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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바. 라. 기.
21대 대통령 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본 투표일에는 집을 떠나 있어야 해서 어제 아내와 사전투표를 했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의 얼토당토않은 비상계엄으로 갑자기 치러지는 선거다. 잘못을 응징하려는 다수의 결의가 크기 때문에 진즉에 승패는 결정되어 있었다. 다른 때처럼 누가 이길까,라고 조마조마하지 않으며 투표할 수 있었다. 10여 일 전에 전에 휴대폰의 '네트워크 연결'을 초기화 했더니 '삼성 헬스' 앱이 활성화되었다. 다시 죽이기도 뭣해서 그냥 쓰고 있는데 걸음수가 체크되니 내 활동량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기록을 보니 두 주 동안에 외출이 여섯 번이었고, 총걸음수는 5만 보였다. 하루 평균 3천 보 가량 걸은 셈이었다. 동년배와 비교해도 많이 뒤처지는 걸음이다. 이 앱으로 자극을 받아야..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는 공감한다. 관상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까지 여기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의 살아온 내력이나 생각이 얼굴에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링컨이 그랬던가,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매스컴을 통해 많은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된다. 선입견이 있어선지 모르지만 범죄자나 사기꾼의 얼굴은 느낌이 좋지 못하다. 반면에 선한 행동으로 칭송을 받는 사람의 얼굴 표정은 온화하고 따스한 기운이 전해온다.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얼굴에 스민 뭔가가 있는 것이다. 외모가 아름답다거나 잘 생겼다는 것이 아닌 얼굴에서 퍼져나오는 느낌을 말함이다. 아무리 곱게 꾸며도 감추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다반사로 하는 사람은..
은총이 눈에 보인다면이런 걸까 평화와 고요의품에 안기던어느 저녁 (140829) 수만 년을 흐르며갈고 닦았다 비단결처럼부드러워졌다 (140830) 잊지말아 줘 나이렇게 떨며기다리고 있잖아 (140831) 둑 쌓으면 가뭄 들고 우물 파면 홍수 나고 집 팔면 부동산 폭등 돈 찾으니 손 벌려 자식 결혼시키니 손주 봐줘야 해 외로우니 부르는 놈 없고 책 보려니 눈 아프고 산에 가려니 허리가 고장나 젊었을 때는 시간이 모자라 안달 퇴직하니 모든 게 시들, 인생이 이런 건가 (140832) 예끼!아무 데나 들이대지 마 거시기스러운 놈 같으니라고 (140833)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세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사랑하기.자신의 삶이 그것들에 의지하고 있음을 깨닫..
며칠 전에 반가운 뉴스가 떴다. 청계천에 쉬리가 산다는 소식이다. 서울시설공단이 국립중앙과학관과 협력해 청계천의 어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쉬리가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보도다. 쉬리는 2급수 이상에서 사는 우리의 고유종으로 청계천 수질이 그만큼 깨끗하다는 반증이다. 쉬리 외에도 다양한 물고기가 확인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상류 - 피라미, 참갈겨니, 돌고기, 밀어, 잉어, 붕어, 버들치, 참붕어중류 - 쉬리, 돌고기, 줄몰개, 모래무지, 가물치, 향어하류 - 향어, 참마자, 얼룩동사리, 갈문망둑 등 청계천이 복원된지 20년이 되었다. 인공수로이긴 하지만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생태적으로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먹이를 찾아온 백로나 왜가리도 심..
