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만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이다.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에서는 극우 세력이 힘을 받아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겉으로나마 민주주의 이념을 전파하던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개인이든 나라든 각자도생이라는 험난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작년에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도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이런 지구적 분위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전에는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로 표상되는 이데올로기/가치관을 주도해 나가는 국가가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없다. 그들도 제 코가 석 자인 상태다. 우리나라는 계엄 후 일차 위기는 넘겼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한국 엘리트의 상당수가 파쇼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보도를 봤다. 문화로서의 민주주의는 바탕이 튼실하지 못하면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연약한 구조다.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민주주의가 법이라는 텍스트로 유지될 수 없다. 자칭 법 전문가들에 의해 법 조문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우리는 생생히 목격했다. 법이 정적을 죽이는 칼로 쓰이는 것이다. 대신 권력을 가진 자한테는 한없이 무디다. 법치주의란 말이 가진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란 법 이전에 상식과 인간의 온기가 우선되어야 한다.
일전에 김규항 씨가 쓴 '다음 민주주의'라는 글을 읽었다. 씨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자본주의의 위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역사적 산물로서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지금보다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여기에 제4차 산업혁명이 겹쳐지고 있다. AI 시대를 맞아 사회가 더욱 양극화되고 정보 독점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독점 체제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엄청난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다음 민주주의 / 김규항
정치 위기는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도무지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를 찾기 어렵다. 예전에는 정치 위기가 자본주의 후진국 문제처럼 여겨졌지만, 현재는 선진국들에서 오히려 그 양상이 더 심각하고 복잡하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길지만, 현재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정치 체제는 2차대전 후 서구 사회에서 성립했다. 그 기반은 케인즈주의 복지국가, 혹은 수정 자본주의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된 자본주의 진영은 현실사회주의 진영과 적대적 체제 경쟁을 시작한다. 노동 계급은 혁명을 포기하고, 자본과 국가는 복지와 중산층 생활을 제공하는 계급 타협형 자본주의가 만들어진다. 계급 타협이 유지된 건, 자본주의 역사에서 유례 없는 2차대전 후 30여 년간의 경제 호황 덕분이었다.
1970년대 들어 자본주의는 다시 구조적 불황의 늪에 빠져든다. 자본은 극도로 낮아진 이윤율 속에서 축적을 지속하기 위해 계급 타협을 일방적으로 파기한다. 비정규 불안정 노동을 일반화하고, 복지를 축소하며, 공공부문을 사유화(민영화)한다. 금융은 실물 부문에서 분리되어 투기화되고 세계화된다. 바로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축적 혁명'이었다.
계급 타협에 기반해 성립한 정치 체제는 사실상 이 시점에 시효를 다한 셈이다. 그러나 새로운 민주주의 정치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노동 계급과 그들의 정당으로서 사민당은 자본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기엔 급진성과 조직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1990년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자본의 폭주는 더욱 거세진다. 사민당은 신자유주의에 투항하고, 이 과정은 '제3의 길'이라고 미화되기도 했다.
미국이나 한국은 유럽보다 더 우경화된 사회다. 좌파 정치가 매우 약해서 리버럴 정당이 그 역할을 대신해왔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매우 늦게,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치며, 결국 현재 시점에서 정치 위기의 구조와 원인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주류 좌파(유럽 사민당, 미국과 한국의 민주당)는 자본 앞에 무기력하며, 청년 세대와 중하위 노동 계급은 이들을 '진보를 말하는 기득권 세력'이라 인식한다. 기존의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의 절차적 껍데기만 남았을 뿐,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함에 따라, 극우 정치가 '유사 대안'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 정치의 시급한 과제는 극우 세력 척결과 민주주의 정치 회복"이라는 말은 당연하지만, 몇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1. 극우의 확산이 정치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적 현상이라면, 원인을 그대로 둔 채 현상을 바꿀 수 있을까?
2. 기존의 민주주의 정치가 사실상 시효를 다했다면, 민주주의는 회복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다음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3. 정치 위기는 지구적 현상이며 그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의 위기라 할 때, 자본주의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 윤석열 탄핵 선고문 (0) | 2025.04.07 |
---|---|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작가 한 줄 성명 (3) | 2025.03.26 |
두 친구 (0) | 2025.03.19 |
2025 기상사진 (0) | 2025.03.13 |
배우의 죽음 (0) | 2025.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