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안천 95

경안천-칠사산을 걷다

겨울이 되면 아무래도 집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다른 계절에 비해 걷는 운동량이 1/3은 떨어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몸은 둔해지고 바깥에 나가는 일이 귀찮아진다. 어제는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서 작심하고 경안천에 나갔다. 큰 마음을 먹은 김에 칠사산까지 연계해서 걸었다. 이 코스는 강변과 산길을 함께 걸을 수 있어 좋다. 응달에는 사흘 전에 내린 눈이 아직 남아 있다. 겨울 경안천의 단골인 고니가 청둥오리와 함께 유유히 노닐고, 고독한 철학자인 해오라기는 미동도 없이, 가마우지는 따스한 햇볕에 날개를 말리고, 붉은부리갈매기는 물고기를 사냥해서 식사에 열중인데, 고양이 한 마리가 붉은부리갈매기를 잔뜩 노려보다가 바투 다가가더니 흥미를 잃은 듯 등 돌리고 강물만 핥는, 평화로운 겨울 오후의 경안..

사진속일상 2022.01.23

고니와 놀다

날씨가 눅어지고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서 경안천으로 고니를 만나러 갔다. 서하리로 찾아갔는데 청석공원에서 놀던 고니가 이쪽으로 이동해 온 것 같았다. 무리의 규모가 대체로 비슷했다. 추위 탓에 경안천도 많은 부분이 얼었다. 고니가 놀 만한 곳이 흔치 않은데 서하리의 경안천은 조건이 좋다. 한적해서 사람 경계를 안 해도 괜찮고 천도 깊지 않다. 먹이를 얻는 최적의 장소다. 고니 옆에는 오리가 붙어 다닌다. 고니가 캐낸 수초 조각을 얻어먹기 위해서다. 귀찮을 법도 하련만 고니가 오리를 쫓아내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늘 사이좋게 같이 나누어 먹는다. 깃털 색깔이 회색인 고니는 유조(幼鳥)다. 덩치는 어미만큼 자랐지만 어미 따라 나란히 다닌다. 고니들은 느긋하게 돌아다니다가 물속에 부리를 박고 먹이..

사진속일상 2022.01.15

풍경(49)

도시를 지나는 하천은 빌딩에 둘러싸인 채 인공의 수로로 변해 자연스럽지 않다. 하천은 주변의 산과 어우러져야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다행히 경안천은 아직 하천 본래의 모습이 남아 있다. 이런 풍경 속에 있으면 아늑해지면서 가슴이 훈훈해진다. 자연에서 받는 위안만큼 따스한 것도 없다. 괜스레 마음이 헛헛한 날, 경안천의 겨울 풍경 속에 들다.

사진속일상 2022.01.09

경안천에 찾아온 고니

집 앞 경안천에도 고니가 찾아왔다. 대략 스무 마리 정도다. 작년에는 먼 걸음을 해야 만날 수 있었는데, 올해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여기는 왕래하는 사람이 많고 서식 환경이 좋지 않아 계속 여기서 머물 것 같지는 않다. 사진에 보이는 고니 한 쌍은 연애 중이다. 일행과 떨어진 채 둘이 꼭 붙어서 서로 목을 비비며 애정 표시를 과하게 한다. 내년에는 새끼를 데리고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먹이를 찾는 청둥오리들이 고니 주위를 맴돈다. 고니나 청둥오리나 물 속 수초를 먹이로 하는데, 고니가 건져 올린 수초 조각을 얻어먹으려는 전략 같다. 목이 짧으니 깊은 물에서는 고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 청둥오리에 개의치 않고 둘 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염려스러운 건 경안천 물이 그다지 깨끗하지 ..