죽음이가을의 허기진 곰처럼 찾아오면,죽음이 찾아와 그의 지갑에 든 반짝이는 동전을 모두 꺼내 나를 사고, 지갑을 닫아버리면,죽음이호환마마처럼 찾아오면, 죽음이양 어깨뼈 사이의 빙산처럼 찾아오면, 나는 호기심 가득 안고 그 문으로 들어서고 싶어,저 어둠의 오두막은 어떤 곳일까? 하면서. 그리하여 나 모든 것들을형제자매로 바라보지,시간을 한낱 관념으로만 보고,영원을 또 다른 가능성으로 여기지, 그리고 각각의 삶은 한 송이 꽃, 들판의데이지처럼 흔하면서도 유일한, 그리고 각각의 이름은 입안의 편안한 음악,모든 음악이 그러하듯, 침묵으로 이어지는, 그리고 각각의 몸은 용감한 사자, 그리고땅에게 소중한 것. 삶이 끝날 때 나는 말하고 싶어, 평생나는 경이와 결혼한 신부였노라고.세상을 품에 안은 신랑이었노라고. 삶..
노나라 왕이 사냥을 좋아하였으므로 재상 전숙은 언제나 왕을 모시고 사냥터로 들어갔다. 그때마다 전숙에게 관사에서 쉬라고 했지만 전숙은 사냥터로 나와 항상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앉아 왕을 기다렸다. 왕은 자주 사람을 보내 그를 쉬게 했으나 끝까지 쉬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우리 왕이 사냥터에서 몸을 드러내 놓고 있는데, 내 어찌 혼자 관사에 가서 쉬겠소?"노나라 왕은 이 일로 하여 밖으로 나가 노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몇 년 뒤에 전숙이 임기 중에 세상을 떠나자 노나라 왕은 황금 100근을 주어 제사를 지내게 하려고 했으나, 작은아들 전인은 받지 않고 말했다."황금 100근 때문에 선친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 - 사기(史記) 44, 전숙열전(田叔列傳) 전숙(田叔)은 조나라 신하였는데 ..
'낭만과 폭력의 한일 유신사'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유신을 키워드로 하여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설명하는 책이다. 역사를 보는 작가의 관점이 흥미롭다. 한국인이 누구인지를 탐구하는 홍대선 작가가 썼다. 이 책의 장점은 정통사관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는 신선함이다. 작가는 "나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다고 본류에서 벗어나지는 않고 살짝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는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새로움을 느낀다. 예를 들면, 근대 일본을 탄생시킨 정신적 지도자인 요시다 쇼인에 대해 작가는 만들어진 영웅이라고 낮게 본다. 책에는 처음 접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간결하고 깔끔한 설명도 좋다. 작가는 유신을 하나의 사건을 넘어 인격체로 다룬다. 유신은 상상력이며 정념이다. 그 정신이 1868년의 ..
이곳에 산 지 15년째다. 그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줄곧 층간소음에 시달렸다. 이사 올 때 윗집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남매가 둘 있었다. 윗집은 생활 패턴이 특이했다. 밤 11시부터 다음날 2시까지가 제일 움직임이 많았다. 뛰어다니고 떠드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 등으로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사정을 하고 관리사무소를 통해 직접 만나보기도 하고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한 가족의 생활 패턴이 쉬이 변할 수 없었다. 다시 집을 옮길 생각도 여러 차례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나도 소음과민증후군이 아닌가 싶어졌다. 그런 식으로 버티며 지낸 게 어느덧 15년이 되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부터 뭔가 달라졌다. 한밤중 소음이 잦아든 것이다. 문을 쾅 닫는 소리에 깜짝..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이렇게 시작하는 은 프랑스 작가인 아니 에르노(Annie Ernaux)가 쓴 소설이다. 소설이지만 40대의 작가가 연하의 유부남과의 사랑을 적나라하게 그린 기록이다. 남자에 탐닉하는 여자의 심리가 냉철하면서도 절절하게 서술되어 있다. 작가의 사랑이 너무 열정적이고 뜨거워서 읽는 내내 부담스러웠고 당혹스러웠다. 20대의 젊음도 아닌 중년의 여인이 이 정도로 폭풍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하기까지 했다. 작가는 한 남자에게 몸과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그를 떠나서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든다. 광기에 가까운 너무나 지독하고 무서운 사랑이다.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