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내려가서 김장을 했다. "내려와 같이 김장을 담그자." 아직은 어머니의 파워가 막강하시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니요, 저희는 여기서 따로 담을 께요." 아마 아내의 속마음은 이랬을 것이다. 절인 배추를 신청만 하면 집까지 택배로 보내주는 편리함이 자꾸 손짓한다.
그러나 김장에 대한 어머니의 정서는 다를 것이다. 김장을 함께 한다는 것은 가족이라는 동질감을 확인하는 한 해의 마지막 행사인지도 모른다. 배추를 심지 말라고 말려도 안 된다. 내 손으로 기른 채소를 자식에게 먹인다는 뿌듯함을 넉넉히 이해할 수 있다. 연세가 많으셔도 이만큼 기력이 있으시다는 게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고향에서 하는 김장은 배추에서부터 모든 재료가 어머니가 손수 지은 것이다. 시장에서 사서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지금은 힘들고 귀찮아도 훗날 뒤돌아보면 그래도 이때가 행복했다고 추억하리라.
이번에는 둘째 동생네 가족과 같이 네 집이 먹을 김장을 했다. 막 군에서 제대한 조카가 일을 많이 거들어 주었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와 밤새 끙끙 앓았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시집은 여전히 시집인가 보다.
지은지 50년이 넘은 고향 집은 어머니가 농사일을 접게 되면 리모델링을 해야 할 것 같다.
집 뒤에 있는 감나무의 까치밥, 그리고 모과. 올해는 모과가 풍년이 들어서 밭에는 거두지 못한 모과가 나뒹굴고 있었다. 잘 생긴 모과를 하나 골라 차 안에 넣어 두었다.
가을 햇살이 좋아 처마에 앉아 햇빛바라기를 오래 했다. 한 해가 저무는 무렵이 되면 모든 색깔이 쓸쓸하다. 늦가을에는 아무래도 고향에서 있을 일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