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120

스마트폰으로 글쓰기

김장을 하기 위해 고향집에 내려와 있다. 어제 배추를 절여놓고 오늘 네 집치 김장을 한다. 작년에 비해 양이 확 줄었다. 어제 저녁은 처음으로 어머니가 금일봉을 하사해서 맛난 한정식으로 식사를 했다. 인생이 서글프다는 말씀을 자주 해서 마음이 짠했다. 힘든 고향에서의 김장을 올해를 끝으로 그만 두려 했는데 어머니가 계시는 동안은 안 될 것 같다. 지팡이를 짚고 찾아온 이웃집 할머니는 가족이 모여 김장하는 모습을 부러워한다. 몇 년 전만해도 그 집 역시 김장철이 되면 북적북적했다. 해가 저무는 건 한순간이다. 어머니와 함께 김장을 담그는 것도 앞으로 몇 해 더 허락되어 있을지 생각해 보면 나도 서글퍼진다. 어머니에게 김장은 김장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스마트폰이 있으니 이렇게 전화기로 글쓰기도 해본다..

길위의단상 2014.11.22

고향집 봄 화단

고향 집 화단에 봄꽃이 곱게 피었다. 꽃을 가꾸는 어머니의 정성은 대단하시다. 사람마다 개성이 달라서 어머니는 동물은 별로인데 식물 기르기는 무척 좋아하신다. 시골 생활이 적적하다고 강아지를 갖다 드려도 몇 달 못 키우고 남에게 줘 버리신다. 대신 농사짓기나 화단 가꾸기는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 내가 꽃을 좋아하는 것도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장롱에 버려져 있던 9년 전에 산 카메라 니콘 D70을 가지고 이 꽃사진을 찍어 보았다. D70은 옛날 기계식 필름카메라처럼 셔터를 누르면 미러가 움직이는 소리가 '철커덕'하는 게 일품이다. 사진을 잘 찍든 못 찍든 사진 찍는 맛만은 그만이다. 앞으로 자주 사용해야겠다. 명자꽃 할미꽃 민들레 꽃잔디 튜울립과 앵초

꽃들의향기 2014.04.14

김장은 힘들어

고향에 내려가서 김장을 했다. "내려와 같이 김장을 담그자." 아직은 어머니의 파워가 막강하시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니요, 저희는 여기서 따로 담을 께요." 아마 아내의 속마음은 이랬을 것이다. 절인 배추를 신청만 하면 집까지 택배로 보내주는 편리함이 자꾸 손짓한다. 그러나 김장에 대한 어머니의 정서는 다를 것이다. 김장을 함께 한다는 것은 가족이라는 동질감을 확인하는 한 해의 마지막 행사인지도 모른다. 배추를 심지 말라고 말려도 안 된다. 내 손으로 기른 채소를 자식에게 먹인다는 뿌듯함을 넉넉히 이해할 수 있다. 연세가 많으셔도 이만큼 기력이 있으시다는 게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고향에서 하는 김장은 배추에서부터 모든 재료가 어머니가 손수 지은 것이다. 시장에서 사서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

사진속일상 2013.11.24

고향집 과꽃

고향집 화단에서는 봄, 여름, 가을, 언제나 꽃을 볼 수 있다.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가 정성 들여 가꾸는 덕분이다. 마을에서 우리 집처럼 꽃이 많은 집은 없다. 같은 계절이라도 해마다 꽃의 주종이 바뀐다. 올 추석에 눈에 띈 꽃은 과꽃이었다. 과꽃은 고향과 어울리는 꽃이다. 그만큼 향토색이 진하게 느껴진다. 또 과꽃이라고 부르는 어감에서는 왠지 모를 슬픔이 배어 나온다. 그건 아마 이 동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보면 꽃속에 누나 얼굴 떠오릅니다 시집간 지 온삼년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과꽃은 우리나라 북부 지방에서 자생하는 종이었지만 유럽으로 건너가 원예용..