사진속일상 2022.01.08

칸나

사람 이름을 닮아선지 '칸나(Canna)'라고 부르면 먼 이국의 고혹적인 여인이 윙크를 하며 바라볼 것 같다. 그리고는 넓은 치마폭을 흔들며 정열적인 춤을 출지 모른다. 칸나의 진홍색은 태양의 정수가 한데 모인 듯 손이라도 데면 타버릴 듯 뜨겁다. 가을 초입의 경안천변에서 칸나를 보았다. 산책로를 따라 길게 심어져 있는 칸나 길이다. 칸나는 여름에서 초가을에 이르기까지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꽃이다. 꽃만 아니라 파초처럼 넓은 잎이 특색이다. 많이는 말고 창가에 서너 송이 정도 심어둔다면 여름의 정취를 즐기는 데 적당할 것 같다. 특히 비 오는 날이라면 창문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꽃들의향기 2021.09.05

여름이 싱겁게 지나간다

한여름의 기세에 비해서는 여름이 싱겁게 지나간다. 가을한테 자리를 내어주면서 여름은 홀가분한가 보다. 아무 미련이 없는 모습이 허허롭다. 자연의 변화는 이토록 무심하다. 경안천을 걸으러 나섰다. 이번에는 하류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여기는 천의 한쪽으로만 길이 나 있어 같은 길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찾는 빈도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3년 전만 해도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가는 흙길이어서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포장이 되어서 사라져 버렸다. 서하리 천변에는 45도로 기울어진 밤나무가 있다. 이 길에서 만나는 나무 중 그나마 눈에 띄는데, 나무 무게를 어떻게 버텨내는지 힘들어 보인다. 대체로 여기까지 걷고 되돌아간다. 길을 계속 가면 경안천습..

사진속일상 2021.08.31

여름 가는 경안천

기세등등하던 여름의 기운이 꺾였다. 아침저녁 공기는 시원하다 못해 냉기가 서려 있다. 한낮에 햇빛을 맞으며 걸어도 크게 더운 줄을 모르겠다. 얼굴이나 목에 맺히는 작은 땀방울을 가끔씩 닦아주면 된다. 그렇더라도 아직 여름인지라 해가 중천인 경안천 길에는 사람이 드물다. 타박타박 혼자서 걷는다. 사람이 없으면 마스크를 안 써도 되어 좋다. 아직 습관이 안 되어서 그런지 마스크를 쓰면 답답해서 자꾸 손이 가고 벗게 된다. 길에서도 사람을 만나면 넓은 길이라면 간격을 벌리고 피해 가지만, 좁은 길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꺼내야 한다. 나보다도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들은 마스크를 참 잘 쓴다. 경안천처럼 사람 드문 곳에서도 꼭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야외에..

사진속일상 2021.08.21

경안천 참나리

경안천을 걷는 도중에 길 옆에 핀 참나리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줄기 아래쪽에 피었던 참나리는 다 졌고, 지금은 줄기 끝에서 마지막 참나리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참나리마저 지면 여름도 끝에 다다를 것이다. 지난 주말에 온 손주에게 빨강머리 앤 얘기를 해 줬는데 참나리를 보니 빨강머리 앤 생각이 절로 났다. 참나리도 얼굴에 생긴 주근깨 때문에 고민이 많을까. 그러나 겉모양은 절대 그런 것 같지 않다.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마음씨인가. 그런 점에서 참나리와 빨강머리 앤은 닮았다. 빨강머리 앤에게와 마찬가지로 나는 참나리에게도 속삭인다. "고마워, 참나리!"

꽃들의향기 2021.08.04

무더위 속 경안천 걷기

땡볕 무더위가 2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한낮에는 밖에 나갈 엄두를 못 내겠다. 어제는 오랜만에 가끔 비가 지나면서 구름 많은 날씨였다. 기온이 30도 아래로 떨어지긴 했으나 습도가 높아서 후덥지근했다. 그래도 햇볕이 가려지니 다행이다 싶어 경안천 걷기에 나섰다. 순전히 걷기 목적으로 경안천을 찾은 것은 반년이 넘은 것 같다. 여름에는 안 그래도 더운데 마스크까지 써야 하니 너무 답답해서 사람이 많은 데는 가지 않는다. 경안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한여름은 사정이 다르다. 그늘이 없는 경안천 길을 걸을 사람은 별로 없다. 예상대로 경안천에서는 아주 드문드문 사람을 만날 뿐이었다. 여름 경안천은 억새 사이에서 기생초가 많이 피어 있었다. 군데군데 꽃길로 조성해 놓았다. 진하고 화려한 화장을 한 듯해서 ..

