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안천 100

떠나가는 가을

서점에 주문한 책을 찾으러 갔는데 일요일이 문 닫는 날인 걸 깜빡 했다. 빈 배낭을 메고 경안천에 나가서 떠나가는 가을과 함께 했다. 영은미술관 뜰에는 가을이 남긴 흔적이 가득하다.  가을이 떠나가면 고니가 찾아올 거야.   경안천에는 백로가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 길 떠날 채비를 하는가 보다. 먼 길 떠나자면 길동무가 필요하겠지.  곧 겨울이 다가온다고 수근거리는 소리들.  아파트 뜰의 수양단풍나무는 마지막 치장이 화려하다.   다음주에는 기온이 더 떨어진다고 하고 첫눈 예보도 나와 있다. 가을 옷을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하고 다시 겨울옷을 꺼내 장농에 건다. 그렇게 한 계절이 가고 새 계절이 온다.

사진속일상 2024.11.24

풍경(56)

모래톱에서 휴식을 취하던 오리들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스르르 몸을 일으켜 물로 피한다. 멀리서는 백로 두 마리가 한가로이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 슬로우 모션을 보는 듯한 늦여름 오후의 경안천 풍경이다. 손님을 기다리다 지친 무수리 나루터의 줄배는 오수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번잡한 세상에서 조금만 발길을 옮겨도 이런 천고수청(天高水靑) 속 적막강산이 있다.

사진속일상 2024.09.04

장마철의 깜짝 선물

어젯밤에는 내내 빗소리가 들리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갠 하늘이 반겼다. 이런 날 밖에 나가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햇볕을 가득 받을 짧은 복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사람의 기분은 기상 상태에 큰 영향을 받는다. 장마 때는 날씨 따라 마음도 눅눅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니 하고 지내지만 장마가 길어질수록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가끔은 오늘처럼 깜짝 선물을 주니 이런 변덕이라면 환영할 만하다. 너무 햇빛이 쨍 나서인지 경안천에 나온 사람은 드물었다.   오늘 걷기의 주제는 하늘과 구름이다. 이런 하늘이라면 아무리 쳐다봐도 지루하지 않다. 푸른 화판에 흰 물감으로 그려지는 풍경에 넋이 나가다.   동쪽 하늘에는 채운(彩雲)도 나타났다.  7월 16일부터 '세..

사진속일상 2024.07.10

장마 시작

세찬 빗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1시였다. 커튼을 젖히니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검은 그림자가 창에 어른거렸다. 빗소리를 들으며 오래 뒤척였다. 중부 지방에도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 시작 예보가 있었기에 어제는 한껏 햇볕을 쬐기 위해 경안천에 나갔다. 반바지 차림이었다. 앞으로 3주 정도는 우중충한 날씨를 견뎌야 할 것이다. 당연히 햇빛도 그리워지겠지. 따가운 햇살이지만 싫지가 않았다. 그늘을 마다하고 세 시간 가까이 햇빛 속을 걸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교각 옆에서 쉬고 있을 때 떠오른 말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내 길을 가는 거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경우에는 타인과 비교할 때 위축된다. 비교의 대상은 늘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이다. 돈이 많든지, 자식 농..

사진속일상 2024.06.30

장마가 시작된 경안천을 걷다

초여름의 불더위를 몰아내는 장마가 찾아왔다. 한때는 기온이 35℃까지 치솟더니 비가 내리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다. 땡볕에서는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은 구름이 햇볕을 가려줘서 경안천 걷기에 나섰다. 배낭 안에는 식수, 참외, 떡을 챙겼다. 반바지를 입으니 상쾌했다. 내린 비로 경안천은 황토색이 되었다. 물은 하수 냄새가 섞인 물비린내가 진했다. 길은 군데군데 질척거렸다. 천 건너편에서는 종합운동장 공사가 한창이다.  걸으면서 이것저것 밀려오는 상념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여러 얼굴들이 명멸한다. 그러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여워지기도 하고 어여뻐지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시공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너를 꼬옥 껴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세 시간여를 걸었다. 맨발걷기에 빠진 아내는 ..

