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118

가을걷이를 돕다

고향에 내려가서 4박5일을 보내며 어머니의 가을걷이를 도왔다. 내내 밭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힘이나마 올 농사의 마무리에 보탠 셈이었다.  마구령터널이 개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려가는 길에 영월로 우회해서 마구령터널을 지나갔다. 아직 부분 개통인지 한 개 차로만 통행을 허용하고 있었다. 영주와 단양을 잇는 새 길이 뚫린 것이다.  겸하여 백두대간수목원에도 들렀다. 트램을 타고 꼭대기까지 이동하여 걸어서 내려왔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대충 훑어만 봤다. 넓이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목원이라고 한다.   이번 가을걷이의 제일 큰 일은 들깨를 터는 일이었다. 지난 주말에 동생들이 내려와서 반 이상을 끝낸 터라 하루만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총량이 50되가량 나왔을 성싶다.  고춧대를 뽑고 밭을 정..

사진속일상 2024.10.29

뜨거운 추석을 고향에서 보내다

추석을 전후한 연휴 기간 동안 30도가 넘는 기온이 이어졌다. 고향에서의 추석날은 34도까지 올라가서 여간 더운 게 아니었다. 이러다가는 '추석'이라는 명칭을 '하석(夏夕)'으로 바꿔야겠다. 올해는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추석을 보냈다. 차례는 지내지 않으므로 다른 형제들은 모이지 않은 단출한 명절이었다. 추석 전날은 어머니를 모시고 예천에 있는 외할머니 산소를 찾아보고 바람을 쐬러 무섬마을에 들렀다. 오랜만의 바깥 나들이에 어머니가 좋아하셨다.   어머니의 밭농사가 끝난 줄 알았다. 자식들이 극구 말리니 안 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그런데 웬 걸, 산소 가는 길에 들러보니 500평 밭이 무성하게 자란 들깨로 빽빽했다. 올해도 자식들 몰래 가꾼 것이다. 아흔이 지난 지 한참이나 된 노인인데 집 부..

사진속일상 2024.09.19

나흘 동안 어머니와 지내다

고향에 내려가서 나흘 동안 어머니와 지내다가 왔다. 장마 기간이라 내내 비가 오는 통에 집에만 있었다. 바깥 외출은 옆집 친구를 찾아가서 잠깐 근황을 나눈 게 전부였다. 비는 사납게만 내리지 않으면 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고마운 존재다. 농민도 비 핑계를 대면서 고단한 몸을 쉴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고향을 오가는 길이 운치 있는 드라이브가 된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줄 밭작물을 다듬고 나는 옆에서 거드는 흉내를 낸다.  어머니의 부지런함을 어찌  따라갈 수 있으랴. 잠시라도 비가 그치면 금세 보이지 않는데 텃밭에 나가면 찾을 수 있다. 장수 노인들의 공통점은 가만히 있지 않고 쉼 없이 몸을 움직인다. 어머니도 예외가 아니다.  점심에는 어머니와 둘이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반주를 곁들였다. 어머니는 ..

사진속일상 2024.07.20

어머니와 고추를 심다

고향에 내려갔더니 마침 고추 모종이 도착해 있었다. 맞춘 건 아닌데 묘하게 때가 맞아 어머니 일손을 덜어줄 수 있었다. 특히 고추 지주대를 세우는 작업은 노모가 하기에는 힘에 겨워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터였다. 어머니 농사는 올해 변곡점을 맞았다. 산을 넘어가야 하는 멀리 있는 밭의 들깨 농사를 그만둔 것이다. 어머니는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걱정 하나를 덜어낸 셈이다. 아흔 넘은 노인이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짓는 게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제 집 가까이 있는 밭만 남았다. 여기에 고추 300포기를 심었다.   모판에서는 파릇파릇한 벼 새싹들이 자라고 있고,  고향집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제비가 찾아왔다. 마을에서 우리집에만 유일하게 제비가 찾아온다. 작년, 재작년에 쓰던 옛 집이 고스란..

