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115

스쿨서점의 추억

어머니가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다. 마침 고향에 간 길에 어머니를 모시고 영주 시내에 있는 병원에 들렀다. 언제 봐도 지방 병원과 약국은 노인들로 만원이다.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신다. "병원과 약국은 늙은이가 먹여 살린다." 이번에도 두 시간 넘게 기다려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대기 시간을 이용해서 나는 영주 시내를 산책했다. 시내에 나가면 꼭 들러보는 곳이 있다. 스쿨서점이다. 간판에도 'Since 1954'라 적혀 있는데, 아무튼 무척 오래된 서점이다. 내가 초등과 중학교에 다닐 때 참고서는 이 서점에서 샀다. 50년도 더 된 옛날이다. 그때는 스쿨서점이 영주 시내에서 거의 유일한 서점이었고, 위치는 지금의 맞은편에 있었다. 스쿨서점에는 떠올리기 싫은 추억이 있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였을 것이다..

사진속일상 2019.12.11

2019 추석

추석에 고향 내려가는 길이 굉장히 막혔다. 평소 두 시간이면 넉넉하던 길이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이번 추석에는 첫째가 동행했다. 며칠 전에 운을 떼었더니 기꺼이 내려가겠다고 했다. 내심 고마웠다. 조카 식구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모이는 숫자가 단촐해졌다. 동생과 차례를 지내고 조상 산소를 찾아뵈었다. 엎드려 절 할 때에 조상님께 면구스럽기만 했다. 하늘에서 내려보신다면 형제, 친척간의 우애를 제일 바라실 게 아닌가. 이런 말이 있다. "효도하고 우애하지 않는 자는 있어도, 우애하는 자로서 효도하지 않는 자는 없다." 9월 13일이 추석이니 올 한가위는 무척 빠른 편이다. 들의 벼는 이제 익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계시니 명절에 고향을 찾는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교통 정체에 시달리며 찾아갈 이유..

사진속일상 2019.09.14

고향으로 돌아가자 / 이병기

고향으로 돌아가자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암 데나 정들면 못살 리 없으련마는 그래도 나의 고향이 아니 가장 그리운가 방과 곳간들이 모두 잿더미 되고 장독대마다 질그릇 조각만 남았으나 게다가 움이라도 묻고 다시 살아 봅시다 삼베 무명옷 입고 손마다 괭이 잡고 묵은 그 밭을 파고 파고 일구고 그 흙을 새로 걸구어 심고 걷고 합시다 - 고향으로 돌아가자 / 이병기 전주 가는 길에 여산휴게소에 들렀더니 '시조시인 만남의 길'이라는 화살표가 있었다. 휴게소 한 켠에 가람 이병기 선생의 작품으로 꾸며진 작은 공원이 있고, 앉아 쉴 수 있는 팔각정 주변에 선생의 시조 작품이 여럿 전시되어 있었다. 생가 안내가 있는 걸 보니 이 지역에서 선생이 나신 것 같다. 이 시조는 제일 큰 시비에 적혀 있었다. 아마 6.25 이..

시읽는기쁨 2019.07.28

어머니 생신과 고향집

어머니 여든아홉 생신으로 내려간 다음날 아침, 마을길을 산책하다. 고향 마을 시멘트 담벼락에 접시꽃이 피어 있다.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접시꽃은 다른 어떤 꽃보다 사람을 연상시키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고운 색깔과 수수한 모양새에서 그리운 사람 하나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어머니에게도 접시꽃처럼 화사한 시절이 있었음을 생각한다. 뒤를 돌아보면 자꾸 슬퍼진다.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눈물 그렁그렁 맺히니 추억은 자꾸 토막 난다. 누구나 그러하지 않겠는가. 새로 얻은 집 마당도 밭으로 변했다. 무릎 아파 고생하면서도 경작 본능은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어머니의 살아가는 힘이다. 그래도 이만하니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새로운 생활도 이제..