꽃들의향기 2013.09.21

2013 추석

동생네가 도착하기 전 셋이서 미리 송편을 빚었다. 모양새도 사람에 따라 세 가지로 나왔다. 나는 큼직하게 양손으로 눌러 만드는 데 익숙하다. 그러면 손가락 자국이 굵게 나온다. 어머니가 시집왔을 때 손가락 자국이 나는 건 상놈이 빚는 송편이라면서 절대 누르지 못하게 배웠다 하신다. 아내는 어릴 때 익힌 전라도 식이다. 송편소로는 콩, 깨, 밤 세 가지를 썼는데 내 몫은 콩이었다. 나중에 보니 콩을 너무 많이 넣어 송편인지 콩떡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 송편을 찔 때 전에는 솔잎을 깔았는데 몇 해 전부터는 그 과정이 생략되었다. 송편이 '솔잎 떡'이라는 의미의 '송병(松餠)'에서 유래되었다는데 다음에는 번거롭더라도 뒷산에 다녀와야겠다. 아무래도 솔 향기가 배어야 제맛이 날 것 같다. 아무리 먹을 게 풍성하..

사진속일상 2013.09.20

거미

노인 혼자 사는 집에는 거미줄이 많다. 사랑마루 위에도 거미 한 마리가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매미 한 마리가 제물이 되었다. 주로 잠자리가 잘 걸렸는데 거미로서는 횡재를 한 것이다. 거미줄을 뿜으며 포획물을 꽁꽁 묶는 정성이 대단하다. 그러다가 아뿔싸, 포획물을 놓쳐 버렸다. 줄이 끊어지고 매미는 땅에 떨어졌다. 거미는 한동안 멍해 있다. 왜 그런 실수를, 지금은 뼈아픈(?) 자책을 하는지 모른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인내의 기다림이 시작된다. 저 자세로 꼼짝을 하지 않는다. 몇 시간이 지난 뒤 쳐다봐도 여전하다. 끝까지 기다린다. 미세한 떨림의 순간을....

사진속일상 2013.08.20

태양초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굳이 태양초만을 고집하신다. 요즈음은 대부분 건조기를 사용해서 힘들게 햇볕으로 고추를 말리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집에는 고추 건조기를 다 갖추고 있다. 뙤약볕 아래서 고추를 따는 일도 고되지만, 고추를 말리는 것도 보통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8월 한 달 내내 고추를 따고 말리는 과정이 반복된다. 올해의 불볕더위가 고추 말리는 데는 아주 제격이다. 비라도 며칠 내리면 고추는 불을 땐 방으로 모셔야 한다. 그러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고생도 그만큼 더 늘어난다. 고추를 말리는 데는 어머니만의 노하우가 있다. 바깥에서 말린 고추는 비닐하우스로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온다. 그 타이밍은 감으로 판단하는데도 거의 완벽하다. 건조되어 바삭거리는 고추를 보면 작품이라 아니 할 ..

사진속일상 2013.08.15

봄날의 기념사진

서울 선유도공원에서 옛 동료와.... 안동 하회마을에서 어머니와.... 들로 산으로 씩씩하게 다니신다는 어머니가 평지길에서는 힘들어 하신다. 어디 놀러가자고 했을 때 자꾸 사양하신 이유를 알 것 같다. 당신의 약한 모습을 자식에게 숨기고 싶으셨을 게다. 노약해가는 부모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고향 밭에서, 일은 하지 않고 폼만 쟀을 뿐....

사진속일상 2013.05.04

마늘 놓고 양파 심고

농사 9단인 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일을 거들었다. 마늘 놓고, 양파 심고, 배추 뽑아 절이고, 시래기 만들고, 땔감 나르고...., 그러나 일보다는 왔다갔다하는 시간이 많았다. 고향에 갈 때는 친구도 만나고, 소백산 자락길도 걸으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아랫목에 누우니 만사가 귀찮아졌다. 며칠 동안 잘 빈둥거렸다. 어머니의 부지런에 비하면 나는 한없는 게으름뱅이다.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야야, 날 보고 일 그만하라고 하지 마라. 하고 싶어도 못 할 때가 곧 온다." 평생을 논밭에서 사신 분이시다. 농사일은 어머니의 업보면서 낙이다. 지금은 밭 몇 뙈기만 부치시지만 이젠 그것도 힘에 겨워하시는 게 역력하다. 어머니의 힘겨운 노동에서 나오는 작물은 전부 자식들 입으로 들..