사진속일상 2024.05.02

어머니를 뵙고 오다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를 뵙고 왔다. 2박3일을 함께 지내면서 옛 추억을 소환한 여러 얘기들을 나누었다. 친척들과 많은 마을 사람들이 한두 사지 사연들을 던져주고 명멸하듯 스쳐 지나갔다. 그들 대부분은 이제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짧은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고향에 내려가면 두문불출하고 어머니와 붙어 지낸다. 어머니도 외출할 생각을 안 하신다. 아들과의 이런저런 수다가 즐거운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 제천 의림지에 들러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며 초봄의 바람을 쐬었다. 어머니가 놓으신 마늘의 초록 잎이 싱싱하게 돋아났다. 덮었던 비닐을 며칠 전에 벗겼다고 한다. 다른 집에서도 마늘을 심었지만 어머니 마늘만큼 생생하지 못하다. 이웃에 사는 선배는 어머니의 작물 키우는 ..

사진속일상 2024.03.14

겨울밤 / 박용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 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겨울밤 / 박용래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는 시다. 단 네 줄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애절하게 담아냈다. 고향을 떠나온 지 긴 세월이 흘렀고,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자주 찾아오는 나이가 되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년의 고향 집 겨울은 따스하다. 시인의 시대로부터 그리 많은 세월이 흐른 것도 아니다. 이제 그런 고향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찾아가지 못하는 고향이고, 누군가에게는 찾아가더라도 이미 사라진 고향이 되었다. 기억 속 고향과 현실의 고향은 괴리가 너무 깊다. 그런 불협화음이 우리를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하는 건 아닐까. 고향을..

시읽는기쁨 2024.02.17

2024 설날

올해 설날은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단출하게 보냈다. 도로 정체가 풀린 뒤인 까치 설날 저녁에 내려갔더니 막힘 없이 갈 수 있었다.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명절이랄 것도 없이 간단했다. 성묘 가는 길... 어머니는 과거를 추억하며 많이 서운해 하셨다. 나도 기억하는 그 시절 동네 골목에는 설빔을 차려입은 아이들로 북적였고, 집에는 연신 세배하러 오는 손님이 그치지 않았다. 지금은 설날이 되어도 적막강산이다. 마을에는 아예 아이들이 없다. 새해 인사도 다니지 않는다. 차례를 지내는 풍습도 사라지고 있다. 외지에서 찾아오는 가족 친척도 적다. 그저 제 식구들끼리 어울리다 간다. 우리 동네만 아니라 작금의 보편적인 현상일 것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새 시대에 적응할 수밖에 없잖은가. 어쨌든 한 시대가 저무..

사진속일상 2024.02.12

어머니에게 다녀오다

어머니 표정이 어두웠다.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방에 들어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틀 전에 꾼 꿈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나타나서 어머니가 오기를 기다리더라는 것이었다. 꿈에서는 이심전심으로 느껴지니까. "나 금방 갈 께요" 하니 외할머니는 아무 대꾸 없이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곧 죽을 것 같다."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하셨다. "그건 아직 갈 때가 안 됐다는 뜻이에요. 외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서 오라고 해야 데려가는 거지요. 외면하며 뒤돌아서 갔잖아요." 내 말에 어머니는 미심쩍어하면서도 다소 안도하셨다. "빨리 죽어야지" 하면서도 막상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망설이며 주춤한다. 생(生)에의 본능이 그만큼 질긴 것이리라. 나는 안다. 지금 같은 어머니 건강 상태라..

사진속일상 2023.12.07

어머니와 닷새를 지내다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닷새를 함께 지냈다. 어머니가 거처하시는 방은 저녁에 군불을 넣으면 밤 동안은 찜질방이 된다. 몸을 굽는 데는 최고다. 어머니가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도 이 구들장 있는 방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도 닷새 동안 뜨듯한 아랫목 덕을 톡톡이 보았다. 시골에서 부엌일은 내 몫이다. 어머니가 쌀을 안쳐주면 식사나 후식 준비, 설거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 먹을거리는 대부분 준비해서 내려간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여느 때보다 식사를 잘하셔서 마음이 놓였다. 마련한 음식을 식구들이 잘 먹어줄 때의 주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는 잠시도 쉬는 법이 없다. 부지런함에서 어느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건강하게 장수를 하시는지 모른다. 반면에 나는 게으름뱅이다. 몸을 움..