사진속일상 2019.06.10

고향 가는 길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다가 길 주변에 있는 몇 군데를 들러보다. 원래는 청풍호 벚꽃 구경이 우선이었지만 아직 개화하지 않고 꽃봉오리만 맺혀 있다. 서울보다다 개화 시기가 늦다. 제천 금수산 자락에 정방사(淨芳寺)가 있다. 정방사는 통일신라 초기인 문무왕 2년(662)에 의상대사의 제자 정원스님이 창건한 고찰이다. 금수산과 청풍강의 맑은[淨] 물과 바람이 꽃향기[芳]와 어우러진 절이다. 절은 큰 암벽 앞에 세워져 있다. 터가 좁으니 건물이 크거나 많을 수 없다. 그래서 정방사는 소박하고 단아하다. 정방사에서 바라보는 확 트인 풍경이 시원하다. 정면으로는 충주호와 멀리 월악산이 보인다. 절 조망으로 치면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것 같다. 절 건물 중 하나인 유운당(留雲堂)이다. 주련 내용은..

사진속일상 2019.04.05

2019 설날

내려가는 길은 심란했다. 지난가을부터 몇 차례 회오리바람이 지나갔다. 고향 가는 길이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적도 없었다. 설 차례를 지내고 올라오는 길은 다소 안심이 되었다. 동생도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했다. 일단은 일단락된 듯 보인다. 정성 들여 차린 설음식을 나는 거의 먹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속병이 다시 심하게 나타났다. 지난가을 이래로 반복되는 증상이다. 나에게는 스트레스를 직격탄으로 받는 부분이 위와 장이다. 무심한 듯 감추려 해도 위장은 너무 솔직해 탈이다. 좀 둔하면 좋으련만.... "나는 괜찮다. 잘 지낸다." 겉으로는 미소를 짓지만, 부모의 속마음을 자식이 얼마나 헤아릴까.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게 제일 큰 효가 아니겠는가. 다른 무엇보다도. 설날 아침에 증손자와 장난..

사진속일상 2019.02.06

추석 노을

저녁 노을이 고와 동구 밖에 나가다. 저녁 하늘은 지상의 어둠을 더 돋보이게 한다. 사는 게 다 그래, 라는 말로는 위안이 될 수 없는..... 고향 마을은 점점 공동화되어 간다. 사람이 적어서만이 아니다. 남은 사람이나 찾는 사람이나 황폐한 사막들끼리 만난다. 기쁨도 비탄도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다. 인간의 넋두리와는 상관없이 보름 하루 전 달이 먹구름과 서로 희롱을 하며 놀고 있다. 만 년 전, 억 년 전에도 그러했듯.

사진속일상 2018.09.26

2017 추석

동생이 귀향하고 난 뒤 첫 추석이다. 전에는 내 집이었는데, 이제는 동생네 집에 차례를 지내러 간다. 주인에서 객으로 위치가 바뀐 것이다. 어머니 걱정을 덜었으니 더없이 고마우면서, 동시에 뭔가 쓸쓸한 기분도 든다. 그러나 그것은 열에 하나 정도일 뿐이다. 이번처럼 가벼운 귀성은 없었다. 특히 명절을 지내고 돌아올 때, 어머니 홀로 남겨두고 떠날 때면 너무 울적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동생에게 감사하기 그지없다. 조카들이 와서 차례 준비를 한 덕에 시간 여유가 많았다. 아내와 동네 앞 하천의 산책로를 걷기도 했다. 너무 좋은 일만 바라지만 말자고, 일가정 일걱정이라고 우리를 달랬다. 저녁에는 동생과 바둑도 두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막내가 늦게 왔다. 어머니가 군불을 ..

사진속일상 2017.10.04

동생네 집

고향에 새로 지은 동생네 집이 완성되었다. 공사를 시작한지 한 달 반 만에 새집으로 입주했다. 워낙 솜씨가 좋아서 동생이 직접 인부들을 써서 완벽하게 지었다. 상급 자재를 쓴 내실 있는 목조주택이다. 아흔 가까이 되어 자식이 곁에 오니 어머니도 무척 기뻐하셨다. 나도 한시름을 놓았다. 대신 내집을 잃은 허전함도 있다.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이 모인 가운데 집들이를 했다. 동생에게는 고마운 마음과, 첫째의 역할을 못하는 미안함이 겹친다. 새집이 동생네와 어머니에게 좋은 안식처가 되길 빈다.

