼 북적였다. 두물머리의 중심은 400년 된 느티나무다. 옛날 나루터는 물 아래 어디에 있었을..

사진속일상 2019.06.06

봄 오는 목현천

냇물 졸졸거리는 소리로 봄이 온다. 가벼운 패딩 잠바로 갈아 입고 목현천 산책에 나갔다. 오늘 낮 기온은 14도까지 올랐다.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기운에 끌려 밖에 나와 걷는 사람이 많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하다. 동생네는 또 남쪽에 간 모양이다. 혼자 지내도 괜찮느냐는 물음에 대답이 경쾌하다. "혼자 있으니 신경이 안 쓰이고 훨씬 낫다." 그만큼 정정하시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새로 돋아난 가지에 잎인지 꽃인지 모를 봉오리가 맺혀 있다. 봄을 준비하는 나무는 지금 얼마나 바쁠 것인가. 만물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저녁도 흐리다. 이번 주는 수성이 최대이각이 되는 기간이라 관찰의 적기다. 해 진 뒤 서쪽 하늘에 잠시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헛..

사진속일상 2019.02.27

열이틀 만의 외출

독감 기세가 누그러졌다. 열이틀 만에 밖에 나갔다. 내 멋대로 쉴 수 있는 건 백수의 특권이다. 만약 직장에 다닌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고작 하루 정도 병가를 낼 수 있을까. 눈치가 보여 집에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열이틀은 나같이 게으른 백수에게나 가능하다. 활동적인 사람은 몸이 근질거려 오직 방콕을 견디지 못하리라. 경안천을 30분 정도 산책했다. 햇빛이 자글거리며 얼굴을 간질이는 게 좋았다. 독감이 물러가고 이제 몸이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는 이 안도감과 느긋함이라니. 나한테서 릴레이 받아 시작한 아내는 독감이 현재진행형이다. 하남에 가서 보신탕을 사 왔다. 아내는 기력 회복용으로 보신탕이 최고의 음식이라 믿고 있다. 내가 아프면 먹을거리가 풍성하지만, 아내가 아프면 식탁이..

사진속일상 2019.01.17

남한산성 산책

안양에 사는 G한테서 전화가 왔다. 걱정 되어서 연락한다고 했다. 송년 모임에 나가지 않았더니 엉뚱한 소문이 돈 모양이다. 가족 건강 문제가 심각한 줄 안다. 두문불출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면 안 되겠구나. 사람들은 제 식으로 상대방을 파악한다. 제 앎과 경험의 범위 안에서만 본다. 그게 사람과 사물을 이해하는 인간의 한계다. 그렇다고,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살아갑니다, 라고 변명하기도 뭣하다. G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지 말라고 충고한다. 허허, 하고 웃어넘겼다. 첫째가 와서 남한산성을 셋이서 산책하다. 함께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남한산성 주차비가 3천 원으로 올랐다. 그동안 천 원이어서 싸다 했더니 배포있게 세 배나 인상하며 현실화시켰다. 주차장에서 북문, 서문, 남문을 거쳐 내려왔다...

사진속일상 2018.12.22

남이 봐도 되는 일기

1. 찬바람 속을 걸으면 눈물이 쉴 새 없이 나온다. 손수건 꺼내는 걸 잠깐 잊으면 볼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린다. 내가 이렇게 눈물 많은 사람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런데 정작 울어야 할 때는 절대로 안 나온다.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주책이다. 병원에 가보고 싶지만 의사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노화 현상입니다!" 미세먼지를 막아주는 마스크처럼 눈물을 제어해 주는 투명 마스크는 없을까. 고령화 시대에 대박 상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2.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천년의 세월을 살 것처럼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그렇게 멀리만 보이던 노년이었는데 세월을 나를 어느덧 노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초등 친구 카톡방에 ..

사진속일상 2018.12.12

동구릉의 늦가을

서울 동쪽 지역에서 오래 살았으므로 동구릉과 친근했다. 고등학생일 때 동구릉으로 소풍을 왔고, 훈장 노릇할 때도 학생들을 인솔해서 여기로 소풍을 자주 왔다. 집 아이들을 데리고 가끔 놀러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들러도 동구릉은 정겹다. 동구릉(東九陵)에는 태조 이성계가 묻힌 건원릉을 비롯해 아홉 능이 있다. 정문을 들어서서 반시계방향으로 돈다면 수릉, 현릉, 목릉, 건원릉, 휘릉, 원릉, 경릉, 혜릉, 숭릉을 지나간다. 어제 비가 내리고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이 열렸다. 수릉(綏陵) -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능. 문조(文祖, 1809~1830)는 23대 순조의 아들로 효명세자 시절 대리청정을 시작하여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력했으나 22세에 요절하였다. 건원릉(健元陵) -..

사진속일상 2018.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