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안천 95

맑고 푸른 날

웬일일까, 올해는 늦봄부터 초가을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세먼지 염려 없이 살고 있다. 연일 맑고 푸른 날이다. 시국은 어지러워도 자연은 더없이 청명하고 밝다. 이 좋은 날씨에 이끌려 아내와 밖에 나섰다. 반짝이는 가을 햇살이 좋아 일부러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반바지도 입었다. 피부도 얼마나 생생한 햇빛을 원하겠는가. 드러낼 수 있는 한 한껏 쬐어주고 싶었다. 그늘이 아니라 햇볕 따라 걸었다. 후줄근한 마음도 이 쨍한 햇볕에 말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뽀송뽀송해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비 뒤여서인지 목현천 냇물이 더욱 깨끗하다. 송사리떼가 바쁘게 돌아다닌다. 목현천은 경안천과 합류하며 넓은 하천이 된다. 더 내려가면 경안천은 한강과 합쳐진다. 세상 살면서 근심 걱정 없길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

사진속일상 2019.09.17

장마 속 갠 날 경안천 걷다

장마 기간이지만 중부 지방은 아직 제대로 된 장맛비는 찾아오지 않았다. 장마전선이 제주도와 남부 지방에서 정체 상태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환한 날, 경안천을 걷다. 같은 태양이라도 스페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여름 햇볕은 끈적끈적한 편이다. 습도가 높아서 공기가 후덥지근한 탓이다. 반면에 지중해의 태양은 강렬하지만 쨍그랑, 소리가 날 듯 맑고 경쾌하다. 스페인 역시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여름에는 유라시아 대륙 기단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하늘 색깔이 참 예쁘다. 이 산책로는 흙길이었는데 어느새 시멘트로 포장해 버렸다. 길 걷는 아기자기한 맛이 사라졌다. 시멘트에서 나오는 열기도 대단하다. 그대로 뒀으면 더 좋았으련만..... 한낮의 햇살이 따가워 예상했던 길을 다 걷지 못하다. 자꾸 나무 그늘을 따..

사진속일상 2019.07.13

경안천 작은 한 바퀴

기해년 설을 지내고 경안천에 걸으러 나가다. 몸속 위장을 운동시켜 주기 위해서다. 뱃속 전쟁이 멈출 기미가 없다. 보급을 끊기 위해 술은 물론이고 커피도 금하고 있다. 두 주째다. 마음대로 먹지를 못하니 몸무게도 61kg대로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된 셈이다. 싸늘하나 공기가 깨끗해 기분 좋은 날이다. 미세먼지 '좋음' 상태가 반갑다. 찬 바람이 불어줘야 미세먼지가 걷힌다. 그래서 '삼한사미(三寒四微)'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니 통탄할 세상이다. 경안천 주차장에서 돌다리를 건너 돌아오는 데 두 시간이 약간 더 걸린다. 작은 한 바퀴다. 더 멀리 나가는 코스는 세 시간이 넘게 걸린다. 전에는 긴 코스를 주로 다녔는데 요사이는 주로 작은 한 바퀴를 돈다. 이것도 세월이 쌓여가..

사진속일상 2019.02.08

열이틀 만의 외출

독감 기세가 누그러졌다. 열이틀 만에 밖에 나갔다. 내 멋대로 쉴 수 있는 건 백수의 특권이다. 만약 직장에 다닌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고작 하루 정도 병가를 낼 수 있을까. 눈치가 보여 집에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열이틀은 나같이 게으른 백수에게나 가능하다. 활동적인 사람은 몸이 근질거려 오직 방콕을 견디지 못하리라. 경안천을 30분 정도 산책했다. 햇빛이 자글거리며 얼굴을 간질이는 게 좋았다. 독감이 물러가고 이제 몸이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는 이 안도감과 느긋함이라니. 나한테서 릴레이 받아 시작한 아내는 독감이 현재진행형이다. 하남에 가서 보신탕을 사 왔다. 아내는 기력 회복용으로 보신탕이 최고의 음식이라 믿고 있다. 내가 아프면 먹을거리가 풍성하지만, 아내가 아프면 식탁이..

