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집에서 차려준 아침을 먹고 둘째 날 일정을 시작한다. 어젯밤에 나는 오늘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친구들은 읍내에 나가 당구를 치고 돌아와서는 또 카드 게임인 마이티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마이티는 그 시절 대학생들이 잔디밭에 둘러앉아 시간을 보내던 추억의 놀이다. 나는 아예 배우지를 않았으니 그 자리에 끼지도 못했다. 각자의 개성이나 지향점에 따라 어울리는 그룹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그때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노는 걸 별로 마땅치 않게 여겼다.
우리가 묵은 친구 집, 마당의 야자수가 남도 지방임을 말해준다.
아침에 잠시 고구마 캐는 작업을 거들다.
먼저 찾은 곳은 용장성(龍藏城)이다. 여기는 고려 삼별초가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키고자 원종 11년(1270)부터 14년(1273)까지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원종 11년에 고려가 몽고와 화친을 맺자 강화도에서 항쟁하던 삼별초는 이곳 진도 용장으로 옮겨와 성을 쌓고 기지로 삼았다. 용장성은 삼별초의 대표적인 대몽 항전 유적지다. 성의 길이는 13km에 이르고, 높은 곳은 4m나 된다.
궁전 주변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를 한 바퀴 돌다.
성 한 켠에는 동백이 환하게 피어 있다.
한 친구는 공터에서 연을 날리는 시범을 보여준다. 하늘을 나는 것에 관심이 많은 이 친구는 모형비행기, 드론을 거쳐 요사이는 연에 빠져 있다.
다음으로 들린 곳은 벽파정(碧波亭)이다. 벽파정은 고려 희종 3년(1207)에 진도의 관문인 이곳 벽파나루 언덕에 세운 정자다. 진도를 내왕하는 관리와 사신들을 영송(迎送)했으며, 정객과 문인들이 아름다운 경승과 감회를 읊어 많은 시구를 남긴 명소다.
1956년에 세워진 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의 비문은 이은상 시인이 짓고, 진도 출신 서예가 손재형 선생이 썼다. 비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옥에서 풀려나와 삼도수군통제사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척을 겨우 거두어 일찍 진도군수로 임명되었던 진도 땅 벽파진에 이르니 공이 53세 되던 정유년(1597년) 8월 29일, 이때 조정에서는 공에게 육전을 명했으나 그대로 여기 이 바다를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16일 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 불고, 맏아들 회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 9월 초 7일 적선 18척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 9일에도 적선 2척이 감포도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살피다 쫓겨갔는데 공이 다시 생각한 바 있어 15일에 진을 옮기자 바로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12척 작은 배로서 330척의 배를 모조리 무찔렀고"
운림산방은 가을로 가득하다.
읍내로 나와 '달님이네 맛집'에서 갈치조림으로 점심을 먹다. 식후 담소 자리에서 옛날 대학 시절 좋아했던 여학생들에 얽힌 사연이 나오다. 한 쪽이 기억을 못 하는 것도 있고, 서로 어긋나는 것도 있다. 완벽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재미있다.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는 토요일 오후에 민속 공연이 열린다. 우리 음악의 쓸쓸함과 흥겨움을 새롭게 확인하다. 특히 강강술래 공연은 여인들의 한(恨)이 서려 있어 슬펐다.
이날의 레퍼토리는, 판소리 소품 사랑가, 남도배연신굿, 산조병주, 강강술래, 판소리, 진도북놀이, 남도민요였다.
세방 낙조를 보러 가는 길에 미스트롯에서 대상을 받은 송가인의 고향집에 들리다. 전남 진도군 지산면 앵무리 마을이다. 마을 이름이 '앵무새 앵(鸚)'과 '앵무새 무(鵡)'가 합쳐진 앵무리다.
적당한 시간에 도착해서 세방 낙조를 감상하다. 해가 지고 난 뒤 잔잔한 여운이 좋았다. 비 예보가 있어서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씨가 맑았다.
다시 읍내로 나와 신호등회관에서 낙지볶음으로 저녁 식사를 하다.
당구 한 게임을 즐기고 친구 집으로 들어가다. 운전 때문에 못한 술 갈증을 적당히 풀고, 친구들의 마이트 게임을 구경하다가 잠자리에 들다.
진도를 동서로 바지런히 돌아다닌 하루였다. 오늘의 동선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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