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울타리를 따라가며 나팔꽃이 피어 있다. 돌담을 지나고, 기와 덮개를 지나고, 버려진 슬레이트를 지난다. 소년 시절의 꽃으로 기억나는 건 화단의 붉은 채송화, 그리고 가꾸지 않아도 덩굴을 뻗으며 자라던 나팔꽃이다. 지금 이 꽃은 50년 전 그 나팔꽃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나팔꽃의 꽃말이 '덧없는 사랑'이라고 한다. 아침에 피었다가 낮이면 꽃잎을 닫아버리는 모양에서 사람 사이의 사랑을 연상했는지 모른다. 삶도 다르지 않다. 결국은 '덧없음'으로 귀결되는 게 우리 인생이 아닐까. 나팔꽃에서는 힘찬 팡파르 대신 애조 서린 가락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한쪽 시력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 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 나팔꽃 /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