사진속일상 2024.06.24

아내와 경안천을 걷다

아내와 오포 쪽 경안천을 걸었다. 이쪽에는 혹시 고니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금년 2월에는 희한하게도 경안천에서 고니를 볼 수 없다. 무슨 연유로 경안천을 외면하는지 모르지만 아예 마음을 닫은 건 아닌지 걱정이다. 고니도 이제 북쪽으로 이동할 때가 되었다. 연말이 되어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니 서운하기 그지없다. 고니 없는 겨울 경안천은 썰렁했다. 경안천의 터줏대감인 백로와 흰뺨검둥오리는 걷는 동안 그나마 심심찮게 만난다. 항시 볼 수 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너희들도 귀한 존재들이 아니냐. 경제적이나 심리적으로 우리가 평가하는 사물의 가치는 희소성에 의해 결정된다. 베란다에 있는 제라늄은 사시사철 꽃을 피우는 까닭에 이제는 시선을 끌지 못한다. 있는 둥 없는 둥이다. 만약 일 년에 단 하루만 꽃을 피..

사진속일상 2024.02.29

고니 없는 경안천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이런 경우이리라. 서울에서 옛 동료 두 분이 고니를 보러 내려왔는데 허탕을 치고 말았다. 그저께만 해도 볼 만했는데 하루 사이에 깜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어제 큰 소음이 나는 작업을 한 탓에 고니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설명이다. 두 분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니 없는 경안천 풍경이 쓸쓸했다. 대신 물에 잠긴 관목 뒤에서 노는 원앙 가족을 봤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서 원앙을 본 건 처음이었다. 손 형이 찍어준 사진 - 내 뒷모습은 그런대로 날씬하지 않은가. 초록색 조끼를 입은 여인들은 공원을 순찰하며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이다. 공원 안의 생태에 대해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전에 이분들 덕분에 공원에서 서식하는 황금개구리를 보기도 했다. 고니를 ..

사진속일상 2024.02.05

고니를 보다

미세먼지가 사라진 착한 날이었다. 경안천으로 고니를 보러 나갔다. 얼음이 녹고 있는 경안천은 봄이 오는 듯 포근했고, 유유히 떠 있는 하얀 고니들이 강 풍경을 화룡점정으로 꾸미고 있었다. 기우뚱거리며 얼음 위를 걷는 고니의 몸짓도 재미있었다. 서울에서 모임이 있었지만 나가지를 않았다. 버스와 지하철로 왕복 네댓 시간이 걸리는 이동 시간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다 나이 탓일 게다. 반면에 고니는 룰룰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러 간다. 겨울 고니는 나에게 고맙고 기특한 존재다. 별자리 중에 백조자리가 있다. 바람기 많은 제우스 신은 인간 여인을 유혹할 때 동물의 모습으로 변신을 했다. 제우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유혹하기 위해 변신한 것이 백조(고니)였다. 그들 둘 사이에서 난 자식이 쌍둥이자리의 카스..

사진속일상 2024.02.03

흐린 겨울 하늘

연말연시 내내 흐린 하늘이다. 올해의 새해 첫날 일출도 영 시원찮았던 모양이다. 이왕이면 멋진 해돋이와 함께 한 해를 시작하면 좋으련만, 겨울 하늘은 심술을 부리는 듯 잔뜩 찌푸려 있다. 나라 안팎 사정도 이런 날씨를 닮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이미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짙은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는 게 보인다. 2024년은 여느 연초와 달리 기대보다는 걱정과 우려로 시작하는 해다. 운동화를 챙겨 신고 경안천에 나갔다. 겨울이 되면 아무래도 몸을 덜 움직이니 운동 부족이 되기 십상이다. 걷기 위해 밖에 나가는 것이 몇 주 만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날씨는 누긋하다. 구름이 감싸주는 탓인지 요사이는 밤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짙은 구름 사이로 잠깐 해가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경안천에는 사시사철..

