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행(1) - 신안

올해가 대학 입학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열아홉 살의 풋풋했던 그때로부터 긴 세월이 흘러갔다. 돌아보면 아득하고 멀다. 50주년을 축하할 겸 동기들 아홉 명이 추억의 가을 여행을 떠났다. 이나마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마스크를 덮어쓰고 살아야 될 줄 그때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한 친구의 진도에 있는 고향집을 숙소로 삼고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4박5일 동안의 일정이다.

 

첫째 날 - 신안 천사대교, 퍼플교

둘째 날 - 진도 용장성, 벽파정, 운림산방, 민속공연, 세방낙조

셋째 날 - 관매도 숙박

넷째 날 - 조도 트레킹

다섯째 날 - 울돌목 해상케이블카

 

개인적으로 진도는 세 번째 가는 길이다. 나는 2박만 함께 하고 셋째 날에는 두륜산을 오르기로 했다. 유감스럽게도 동기들 중에 등산을 계속하는 친구가 없다. 이만한 나이가 되니 다들 엄두를 내지 않는다.

 

아침에 승용차 세 대가 각각 다른 지역에서 출발하여 정안휴게소에서 합류했다. 나도 오랜만에 장거리 운전을 해 본다. 거리가 멀더라도 아직은 운전대를 잡으면 드라이브하는 기분에 들뜬다. 목포에 있는 바다양푼이 식당에서 얼큰한 동태탕으로 늦은 점심을 했다.

 

 

천사대교는 전남 신안의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길이 7.2km의 교량이다. 2019년에 개통되었다. '천사' 하면 하늘의 '에인절(angel)'이 연상되지만, 신안군에 1,004개의 섬이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명성답게 적당한 굴곡이 아름다운 다리다.

 

 

요즘 핫한 장소인 퍼플교는 천사대교에서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안좌도에 있다. 그저 평범한 섬이 일순간에 색깔 마케팅(?)으로 유명세를 탔다.

 

섬은 다리, 집, 길, 버스 등 모든 것이 보라색이다. 보라색 꽃 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이날은 늦가을의 우중충한 날씨라 화사한 보라의 색감이 살지는 않았다.

 

 

"I PURPLE YOU"에 고개를 갸웃한다. 하긴 "I SEOUL U"도 자주 보니 눈에 익어가기는 한다.

 

 

퍼플교는 안좌도, 박지도, 반월도를 연결하는 목재 다리다. 다리와 섬 길을 따라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이면 될 것 같다. 각 섬에도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다리 위 장식 구조물에서는 일본풍의 냄새가 났다. 날씨 탓인가,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1971년에 입학할 때 우리 과 정원은 30명이었다. 그중에서 1/3인 열 명 남짓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고, 1/3은 가끔 소식을 듣는 정도고, 나머지 1/3은 소식이 끊어졌다. 다른 과에 비해 우리는 자주 만나는 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당구 치고, 식사와 반주를 즐긴다.

 

동기들과 만나면 정치 얘기가 나오는 건 질색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제발 정치가 화제에 오르지 않길 바랬다. 그런데 지금은 대선 시즌이 아닌가. 마침 이날 윤석열이 국민의 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여행에 함께 한 아홉 명의 정치 성향을 나름대로 분석해 보면 보수가 7명(태극기 집회에 나갈 정도의 극보수가 넷, 온건 보수가 셋), 중도가 1명, 진보가 1명이다. 진보는 내가 유일하다. 그러하니 친구들의 시끄러운 장단이 귀에 거슬릴 뿐이다. 논쟁을 벌이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란 건 이미 진작에 파악했다. 정치적 견해의 측면에서 그들과 나 사이에는 장벽이 존재한다. 내가 그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듯, 그들은 나를 외계인 쳐다보듯 한다. 하지만 정치가 개입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정한 친구 사이다.

 

우리는 이과 전공이어선지 대학 다닐 때도 운동권에 참여한 동기는 없었다.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현실 문제에 그다지 예민하지 않았다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다들 보수로 기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굳이 비정상을 따진다면 내가 해당할 것이다.

 

보수 친구들의 공통점은 유튜브를 즐겨본다는 것이다. 한 친구는 아예 헤드폰을 가지고 와서 정치 평론에 관한 방송을 시청할 정도다. 스스로 중독임을 인정한다. 문제는 너무 한쪽으로 편향된 내용만 선호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것은 소위 '문빠'라고 부르는 일부 진보층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20대 때나 지금이나 늘 정치적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 있다. 요란했던 지역색이 옅어지니 이번에는 이념 대결로 시끄럽다. 조선조의 당파 논쟁이 색깔을 달리 하며 계속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되면 다음 정권을 누가 차지하든 조용히 살기는 글러먹었다.

 

 

진도로 들어가며 영암에 있는 수궁한정식에서 한 첩 밥상을 받았다. 이번 여행에서 음식은 그저 따라만 다녀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