사진속일상 2012.11.10

2012 추석

1년 사이에 많이 변했다. 자식 둘은 출가를 했고, 조카며느리가 새로 들어왔다. 내 자식은 남의 집에 보내고, 그 반대로 새애기를 맞이하여 추석을 지냈다. 음식을 장만하면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동생네한테는 경사스런 일이 연이어 생겼다. 후손들이 두루두루 잘 되는 걸 지켜보는 건 기쁜 일이다. 집안 운세가 이 가을 하늘처럼 맑게 펴졌으면 한다. 그래서 짙게 드리운 먹구름도 차차 걷혀 나갔으면 좋겠다. 추석 전날, 차례 준비를 마치고 산소를 찾아 조상님께 미리 인사 드렸다. 황금색 가을 들녘이 넉넉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농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것이 답답하고 서글프다. 마을에는 대문이 굳게 잠긴 집들이 많다. 옆집 친구 모친도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빈 집이 되고 매물로 나왔다. 아직은 ..

사진속일상 2012.10.01

고추 심기

고향에 내려가 고추 심는 어머니 일을 거들었다. 어머니가 미리 골을 내어 비닐을 씌어놓았기에 고추를 심고 지주를 세우는 일만 하면 되었다. 올해는 고추모 800포기를 심었는데 해마다 양이 조금씩 줄어든다. 어머니가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점점 약해지는 탓이다. 한창 많았을 때는 2,000포기 가까이 키웠다. 어머니가 농작물을 가꾸는 정성은 자식을 기르는 이상이다. 마을의 이웃들도 감탄할 정도다. 홀로 되셔서 삶의 낙을 농사일에 붙이셨다. 작물 가꾸는 게 자식 키우는 것과 똑같다고 말씀하신다. 힘이 들어도 얘들이 자라는 걸 보면 보람이 있고 재미있다신다. 또 정성이 그만큼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놀아도 밭에 나와 놀아야 한다며 하루도 밭 출입을 거르는 일이 없다. 어머니가 고추모를 만지는 모습을 ..

사진속일상 2012.05.08

산소 풀 뽑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날씨다. 4월에 때아닌 눈이 내리더니 태풍급의 강풍이 며칠째 불고 있다. 비닐하우스 농가의 피해가 크고, 서울에서는 전철이 멎기도 했다. 고향에 오가는 길에서도 눈을 만났고, 달리는 차가 기우뚱거려 조심해야 했다. 한식(寒食)에는 산소에 난 풀 제거 작업을 했다. 잔디 사이에 돋은 풀을 하나하나 캐내느라 어머니와 둘이서 했는데도온종일이 걸렸다. 망초, 쇠뜨기, 꽃다지가 유난히 많았다. 밭에다 산소를 쓴 탓에 잡초 씨앗이 많이 날아든다. 그래도 초봄에한 번 작업을 해주면이후에는 산소 돌보는 게 훨씬 수월하다. 그것도 일이라고 오후에는 무척 힘이 들었다.아파트에서 편히 지내던 몸이 이게 웬 고생이냐고 했다. 겉으로 표시도 못하고 많이 부끄러웠다.머리 따로 몸 따로..

