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경안천 새길

샌. 2018. 12. 18. 20:31

 

초겨울이 되면 계절병을 앓는다. 소화기관이 차가워진 기온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몸에서는 위와 장이 제일 약하다. 여름에 에어컨 바람을 쐬어도 배가 바로 반응한다. 그러니 겨울의 찬 공기는 상극이다. 거기에다 활동량이 줄어드니 위와 장 기능이 더 떨어진다. 음식물을 소화하지 못하니 속은 늘 부글부글 끓는다. 마치 사보타지를 하는 것 같다.

 

두 주일째 죽이나 누룽지로 속을 달래고 있다. 이제 한고비는 지나갔다. 어제부터는 조심스레 정상적인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고 있다. 위장도 환경에 맞추어야지 별수 있겠는가. 내가 도와줄 것은 걷기밖에 없다. 게을러진 몸을 일으켜 세운다.

 

 

가까운 경안천에 나간다. 몇 달 전에 천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놓여서 쉬이 건너편으로 갈 수 있다. 이젠 통상적인 산책로의 반대쪽으로 걷는 일도 수월해졌다.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곤지암천을라가 본다. 지월리와 만난다. 절벽 따라 놓인 잔도가 재미있다.

 

 

처음 밟는 흙길이 동쪽으로 뻗어 있다. 옆에 재활병원이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양쪽에서 부축을 받으며 걷고 있다. 남편과 아들로 보인다. 가끔 서서 길섶을 보며 뭔가 얘기를 나눈다. 그렇게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저 길로 쭉 가면 허난설헌 묘가 나온다. 앞에 보이는 자그마한 야산 너머에 있다. 다음에는 배낭에 소주 한 병 넣고 거기까지 가 보리라. 인간의 손을 덜 탄 이런 길이 좋다. 오늘은 새길을 발견한 것으로 만족한다.

 

맛있게 먹는 밥 한 그릇,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이 감사하다. 자잘한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이 잔잔하며 오래 간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기적이며 놀라움이다. 작고 소박한 걸음에서 만나는 자연의 친구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할진대 삶의 어느 자리에서나 경이롭지 않은 게 있겠는가. 얄팍한 낙천주의자도 우둔한 비관주의자도 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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