사진속일상 2021.08.03

내가 사랑하는 길

이웃 동네로 넘어가자면 산자락으로 난 이 길을 지나야 한다. 내가 제일 아끼며 사랑하는 길이다. 길이가 200m 남짓 정도로 짧지만 여기에 들면 아늑하고 편안해진다. 사람의 통행도 거의 없다. 돌더라도 다들 차를 이용하지 산길을 걸어서 옆 동네로 갈 사람은 없다. 어쩌다 드물게 나 같은 어슬렁족을 만나기도 한다. 곧 여기에 아파트 건설이 예정되어 있어 이 길도 상당 부분이 훼손될 것이다. 이미 길 곳곳에 포클레인이 할퀸 흔적이 보인다. 진즉에 이 길의 사계를 담아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는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 단풍나무가 많아 길 한편이 붉게 물들면 여느 이름난 단풍 명소 못지않다. 올 가을 단풍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길을 지나 이웃 동네로 넘어가서 목현천과 경안천으로 이어지는 길을 ..

사진속일상 2021.06.23

날아라 오리

다시 경안천에 나갔다. 며칠 전보다 고니가 두 배는 더 많이 모여 있다. 분주한 걸 보니 이제 길 떠날 채비를 하는가 보다. 고니 사이에 흰뺨검둥오리(?)가 섞여서 놀고 있다. 가끔 날아오르는 건 오리이고 고니는 소리만 지를 뿐 수면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오리만 찍었다. 그래, 훨훨 날아라, 오리야! 나란히 나란히~, 얘들은 줄 맞추기의 달인들이다. 다정해 보이다가도 먹이를 앞에 두고는 추호의 양보가 없다. 세상 어디서나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야생에서는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무리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 경쟁 가운데 공생의 원리가 없다면 그 종은 파멸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새들은 제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다른 걸 욕심 내지 않는다. 인간과 다른 점이다. 잠깐의 소동이..

사진속일상 2021.02.10

다시 만난 황새

어제 경안천에 나갔다가 허탕을 치고 오늘 다시 도전을 했다. 혹시 북쪽으로 떠난 게 아닌가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지금껏 본 중에 제일 가까운 거리에 황새가 있었다. 곁에 백로와 왜가리, 청둥오리가 친구를 하고 있었지만 서로 모른 척 무심한 게 얘들의 특징이다. 다른 위치에서 찍어보려고 자리를 옮겼더니 금방 알아채고 날아가 버린다. 미안해~ 다음에 또 만나자~ 황새에 이어 여러 새들의 멋진 비행을 보았다. 어쩜 저렇게 멋질 수가 있는 거지.... #1 #2 #3 #4 #5 #6 #7 #8 #9 두 시간 정도 새와 함께 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날아가는 새를 보고 있으면 찬탄과 함께 가슴이 두근거린다. 신의 피조물 중에 군더더기 없이 날렵한 몸매를 꼽으라면 단연 새다. 저들의 몸은 가벼우면서 공기 저항을 최..

사진속일상 2021.02.08

2월 경안천 풍경

황새를 보려고 경안천에 나갔지만 이번에는 만나지 못했다. 혹여나 이곳 생활을 끝내고 이미 북쪽 나라로 날아가지 않았을까 염려된다. 그렇다면 정말 서운할 것 같다. 주말 휴일이라 사람이 많아서 나오지 않았기를 바란다. 대신에 백로와 왜가리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둥지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낮에 먹이 활동을 할 때는 얘들은 철저히 독립적이다. 몇 시간이고 한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걸 보면 멍때리기의 달인들이다. 고독한 철학자의 고고한 모습도 연상된다. 이 두 마리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함께 움직이고 있다. 짝짓기 사전 단계가 아닐까. 백로가 날아가는 모습을 찍자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백로보다는 왜가리에 더 정감이 간다. 약간은 슬퍼보이기도 하고.... 백로나 왜가리에 비하면 늘 바삐 움직..

