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탄천의 여름 저녁

샌. 2023. 7. 9. 10:59

 

분당에서 셋이 만나 네댓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니 저녁 무렵이었다. 그냥 들어가기가 아쉬워 탄천에 나가서 산책로를 걸었다. 야탑에서 정자까지 약 6km 되는 거리였다. 장마철이라 공기는 꿉꿉했고, 구름이 드리운 하늘은 매직아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걷다가 우연히 너구리를 만났다. 도심 하천에서 너구리를 만날 줄이야. 숲에서 살아야 할 녀석이 어찌 인간의 마을 속으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저들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쫓겨나듯 피난 온 것일까, 아니면 먹이를 찾아 여기까지 내려온 것일까. 지난 코로나의 경험으로 보건대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환경 파괴가 가속화되면 더욱 불가피한 일이 될지 모른다.

 

너구리 하면 1980년대에 삼미에서 활약했던 장명부 선수가 떠오른다. 한 시즌에 30승을 거둔 전설의 투수였다. 그의 능글능글한 성품에서 너구리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너구리의 어떤 특성이 그런 이미지와 연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탄천에서 만난 너구리는 사람을 별로 경계하지 않으면서 꽤나 영리해 보였다.

 

장명부 선수가 쓸쓸한 말년을 보낼 때 늘 되뇌인 말이 있었다고 한다.

"떨어지는 낙엽은 가을 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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