사진속일상 2023.11.04

산소를 보수하다

고향에 내려가서 지난여름에 폭우로 무너진 산소를 보수했다. 포클레인과 인부 한 명이 추가로 따라와서 일을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다. 경사면 여러 곳에 쇠 파이프를 박아넣고 걸침목을 했으니 이제 무너져 내릴 일은 없을 것 같다. 겸해서 깔끔하게 벌초도 했다. 이번에 산소를 정리하고 납골묘를 만들려고 했으나 아무 때나 손대는 게 아니라고 해서 생각을 접었다. 기존 묘는 나중에 찾아오지 못하더라도 그대로 두어서 자연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 들판에는 벼가 익어가고,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기대를 접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다고 혈연을 깡그리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찌 할 수 없는 일에는 지나친 신경 낭비를 하지 말자.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

사진속일상 2023.09.11

장맛비 속 고향에 다녀오다

올 장마는 성질이 사납다. 마치 인간에 대해 화풀이를 하려는 것 같다. 고향 동네에도 산사태가 나서 여러 군데 피해를 입고 있다. 하늘이 하는 일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더구나 현대의 자연재해는 인과응보적 경향이 크다. 자연 훼손과 무분별한 삶에 대한 셈값을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고향에 있는 나흘 동안 내내 비가 내렸다. 지금 장마전선은 충청도와 경상도 지역에 머물며 강한 비를 뿌리고 있다. 며칠째 꼼짝을 안 하고 있어 애를 태운다. 고향 마을도 집중호우대에 들어가 있다. 한 주 전에는 고향에 하룻밤새 200mm의 폭우가 퍼부었다. 여러 군데 산사태가 생겼고, 우리 산소도 허물어졌다. 마침 내려가 있던 여동생이 임시 땜질을 했다. 장마가 그쳐야 제대로 보수를 할 수 있을 것..

사진속일상 2023.07.15

어버이날에 어머니를 찾아뵙다

어버이날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어버이날이면 동네에서 노인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어졌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봉사를 할 중년층이 사라진 탓일 게다. 이미 마을 주민의 9할 이상이 70대가 되어 있다. 저녁 식사를 하고 해 질 즈음에 마을 주변 산책에 나섰다. 매직 아워의 전원 풍경이 평화로웠다. 다음날은 밭에 나가 잠시나마 어머니 일손을 도와 드렸다. 평생을 농부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밭일이 아니면 생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하시는 것 같다. 삶을 지배하는 관성의 무서움이다. 힘들다 하면서도 밭은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다. 나도 꼼꼼한 편이지만 어머니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여러 해 전부터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올해 역시 깨 농사를 시작했다...

사진속일상 2023.05.10

제비가 돌아온 날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다녀왔다. 내려가는 길에 단양 사인암에 들렀다가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타고 죽령을 넘었다. 봄 색깔로 물든 산야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군데군데 차를 멈추었다. 우리 지방에서는 벚꽃이 이미 졌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벚꽃이 일부 남아 있어 신기했다. 올해 날씨는 꽃이 피는 순서도 그렇고 뭔가 뒤죽박죽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며칠 더 일찍 왔다면 어머니와 벚꽃 나들이도 가능했을 것 같았다. 다음 날은 어머니와 밭에 나가 고사리를 꺾고 산소를 정리했다. 작년 같았으면 밭 전체에 농사 지을 준비가 되어 있었을 터인데 올해는 힘이 부치시다면서 일부만 손을 보셨다. "딴 소리 말거라, 일 하고 싶어도 못 할 때가 온다"라고 늘상 말씀하셨는데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산소에 난 잡초를..