사진속일상 2017.06.04

54년

54년 전에 이 집을 지었을 때는 동네에서 유일한 기와집이었다. 전에 살았던 집이 좁아서 옆의 밭을 사서 아버지가 새집을 세웠다. 당시로서는 꽤 번듯했던 집이었다. 그러나 긴 세월을 거치면서 생활하기 불편할 정도로 낡았고, 수리도 여러 번 했지만 이젠 한계에 이르렀다. 마침 동생이 고향으로 내려오기로 하고 새로 집을 짓기로 했다. 어머니를 모시며 살겠다고 하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곧 이 집은 헐릴 예정이다. 처음에는 이 집에서 할아버지, 부모님, 네 동생과 여덟 식구가 함께 살았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도중에 제일 먼저 집을 떴다. 그 뒤로 하나둘씩 떠나면서 오랜 기간 어머니 홀로 이 집을 지키고 계셨다. 어머니 연세도 이제 아흔을 바라보시니 부양할 누군가가 필요한 참이었다. 삼형제가 모여서 어..

사진속일상 2017.04.03

상주에서

세월 앞에 버틸 장사는 없다.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고 새로운 존재가 그 뒤를 잇는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고향집을 지은지 54년이 되었다. 다른 한옥의 나무를 가져다 뼈대를 만들었으니 실제 나이는 훨씬 더 오래 되었을 것이다. 한때는 여덟 식구가 북적였지만 지금은 연로하신 어머니 홀로 지키고 계시다. 이제 이 집도 지상에서의 연을 마감하려 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상주에 사는 동생네 집에 간 날, 750살이나 되신 감나무를 찾아갔다. 나이에 많이 뻥튀기가 된 나무다. 사람은 나이 드는 걸 감추는데 나무는 나이 많은 걸 자랑한다. 자주 어머니를 뵙지만 함께 사진을 찍는 일은 거의 없다. 오랜만에 같이 감나무 앞에 섰다. 늙으면 왜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지 나도 이제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사진속일상 2017.03.23

웃는 추석

오랜만에 삼 형제가 함께 모인 추석이었다. 손주 데리고 둘째도 다녀가서 시골집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전날은 벌초한 뒤 성묘하고, 같이 차례 준비를 하는 손길이 가벼웠다.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저녁을 먹고 동생네와 넷이서 두 시간 가까이 산책을 했다. 걷는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를 제외하면 동생과 대면할 일이 거의 없다. 만약 어머니가 세상을 뜨시면 더욱 뜸해질지 모른다. 어디서 무엇으로 살든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 하나만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기력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작년 추석과 올해가 다르다. 그래도 이만큼 정정하신 게 자식으로서는 너무나 큰 복이다. 어머니에게 삶의 활력은 땅에서 나온다. 어머니를 지켜볼 때 늙어서도 본..

사진속일상 2016.09.16

낯선 모교

고향에 내려간 길에 모교에 들렀다. 헤아려보니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느덧 52년이 흘렀다. 가늠하기 힘든 까마득한 세월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로 어제 일 같기도 하다. 나이 들고 옛 자리를 찾아보는 일은 어디든 착잡하기만 하다. 옛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나무로 된 검은색 옛 교사는 진즉에 사라졌다. 운동장 귀퉁이에 서 있던 큰 느티나무도 운동장이 확장되며 오래전에 베어졌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현재와 연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교인데 너무 낯설다. 대신 학교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모던해졌다. 시설 투자가 많이 되는 것 같다. 작년에는 강당이 새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전체 학생수는 66명이다. 한 학년에 겨우 한 학급씩 유지되고 있다. 그것도 면내에 있었던 세 학교가..

사진속일상 2016.07.15

고향집 여름 화단

고향집은 언제 가도 화단의 꽃구경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식물에 관한 한 어머니는 전문가시다. 언제 무슨 작물을 심을지, 동네 젊은 아낙들은 항상 어머니에게 묻는다. 꽃도 마찬가지다. 비결이 궁금하단다. 꽃은 피고지고를 반복한다. 그럼으로써 늘 새롭다. 개체의 생멸이 온존재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다. 꽃은 지는 걸 아쉬워하지 않는다. 다른 형태로 몸을 바꿀 뿐이다. 존재의 다른 양식일 뿐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한들 서러움이 덜해질까. 늙으신 어머니가 꽃들 너머에서 자식에게 줄 곡식을 고르고 있다. 화단에 흰색 무궁화 세 그루가 새로 심어졌다. 키는 1m 남짓 되는데 매일 서너 송이씩 꽃이 핀다. 어머니는 그 꽃을 따서 뜨거운 물에 담가 우려내 마신다. 치매 예방에 좋다는 것이다. 이모 한 분이 뇌졸증으로 ..