사진속일상 2021.02.07

우리 고장에 찾아온 고니와 황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고니는 세 종류가 있다. 고니, 큰고니, 흑고니인데 고니와 큰고니는 구분하기가 어렵다. 부리에 있는 노란색 무늬의 크기로 나누는데 명확하지 않다. 큰고니가 제일 많지만 편의상 그냥 고니라도 부른다. 겨울 철새인 고니류는 모두 천연기념물이다. 우리 고장 경안천에 고니의 월동지가 있다. 많이 모여 있을 때는 꽥꽥거리는 소리로 주위가 소란스럽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 안팎에 있는 고니를 찍어 보았다. 고니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다른 새들보다 덜한 것 같다. 심지어는 사람한테 가까이 오기도 한다. 고니를 새롭게 바라본 날이었다. 경안천에는 진객인 황새 한 마리도 겨울을 나고 있다. 발에 가락지가 없는 걸로 보아 러시아에서 날아온 걸로 보인다. 황새의 수명은 20년 정도인데 이 새는 어려 ..

사진속일상 2021.01.26

경안천에서 황새를 보다

경안천에 새를 보러 나갔다가 운 좋게 황새를 만났다. 어렸을 때는 동네 앞 논에서 황새를 자주 봤는데 70년대에 들어서며 거의 멸종이 되었다. 20년 전부터 황새 복원 사업이 시작되었고, 2015년부터는 자연 적응 기간을 거쳐 방사를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에 사는 황새는 100마리가 안 된다. 일부는 겨울을 나기 위해 북쪽 지방에서 날아온다. 내가 본 황새도 발에 가락지가 없는 걸로 봐서 러시아 쪽에서 날아온 겨울 철새로 보인다. 황새는 몸길이가 1m, 몸무게는 4kg가량 되는 큰 새다. 그래서 '크다'는 뜻을 가진 '한'이 변해 황새가 되었다. '큰 수소'를 뜻하는 황소 이름과 비슷하다. 논이나 하천 등 습지에서 살며 잡식성이지만 주로 물고기가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다. 한 마리의 암컷이 한 마..

사진속일상 2021.01.15

코로나 겨울 속 경안천

스산하고 을씨년스럽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으나 걸음걸이에는 활기가 없다. 공원을 걷긴 하지만 다들 마지못해 밖으로 끌려 나온 모습이다. 모두가 코로나 탓이다. 내 활동량도 코로나 전에 비해 거의 1/3로 줄었다. 덕분에 몸무게는 3kg이 늘어났다. 그나마 이만한 게 다행일 정도다. 이제 겨울이 왔으니 다른 해보다 더 깊은 겨울잠이 될 것 같다. 오랜만에 경안천에 나갔다. 청석공원에서 상류 쪽으로 갔다가 오는 코스를 걸었다. 길섶에서 12월에 핀 민들레를 봤다. 요사이는 아침에는 영하 5도, 낮에는 영상 5도 내외의 날씨다. 싸늘하긴 하지만 해 나고 바람 불지 않으면 야외 활동하기에 괜찮다. 올해는 첫눈이 늦다. 청석공원은 산책로를 제외하고 전부 폐쇄되었다. 뛰노는 아이들을 볼 수 ..

사진속일상 2020.12.09

코로나 추석

코로나로 이번 추석은 고향에서 모이지 않고 각자 지내기로 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추석 차례를 주관하며 지낸 게 40년이 넘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다. 누구도 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걸 보니 코로나가 대단하기는 하다. 할 일이 없어진 추석날은 길 걷기에 나섰다. 문득 난설헌이 생각났고, 그곳을 목표 지점으로 정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난설헌 묘가 있다. 전날은 감정 낭비가 심했는데 황폐해진 속도 달랠 겸 느릿느릿 산천경개를 구경하며 걸어갔다. 난설헌과 두 자식의 묘를 내려다보며 오래 앉아 있었다. 난설헌의 가련한 생애가 떠올라 마음이 착잡했다. 자동차들의 굉음이 이어지던 중부고속도로는 얼마 되지 않아 상행선부터 정체가 시작됐다. 묘 옆에 있는 시비(詩碑)에는 난설헌 시..

