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양재 나가는 길

샌. 2021. 11. 27. 11:29

서울 양재에 나갈 때는 경강선과 신분당선 두 노선의 전철을 이용한다. 삼동역에서 타는 경강선은 손님이 적은지 20분에 한 대씩 운행해서 시간이 맞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때는 구내에서 대기하기보다 역 바깥으로 나가 짧은 산책을 한다.

 

 

산책 코스는 언덕의 텃밭 사이로 난 오솔길이다. 10여 분 정도 둘러보고 나면 전철 시간에 맞는다. 지금은 가을걷이가 끝나서 휑하지만 여름에는 온갖 푸성귀의 초록 물결로 넘실댄다. 군데군데 자리 잡은 농막에는 이불과 취사도구가 있어 노인들이 여기서 하루를 소일하며 보낸다.

 

 

신분당선으로 갈아탄 뒤 그래도 시간 여유가 있으면 목적지에서 한 정거장 전인 양재시민의숲역에서 내려 공원을 한 바퀴 돈다.

 

양재시민의숲은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도로를 경계로 나누어진 두 구역의 분위기는 다르다. 내 발걸음은 항상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남쪽의 추모공원으로 향한다. 여기에는 '대한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과 '삼풍 참사 위령탑'이 있다. 1987년과 1995년도에 115명과 502명이 사망한 대형 사고였다.

 

위령탑을 돌면서 이유도 모른 채 졸지에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을 빈다. 오래전 참사지만 여전히 그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인간의 삶이 인과응보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생사는 우연에 의해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가 흔하다. 살아남았다고 결코 강한 자는 아니다.

 

대한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
삼풍 참사 위령탑

 

공원에서 올해의 마지막 단풍을 만나다. 우리 동네 단풍은 한참 전에 사라졌는데, 여기는 아직 가을의 잔영으로 화려하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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