꽃들의향기 2016.07.12

고향집에서

고향집 아침은 새소리에 잠이 깬다. 마당에 있는 나무가 자기네 놀이터인 듯 지저귄다. 참새가 많고, 딱새와 색깔이 고운 이름 모르는 새도 있다. 함께 어울리지는 않고 순서대로 찾아와 저희들끼리 논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한 경배 의식과도 같다. 그 외 닭소리, 개 짖는 소리, 멀리 산새 소리도 들린다. 도시에서 살다가 이런 아침을 맞으면 신기하고 행복하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부지런한 어머니는 텃밭에서 바쁘다. 어머니를 뵐 때마다 감사하게 된다. 비슷한 나잇대의 친척이나 이웃분에 비하면 제일 정정하시다. 지금까지 병원에 입원한 적 없고, 건강 문제로 자식들 걱정하게 한 적도 없다. 농사일로 평생을 보내시며 다섯 남매를 키우셨다. 너무 억척스럽게 일한다고 핀잔도 많이 받았는데, ..

사진속일상 2016.05.25

고향집 황매화

고향집 뒤란에는 황매화가 자란다. 봄이 되면 노란 꽃이 집의 배경이 되어 예쁘다. 30년도 더 전에 선친께서 심으신 것이다. 사랑마루에 앉아 감상하시겠다고 몇 포기를 가져와 심으셨다는 걸 어머니한테서 들었다. 그러나 선친은 몇 해 지나지 않아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제대로 꽃을 보시지도 못하고 이승을 뜨셨다. 지금은 집에 아버지의 흔적은 거의 없다. 봄마다 이어서 피는 이 황매화가 유일하다. 고향집에 들리면 아버지 대신 황매화가 반갑게 맞아준다. 아마 꽃을 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더 애틋할 것이다. 자식에게는 드러내지 못하는 그리움이 있다는 걸 어머니의 눈빛에서 읽는다. 나는 잠시 외면할 수밖에 없다.

꽃들의향기 2016.04.26

2016 설날

전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나 시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고향'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나 시를 보기 어렵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 세대가 '고향'이 주는 정감을 전처럼 느끼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유목민적 삶을 사는 현대인은 삶의 뿌리를 상실했다. 고향의 의미가 변질되었다면 명절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느끼듯 예전의 그 명절이 아니다. 마치 의무방어전을 치르듯 설날이 지나갔다. 그래도 뜸하게 만나는 형제, 친척에게 애틋한 마음이 어찌 없으랴. 그래도 우리 가족에게 올 설은 특별했다. 둘째네가 손주를 데리고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막냇동생도 내려와 14년 만에 삼 형제가 함께 모였다. 조카네까지 오랜만에 집안이 북적였다. 어머니 얼굴에도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너무 길었던 기다림이었다.

사진속일상 2016.02.09

단출한 추석

올해는 동생네가 일이 생겨 못 오는 바람에 단출한 추석이 되었다. 처음으로 아내와 둘이서 차례를 지냈다. 시끌벅적해야 명절다운 분위기가 난다지만 요사이는 그렇지도 않다. 사람이 많으면 신경 쓸 일도 많아진다. 오랜만에 만난다고 꼭 반가운 것도 아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형제들 만날 일도 더 뜸해질 것 같다. 각자의 집에서 제 자식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명절에도 이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하루 날을 정해 대이동을 하는 풍습도 앞으로는 개선될 것이다. 전통은 옛 그대로 지켜야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쉬운 것 같지만 막상 어려운 게 형제들 사이의 우애다. 그런 삐걱거림이 있는 집을 보면 동병상련을 느낀다. 어머니 얼굴을 뵐 때마다 면목이 안 선다. 어쩔 수 없이 감내해..

사진속일상 2015.09.28

고향집 나팔꽃

고향집 울타리를 따라가며 나팔꽃이 피어 있다. 돌담을 지나고, 기와 덮개를 지나고, 버려진 슬레이트를 지난다. 소년 시절의 꽃으로 기억나는 건 화단의 붉은 채송화, 그리고 가꾸지 않아도 덩굴을 뻗으며 자라던 나팔꽃이다. 지금 이 꽃은 50년 전 그 나팔꽃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나팔꽃의 꽃말이 '덧없는 사랑'이라고 한다. 아침에 피었다가 낮이면 꽃잎을 닫아버리는 모양에서 사람 사이의 사랑을 연상했는지 모른다. 삶도 다르지 않다. 결국은 '덧없음'으로 귀결되는 게 우리 인생이 아닐까. 나팔꽃에서는 힘찬 팡파르 대신 애조 서린 가락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한쪽 시력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 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 ..