사진속일상 2020.10.02

태풍 지난 하늘

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 하늘 좋고 바람 서늘해 경안천에 나갔다. 해는 숨바꼭질하듯 구름 뒤로 들락날락하는 걷기 좋은 날이었다. 이런 날은 하늘 구경만으로도 본전을 뽑는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중이어선지 밖에 나온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다. 구름만 보면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올여름은 8월 중순까지도 장마 속에 갇혀 있었으니 더위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갔다. 유별난 2020년인데 올가을은 어떤 걸 선물할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요즘 같으면 나라나 개인이나 그저 별 탈 없기를 바랄 뿐이다. 경안천에서는 아내, 손주와 차례로 합류했다. 손주가 유치원에 못 가게 되니 다시 야외에서 손주 얼굴을 보게 된다. 봄보다 마음의 키가 훌쩍 큰 것 같다. 아이들..

사진속일상 2020.09.04

장마 지난 뒤

길었던 장마가 끝난지 닷새가 지났다. 장마 막바지에 많은 비가 와서 경안천에도 홍수주의보가 내렸다. 경안천에 나가봤더니 홍수가 지나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천변 공원은 발을 딛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다. 정상 상태로 회복하자면 많은 공이 들어야 할 것 같다. 큰물에 떠내려간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가서 모이는 걸까? 나일강이 범람하면 비옥한 땅을 선물한다지만 여기는 악취만 진동한다. 옛 자리에 잘못 들어섰다가 훌쩍 미끄러질 뻔 했다. 그래도 멀리 눈을 돌리면 초록의 숲이 반짝이고, 홀로 개울가를 찾은 백로는 세상 태평한 듯 서성거린다. 다리 위에 앉아 빵부스러기를 던져주는 한 청년 밑에는 팔뚝 만한 잉어들이 서로 먹이를 다투느라 요란하다. 돌아갈 때 봐도 이 청년은 같은 자리에 하염없이 앉아 잉어와 놀고..

사진속일상 2020.08.22

경안천에 나가다

석 달 만에 경안천에 나갔다. 코로나 이후로 몸을 움직이는 활동량이 많이 줄어들었다. 걷기를 목적으로 하는 바깥출입은 코로나 이전의 1/3쯤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몸무게는 별 변화가 없는 게 신기하다. 덜 걷는 대신 식사량도 그만큼 감소한 탓이 아닐까. 인간은 어쨌든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기 마련이다. 밖에 나오면 열심히 걷기보다 카메라를 들고 이것저것 찍어보는 게 취미다. 사라져가는 존재의 애틋함에 멍하니 바라볼 때가 가끔 있다. 풀, 달팽이, 구름이기도 하고, 넓은 풍경이기도 하다. 사진을 찍는 것은 이들과의 작은 눈맞춤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스쳐지나갈 것을 한 번 더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 사진 찍기가 아닐까. 천변 산책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산하다. 사람이 들어간 풍경을 찍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사진속일상 2020.06.26

초봄의 경안천 걷기

겨울옷은 두껍고 봄옷은 얇다. 햇살이 비치면 따스하다가 바람이 찬 기운을 몰고 휙 지나가면 몸이 움츠러든다. 겨울이 지나갔지만 아직 봄이 완전히 오지는 않은, 지금이 그런 때다. 경안천을 따라 난설헌 묘까지 가려고 길을 나섰다. 묘는 걸어서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에 있다. 천변을 따라 걷는 길이 좋은데, 마지막 부분에서는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도로에 올라서 보니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보도가 없어 위험해 포기했다. 다른 접근로를 알아봐야겠다. 천변에 긴 띠 모양의 생태연못이 있다. 수초를 이용해 동네에서 나오는 물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은 좋은데, 처리 용량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경안천은 도시 하천에 비하면 인공의 느낌이 덜 하다. 자연스런 모습이..