사진속일상 2012.04.07

2012 설날

아이들이 떠난 올 설은 단촐했다. 어머니를 포함해 넷이서 차례를 지냈다. 설 전날 오전에 일찌감치 차례 준비를 마치고 오후에는 햇빛바라기를 하며 마당에서 강아지와 놀았다. 떡국을 먹다가 아내는 눈물바람을 했다. 귀하게 키워서 남의 집에 주었다고 어머니도 한 소리 거들었다. 공주 대접 받고 있을 텐데 뭘 그러느냐, 했지만 내 마음도 한 쪽이 슬펐다. 광주에 돌아오니 딸과 사위가 세배를 왔다. 고향에서는 자식이 되었다가, 내 집에서는 부모가 된다. 통영에 다녀온 둘째는 싱싱한 해산물을 사 가지고 왔다. 스티로폼 박스에 담긴 대구가 엄청 컸다. 자식들은 떠나갔고 다시 둘이 남았다. 집은 잠시 적막에 잠긴다. 쓸쓸한 듯, 흐뭇한 듯, 집안에 묘한 기운이 감돈다. 이 또한 삶이 노년에 주는 새로운 맛이고 선물이 ..

사진속일상 2012.01.24

고향에서 김장을 하다

고향에 내려가서 김장을 했다. 제사를 지내듯 매년 벌어지는 연례행사다. 함께 김장을 하며 한가족이라는 동질감을 확인하지만 힘들고 번거롭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는 이제 각자 알아서 하자는 쪽으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올해는 동생들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와 이모가 김장할 준비는 모두 갖춰 놓았다. 여든 내외의 두 분이 배추 100포기를 일주일에 걸쳐 준비하셨다. 이게 사람 사는 재미라지만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김장 행사는 올해로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힘들면서 돈도 더 든다. 요사이는 주문만 하면 절인 배추가 배달되는 편리한 세상이라고 아내는 강조한다. 이것 역시 변화하는 세상의 추세다. 약을 가져가지 못한 아내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 펑크가 날 정도로 한 차 가득 가을 짐이 실렸다...

사진속일상 2011.11.22

고향집 설악초

여름이면 고향집은 설악초로 환해진다. 이웃은 '하얀꽃집'이라고 부른다. 마을에 있는 설악초는 모두 우리 집에서 분양되어 간 것이다. 어머니는이 꽃을 야광초라고 한다. 밤에는 유난히 빛이 나듯 희게 보이니 야광초도 좋은 이름이다. '설악'은 영어 이름인 'Snow on the mountain'을 의역한 것으로 보인다. 설악초는 미국이 원산지로 설악산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꽃잎처럼 보이는것은 잎이다. 잎이 꽃잎처럼 변한 것은 벌과 나비를 많이 끌어모으기 위한 설악초의 위장 전술이다. 그래선지 설악초에는 곤충이 많이 모여든다. 설악초의 꽃잎은 아주 작다. 꽃잎은 넉 장인데 핀 모양이 재미있다. 이가 빠진 듯 한 쪽을 비워두고 비대칭으로 피어 있다. 언뜻 보면 다섯 장에서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 같다. 고향 ..

꽃들의향기 2011.09.17

비에 젖은 추석

비가 많은 해다. 고향에 내려가 있은 추석 연휴 동안에도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시골집에 내리는 빗소리는 요란하다. 야성의 소리다. 첫날 밤은 사나운 낙수 소리에 여러 차례 잠을 깼다. 백 년도 못되는 짧은 인생이지만 누구나 삶의 신산을 맛봐야 한다.큰 병만고통이 아니다. 손톱 밑의 가시가 도리어 당사자에겐 견디기 힘든 아픔이 될 수가 있다. 연민의 눈으로본다면 이해 못 할 일도, 사람도 없다. 이 세상에 나서 아름다운 일은 그대를 믿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송편 빚어 가마솥에서 찌는 풍경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과 동네는 썰렁하다.외지에 사는 자식들 휭 하니 왔다가 휭 하니 사라진다. 따스한 정을 나누기보다는 서로 스트레스 받고 상처를 주고받는 게 현실의 가족 관계가 아닌가...

