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광교산을 걷다

샌. 2021. 11. 21. 11:07

 

광교산 밑으로 이사한 둘째네 집에 간 길에 산길을 걸었다. 멋모르고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까지 욕심냈으나 오후 2시에 출발해서는 무리였다. 왕복 14km나 되어서 예닐곱 시간은 잡아야 하는 긴 길이었다. 오늘은 수지성당에서 소말구리고개까지 다녀오는 7km 정도의 길을 세 시간 정도 걷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 코스는 긴 능선길인 만큼 큰 오르내리막이 없는 최적의 길이었다. 휴일이지만 미세먼지가 자욱해서 산을 찾은 사람이 적어 길은 한적했다. 오롯이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알맞았다.

 

 

광교산에는 갈래길이 엄청 많다. 이리저리 오솔길이 무수히 나 있다. 사방이 인간의 거주구역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정상으로 가는 길이 헷갈려 마주오는 사람에게 물었다.

"이리로 가면 광교산이 나오나요?"

"여기가 광교산인데요."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곧 내 질문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실소했다. 광교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었어야 했다. 설악산에 들어서 놓고는 설악산이 어디냐고 묻는 꼴이었다.

 

인생길에서도 그런 우문(愚問)을 하는 것은 아닌지, '사는 게 뭔지'를 묻는 것도 그와 유사할지 모른다. 철학적인 의미가 지나쳐 너무 현학적이 되면 곤란할 일이다. 지금 내딛는 구체적인 내 발걸음이 소중한 것이 아닐까.

 

소말구리고개에서 보이는 서쪽 방향으로 미세먼지가 답답하다. 멀리 보이는 산은 수리산이 아닌가 싶다.

 

12년 전인 2009년에 아내와 함께 광교산과 백운산을 연계해 종주한 적이 있다. 기록을 보니 17km를 일곱 시간에 걸쳐 걸었다. 50대 중후반이었던 그때가 아내나 나나 절정기가 아니었나 싶다. 10년이 지나 이제 아내는 뒷산도 버거워한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나도 역시 뒤따를 것이다. 지난 일을 돌아보면 아련하면서 쓸쓸하다. 

 

석양 무렵의 산길은 따스하고 고즈넉했다. 벤치에 앉아 멀리 떨어진 고향의 소리를 들었다. 찬바람이 휙 불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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