사진속일상 2019.01.17

경안천 새길

초겨울이 되면 계절병을 앓는다. 소화기관이 차가워진 기온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몸에서는 위와 장이 제일 약하다. 여름에 에어컨 바람을 쐬어도 배가 바로 반응한다. 그러니 겨울의 찬 공기는 상극이다. 거기에다 활동량이 줄어드니 위와 장 기능이 더 떨어진다. 음식물을 소화하지 못하니 속은 늘 부글부글 끓는다. 마치 사보타지를 하는 것 같다. 두 주일째 죽이나 누룽지로 속을 달래고 있다. 이제 한고비는 지나갔다. 어제부터는 조심스레 정상적인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고 있다. 위장도 환경에 맞추어야지 별수 있겠는가. 내가 도와줄 것은 걷기밖에 없다. 게을러진 몸을 일으켜 세운다. 가까운 경안천에 나간다. 몇 달 전에 천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놓여서 쉬이 건너편으로 갈 수 있다. 이젠 통상적인 산책로의..

사진속일상 2018.12.18

남이 봐도 되는 일기

1. 찬바람 속을 걸으면 눈물이 쉴 새 없이 나온다. 손수건 꺼내는 걸 잠깐 잊으면 볼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린다. 내가 이렇게 눈물 많은 사람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런데 정작 울어야 할 때는 절대로 안 나온다.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주책이다. 병원에 가보고 싶지만 의사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노화 현상입니다!" 미세먼지를 막아주는 마스크처럼 눈물을 제어해 주는 투명 마스크는 없을까. 고령화 시대에 대박 상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2.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천년의 세월을 살 것처럼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그렇게 멀리만 보이던 노년이었는데 세월을 나를 어느덧 노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초등 친구 카톡방에 ..

사진속일상 2018.12.12

경안천 고마리

고마리 피는 곳이 어디 경안천만이겠는가. 가을이면 우리나라의 물이 있는 곳 어디서나 지천으로 피어난다. 얼마나 많이 자라기에 '고만' 피라고 '고마리'라 불렀을까. 고마리 어원이 '고마운 이'라는 설도 있다. 하수구 물을 정화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심지도 않았는데 제가 알아서 자라나 물을 맑게 해 주니 더 이상 고마울 수가 없다. 흔하다고 소홀히 여기지만 고마리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석처럼 예쁘다. 연꽃을 찬탄하지만 고마리 꽃도 그에 못지않다. 물의 청탁을 가리지 않고 맑게 피어나는 네 모습이 아름답다.

꽃들의향기 2018.10.17

어느 휴일 하루

경안천을 산책하다가 하늘에 홀려서 석양을 기다리다. 한 시간 산책길이 세 시간으로 늘어났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그림에 가슴이 뛴다. 그냥 흘낏 일별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이 야속하다. 이전, 평화로운 청석공원이다.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가 새로 생겼다. 건너편으로 산책길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새로 걸을 수 있는 길이 생겨 좋다. 가을이 되면 경안천은 억새와 갈대밭이 된다. 여기는 인간이 손 대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아직은 남아 있다. 더 이전, 둘째가 찾아와서 한강변 '강마을 다람쥐'에 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진속일상 2018.09.28

경안천변 봄꽃

맑고 미세먼지 걱정 없는 봄날이다. 오늘은 햇볕을 쬐기 위해 밖에 나선다. 겨울잠 자듯 주로 집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응달의 삶이 되었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모자는 벗는다. 피부 세포가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마음도 환해진다. 경안천을 따라 세 시간 반 걷다. 오랜만에 타박타박 걷는 재미가 새롭다. 틈틈이 천변에 핀 봄꽃을 구경하다. 버들강아지, 개불알풀, 냉이, 꽃다지, 개나리, 산수유.....