사진속일상 2011.09.13

고향에 다녀오다

짬을 내어 고향에 가서 이틀 밤을 자고 왔다. 퇴직하면 고향에 자주 내려가서 어머니 농사를 거들어주겠다고 사람들에게큰소리쳤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핑계가 많다. 여름 고향집은 어수선하다. 볕에 까맣게 끄을린 어머니 모습 보기가 안타깝다. 일 하시는 근력도 작년만 못하시다. 해마다 기력이 쇠하시는 걸 확인하는 자식의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고 함께 모시고 지내지도 못한다. 돌아오는 길은체한 듯 가슴이 답답했다. 올해는 비가 많아 고추 수확이 늦고 양도 예년만 못하단다. 고향집에 간 날 어머니는 처음으로 붉은 고추 두 포대를 따오셨다. 늦은 오후에는 집 앞 텃밭에 가을 채소를 심을 고랑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작은 노동에도 힘겨워하셨다. 밤에는 휘영청한 보름달빛에 취해 자다가 모기에게 온몸으로 보시를..

사진속일상 2011.08.15

착한 시 / 정일근

우리나라 어린 물고기들의 이름 배우다 무릎을 치고 만다. 가오리 새끼는 간자미,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청어 새끼는 굴뚝청어, 농어 새끼는 껄떼기, 조기 새끼는 꽝다리, 명태 새끼는 노가리, 방어 새끼는 마래미, 누치 새끼는 모롱이, 숭어 새끼는 모쟁이, 잉어 새끼는 발강이, 괴도라치 새끼는 설치, 작은 붕어 새끼는 쌀붕어, 전어 새끼는 전어사리, 열목어 새끼는 팽팽이, 갈치 새끼는 풀치..., 그 작고 어린 새끼들이 시인의 이름보다 더 빛나는 시인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 어린 시인들이 시냇물이면 시냇물을 바다면 바다를 원고지 삼아 태어나면서부터 꼼지락 꼼지락 시를 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생명들이 다 시다. 참 착한 시다. - 착한 詩 / 정일근 어린 시절 고향 마을 앞 시내는 물도 맑았고 고기들..

시읽는기쁨 2011.08.11

고향에서 지낸 일주일

5/9 사랑방에 누워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다. 코 고는 소리에 놀랐는지, 불안했던 꿈자리 때문이었는지, 언뜻 잠을 깨니 낙숫물 소리가 감미롭다. 내려올 때 잔뜩 흐렸던 날씨가 그새 비를 뿌린다. 며칠 전 K 형과 축령산에 갔을 때 쉬던 장소는 항상 졸졸졸 계곡물 소리가 들리던 곳이었다. 자연의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발걸음을 끌리게 한다. 고향집에서 듣는 빗소리도 마찬가지다. 빗소리는 강약에 따라 갖가지 운율로 속삭인다. 잠시 비가 잦아들면 마당의 나뭇가지로 날아온 새들의 지저귐이 더해져 아름다운 협주곡을 연주한다. 같은 소리건만 도시의 아파트에서 강제로 듣게 되는 소음과는 딴판이다. 뭉쳤던 마음의 응어리가 눈 녹듯 풀린다. 어버이날 선물로 TV를 바꿔 드리다. 5/10 고향집 개는 너무 순하다...

사진속일상 2011.05.17

신묘년 설날

세상 살면서 그 무엇보다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다. 인생이 곧 고해요 번뇌라지만 그래도 단 하나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게 있다면 마음의 평화다. 설날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내내 든 생각이었다. 계획대로라면 둘째는 이번 설이 함께 하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고향이나 명절이 예전 같지 않음은 고향이 변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변한 것인가. 고향에 대한 낭만적 환상은 늘 나를 아프게 한다. 망향이 진할수록 허전함과 상실감도 크다. 그곳을 찾아가지만 그곳에 고향은 없다. 고향을 잃은 나그네는 쓸쓸하고 외롭다. 모든 것이 변해간다. 명절도 마찬가지다. 농촌이더라도 이웃과 함께 하는 명절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온 가족이 다 모여 화기애애 오순도순한 명절도 아니다. 어느 집은 여전히 홀로이고, 어느 집은 차례..