사진속일상 2024.01.02

평화로운 백조의 호수

지난 한파에 경안천이 얼었다. 다행히 일부 얼지 않은 데가 있어 고니와 기러기가 모여 노니는 운동장이 되었다. 백조(고니)의 호수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들으며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한다. 경안천의 새들은 백과 흑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고니는 고니대로, 기러기는 기러기대로, 함께 있되 서로 간섭하지 않으며, 내 땅이니 나가라고 폭력을 쓰지도 않는다. 낮 동안에는 대부분이 쉬거나 유유히 헤엄 치며 보낸다. 여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부럽다. 인간도 새처럼 가볍게 살 수는 없는지, 잠깐만이라도 너희와 동류가 되어 덕지덕지 쌓인 인간의 때를 벗어버리고 싶구나.

사진속일상 2023.12.27

경안천 고니(2023/12/18)

아침 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떨어졌다. 오전에 경안천에 나갔을 때도 영하 10도 안팎을 오르내렸다. 강추위가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이번 주 내내 동장군의 위세가 거셀 전망이다. 경안천은 가장자리에서부터 얼기 시작하고 있다. 고니와 기러기들은 몸을 움츠린 채 정지 상태다. 소리를 지르며 동료들과 장난치는 녀석들도 일부 있다. 시베리아에서 내려왔으니 이 정도 추위는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고니와 기러기가 함께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얘들은 자기들 영역을 지키느라 싸우지 않는다. 또한 먹이를 가지고도 다투지 않는다. 날개를 펴면 다 내 하늘 내 땅인데 더 챙길 게 뭐가 있겠는가. 많이 소유하면 오히려 부담스럽다. 높이 날 수가 없다. 새들을 보면서 마태오복음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하늘의 새들을..

사진속일상 2023.12.18

겨울비에 젖는 경안천

어제부터 겨울비가 내린다. 밤에 잠을 깼더니 양철 환기통으로 조잘거리며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정겨웠다. 한밤에도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리는 겨울이다. 하지만 이도 잠시일 뿐, 오늘 저녁부터는 기온이 떨어지고 밤에는 눈으로 변한다는 예보다. 경안천 둑에 서니 강변 풍경이 희뿌옇게 젖어 있다. 사선으로 긋는 빗줄기는 바지 아랫부분을 축축하게 적신다. 경안천에 나온 것은 고니가 얼마큼 와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고니는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상당한 숫자가 모여 있었다. 둑 위에는 늘 고니를 찍으려는 사진사들이 많은데 오늘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경안천 주변 도로를 따라 한 시간 정도 우중 드라이브를 즐겼다. 빗줄기를 헤치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기분은 드라이브의 백미다. 음악도 끄고 하늘에서 내려와 대지와 차체..

사진속일상 2023.12.15

찬 강바람을 맞다

한강변에 서니 늦가을 바람이 차가웠다. 날씨에 어울리지 않은 옷차림이어서 냉기가 살갗으로 스며들었다. 더 차가운 바람을 맞은들 불평이 나올 수는 없었다. 나태해진 정신을 일깨우는 데 이 정도의 찬바람으로는 어림없을 터였다. 겨울이 다가오는 오전의 습지생태공원은 고즈넉했다. 고니가 와 있지 않을까 살폈으나 경안천은 텅 비어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한강으로 나가 더 거세진 바람을 맞았다. 멀리 강 건너 운길산 8부 능선쯤에 있는 수종사가 보였다. 아뿔싸, 오늘 같은 기분이라면 수종사에 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원한 눈맛을 즐겼으면 좋았겠다는 늦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어제는 감정의 과잉 상태였다. '인간 혐오'라는 말이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왔다. '통화 거절'로 읽히는 메시지가 가슴을 아리게 했다..

