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카눈이 얌전하게 지나갔다. 한반도에 들어온 뒤에는 세력이 약해져서 우리 고장을 관통했건만 태풍이라는 실감을 하지 못했다. 신나게 달리다가 갑자기 시동이 꺼져버린 자동차 같은 모양새였다.
대신 태풍이 남긴 구름이 이틀째까지 사라지지 않으면서 가는 비가 오락가락했다. 우산을 들고 오랜만에 경안천에 나갔다.
그래도 천변의 낮은 길은 물에 잠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안천의 지류인 직리천에서는 궂은 날씨지만 아이를 데리고 산책 나온 부부가 보였다. 어머니 손에는 곤충 채집망이 들려 있다.
우리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여름방학이면 곤충/식물 채집 숙제가 있었다. 방학책 표지에는 으레껏 채집망을 어깨에 걸친 아이들 그림이 나왔다. 지금 돌아보면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치려는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 시절 뭇 생명들은 시골 아이들에게는 좋은 장난감 정도였다.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아이들 손에 죽어갔는지, 무척이나 잔인한 짓을 많이 하고 놀았다. 괴롭히고 죽이는 걸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동심이었다.
현 세태에 절망하고 심지어는 말세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럼 과거는 파라다이스였느냐고 묻게 된다. 어느 시대나 기성세대의 탄식으로 가득차 있지 않았던가. 다만 현시대는 폭력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구조화되고 거대화되었다는 점이 과거와 달라졌다. 그래서 더 무서운지 모른다.
무릇이 피고 있다.
경안천과 동네 길 약 10km를 걸었다. 오랜만의 걸음이 상쾌했다.
이번 태풍은 두 번의 급격한 방향 전환이 있었다. 사람에 대입해 보면 생애 중 큰 사건을 겪은 것과 비슷하다. 인생의 길이나 태풍의 길이나 닮은 바가 있다. 태풍이 지나간 길처럼 인생의 길도 어떤 도표로 그려낼 수 있을 않을까. 가로축 시간에 대해 세로축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다양한 선이 나올 것이다.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