꽃들의향기 2018.03.30

환한 햇살

축복의 덕담이 넘쳐나는 새해 첫날이다. 이 세상 사람 모두의 기원을 한데 모으면 희망 풍선은 지구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오를 것이다. 바람이 빠지면 추락은 순식간이라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바람을 하늘로 높이 높이 띄워 보낸다. 경안천에 나갔다. 버렸던 희망도 다시 주워 담고 싶을 만큼 햇살 밝고 환한 날이다. 오늘은 나 같은 시간 불감증 환자도 뭔가 하나의 결심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품는 꿈에 비해 실제 삶은 얼마나 누추하고 어설픈지, 그 괴리를 없애고자 새해의 다짐을 버린 지 오래되었다. 허공에 떠다니는 임자 없는 복을 빌기보다는 지상에 단단히 서는 일이 중요하다. 뻥튀기하지 않고 나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경안천을 따라 두 시간 반을 걸었다. 맑고 흐림에 일희..

사진속일상 2018.01.01

초겨울 경안천

단단히 무장을 하고 나섰는데 낮 기온이 올라 느린 걸음에도 땀이 뱄다. 겨울이 되니 산에 갈 마음은 들지 않고, 집 주변의 평탄한 길 걷기가 좋다. 경안천을 따라 두 시간 정도 산보를 했다. 카메라를 바꿔볼까 하고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다. 좋은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작품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고 굳이 화질 좋은 카메라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내가 나에게 해주는 선물로 어쩌다 이런 사치를 부려도 괜찮으리라. 경안천 억새는 흰 깃털을 날려 보내고 더 가벼워졌다. 천변에 있는 겨울 나목도 눈에 들어왔다. 혼자 걷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이 계절에는 좀 더 쓸쓸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사진속일상 2017.11.28

장마 지나는 경안천

장마철이다. 연나흘 비가 내리다가 잠시 그치고 햇빛이 환하다. 경안천에 나가니 바닥의 열기와 물비린내가 섞인 계절의 냄새가 진하다. 가물 때는 비를 바랐는데, 막상 비가 연일 쏟아지니 구름이 야속하다. 인간의 장단을 맞추자면 하늘도 피곤할 것 같다. 땡볕에서 한 시간 넘게 걸으니 몸이 흐느적거린다. 이런 날에 배낭 메고 나오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더울 때는 다리 밑이 최고다. 다리 밑은 왜 시원할까? 물, 그늘, 바람의 삼박자를 갖춘 곳이 다리 밑이다. 특히 다리 구조물 때문에 주위보다 바람이 더 세게 불 수밖에 없다. 베르누이의 원리다. 할 일이 없다 보니 별스런 생각을 다 한다. 벽화에 적힌 '배려 대한민국, Better Korea'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배려'와 'Better'를 연관시킨 발..

사진속일상 2017.07.11

경안천 봄맞이꽃

이맘때 경안천변에는 봄맞이꽃과 개불알풀 꽃밭이 펼쳐진다. 해가 갈수록 개체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벌써 오래전 일이지만 처음 봄맞이꽃을 만났을 때의 감격이 잊히지 않는다. 노란 입술에 입맞춤하듯 꽃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 뒤로 몇 해 동안은 봄이 오면 꼭 봄맞이꽃을 만나러 바깥나들이를 했다. 우리 주변에 흔한 꽃이지만, 찾으려고 하면 안 나타나 야속할 때도 있었다. 다행히 이곳 경안천에서는 봄맞이꽃 풍년을 맞고 있다.

꽃들의향기 2017.04.16

2016년 끝날

2016년 끝날에 경안천을 걷다. 하늘은 흐리지만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 겨울 냉기는 없다. 경안천 오리가 오늘은 자맥질을 멈추고 얼음 위에서 평화로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몇 달 동안 생활이 많이 헝클어졌다. 쓸데없다는 걸 알면서도 흔들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가까운 사람한테는 짜증도 자주 부렸다. 앞을 가로막은 벽이 너무 답답했다. 망년(忘年) 대신 송년(送年)이라는 용어를 권하지만, 올해는 망년을 그대로 쓰고 싶다. 정말 잊고 싶은 한 해다. 더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바닥까지 내려갔으니 이젠 회복될 일만 남았다. 나랏일이나 개인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이 희망이다. 물 같이 보이는 얇은 얼음 위에서도 새는 편안하다. 새의 가벼움이 부럽다.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면서 사람답지 않은 짓을 찾아서 하..