사진속일상 2023.11.28

경안천 억새와 올해 첫 고니

이맘때 경안천은 하얀 억새밭으로 바뀐다. 매년 그 넓이가 확장되어 천을 따라 수 km에 걸쳐 뻗어 있다.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풍경이다. 여기는 대부분이 억새이고 일부 갈대가 섞여 있다. 역광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억새를 보며 가을의 정취에 빠져든다. 억새는 살을 베이는 소리를 내며 가을바람에 흔들린다. 겉은 눈부시게 보일지라도 이면에는 어느 생명이나 속울음이 있는 것이다. 배낭을 맨 외국인 한 쌍이 옆을 지나간다. 여자가 짧게 뭐라고 말하니까 남자가 팔로 어깨를 감싸준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바람이 차다고 했을지 모른다. 사람의 온기가 자꾸 그리워질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첫 고니 가족을 만났다. 색깔로 보아 부모에 자식 넷으로 보인다. 이 가족을 뒤따라 많은 고니가 우리 땅에 찾아올 것이다. 내..

사진속일상 2023.11.11

경안천에 나가다

추석 연휴 닷새 동안 내내 집안에서만 머물렀다. 그렇게 된 제일 큰 원흉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 게임이었다. 경기 중계에 빠지면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어려웠다. 특히 배드민턴, 탁구, 바둑 중계에 홀렸다. 이 셋은 평소에도 관심이 있는 종목이어서 대회가 열리면 늘 챙겨보곤 했다. 배드민턴의 안세영과 탁구의 신유빈 선수 경기는 빼놓지 않고 봐 왔다. 둘은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안세영은 세계 랭킹 1위, 신유빈은 세계 랭킹 8위)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선수들이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줘서 기뻤다. 안세영은 배드민턴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신유빈은 전지희와 짝을 이룬 복식에서 금메달을 땄다. 두 종목 모두 20여 년만의 금메달이었다. 스포츠에서 승부는 각..

사진속일상 2023.10.04

밍밍한 걷기

하루의 감정 상태는 일기(日氣)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이가 들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다. 요 며칠 동안 잔뜩 흐린 채 간간이 비가 뿌리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왕 내리는 비라면 시원하게 뿌렸으면 좋으련만 전립선 걸린 중년 남자의 오줌발처럼 찔끔거린다. 경안천으로 걷기에 나서보지만 우중충한 하늘 아래서 마음만 개이길 바랄 수 있겠는가. 밍밍하면서 기계적인 걷기다. 이런 마음이라면 발 옆에 핀 꽃에도 눈길을 주지 못한다. 맹물에 식은 밥을 말아먹는 맛이다. 된장에 매콤한 고추라도 마련되어 있다면 좋으련만. 안팎이 다 시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면서 우울하다. 가끔 이럴 때가 있다. 공원의 약 올리듯 선명한 초록 잔디를 보며 중얼거린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밍밍한 맛도 때론 별미가 될 수 있..

사진속일상 2023.08.25

태풍 지난 뒤 경안천

태풍 카눈이 얌전하게 지나갔다. 한반도에 들어온 뒤에는 세력이 약해져서 우리 고장을 관통했건만 태풍이라는 실감을 하지 못했다. 신나게 달리다가 갑자기 시동이 꺼져버린 자동차 같은 모양새였다. 대신 태풍이 남긴 구름이 이틀째까지 사라지지 않으면서 가는 비가 오락가락했다. 우산을 들고 오랜만에 경안천에 나갔다. 그래도 천변의 낮은 길은 물에 잠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안천의 지류인 직리천에서는 궂은 날씨지만 아이를 데리고 산책 나온 부부가 보였다. 어머니 손에는 곤충 채집망이 들려 있다. 우리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여름방학이면 곤충/식물 채집 숙제가 있었다. 방학책 표지에는 으레껏 채집망을 어깨에 걸친 아이들 그림이 나왔다. 지금 돌아보면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치려는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

