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말죽거리의 저녁

샌. 2023. 7. 21. 10:57

양재동 말죽거리에서 저녁 모임이 있었다. 말죽거리 골목을 걸으며 아련한 옛 추억 하나를 소환했다. 50년 전 이곳에 찾아왔던 기억의 조각들이 단속적으로 스쳐갔다.

 

1972년이나 1973년이었을 것이다.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N 선교회 멤버들과 같이 농촌 봉사 겸 전도를 왔었다. 예닐곱 명의 일행은 버스를 타고 제3한강교를 건너 말죽거리에 내렸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걸어서 어느 시골 마을 앞에 텐트를 쳤다. 냇가 옆이었는데 아마 양재천이었던 것 같다. 낮에는 농촌 일을 도우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공부를 가르치며 전도를 하고, 밤에는 성경 공부를 했다. 닷새 정도 머물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지금은 서울 강남 지역이 되어서 천지개벽을 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당시 말죽거리에 내렸을 때 주변은 온통 개발 열풍의 도가니였다. 불도저가 쉼 없이 오가며 길을 닦고 있었고, 포장되지 않은 황톳길은 먼지가 풀풀 날렸다. 무척 어수선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 철거되지 않은 허름한 집들 사이로 복덕방 간판이 제일 많이 눈에 띄었다. 소위 '말죽거리 신화'가 시작되던 참이었다. 대규모 부동산 투기와 복부인이 등장한 것도 이곳이었다. 대학생이었던 우리가 부동산의 의미를 알 수는 없었다. 그저 여기가 그 유명한 말죽거리라고 흘깃거렸을 뿐이었으리라.

 

 

양재사거리에는 이곳이 말죽거리였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있다. 설명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말죽거리(馬粥巨里)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이름이며 각종 기록에는 양재역으로 되어 있다. 양재역은 한양 도성에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삼남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교통상의 요충지였다. 관리들은 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말을 징발하거나 삼십리마다 설치된 역에서 말을 바꾸어 탈 수 있었으며 일반 백성들은 먼 길을 가는 경우 역 부근의 주막에서 여장을 풀고 말도 쉬게 하였다. 긴 여정을 위해 말죽을 많이 먹여야 하는 거리였으므로 말죽거리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으로 보여지며, 속설에 의하면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 가던 중 이곳에서 말을 탄 채로 팥죽을 먹었기 때문에 말죽거리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하여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이곳이 말죽거리였음을 나타내는 안내판이 곳곳에 있다.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은 광주군 언주면이었다. 지금 강남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언주대로는 여기서 따온 이름이다. 한강에서 세 번째 다리인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1969년에 세워졌고,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에 준공되었다. 

 

 

말죽거리 옆으로는 남부순환로가 지나간다. 여기는 예나 지금이나 교통의 요충지다. 

 

 

50년 전 불도저가 이 길을 닦던 때에 나는 여기에 서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광경과 지금 이곳을 연결시켜 보지만 내 머리 용량으로는 감당하지 못하겠다. 배낭을 멘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흙먼지를 마시며 땡볕 아래를 걸어가고 있다. 그 젊은이는 50년 뒤의 자신의 모습을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앞으로 50년 뒤의 세상은 또 얼마나 격변할 것인가.

 

그때 함께 했던 일행들은 예수의 삶을 실천하고자 공동생활을 하면서 검소하게 살며 사랑을 전했다. 초대교회의 정신을 현대의 삶에서 최대한 지키내려는 순수한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옛 추억 속에 잠긴 말죽거리의 저녁이었다.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구 혀?  (0) 2023.08.01
텃밭의 선물  (0) 2023.07.28
장맛비 속 고향에 다녀오다  (0) 2023.07.15
탄천의 여름 저녁  (0) 2023.07.09
당구와 바둑  (0) 2023.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