사진속일상 2011.02.04

고향집 강아지

고향집에 동생이 엄마의 노리개라면서 강아지를 데려왔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동생집 앞에 버려진 새끼 강아지를 가져온 것이다. 하얀 색깔의 순하게 생긴 강아지였다. 그동안 고향집에서는 고양이를 길렀다. 8년 전에 역시 동생이 새끼 고양이를 데려다 놓았다. 이름이 '엔쥬‘였는데 어릴 때부터 사람과 함께 지내선지 사람을 무척 따랐다. 고향에 내려가면 야옹, 하면서 다가와 제 몸을 비벼댔다. 장난을 치다가 손이 할퀴기도 했다. 두꺼운 장갑을 끼고서 고양이를 약 올리며 노는 게 재미있었다. 좀 짓궂게 장난치면 금방 앙칼진 반응을 보였다. 엔쥬는 발정 때를 제외하고는 늘 집 주변에 있었다. 어머니가 부르면 어디선가 금방 나타났다. 어머니가 밭에 가면 밭에까지 따라다녔다. 그렇게 한 식구처럼 지내던 엔쥬가 2년 전에..

사진속일상 2011.01.18

고향집에서 김장을 하다

고향집에 내려가 김장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내려가니 어머니와 동생들이 김장 버무릴 준비를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네 집이 합쳐 150 포기 정도를 담갔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힘들었다. 조카가 와서 내 할 일을 다 해 주었는데도 그랬다. 마음이 편치 못해 사실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귀찮다고 마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에는그래도 함께 모인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괜찮았으나 나이가 들수록 점점 성가셔진다. 더구나 요사이는 마음이 한창 심란한 때다. 바로 전날은 골치 아픈 통보도 받았던 터였다. 동생들은 대단하다. 일 하는 것이나 어머니를 챙기는 것에서 나는 동생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니 소외감이 느껴지는 것은 순전히 나의 자업자득이다. 동생들 입장에서는 ..

사진속일상 2010.11.21

메밀꽃

올해는 어머니가 메밀을 심으셨다. 산 비탈 남의 밭을 얻은 것이다. 있는 밭만 해도 일에 치여서 마음이 짠 한데 남의 밭이라니, 그런데 어머니는 노는 밭을 그냥 내버려두는 게 불편하셨나 보다. 그러나 자식 마음도 편치 않다. 이젠 적당히 일하고 당신의 삶을 찾으면 좋으련만, 오냐 오냐, 하면서도 몸은 언제나 논밭에 가 계신다. 하얀 메밀밭을 바라보는 심정이 답답했다.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이라면 저 메밀꽃에서 가을의 서정을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어머니의 땀과 노동이 먼저 떠오르기에 메밀꽃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다르게 느끼게 된다. 내가 감탄하는 그것에 다른 사람은 아플 수도 있음을 메밀밭 앞에서 배운다. 추석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문..

꽃들의향기 2010.09.27

비틀거리는 추석

추석 귀성 전에 몸살이 찾아왔다. 재채기가 이상 신호였다. 이럴 때는 푹 쉬는 게 상책이다. 남자에게도 명절증후군이 있는지 만사가 귀찮아지고, 그래서 더 힘겨운 고향길이 되었다. 작년에는 더 했다. 아내는 아파 집에 남고 두 딸을 데리고 내려갔다.허리가 아플 때였다. 그 몸으로 동생이 집수리하는 걸 도와주는 흉내를 내다 몇 달간 심하게 고생했다. 어쩌다보니 추석때마다 비실거리는 꼴을 보이게 되었다. 이번에는 방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 동생과도 얘기를 별로 나누지 못했다. 몸 핑계를 댔지만 마음이 아픈 탓이었는지 모른다. 고향에 가면 잊었던 상처가 덧난다. 추석날은 계속 비가 부슬거렸다. 전날 산소에 다녀온 게 다행이었다. 군대에서 제대한 조카도 3년 만에 내려왔다. 몸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장한 ..