사진속일상 2023.04.13

고향의 저녁

지난주에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설을 쇠고 다시 고향에 모셔다 드렸다. 어머니가 목감기가 걸리신 데다 날씨가 추워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온전히 집안에서 어머니와 함께 있었던 여드레였다. 노쇠한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여러 복합적인 감정의 진폭이 컸다. 불효에 대한 죄스러움과 함께 해가 다르게 달라지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슬픔과 안타까움이 겹쳤다. 누구나 살고, 늙고, 병들고, 죽지만 내 부모가 되면 그런 과정이 당연하거나 무심할 수 없다. 무자비한 세월이 주는 인생의 쓸쓸함과 허무가 너무나 짙었다. 파스칼은 말했다. "세월 앞에서 인간사라는 것은 생의 본질적 비참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동시에 피붙이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이 곁들어 따라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다행히 이틀 동안은 손주가 있어서 시름을 잊고 웃을 수..

사진속일상 2023.01.28

어머니를 뵙고 오다(12/12~12/14)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를 뵙고 왔다. 눈 내리면서 추운 날씨여서 외출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사흘 내내 어머니와 한 방에서 지냈다. 옛날 얘기며 친척들과 동네 소식, 거기다가 정치 논평까지 많은 대화를 했다. 몸보다 사실 더 걱정되는 건 어머니의 정신 건강이다. 말에서 치매 징조가 읽히지 않는지, 전과 달라진 점은 없는지 유심히 살피게 된다. 좀 불안하기도 하지만 아직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100수를 하셨던 외할머니는 95세를 지나면서부터 치매 증세가 나타나셨다. 어머니도 정신줄을 놓게 될까 봐 제일 걱정하신다. 둘째 날은 오후부터 눈이 많이 내렸다. 저녁까지 내린 적설량이 5cm는 될 것 같다. 고향 마을은 작은 동네다. 마을회관에 모이는 노인분들은 서너 명 남짓이다. 어머니의 가장 친했던 친구분이 지난..

사진속일상 2022.12.15

고향에서 나흘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나흘간 함께 있었다. 어머니의 가을걷이를 도와줄 목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들깨를 베는 일이 첫째였다. 들깨 모종 심고, 베고, 털고 하는 작업은 형제들이 나누어 내려와서 맡고 있다. 올해 내 일은 그나마 제일 쉬운 들깨를 베는 일이었다. 어머니와 둘이서 한나절이면 충분했다. 들깨 작업을 마치고 산에 올라가 밤을 주웠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심은 나무들이라는데 밤나무 고목이 산의 능선을 덮고 있었다. 이젠 마을 사람들한테도 잊혀서 오로지 어머니의 전용 밤밭이었다. 나는 10분여 줍다가 포기했는데 어머니는 30분 넘게 산을 타고 다니셨다. 아흔이 넘은 연세인데 모두가 놀라는 체력이다. 비슷한 또래의 동네 할머니들은 대부분 바깥출입하기도 벅차다. 자식 입장에서는 그러다가 다치실까 봐..

사진속일상 2022.10.15

고향에서 3박4일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가서 나흘을 머물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장마철이라 하늘은 잔뜩 흐렸다. 단양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죽령을 지나는 국도를 오랜만에 탔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죽령터널이 뚫린 뒤로는 거의 다닐 일이 없는 죽령길이었다. 이렇게 우회하는 것은 마음을 달래고자 해서였다. 죽령을 넘어서 희방폭포에도 들렀다. 희방계곡은 어릴 적 가족의 여름 피서지였다. 다섯 남매에게는 부모님과 함께 하는 일 년에 한 번뿐인 소풍날이었다. 50여 년이 지나 그 자리에 서니 이런저런 상념이 찾아와 어지러웠다. 어머니의 들깨 심는 일을 도우러 내려왔지만 일은 이미 끝나 있었다. 어머니는 부지런하기로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분이다. 아흔둘 연세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 ..

