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반가운 뉴스가 떴다. 청계천에 쉬리가 산다는 소식이다. 서울시설공단이 국립중앙과학관과 협력해 청계천의 어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쉬리가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보도다. 쉬리는 2급수 이상에서 사는 우리의 고유종으로 청계천 수질이 그만큼 깨끗하다는 반증이다. 쉬리 외에도 다양한 물고기가 확인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상류 - 피라미, 참갈겨니, 돌고기, 밀어, 잉어, 붕어, 버들치, 참붕어
중류 - 쉬리, 돌고기, 줄몰개, 모래무지, 가물치, 향어
하류 - 향어, 참마자, 얼룩동사리, 갈문망둑 등
청계천이 복원된지 20년이 되었다. 인공수로이긴 하지만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생태적으로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먹이를 찾아온 백로나 왜가리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중에서도 쉬리가 산다는 사실이 제일 반갑다.
청계천은 중랑천, 한강과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가 방생한 게 아니라면 여기를 거쳐 올라왔을 것이다. 중랑천과 한강은 쉬리가 살기에 적당한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씨가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천 정비를 통해 우리나라 하천의 수질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음을 믿어도 될 것 같다.
이 보도를 보니 어릴 때의 서천이 생각난다. 서천은 낙동강의 지류로 고향 동네 앞을 흐르는 하천이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 그대로의 하천이었다. 물은 맑았고 기슭은 동글동글한 자갈과 고운 모래로 덮여 있었다. 여름이면 발가벗은 채 하루 종일 멱 감고 물장난을 하며 놀았던 장소였다. 고기잡이도 우리들의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였다.
물속에 있는 돌을 가만히 들어올리면 고기 몇 마리가 숨어 있었는데 잘하면 손으로 움켜쥘 수도 있었다. 물론 엄청나게 섬세한 손동작이 필요했다. 또는 다른 돌로 내리치면 그 소리에 놀랐는지 고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욕심이 생기면 반도(족대를 그렇게 불렀다)를 썼다. 붕어, 꾸구리, 모래무지, 피라미, 메기, 텅거리, 송사리 등등, 그때 불렀던 고기 이름을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다.
어른들은 무지막지하게 고기를 잡았다. 독약을 풀고 전기로 지지고 심지어는 폭약도 터뜨렸다. 지금은 엄두도 못낼 일이지만 그때는 단속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뒤에는 수면이 배를 하얗게 드러낸 고기로 덮였다. 우리는 떠내려오는 고기를 공짜로 줍는 재미에 희희낙락했다. 자연 생태라던가 환경 보호라는 말은 아예 없던 시절이었다.
큰 비가 내리고 난 뒤면 아버지는 반도를 가지고 고기를 잡으러 갔다. 나는 고기를 담을 냄비를 들고 뒤를 따라갔다. 기슭의 풀을 훑으면 평시에는 보기 힘든 큰 고기들이 수두룩하게 잡혔다. 그 고기들은 아버지의 맛난 술안주감이 되었다. 여름밤에 기름을 묻힌 횃불을 들고 아버지를 따라갔던 기억도 난다. 밤이면 고기도 잠을 자는지 움직임이 둔했다. 살금살금 접근해서 반도로 건져올리면 되었다. 제일 수고를 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아무리 잡아도 며칠 지나면 하천은 다시 고기로 가득 했다. 동네 앞 서천은 물고기의 화수분이었다. 옛사람들에게 물고기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쨍쨍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던 그 시절의 광경이 떠오른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모두들 온몸이 새까맣게 변했다. 피부가 빨갛게 타고 몇 번이나 벗겨진 결과였다. 자외선 차단제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아무 탈이 일어나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부터 서천도 변하기 시작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식량 증산을 위해 비료와 농약이 과용되었다. 농사철에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농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자연 상태로 수 만 년을 내려온 서천은 오폐수와 농약으로 뒤범벅되고 죽어갔다. 물고기가 사라지고 사람도 들어갈 수 없는 강이 되었다. 논에서는 메뚜기를 볼 수 없고 집에는 더 이상 제비가 찾아오지 않았다.
21세기가 되면서 환경 오염의 폐해가 정점을 지난 것 같다. 이제는 농촌에도 하수관로가 깔리고 오폐수가 하천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는다. 서천의 물은 다시 맑아지고 있다. 도시 하천의 수질도 많이 좋아졌다. 청계천에 쉬리가 산다는 보도도 그런 변화의 하나여서 기쁘다. 자연이 아프면 인간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청계천에 쉬리가 산다는 반가운 소식에 옛 기억을 소환해 봤다. 문명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지구를 행복한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이제는 문명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의 행복했던 편린을 떠올리며 사라져 간 한 시대를 애틋한 심정으로 전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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