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텃밭 허수아비

샌. 2023. 8. 4. 10:46

 

이웃 텃밭에서 허수아비가 망을 보고 있다. 하늘을 보면서 싱긋 웃는 모습에서 노래하는 송창식이 떠오른다. '참새의 하루' 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바람이 부는구나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허수아비 뽐을 내며 깡통 소리 울려대겠지"

 

요사이 새들이 허수아비를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친구로 여기지 않을까. 하도 별스런 일들이 자주 생기는 세상이니 허수아비와 새가 동무가 된다 한들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소년 시절의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곡식이 익어가는 철이 되면 아이들은 논으로 양철통을 들고 나갔다. 여무는 벼 낟알을 먹기 위해 몰려다니는 참새떼를 쫓기 위해서였다. 허수아비로는 참새를 막는데 역부족이었다. 양철통을 북처럼 두드리고 고함을 지르면 논에 내려앉았다가도 부리나케 도망갔다. 동네 형 하나는 채찍을 사용했다. 가죽으로 만든 긴 끈인데 머리 위로 휘둘렀다가 내리치면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양철통에 비할 바 없는 신무기였다. 언제 커서 저걸 휘둘러볼까, 우리는 옆에서 지켜보며 부러워했다. 힘에 부쳐선지 요령이 없어선지 우리는 아무리 해도 그 소리를 만들 수 없었다.

 

양철통이나 가죽 채찍으로도 안 돼서 나중에는 대포 소리까지 등장했다. 언젠가 고향에 갔을 때 쿵 쿵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나서 뭔가 물어봤더니 대포 소리를 녹음해서 틀어놓았다는 것이다. 반짝이 줄을 치기도 하고, 맹금류가 그려진 깃발을 걸기도 하고, 가을이 되면 시청각을 총동원해서 새들과의 전쟁을 치렀다. 요즘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예전같이 요란하게 새들을 쫓는 일에 매달리지는 않는 것 같다.

 

그에 비하면 허수아비는 목가적이면서 낭만적인 풍경이다. 허나 고전적인 시대는 지나갔다. 허수아비는 새를 쫓는 용도라기보다 관광용으로 더 많이 활용하는 것 같다. 여기 텃밭의 허수아비는 장마가 지나고 새 와이셔츠를 말끔하게 갈아입으셨다. 허수아빈들 뭐 어떠냐고, 그래도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유쾌하게 산다고, 텃밭의 허수아비가 빙그레 웃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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