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베틀바위와 울산바위

샌. 2021. 11. 14. 12:50

어쩌다 베틀바위를 가게 되었다. 자리 하나가 있다길래 좋은 기회라 여겨 꼽사리를 끼게 된 것이다. 베틀바위와 울산바위를 보러 가는 1박2일의 일정인데, 두 곳 다 마음에 두고 있던 터라 선뜻 승낙했다.

 

둘째가 동해에 살 때 두타산은 여러 차례 들어갈 기회가 있었지만 베틀바위 코스는 그때보다 한참 뒤인 작년에 개방이 되었다. 워낙 유명세를 타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한 번쯤 다녀왔을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게 아니라 베틀바위는 충분히 이름값을 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갔을 때도 멀리 제주도에서 단체로 온 탐방객이 있었다. 

 

두타산 550m에 위치한 베틀바위를 중심으로 다섯 구간의 산성길이 있다. 우리는 오후에 도착한 관계로 전체 구간을 돌지는 못하고 A, B, E 구간을 거쳐 D구간 계곡길로 내려왔다. 비상대피로로 명명된 E 구간에는 뜻밖에도 멋진 경치가 많았다.

 

 

입구에서 베틀바위 전망대까지는 1.5km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가파른 계단길이 있어 숨을 헐떡여야 한다. 그러다가 베틀바위를 마주하면 모든 피로가 일순간에 사라진다.

 

사진으로 찍어서 더 멋지게 보이는 경치가 있고,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아내지 못하는 풍경도 있다. 베틀바위는 후자에 속한다. 실제 베틀바위 앞에 서면 웅장한 암벽의 풍광에 압도 당한다.

 

 

베틀바위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미륵바위가 나온다. 눈, 코, 입, 귀가 또렷하다.

 

 

미륵바위를 지나면서부터는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평탄한 숲길이다. 미륵바위까지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그 뒤부터는 우리만 남았다. 늦은 오후라 대부분 미륵바위에서 되돌아 내려갔다.

 

우리도 산성길 일주는 하지 못하고 E 구간으로 길을 잡는다. 갈라지는 지점에 산성12폭포와 거북바위가 있다.

 

 

산성12폭포에서 두타산성까지도 비경 지대다.

 

 

두타산성(頭陀山城)은 신라 파사왕 23년(102년)에 처음 쌓았다고 한다. 군데군데 돌무더기 남아 있어 이곳이 산성이었음을 말해준다. 두타산의 험준한 지세가 필요했겠지만 그 옛날에 이 높은 곳에다 군사 기지를 만들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실제로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난을 피하여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고, 왜병과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두타산성 표지석이 있는 곳에 백곰바위가 있다. 사람들이 너무 올라타서 등과 엉덩이는 털이 다 빠졌다. 미륵바위, 거북바위, 백곰바위 등 오늘 본 두타산 바위는 모두 리얼하다.

 

 

한창때가 지났지만 계곡이 가까워지니 단풍을 볼 수 있다. 깊은 산에서 만나는 올해의 마지막 단풍이리라.

 

 

양양 숙소에서 햇반과 불고기로 저녁을 먹으며 술자리가 이어졌다. 다음 날 일행은 하조대로 일출을 보러 갔지만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발동이 걸리면 적당량에서 자제할 수 없는 게 탈이다.

 

둘째 날은 신선대에서 울산바위 조망을 보러 간다. 화암사 숲길을 한 바퀴 돌면 된다.

 

 

입구는 두 군데가 있는데 안쪽에 있는 길이 길긴 하지만 걷기에 좋다. 대부분 매점에서 붉은색 길로 올라가지만 우리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먼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신선대(神仙臺)다. 여기서 바라보는 울산바위의 전망이 일품이라고 소문나 있다.

 

 

신선대에 서니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일행과 북쪽 방향 신선봉을 배경으로...

 

 

울산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남쪽 암반에는 바람이 더욱 거세어 도저히 나아갈 수 없었다. 암반 끝까지 가야 전망이 환하게 열리는데 초입에서 멈췄다. 은폐를 했지만 손에 쥔 카메라를 고정하기도 어려운 바람이었다. 

 

 

멀리 속초 시내가 보인다.

 

 

수바위를 옆으로 끼고 내려왔다. 수바위 전망은 화암사가 좋다. 수바위는 일명 쌀바위라고 하는데, 수바위의 '수'는 '이삭 수(穗')다. 화암사(禾巖寺)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쌀이 나오는 화수분에 얽힌 전설은 전국에 많이 있다. 안분지족(安分之足)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설화다.

 

 

홍천을 거쳐서 돌아오며 삼팔선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서울에 진입하면서 차가 많이 막혔다. 잠시 주황색 노을이 눈을 즐겁게 했다.

 

 

동행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얼떨결에 따라 떠난 짧은 여행이었다. 가고 싶었던 베틀바위 산성길과 화암사 숲길을 걸을 수 있어 좋았다. 이 두 길은 앞으로 나이가 더 들더라도 큰 무리 없이 다녀올 만하다. 걷기의 난도와 경치면에서 합격점이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차편 신세를 졌다. 더 오래 운전을 할 수 있고, 더 오래 산길을 걸을 수 있기를, 그것이 마라톤 같은 인생에서 승자가 되는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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