사진속일상 2023.08.13

경안천 원앙

경안천에서 원앙이 사는 곳은 따로 있다. 산책로에서 멀리 떨어진 산 아래 응달진 곳이다. 맨눈으로는 원앙인지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다른 오리류가 없는 한적한 곳이다. 원앙은 저희 가족들끼리 독립적인 생활을 좋아하는 것 같다. 원앙 암수가 나란히 노니는 모습을 보면 무척 다정해 보인다. 부부 금슬을 상징하는 조류로 삼을 만하다. 모든 생물은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원앙 수컷의 화려한 깃털을 보면 자연계에서 선택받기 위한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알 수 있다. 그 덕분에 인간의 눈도 호사를 한다. 흰죽지는 옆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제일 분주한 것은 청둥오리다. 흰뺨검둥오리와 함께 사람이 옆에 있어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다. 경안천은 아직까지는 사람의 손길이 닿..

사진속일상 2023.03.01

경떠회의 경안천 탐조

경안천의 고니를 보러 경떠회에서 광주에 찾아왔다. 오랜만에 회원 일곱 명이 다 모인 날이었다. 아침까지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잔뜩 찌푸린 날씨였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가, 고니는 다른 날에 비해 숫자가 적었다. 탐조는 오로지 운빨인 걸 어떡하겠는가. 다행히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고니 몇 마리가 있었다. 큰부리큰기러기는 가까이 다가가니 잔뜩 경계하더니 후두둑 날아갔다. 딱다구리는 열심히 나무줄기를 쪼고 있었다. 등이 보이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쇠오색딱다구리로 보인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 둑방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탐조와 겸해 인근의 신익희 생가와, 허난설헌 묘에도 들렀다. 두 어린 자녀의 무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해진다. 마무리는 팔당호에 인접한 카페에서 했다. 백로 한 마리가 얼어..

사진속일상 2023.02.11

경안천의 고니와 기러기

서울에서 벗이 내려와 경안천에서 같이 고니와 기러기를 보았다. 아직 얼음이 얼은 채로 있어 고니가 많이 있지는 않았다. 내일 입춘이 지나고 날씨가 더 풀어지면 떠날 채비를 하는 고니와 기러기가 이곳으로 모일 것이다. ▽ 큰고니 ▽ 큰부리큰기러기 ▽ 청둥오리 고니나 오리 종류는 얼음이 녹아 있는 곳을 찾아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반면에 기러기는 얼음 위에서 무리를 지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경계하는 몸짓이 완연했다. 이제 한 달 뒤면 얘들은 북쪽 땅을 찾아 떠나갈 것이다.

사진속일상 2023.02.03

눈 내린 뒤 경안천이 만든 백조의 호수

눈 내린 다음 날 경안천에 나가 보았다. 그동안 날이 풀어져서 경안천의 얼음이 많이 녹았다. 호수 같은 수면에 고니가 노니는 모습이 북쪽 지방에서 볼 법한 '백조의 호수'를 만들었다. 고니는 한자로 '곡(鵠)'이고, 백조(白鳥)로도 불린다. 우아한 이름과 달리 성격이 거칠고 몸집도 크다. "꿔억 꿔억" 하는 요란한 울음소리도 이미지와는 다르다. 그러나 무리에서 떠나 한둘씩 물 위를 유유히 헤엄 치는 광경은 평화롭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고니는 고니, 큰고니, 혹고니 정도다. 대부분이 큰고니이고 고니나 혹고니는 드물다. 고니와 큰고니의 차이는 덩치가 아니라 부리의 노란색 부분이다. 노란색이 넓게 콧구멍 앞까지 나와 있으면 큰고니다. 사진의 고니는 큰고니다. 고니가 모여 있는 곳은 시끄럽다. 아마 짝을..

사진속일상 2023.01.17

새해 첫날 경안천을 걷다

2023년이 열렸다. 새해 첫날 창밖에서 우짖는 까치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왠지 좋은 일이 여럿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드는 2023년이다.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경안천에 나갔다. 자글거리는 겨울 햇살이 따스했다. 산책로의 눈은 어느새 말끔히 사라졌고, 경안천의 얼음도 풀리기 시작했다. 요 며칠 낮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효과다. 천변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경안천의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즐겼다. 햇빛으로 반짝이는 윤슬에 눈이 부셨다. 이것만 보면 벌써 봄이 온 것 같다. 산 능선과 높이를 맞추며 가지런히 자라는 나무를 보라. 나 혼자 튀어나가지 않고 옆 나무와 보조를 맞추며 사이좋게 나란히 자란다.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다. 우리 지역을 통과하는 이 길은 일본과 미주로 오가는 비행기 노선이..