사진속일상 2016.12.31

경안천을 따라 걷다

걷고 싶어서 작은 배낭을 메고 경안천으로 나갔다. 집에서부터 상류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용인과 만난다. 경안천에 만들어진 보도는 시 경계에서 끝나지만 둑길을 따라 왕산교까지는 갈 수 있다. 용인 외대 캠퍼스 입구다. 이 길은 조용해서 좋다. 길은 잘 만들어져 있는데 걷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간간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걷는 동안 아무 방해를 받지 않는 길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제멋대로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젊었을 때는 선악, 진위의 시비를 가리느라 헛심을 썼다. 나이가 드니 둘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도 이젠 큰소리치지 못하겠다. 대신 느림과 침묵이 어느샌가 자리를 차지하려 엿보고 있다. 앎의 종착지는 모름지기 무지인가 보다. 살이 쪄서 그런지 몸이 무겁다..

사진속일상 2016.09.11

경안천 수크령

수크령은 가을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는 전령사다. 가을이 무르익어야 나타나는 억새나 갈대와 달리 수크령은 늦여름에 등장해 일찍 가을 분위기를 연출한다. 경안천 청석공원에 수크령이 한창이다. 바람이 불면 산책하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손짓처럼 하늘거린다. 수크령은 더위가 물러난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린다. 강아지풀과 닮았으나 분위기는 억새과다. 다시 멋진 계절이 오고 있다.

꽃들의향기 2016.08.27

더위 가신 경안천을 걷다

희한하다. 어젯밤에 반가운 비가 내리더니 날씨가 일변했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 느낌이 다르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무더위와 땡볕에 바깥출입 엄두를 못 냈는데 오늘은 가벼운 배낭 매고 경안천으로 나갔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올여름 더위는 대단했다. 1994년의 혹서를 아직도 잊지 못하지만 2016년도 그에 못지 않았다. 한 달 넘게 비다운 비 한 번 내리지 않아 체감 더위는 오히려 1994년보다 더한 것 같다. 올해는 에어컨 신세를 톡톡히 졌다. 그래서 깜짝 찾아온 가을 날씨가 더없이 반갑다. 경안천 천변길을 즐겁게 왕복했다. 목현천 주차장에서 경안천으로 나가 오포교를 돌아오는 코스다. 이번에 트랭글로 확인해 보니 12km가 약간 넘는 거리다. 시멘트 길이 많지만 몇 차례 흙길도 나온다..

사진속일상 2016.08.26

마름산과 경안천을 걷다

여름 산행에서 제일 힘든 게 산모기의 공격이다. 한 번 따라붙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이만저만 성가신 게 아니다. 오늘은 백마산에 오르려고 산에 들었는데 시작부터 대여섯 마리가 달라붙는다. 아무리 쫓아내도 소용 없다. 습도가 높은 날이어서인지 더 심했다.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내년에 갈 밀포드 트레킹에서도 '샌드플라이'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듣고 있다. 샌드플라이는 살을 헤집고 피를 핥아 먹는 날벌레다. 한 번 물리면 몇 주 동안 고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망 달린 모자를 구입하려고 한다. 명소에 가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활공장에서 전망이 열린다. 마름산 꼭대기는 누군가 정갈하게 빗질을 해 놓았다. 일주일 전에 트레커와 왔을 때도 눈길을 끌었는데 오늘도 똑 같다. 매..

사진속일상 2016.06.11

추위가 풀어지다

일주일 넘게 맹위를 떨치던 추위가 물러갔다. 이번 한파에는 최저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졌고, 한낮에도 영하 10도 부근에서 수은주가 주춤거렸다. 제주도에는 폭설이 더해져 공항이 이틀간 폐쇄되었고 수만 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32년 만의 추위였다고 한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여서 대만에서는 백 명 가까이 동사했다는 소식이다. 옛날을 돌아보면 쨍하게 맑은 겨울이 떠오른다. 삼한사온이 나타나는 것도 특징 중 하나였다. 어린 생각에 어째서 기온이 일주일 주기로 변하는지 신기해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날씨가 뒤죽박죽이고 막무가내다. 자연 현상마저 인간 세상을 닮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낮 기온이 영상으로 돌아오니 반갑다. 몸이 근질근질해서 경안천에 나가 세 시간 정도 걸었다. 미당이 자신을 키운..