사진속일상 2022.07.16

넉 달만에 어머니를 찾아뵙다

코로나 일 확진자 수가 여러 달째 수십만 명대를 기록하며 발을 묶었다. 노모를 찾아보려고 해도 혹시 감염을 시킬까 불안해서 가지를 못했다. 다행히 파고의 정점이 지나고 이번 달부터는 야외 마스크 쓰기도 해제되었다. 어버이날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다. 넉 달만이었다. 이제 고향은 어릴 때의 그 포근하고 넉넉했던 품이 아니다. 시간이 얼마나 만상을 쇠락시키는지 확인시켜주는 쓸쓸한 공간이다. 열역학 제2법칙을 고향만큼 명료하게 보여주는 곳이 있을까. 새로워지는 것도 분명 있으련만 과거를 붙잡고 있는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병들고 낡고 스러지는 안쓰러운 모습으로 가득한 곳이 고향이다. 동네 어귀에서 보면 소백산 옥녀봉이 여일하게 가깝다. 올해는 좋은 소식이 있을려나. 동생 집에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

사진속일상 2022.05.09

한 장의 사진(28)

귀향(歸鄕)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이고, 귀성(歸省)은 '부모를 뵙기 위하여 객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이다. 귀성에는 '살필 성(省)'이 들어 있듯이 물리적인 거리 이동만 아니라 부모를 뵙는다는 뜻이 있다. 사람들이 설날이나 추석에 고향을 찾는 행동에는 귀성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오늘이 설날인데 귀성을 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성인이 된 뒤로 50년이 흘렀는데 설 명절은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추석은 몇 차례 못 내려간 적이 있지만, 설날 당일에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는 일은 철칙처럼 지켰다. 그런데 올해부터 달라졌다. 이젠 교통 정체를 견디며 이동하기도 힘들고, 형제가 명절에 모인다 한들 서먹하니 따스한 귀성의 의미가 별로 없다. 얼마 전에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니께 ..

길위의단상 2022.02.01

어머니한테 다녀오다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사흘을 함께 있다가 왔다. 겨울이 되니 농사일이 없어 낮에는 마을회관에 나가서 소일하신다. 점심과 저녁 식사는 거기서 친구들과 같이 지어들고 노신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 걸 보니 걱정 한 자락이 줄어들었다. 이튿날 낮에는 어머니는 회관에 가시고 나는 구들장이 뜨끈한 방에서 허리를 지지면서 책 보다가 공상을 즐기다가 오랜만에 고향의 한가함을 즐겼다. 옆집 친구를 찾아가기 아까울 정도로 고마운 시간이었다. 여자들이 친정에 찾아가면 마음이 풀리고 꼼짝하기 싫다더니 내가 꼭 그랬다. 곧 설날이 다가오는데 앞으로 명절은 따로 지내야겠다고 어렵게 말씀드렸다. 도로의 정체를 견디며 내려가기도 이젠 힘에 벅차다. 같이 모인들 냉랭한 분위기 탓도 있다. 어머니는 한갓질 때 찾아뵙는 게 낫겠다는..

사진속일상 2022.01.21

고향의 서점 거리

코로나 백신 3차 접종을 받는 어머니를 모시고 시내 병원에 다녀왔다.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지 한 달여가 지났는데 하루 확진자가 7천 명대까지 치솟았다. 곧 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나오니 이러다가는 백신을 맞느라 앞으로도 병원을 들락거려야 할 것 같다. 참으로 요상한 세상이다.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시내를 산책했다. 이곳에서는 놀라운 광경을 본다. 반경 50m 안에 무려 다섯 개의 서점이 보인다. 요사이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해서 전통적인 서점은 사라지는 추세인데 시내 중심가에 서점들이 촘촘이 모여 있다. 서점 규모도 대형이다. 나는 고맙고 신기해서 서점 간판을 쳐다보며 몇 바퀴를 돌았다. 40여 년 전 여기서 중학교를 다닐 때는 '스쿨서점' 하나..