사진속일상 2023.01.01

경안천에 찾아온 재두루미

경안천에 귀한 손님인 재두루미가 찾아왔다. 모두 11마리다. 우리 동네에서 두루미를 볼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횡재를 한 기분이다. 실은 고니를 보러 나갔는데 뜻밖에 재두루미를 만났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두루미를 만난 것은 처음이다. 요사이 날씨가 너무 추워서였나, 철원에 있던 두루미 중 일부가 잠시 남쪽으로 내려온 모양이다. 여기는 두루미가 상주할 여건이 못 된다. 주변에 논이 없으니 먹이인 낙곡을 찾을 수 없을 게다. 아마 며칠 지나면 떠날 게 분명하다. 두루미도 가족 단위 생활을 하는데 새끼는 확실히 구분되어 보인다. 11마리 중 4마리가 날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며칠 전에는 고니가 수백 마리 모여 있었다는데 오늘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안천 물은 추위로 거의 다 얼어붙었다..

사진속일상 2022.12.27

경안천의 고니 가족

바깥바람을 쐴 겸 고니를 보러 경안천에 나갔다. 매산동을 지나는 경안천에서는 10여 마리의 고니 가족을 볼 수 있다. 작년의 고니 가족이 다시 찾아온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매해 비슷한 숫자의 고니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고니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 더 친근감이 든다. 두루미의 빼어난 외모에 비할 바 못 되지만 하는 행동은 너그럽고 우아하다. 내가 천변에 서 있어도 겁내지 않고 도리어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러다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끼면 슬며시 방향만 틀뿐이다. 까칠한 성격이 아니다. 고니가 노니는 평화로운 광경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일주일 동안 맹위를 떨치던 추위가 잠시 누그러지고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다. 얼지 않은 천의 물길을 따라 오리들도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사그락거리며 눈 밟히..

사진속일상 2022.12.21

겨울 맞는 경안천에 나가다

오랜만에 망원렌즈를 챙겨서 경안천에 나갔다. 혹시 황새나 고니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겨울철새들을 만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 여기서는 대체로 1월은 되어야 한다. 초겨울 추위가 물러가고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날이었다. 천변길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늘었다. 파크골프장에서는 동호인들의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파크골프는 공을 굴려서 홀에 넣는다는 점이 골프와 다르다. 공을 치는 사람들이 화기애애하면서 상당히 재미있어한다. 은근히 관심이 가는 운동이다. 새들이 겨울 햇살을 쬐며 옹기종기 모여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늘 눈에 띄는 놈은 청둥이와 흰뺨검둥이다. 배가 하얗고 머리는 까만 오리가 몇 마리 섞여 있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돌아오면서 고향순대집에 들러 뜨끈한 순댓국으로 배를 채웠다. 전 같으..

사진속일상 2022.12.08

풍경(51)

몸 안이든 밖이든 누구나 가시를 가지고 있다. 가시는 잠복해 있다가 불시에 깨어나 찌른다. 불가항력이다. 가시가 고통을 주지만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쳐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어젯밤은 잠을 설치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였다. 바람을 쐬러 경안천 습지생태공원에 나갔다. 늦가을 풍경이 일말의 위로가 되었다. 경안천에 나간 것은 고니가 돌아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산책로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 뒤에 십여 마리의 고니가 보였다. 올해 경안천에 맨 처음 도착한 선발대 무리일 것이다. 가을이 가는 스산한 계절이어선지 천변에는 산책 나온 사람이 드물었다. 시야를 가리던 나뭇잎이 떨어지니 경안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묵묵하게 세월을 견디며 성장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대견하다.