사진속일상 2016.01.28

새해 첫날 걷기

좋은 게 늘 좋은 것은 아니다. 나쁘다고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짧은 인생 중에도 쉼 없이 돌고 돈다. 말과 문자로 복 풍년이 되는 날, 복(福)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복만 따로 있을 수 없다. 동전의 양면처럼 복과 화는 서로 엉켜 있다. 복만 많이 받겠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일 뿐이다. 새해 첫날 경안천을 따라 용인 모현까지 걸었다. 천변은 살짝 얼었고 오리는 자맥질을 멈추었다. 드론을 날리는 사람 옆에서 잠자리 같은 네 날개 기계가 신기해서 구경을 했다. 영상의 날씨에 지팡이 짚은 할머니도 산보를 나왔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새해가 되어도 별 결심이 생기지 않으니 좋다. 새로운 기대나 설렘이 없어서 좋다. 바람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담백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 걸은 시간..

사진속일상 2016.01.01

경안천 갈대밭

경안천 양안은 가을이 되면 갈대밭으로 변한다. 억새도 가끔 보이지만 대부분이 갈대다.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니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군락인 것 같다. 천을 따라가며 규모가 아주 크다. 갈대는 단정치 못한 외모와 색깔로 볼품은 별로다. 만약 억새밭이었다면 훨씬 더 장관이었을 것이다. 경안천에도 군데군데 하천공원을 만들고 있다. 나무와 잔디 심고, 운동기구 갖다 놓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모양새는 식상하다. 이곳에 공원을 만들 것이라면 이왕이면 갈대나 억새를 주제로 하면 좋겠다. 자연 생태계를 최대한 살리면서 갈대 사이로 오솔길을 낸다면 멋질 것 같다. 그리고 천변 둑을 볼 때마다 나무 없이 휑한 게 너무 아쉽다. 둑을 따라 미루나무를 심으면 어떨까. 포플러도 괜찮다. 옛날에 신작로를 따라 도열한 키다리..

꽃들의향기 2015.12.28

직리천

매일 두세 시간은 산책을 하자고 연말이 되어서야 다짐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신선한 공기와 밝은 햇살이다. 집 주변에서 가장 걷기 좋은 곳은 경안천이다. 오늘은 처음으로 경안천의 지류인 직리천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경안천에는 많은 지류가 있다. 그중에서 집 가까이 직리천이 있다. 직리천은 영장산에서 발원해서 태전동을 지나 경안천으로 흘러든다. 중간에 목리천과 중대천과 만난다. 셋 중에서는 직리천이 중심이다. 직리천과 중대천이 만나는 지점이다. 중대천은 고불산 밑에서 시작해 중대동을 거쳐 직리천과 합류한 뒤 경안천으로 들어간다. 직리천은 위로 올라가도 천의 폭이 상당하다. 겨울이라 수량은 빈약하다. 지금은 도시 개발로 볼품없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어엿한 냇물이었을 것이다. 산책로가 ..

사진속일상 2015.12.27

경안천 걷다

몸을 너무 사리면 안 되겠다 싶어 경안천에 나갔다. 아무리 쉬어도 차도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험하게 굴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저도 슬그머니 달아날지 모른다. 지난봄 이래 경안천 걷기는 처음이다. 바로 옆에 두고도 이 모양이다. 먼 나라 걸을 생각만 궁리하고 있었지 정작 동네 길은 소홀히 한다. 반성할 일이다. 트레커에서는 뉴질랜드 밀포드 트레킹과 밴 여행 계획이 거의 세워졌다. 26일의 일정이다. 결심했지만 딱 하나 걸리는 게 있다. 며칠 계속된 영하의 기온이 오늘은 누그러지고 햇빛이 나왔다. 걸으니 상쾌하고 좋았다. 오래 멈추었던 기계가 삐거덕거리며 작동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새로 신은 운동화에 발가락이 아팠고, 긴 걸음에 허벅지가 땅겨오는 것도 즐겁게 참을 만했다. 전철 ..