꽃들의향기 2015.09.04

고향집

낡아지는 것들의 한숨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새 생명이 돋아나고 자연은 늘 여일한 모습 그대로지. 모든 것은 흘러가고 변할 뿐, 하나의 물상에 집착하는 건 어리석은 짓일지 몰라. 얼마만이야? 창문 열고 들어서는 네 모습에 깜짝 놀랐어. 갑자기 이런 선물이 나타나기도 하는구나.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순 없다 해도 애틋한 정만은 잊지 말고 살아가자. 그럼 된 거지....

사진속일상 2015.09.01

귀여운 고양이

고향집을 제 터로 잡고 주인 행세를 하는 고양이다. 지난겨울에 따스한 가마솥을 찾아온 뒤로 불쌍하다고 어머니가 먹이를 주기 시작하자 아예 제집이 되었다. 다른 고양이는 주위에 얼씬도 못 하게 한다. 내가 가까이 가도 이빨을 드러내고 경계한다. 어머니조차도 제 몸에 손을 못 대게 한다. 매일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애교 한 번 부릴 줄 모른다. 오히려 때가 되면 밥 내놓으라고 큰소리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그래도 고양이는 귀엽다. 개와는 전혀 다른 도도한 매력이 있다. 우선 비굴하게 굴지 않는 독립성이 좋다. 비록 밥을 얻어먹지만 너는 너, 나는 나다. 너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자존감이 고양이에게는 있다. 개처럼 관심을 가져 달라고, 같이 놀아달라고 집적대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이나 장소에 집착하지..

사진속일상 2015.04.09

기정 형

고향 마을에 기정 형이 살고 있다. 나보다 6살이 위다.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네 사람들 중에서는 제일 연장자다. 형은 어릴 때 집이 너무 가난하여 13살이 되어서야 겨우 국민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7살이었던 나와 같은 1학년이 된 것이다. 당시는 이런저런 이유로 적령기를 놓친 아이들이 많았다. 형과는 워낙 나이 차이가 나다 보니 같은 학년이었지만 함께 놀거나 어울리지는 않았다. 형 친구들은 5, 6학년 아이들이었다. 형의 부친은 한학을 하신 분이라 형은 이미 집에서 한글과 한문을 깨친 상태였다. 1학년 수업 내용은 들으나마나였다. 학교는 형식적으로 다녔다고 해야겠다. 공부보다는 빨리 집에 가 일하는 게 우선이었을 것이다. 학업도 워낙 앞서가니 1학년을 마치면서 담임선생님이 바로 3학년으로 진급하..

길위의단상 2015.01.10

고향집 다육이

통화를 시작하면 어머니는 "니 어데 아프나?" 라며 먼저 묻는다. 단순한 자식 걱정이라기보다 내 목소리가 그 정도로 비실비실하기 때문이다. 대신 전화기로 전해오는 어머니 목소리는 스무 살 젊은이보다 더 카랑카랑하다. 거꾸로 되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어머니, 고맙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인다. 부모가 건강한 것만큼 자식에게 더한 선물은 없다. 어머니는 농작물만 아니라 화초 가꾸기에도 달인이다. 병들어 버린 것도 어머니 손에만 오면 활짝 피어난다. 이 다육이도 다른 사람이 죽어간다고 버린 걸 이렇게 곱게 꽃으로 피워냈다. 초록 잎도 반짝반짝한다. 물 줄 때면 잎을 일일이 천으로 닦아줄 정도로 정성을 들인다. 세상에 허투루 되는 일은 없다.

꽃들의향기 2015.01.07

늦가을 고향집

김장을 하러 고향에 내려가서 닷새를 머물렀다. 가을이 저물수록 풍요의 빛은 사그라지고 저녁 어스름 기운이 마을에 스며든다. 이 계절을 좋아하긴 하지만 무대가 고향이 되는 건 싫다. 너무 쓸쓸하다. 고향 마을에도 가을 김장을 하는 집이 얼마 안 된다.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자식들도 힘들게 내려오지 않으려 한다. 몇 만 원만 주면 절인 배추를 배달해주는 세상인데 굳이 시골까지 내려가 김장을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고향에서의 김장은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했지만, 내년에 어머니가 또 배추를 심으신다면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형제가 모여 함께 김장을 하는 의식에는 김장통 몇 개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일 년 농사가 자식들 차에 바리바리 실린다. 아직은 어머니가 건강해서 고맙고, 이..

