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사랑방에 누워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다. 코 고는 소리에 놀랐는지, 불안했던 꿈자리 때문이었는지, 언뜻 잠을 깨니 낙숫물 소리가 감미롭다. 내려올 때 잔뜩 흐렸던 날씨가 그새 비를 뿌린다. 며칠 전 K 형과 축령산에 갔을 때 쉬던 장소는 항상 졸졸졸 계곡물 소리가 들리던 곳이었다. 자연의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발걸음을 끌리게 한다. 고향집에서 듣는 빗소리도 마찬가지다. 빗소리는 강약에 따라 갖가지 운율로 속삭인다. 잠시 비가 잦아들면 마당의 나뭇가지로 날아온 새들의 지저귐이 더해져 아름다운 협주곡을 연주한다. 같은 소리건만 도시의 아파트에서 강제로 듣게 되는 소음과는 딴판이다. 뭉쳤던 마음의 응어리가 눈 녹듯 풀린다. 어버이날 선물로 TV를 바꿔 드리다.
5/10
고향집 개는 너무 순하다.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와도 짖을 줄을 모른다. 사람만 보면 아무나 반갑다고 겅
중겅중 뛴다. 도가니탕을 먹고 남은 뼈를 개에게 주었다. 일부러 살점도 많이 붙여 놓았다.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면서 혀로 핥기만 하더니 땅에 묻어 버린다. 그리고는 불안한지 파내서는 또 다른 곳에 묻는다. 그동안에 고기는 온통 흙투성이가 되었다. 먹지도 못하고 이곳저곳 감추기만 한다. 얼마 전에 매제가 와서 뼈를 줬더니 역시 땅에 묻고는 나중에 찾지도 못하더라고 했다. 어리석은 것이 어찌 이 녀석뿐이겠는가.
비가 잠시 그친 틈에 어머니와 시내에 나가 모자라는 고추와 토마토 모종을 사다.
5/11
고추 심는 일을 도와주러 왔다가 장마 같은 비를 만났다. 사흘째 방에서 빈둥거리다. 덕분에 책 두 권을 읽다. 오후에는 읍내에 나가 목욕을 하고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다. 피끝마을과 죽계천을 지나다.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금성대군의 거사가 발각되고 순흥에는 피바람이 분다. 이때 죽임을 당하고 죽계천에 버려진 수많은 순흥 안씨들의 피가 천을 따라 수 십리를 흘러내려가 멈춘 마을이 바로 피끝마을이다. 죽계천은 500여 년 전의 비극을 간직한 채 유유히 흐르고 있다.
5/12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안동으로 나무 여행을 떠나다. 먼저 녹전면 느티나무를 보고 도산서원에 들러 퇴계의 흔적을 밟아보다. 그리고 예인향교 은행나무, 와룡면 뚝향나무, 봉정사 소나무와 반송을 만나다. 봉정사 뒷산인 천등산 산길을 걷다.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산안개가 가득해 정상에 오르지는 못하고 되돌아오다.
저녁에는 고향 친구들과 만나다. 사과 농사를 하고 있는 친구들은 건강하고 생명력이 넘쳤다. 도시물이 들지 않은 순박한 모습이 반가웠다.
5/13
오전에는 주독으로 누워 있다가 오후에야 밭에 나가다. 산소 주위 나무를 전지하고 벌초를 일부 하다. 오랜만의 일이라 쉽게 지치다.
아침에 회관 앞 논에서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이웃 동네에 살던 J 씨였다. 조용하던 시골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밤에 J 씨와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엇 때문에 우리 마을로 왔는지 추측만 난무했다. 그런데 동네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가게의 CCTV가 단서를 제공했다. J 씨를 태워준 택시를 찾은 것이다. 기사는 잔뜩 술에 취한 손님을 사고 현장 부근에 내려주었다고 했다. J 씨는 술에 취해 엉뚱한 동네에서 내렸고 한밤중이라 길이 설어 한 길 정도 되는 논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동네 가운데서 아무도 모른 채 한 사람이 죽어갔다. “쯧쯧, 술이 웬수야 웬수.” 부모 형제도 없이 혼자 살았던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려줄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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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밭 일과 산소의 벌초를 하다. 매제와 조카가 내려와 손을 보태주어서 하루에 다 끝낼 수 있었다. 저녁이 되니 온몸이 뻐근하다. 몸이 살아나는 느낌이고 기분 좋은 피곤함이다. 어머니 일을 조금이나마 도와준 것이 더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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