사진속일상 2010.09.23

고향에서 일주일을 머물다

휴가가 시작되면서 바로 고향에 내려가서 일주일을 있다가 왔다. 마침 대구 이모도 오셔서 함께 지냈다. 덕분에 밭에 나가는 일은 줄어들었다. 하루는 소백산에 올랐고, 하루는 산에 계신 외할머니를 찾아뵌 것 외에는집에서 두문불출했다. 이웃 동네에 계신 고모 생신에 어머니를 모시고 잠깐 찾아가기도 했다. 책은 두 권 읽었으나 더워서 글을 쓰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여름은 겨울만 못하다. 부엌 앞 마당에 채송화가 피었다. 시멘트 바닥에 생긴 작은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게 신기하다. 마을 앞 개울을 따라 농로 겸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졌다. 그 길을 따라 걷다가 햇살이뜨거워 1시간만에 포기했다. 하얀 바닥의 반사광이 너무 강했다. 아직도 건강하게 일하시는 모습이 고맙기는 하지만 너무 무리하시지는 않는지 걱정..

사진속일상 2010.07.24

고향에 다녀오다

친지의 결혼식에 참석할 일이 있던 차에 다음 주 어버이날을 겸해서 고향에 다녀왔다. 험상궂던 날씨가 5 월 들면서 화창하고 따스한 봄날을 회복했다. 마을 앞 철길을 따라 이제야 복사꽃이 환했다. 어머니 계신 방의 윗목 소반 위에 물파스와 근육통이라 쓰인 약에 자꾸 눈길이 머문다. 많이 아프시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마당 한 켠텃밭에서는 마늘이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화단의 명자나무꽃은 봄 추위를 견디지 못해 듬성듬성 피었다. 집 뒤에도 손바닥만한 텃밭이 있다. 바로 뒤가 솔숲이니 이쯤에다 집을 지으면 앞뒤 전망이 훨씬 나아질 것 같다. 집 뒤의 대나무는 역시 추위 탓이었는지 누렇게 말라버렸다. 산 아래밭에 나가 두릎도 따고 농로도 고쳤다. 어머니는 고추 농사, 콩 농사 지을 준비 이미 다 마치셨다. ..

사진속일상 2010.05.02

고추장 항아리

고향집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고향에 내려가서 50년이 넘은 고추장 항아리 얘기를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었다. 장독대에는 그 외에도 수 대째 내려온 100년이 넘은 큰 독도 있었다. 사소해 보이는 항아리들이지만 애환이 깃든 사연을 알고 나니 그냥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알고 나면 별 볼 일 없거나 하찮은 물건이란 없는 법이다. 어머니는 열여섯에 시집 오셨다. 시집은 제대로 된 솥이나 그릇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이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면사무소에 나가시게 되면서 형편이 조금씩 나아졌지만 전에는 끼니를 때우지 못할 정도로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 어느 때는 식량이 떨어져서 온 식구가 물만 먹으며 사흘을 누워있기만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견디다 못해 아버지가 친척집으로 양식을..

길위의단상 2010.01.18

고향에서 보낸 행복한 날들

아흐레 동안 고향에서 지냈다. 왜 그런지 고향집에만 가면 두문불출, 꼼짝하기가 싫다. 내려와서 연락하지도 않는다며 마땅찮게 보는 친구도 있지만 내 체질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번에는 어머니와 이모를 모시고 대구에도 다녀오고, 하루는 인근 지역으로 나무를 보러 나가기도 했다. 그 외의 나머지 날들은 말 그대로의 은둔생활을 했다. 더구나 겨울이니 사랑방 안에서만 숨어있었던 셈이다. 고향에는 어머니 홀로 계시니 군불을 때는 사랑방이 유일한 생활공간인 것이다. 거실이나 다른 방은 냉기를 면할 정도로만 기름보일러가 돌아간다. 하루 생활은 무척 단조롭다. 아궁이에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이불을 펴고 눕는다. 일찍 이불을 펴두어야 방이 덜 식기 때문이다. 라디오를 켜놓고 누워서 어머니..

사진속일상 2010.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