사진속일상 2014.11.25

스마트폰으로 글쓰기

김장을 하기 위해 고향집에 내려와 있다. 어제 배추를 절여놓고 오늘 네 집치 김장을 한다. 작년에 비해 양이 확 줄었다. 어제 저녁은 처음으로 어머니가 금일봉을 하사해서 맛난 한정식으로 식사를 했다. 인생이 서글프다는 말씀을 자주 해서 마음이 짠했다. 힘든 고향에서의 김장을 올해를 끝으로 그만 두려 했는데 어머니가 계시는 동안은 안 될 것 같다. 지팡이를 짚고 찾아온 이웃집 할머니는 가족이 모여 김장하는 모습을 부러워한다. 몇 년 전만해도 그 집 역시 김장철이 되면 북적북적했다. 해가 저무는 건 한순간이다. 어머니와 함께 김장을 담그는 것도 앞으로 몇 해 더 허락되어 있을지 생각해 보면 나도 서글퍼진다. 어머니에게 김장은 김장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스마트폰이 있으니 이렇게 전화기로 글쓰기도 해본다..

길위의단상 2014.11.22

고향집 봄 화단

고향 집 화단에 봄꽃이 곱게 피었다. 꽃을 가꾸는 어머니의 정성은 대단하시다. 사람마다 개성이 달라서 어머니는 동물은 별로인데 식물 기르기는 무척 좋아하신다. 시골 생활이 적적하다고 강아지를 갖다 드려도 몇 달 못 키우고 남에게 줘 버리신다. 대신 농사짓기나 화단 가꾸기는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 내가 꽃을 좋아하는 것도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장롱에 버려져 있던 9년 전에 산 카메라 니콘 D70을 가지고 이 꽃사진을 찍어 보았다. D70은 옛날 기계식 필름카메라처럼 셔터를 누르면 미러가 움직이는 소리가 '철커덕'하는 게 일품이다. 사진을 잘 찍든 못 찍든 사진 찍는 맛만은 그만이다. 앞으로 자주 사용해야겠다. 명자꽃 할미꽃 민들레 꽃잔디 튜울립과 앵초

꽃들의향기 2014.04.14

김장은 힘들어

고향에 내려가서 김장을 했다. "내려와 같이 김장을 담그자." 아직은 어머니의 파워가 막강하시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니요, 저희는 여기서 따로 담을 께요." 아마 아내의 속마음은 이랬을 것이다. 절인 배추를 신청만 하면 집까지 택배로 보내주는 편리함이 자꾸 손짓한다. 그러나 김장에 대한 어머니의 정서는 다를 것이다. 김장을 함께 한다는 것은 가족이라는 동질감을 확인하는 한 해의 마지막 행사인지도 모른다. 배추를 심지 말라고 말려도 안 된다. 내 손으로 기른 채소를 자식에게 먹인다는 뿌듯함을 넉넉히 이해할 수 있다. 연세가 많으셔도 이만큼 기력이 있으시다는 게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고향에서 하는 김장은 배추에서부터 모든 재료가 어머니가 손수 지은 것이다. 시장에서 사서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

사진속일상 2013.11.24

고향집 과꽃

고향집 화단에서는 봄, 여름, 가을, 언제나 꽃을 볼 수 있다.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가 정성 들여 가꾸는 덕분이다. 마을에서 우리 집처럼 꽃이 많은 집은 없다. 같은 계절이라도 해마다 꽃의 주종이 바뀐다. 올 추석에 눈에 띈 꽃은 과꽃이었다. 과꽃은 고향과 어울리는 꽃이다. 그만큼 향토색이 진하게 느껴진다. 또 과꽃이라고 부르는 어감에서는 왠지 모를 슬픔이 배어 나온다. 그건 아마 이 동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보면 꽃속에 누나 얼굴 떠오릅니다 시집간 지 온삼년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과꽃은 우리나라 북부 지방에서 자생하는 종이었지만 유럽으로 건너가 원예용..

꽃들의향기 2013.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