사진속일상 2022.11.19

가을이 성큼 다가오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기온이 떨어져서 아침저녁에는 쌀쌀하기까지 하다. 밤에 잘 때는 창문을 모두 닫아야 한다. 여름 이불은 거두어 세탁기에 넣었다. 계절의 변화가 거인의 발걸음처럼 한순간에 닥치니 깜짝 놀란다. 가을 하늘이 좋아서 집을 나섰다. 경안천을 걸으면서 온통 하늘에 마음을 뺏겼다. 뒤돌아 본 남쪽 하늘에는 비취색 구름이 떴다. 파란 하늘에 비단 조각처럼 걸린 비취운(翡翠雲)이었다. 경안천 건너편으로 건너갈 돌다리가 지난 폭우로 유실되었다. 할 수 없이 온 길로 다시 되돌아갔다. 왜가리, 백로, 오리가 사이좋게 이웃하며 쉬고 있다. 이런 날의 햇살은 보약과 같다. 얼굴을 간지리는 햇살을 담뿍 받아들였다. 무거운 몸이지만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면서 가을을 맞으러 나간 길이었다.

사진속일상 2022.08.28

습지생태공원에서 서하보를 왕복하다

경안천에 나갈 생각이 든 건 가마우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서하보 부근에 수백 마리의 가마우지 떼가 몰려와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하늘을 까맣게 덮을 정도로 많은 가마우지들이 날고 있었다. 이왕 경안천에 나간 길에 걷기를 겸해서 습지생태공원에 주차를 하고 서하보까지 걸어서 갔다. 약 3km 정도 되는 거리다. 서하보는 이름 그대로 광주시 서하리에 있는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보다. 보 옆에 사람이 건너는 다리는 높지 않아서 물에 쉽게 잠긴다. 서하보에는 지난 홍수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서하리(西霞里)는 '서쪽 노을이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신익희 선생 생가가 있다. 가마우지 떼를 보려던 꿈은 꽝이 되었다. 다른 곳으로 가 버린 모양이다. 대신 천 가운데서 쉬고 있는 왜가리와 백로를..

사진속일상 2022.08.23

비 내린 경안천

두 태풍 송다와 트라세가 연이어 한반도로 접근했으나 일찍 열대저기압으로 변한 탓에 둘 다 잔잔한 태풍이 되었다. 오히려 7월 말과 8월 초의 뜨거운 대기를 식혀주는 반가운 태풍이었다. 지난밤에 비가 많이 내린 뒤 경안천에 나가 보았다. 경안천변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친척 형님과 점심을 하고 난 후였다. 경안천은 흙탕물로 가득했고 둔치까지 물이 잠긴 흔적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천변을 따라 아내와 짧은 산책을 했다. 요사이 아내는 손발에 이상이 생겨 길게 걷지를 못한다. 집 거실은 물리치료실이 되었다. 점심에 만난 형님 부부네와도 대화의 대부분이 아픈 얘기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70줄을 넘고 있으니 몸에 탈이 생기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차례일 것이다. 이제는 병 자체보다도 병을 어떻게 받..

사진속일상 2022.08.04

바람 좋은 날에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하늘도 맑고 파랗다. 이런 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날씨의 유혹에 저항할 수가 없다. 작은 배낭을 메고 가벼운 걷기에 나선다.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는 기초 공사가 끝나고 1층이 올라가고 있다. 산길로 들어선다. 이쁜 산길이어서 뒤돌아 다시 갔다가 온다. 쉼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해가 다르게 변한다. 모두가 근래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들이다. 내가 이사왔을 때 전부 공터였던 곳이다. 집을 저렇게 지어대는데도 집이 모자란다고 난리다. 세상 일은 참 불가사의하다. 산에서 내려와 경안천으로 향한다. 천 건너편의 아파트 역시 신축된 단지다. 이젠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아파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 일생은 우리 국토가 아파트로 뒤덮이는 걸 ..

사진속일상 2022.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