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불더위를 몰아내는 장마가 찾아왔다. 한때는 기온이 35℃까지 치솟더니 비가 내리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다. 땡볕에서는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은 구름이 햇볕을 가려줘서 경안천 걷기에 나섰다. 배낭 안에는 식수, 참외, 떡을 챙겼다. 반바지를 입으니 상쾌했다.
내린 비로 경안천은 황토색이 되었다. 물은 하수 냄새가 섞인 물비린내가 진했다. 길은 군데군데 질척거렸다. 천 건너편에서는 종합운동장 공사가 한창이다.
걸으면서 이것저것 밀려오는 상념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여러 얼굴들이 명멸한다. 그러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여워지기도 하고 어여뻐지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시공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너를 꼬옥 껴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세 시간여를 걸었다. 맨발걷기에 빠진 아내는 뒷산 황톳길을 걷고 왔다. 오리 고기를 구워 상추쌈으로 점심을 먹었다. 잠깐씩 책을 읽었고, PBA 당구 경기 중계를 봤다. 저녁에 한 줄기 소나기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