사진속일상 2020.03.19

경안천 개불알풀

봄이 오면 경안천변은 개불알풀 꽃밭으로 변한다. 올해도 어김이 없다. 작년에 산책로가 시멘트로 덮이는 공사가 있어 염려되었으나 생명의 힘은 어찌할 수 없다. 연약해 보이는 풀이지만 실은 제일 힘이 세다. 꽃은 산책로를 따라 300m 정도 되는 구간에 만개해 있다. 같은 길이지만 다른 데서는 드문드문 보이는데 유독 이곳에서만 옹기종기 모여 산다. 끼리끼리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것은 사람이나 풀이나 비슷한가 보다. 개불알풀꽃은 가까이서 보면 앙증맞게 귀엽고, 떨어져서 보면 지상에 피어난 별처럼 반짝인다. "나 여기 있어요", "날 한 번 봐주세요", 라고 딸랑거리며 부르지만, 사람들은 부지런히 걷기에 바쁘다. 코로나19로 세상은 시끄러워도 봄은 오고 꽃은 핀다.

꽃들의향기 2020.02.28

연이틀 걷다

코로나19로 떠들썩하지만 내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바깥출입이 드문 방콕형이라 평소대로 지내는 게 격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내는 생활 패턴이 확 바뀌었다. 배우러 다니는 강좌들이 닫히고, 집안에서만 버텨야 한다. 요사이는 답답해하는 아내 들러리로 같이 바깥나들이를 한다. 덕분에 연이틀 걷기를 했다. 공기가 깨끗하고 날씨가 좋은 탓도 있었다. 어제는 물안개공원을 걸었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했으나 공원이 워낙 넓어서 안에 들어가니 인적이 드물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사람들은 되도록 타인과 접촉을 피하려 한다. 북적이는 곳보다는 이런 한적한 장소가 인기다. 공원에는 평소보다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단체는 없고 전부가 두셋 정도의 가족끼리다. 우리도 그동안은 따로따로 노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진속일상 2020.02.27

수상한 겨울

소한, 대한이 지나가며 겨울의 정점을 통과했지만 유례없이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 1월 낮 최고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이 하루도 없다. 서울 기준으로 소한인 6일은 4.6도, 대한인 20일은 5.5도였다. 어느 날 밤에는 빗소리에 잠이 깨기도 했다. 겨울 새벽에 듣는 빗소리가 기묘했다. 경안천변도 겨울 풍경이 아니다. 아무리 따뜻한 겨울이라 해도 그늘진 곳에는 얼음이나 눈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올해는 말끔하다. 강물에서도 해동이 끝난 봄 냄새가 난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좋지만, 무슨 겨울이 이렇나 싶다. 목도리, 장갑을 모두 풀고 벗어야 했다. 마른 풀 속에 무슨 꽃이라도 피지 않았을까, 살피게 된다. 도서관에 들린 길에 시내를 거쳐 경안천 주변을 걸었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자주 걸어..

사진속일상 2020.01.21

내가 싫어지는 날

내가 싫어지면서 우울한 날이 있다. 그런 때는 운동화 끈을 매고 집 밖으로 나간다. 집안에 있으면 어두운 감정의 늪에 점점 빠져들기 때문이다. 정처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타박타박 걷다 보면 토닥토닥 나를 다독여주는 손길을 느낀다. 그리고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다 괜찮아." "아무렇지 않은 거야." 오랜만에 걸어보는 경안천이다. 경안천에는 한낮이 되었는 데도 아침 서리가 남아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 겨울 햇빛을 정면으로 쬐며 남쪽으로 내려간다. 시간이 지날 수록 햇볕에 서리가 녹듯 마음 속 응어리가 풀어진다. 못난 '나'가 내 안에서 그제야 미소를 짓는다. 두 시간여를 걷고 시장 안에 있는 단골 순댓국집에 들어간다. 점심때가 한참 지난 오후라 식당 안은 손님 너덧 명이 있을 뿐 조용하다. ..

사진속일상 2019.12.24

태풍 지나가고

태풍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 태풍 뒷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날, 하늘에 취해 경안천을 걸었다. 청석공원에 파크 골프장이 생겼다. 멀리서 봤을 때는 게이트볼인 줄 알았는데 요사이 유행하기 시작하는 새로운 스포츠다. 파크 골프는 골프를 노년에 맞게 변형시킨 운동인 것 같다. 좀 더 나이 먹으면 한 번 해 볼만 하겠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밝은 햇살을 한껏 받았다. 저 맑고 파란 하늘을 닮고 싶어서.....

사진속일상 2019.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