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여름 하늘

샌. 2023. 8. 18. 10:53

염제(炎帝)의 기세가 많이 누그러졌다. 한낮 땡볕 가운데를 걸어도 긴 시간이 아니라면 즐길 만하다. 집 에어컨도 이제 한철 소명이 끝났다. 대신 선풍기 도움은 당분간 받아야겠지.

 

여름 하늘이 아름답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흰 뭉게구름이 떠 간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 풍경만 바라봐도 지리할 수가 없다. 길을 걸으면서 연신 하늘로 고개를 쳐든다. 그때마다 하늘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변화무쌍한 청(靑)과 백(白)의 그림판이다. 

 

 

가을이면 운동회가 열렸다. 드높은 가을 하늘 아래서 아이들은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고함치며 뛰놀았다. 청과 백으로 나눈 것이 하늘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렇지만 하늘은 누가 누굴 이기는 마당이 아니다. 청과 백이 어울리는 조화의 세계다.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

내가 들은 게 대통령의 언어가 맞나 싶게 귀를 의심했다. 나라가 둘로 분열되어 있어 통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에 대통령이 앞장서서 반대 진영을 적으로 돌리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공산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립적 시각도 문제인데 진보와 시민운동을 통째로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가려 한다. 자신을 반대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우격다짐으로 들린다. 불현듯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가 떠오른다. 그 시대의 논리에서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그가 말하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윤석열의 머릿속이 짜장 궁금하다.

 

나라의 우두머리로 윤석열이 등장한 것도 정반합에 의한 역사 발전의 한 과정으로 이해하면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진다. 윤석열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다수의 국민이 선택했다. 그도 어쩌면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본인은 아마 엄청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고 착각하겠지만.

 

 

정치에는 일정 부분 거리를 두려 하지만 현실을 사는 이상 무관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귀 따라 마음이 쏠리는 게 좀팽이 같아 침울해진다. 그래도 가끔은 하늘을 바라보자. 여름 하늘은 맑고 푸르다. 저 하늘 바다에 풍덩 빠져 청과 백의 무위한 놀이에 동참할 수 있으려나. 세상만사가 한순간의 꿈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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