사진속일상 2021.12.12

늦은 추석 귀성

추석이 지나고 열흘 뒤에야 고향에 찾아가게 되었다. 가족과 친척이 함께 모여 추석을 쇠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꼭 추석날이 아니라 각자 편리한 날짜에 방문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올해 나 같은 경우는 조상님 뵙기에 면목이 없기는 하다. 명절이 즐거운 것은 어릴 때 얘기다. 어른이 되어 이런저런 사정이 중첩되면 눈치 볼 일도 많아지고 체면치레도 해야 하고 여간 복잡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고향에 계신 노모 걱정이 제일 크다. 이래저래 고향 내려가는 마음이 무겁다. 내려가는 길에 먼저 용소막성당에 들렀다. 성당 주변 느티나무는 여전히 늠름하고 아름다웠다. 경황없이 나오다 보니 카메라를 챙기지 못해 휴대폰으로 찍었다. 용소막성당에서 10여 분만 더 내려가면 배론성지다. 고향 가..

사진속일상 2021.10.02

고추 따고 벌초하고

고향으로 노모를 뵈러 가는 마음이 편치 않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 같다. 자꾸 일이 뒤엉키니 어찌할 길이 없이 착잡하다. 휴게소마다 들러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마침 내려가는 때가 고추 따는 시기와 맞물렸다. 어머니의 고추 농사라야 200포기밖에 안 된다. 전에 비하면 1/5로 줄었다. 아들보다는 거드는 일손이 생긴 것에 어머니는 기뻐하신다. 올해 고추는 풍년이다. 튼실한 고추가 가지 사이에 너무 빽빽하게 달려 있어 빼내는 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것도 노동이라고 두 시간여 두 물째의 고추를 땄더니 양손의 엄지손가락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다. 오후에는 어머니와 함께 선산의 벌초를 했다. 개망초로 덮여 있었는데 뽑아내니 깔끔해졌다. 이렇게 일 할 줄은 모르고 내려왔는데 고되지만 끝나고 나니 ..

사진속일상 2021.08.15

고향의 여름꽃

고향 마을을 산책하다가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옛 친구지만 고향에 내려가도 오가다가 마을길에서 우연히 만나 얼굴을 본다. 서로 연락해서 식사 한 끼 할 기회가 별로 안 생긴다. 사람을 만나기보다 조용히 있다가 오고 싶은 내 성향 탓이 크다. 친구의 사과 농장 입구에 능소화가 환하게 피어 있다. 고향집에 어머니가 키운 접시꽃이다. 어머니는 집만 아니라 동네 골목에도 꽃을 심고 잡초를 뽑으며 깨끗하게 만드신다. 부지런하기로 치면 어머니를 당할 사람은 없으리라.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그런데 아들인 나는 반대이니 이 역시 불가사의다. 이웃집 마당의 무궁화가 여느 해보다 더 풍성하고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꽃들의향기 2021.07.09

어머니와 들깨를 심다

어머니의 경작 본능을 무슨 수로 말릴까. 올해도 어김없이 들깨 농사를 시작했다. "가만 두어라.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못 한다." 10년 전부터 돌아오는 똑같은 대답이다. 밭은 집에서 1km나 떨어져 있고 산자락도 넘어야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나한테도 숨이 차다. 밭도 500평이나 된다. 그런데도 매일 왕복하며 가꾸어놓은 밭이 정원처럼 말끔하다. 관리하기 쉬워 들깨를 심는다지만 아흔 넘은 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동네 사람들도 혀를 내두른다. 그런데도 당신은 "내 좋아서 하는 일, 끄떡없다!" 하신다. 밭일보다도 오가는 과정이 걱정이다. 경사진 산길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찌될까. "넘어지려고 하면 평지에서도 넘어진다. 산길은 조심해서 오히려 괜찮다." 분명한 것은 어머니의 농사 욕심은 ..

사진속일상 2021.07.09

고향은 무겁다

묘한 일이다. 짐을 덜 줄 알고 환영했는데 결국은 무거운 짐을 더한 꼴이 되었다. 인간 세상에서 앞날이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있겠는가. 좋아서 기뻐하다가 눈물을 흘리게 되고, 슬퍼 울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으로 변하는 게 인생사다. 고로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고향에 내려가서 사흘을 지냈다. 어머니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뒤라 뒤를 보살펴 드렸다. 그나마 어머니가 꿋꿋하신 게 고맙고 다행한 일이었다.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 겹쳤다. 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는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處世不求無難].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사진속일상 2021.05.21