사진속일상 2015.11.30

강변의 봄

집에 있기에는 몸이 간지러워 밖으로 나섰다. 환한 봄 햇살 때문이었다. 퇴촌의 한강변 벚꽃길을 가려고 했으나 차가 많이 막혀 경안천습지생태공원으로 방향을 돌렸다. 아직 가로수 벚꽃이 만개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이곳 벚꽃은 내주가 되어야 활짝 필 것 같다. 초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강변 풍경이 고왔다. 봄을 'spring'이라고 하지 않는가, 용솟음치는 생명의 기운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강을 따라 난 벚꽃 길을 걸을 때 두보 시의 한 구절인 '國破山河在'가 무심결에 떠올랐다. 어김없이 찾아온 봄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사진속일상 2015.04.11

경안천에 나가다

걷기 위해서 밖으로 나간 게 한 달도 훨씬 더 전이었다. 추위 핑계를 대며 오랫동안 방에서 칩거했다. 눈 내린 뒤로는 산 출입도 삼갔다. 오늘은 작심하고 경안천에 나갔다. 바깥바람은 싸늘하지만 상쾌했다. 폐에 고인 곰팡내 나는 공기가 신선한 공기로 바뀌었다. 비록 완전한 야외는 아니지만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서 걷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경안천 산책로는 눈이 얼어 빙판으로 된 곳이 많아 멀리 나가지는 못했다. 쉬운 길을 따라 두 시간 정도 산책했다. 덤덤하게 지나가는 크리스마스다. 신앙도 거의 냉담 수준이다. 지금 내 마음은 거센 토네이도가 지나가고 난 뒤의 폐허 같다. 얼마 전부터 머리가 띵 하며 아픈 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어쨌든 한 해의 막바지에 와 있다.

사진속일상 2014.12.25

경안천 꽃양귀비

경안천 산책로에 핀 꽃양귀비다. 개양귀비라고도 한다. 양귀비와 달리 마약 성분이 없는 원예용이다. 꽃양귀비는 줄기에 가는 털이 나 있다. 하늘거리는 꽃잎, 선명하고 요염한 색감은 가히 경국미인(傾國美人) 양귀비(楊貴妃)라는 이름에 어울린다. 당 현종이 양귀비를 만난 게 58살 때, 며느리였던 양귀비의 나이는 22살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처음에는 며느리를 도교 사원에 머물게 하여 비난이 잦아들고 나서 아내로 맞았다. 현종은 양귀비의 치마폭에 묻혀 정사를 잊으니 나라는 기울고 결국 안녹산의 난으로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양귀비 자신도 자결할 수밖에 없었으니 총명과 아름다움도 도가 지나치면 화를 불러오는 법이다. 그만한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아쉬울 것은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꽃양귀비를..

꽃들의향기 2014.05.28

경안천 20km를 걷다

집에 있으려니 너무 답답해서 밖으로 나섰다. 경안천을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려 했는데 쌀쌀한 날씨 탓에 열심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겨울 소백산 능선의 칼바람을 맞는 게 옳았다. 요사이는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이젠 격한 감정의 요동이 잦아지고 좀 차분해질 때가 되었다. 나부터 사태를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도 필요하다. 속을 들여다보면 누구 하나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맹자는 말했다. "사람은 모두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人皆有不忍人之心]."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에 사람 구별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오늘은 4시간 넘게 약 20km를 걸었다. 걷기의 위안이 없다면 나는 얼마나 슬플 것인가. 걷다 보면 쪼그라진 ..

사진속일상 2014.01.18

경안천 걷기

겨울이 되니 활동량이 확 줄어들었다. 대신에 늘어난 건 잠이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도 겨울잠을 잔다면 세상이 훨씬 조용해졌을 거라는 상상을 해 본다. 겨울이라 산에는 가지 않고 가끔 경안천에 나가 걷는다. 오늘은 집에서부터 목현천을 따라 경안천에 들어서 양벌대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16km 정도를 걷는데 4시간 가까이 걸렸다. 추위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공기는 싸늘했다. 새들 역시 천 가운데에 모여서 미동도 하지 않고 이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속에 가시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가시는 숨어있다가 불현듯 나타나 가슴을 콕콕 찔러댄다. 어떤 사람에게는 부모가, 어떤 사람에게는 자식이 가시로 박혀 있다. 건강이, 돈이 가시인 사람도 있다. 지금 당신의 '..

사진속일상 2013.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