구들목 / 박남규

검정 이불 껍데기는 광목이었다 무명 솜이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있었지 온 식구가 그 이불 하나로 덮었으니 방바닥만큼 넓었다 차가워지는 겨울이면 이불은 방바닥 온기를 지키느라 낮에도 바닥을 품고 있었다 아랫목은 뚜껑 덮인 밥그릇이 온기를 안고 숨어있었다 오포 소리가 날 즈음, 밥알 거죽에 거뭇한 줄이 있는 보리밥 그 뚜껑을 열면 반갑다는 듯 주루르 눈물을 흘렸다 호호 불며 일하던 손이 방바닥을 쓰다듬으며 들어왔고 저녁이면 시린 일곱 식구의 발이 모여 사랑을 키웠다 부지런히 모아 키운 사랑이 지금도 가끔씩 이슬로 맺힌다 차가웁던 날에도 시냇물 소리를 내며 콩나물은 자랐고 검은 보자기 밑에서 고개 숙인 콩나물의 겸손과 배려를 배웠다 벌겋게 익은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였다 구들목 중심에는 책임이 있었고 때론 배려..

시읽는기쁨 2021.02.28

늦은 설

코로나로 지난 설날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올해는 형제가 같이 모이지 못하고 각자 어머니를 찾아뵙게 되었다. 설날이 열흘 지나고 고향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뵙는 어머니가 건강하신 게 안심이 되고 감사했다. 혼자 계시는 날이 많은 데다 코로나로 사람들 왕래가 드무니 너무 적적하다고 하신다. 동네 마을회관이 문 닫은 지도 1년이 되었다. TV가 없으면 어떻게 지낼지 모른다는 말에 가슴이 찡했다. 자식이 있다고 노년의 외로움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이기도 한 게 오늘의 현실이다. 아침이면 집 마당 단풍나무는 새들의 놀이터다.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깨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참새와 박새 몇 마리가 들락거릴 뿐 조용했다. 어머니 옆에서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다. 떠날 때마다 자주 찾아뵈어야지, 라고 다짐..

사진속일상 2021.02.24

설날과 세배

코로나로 이번 설은 형제들과 따로따로 지내기로 했다. 설날에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아침에 첫째가 찾아와서 셋이 오붓하게 보내는 설날 아침이다. 오가는 고속도로의 정체 걱정도 없고, 다른 신경 쓸 일도 없다. 사람들과 접촉 없이 지내는 조용한 명절이 좋긴 하나 마음 한편이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다. 어릴 때 설날은 아이들의 잔칫날이었다. 설날 준비로 며칠 전부터 집안은 부산했고, 섣달 그믐날 저녁은 왁자지껄한 명절의 전야제였다. 잠을 안 자려고 버텼지만 한 번도 이긴 적은 없었다. 설날에 일어나면 먼저 차례를 지냈다. 좁은 방에서 열 명 남짓이 차례상 앞에 모이면 바싹 붙어있어야 했다. 절을 하면 아버지 엉덩이가 바로 얼굴에 닿을 정도였다. 그게 우스워 킥킥거리다가 항상 주의..

길위의단상 2021.02.12

다정도 병인 양하여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드는 밤이 있다. 주로 윗집의 층간소음 탓이다. 그런데 어젯밤은 아니었다.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를 뵙고 온 날은 심란하여 잠이 안 온다. 어머니가 편찮으시거나 큰 걱정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낡게 하고 허물어버리는 잔인한 엔트로피의 법칙을 고향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요사이 같은 늦가을에는 고향을 찾을 일이 아니다. 빨리 내려와서 가을걷이를 가져가라는 어머니의 연락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흔 연세에도 온갖 농작물을 기르고 거두신다. 그리고 가을이면 수확해서 자식에게 주는 재미로 사신다. 배추, 무, 사과, 깨, 생강, 시래기, 당근, 파, 호박 등 이번에도 차 뒤의 트렁크 하나 가득하였다. 그러나 마냥 기쁘지는 않다. 고맙게 받아오고 잘 먹어주는 게 효도의 하나라고 ..

참살이의꿈 2020.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