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착한 시 / 정일근

샌. 2011. 8. 11. 12:04

우리나라 어린 물고기들의 이름 배우다 무릎을 치고 만다. 가오리 새끼는 간자미,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청어 새끼는 굴뚝청어, 농어 새끼는 껄떼기, 조기 새끼는 꽝다리, 명태 새끼는 노가리, 방어 새끼는 마래미, 누치 새끼는 모롱이, 숭어 새끼는 모쟁이, 잉어 새끼는 발강이, 괴도라치 새끼는 설치, 작은 붕어 새끼는 쌀붕어, 전어 새끼는 전어사리, 열목어 새끼는 팽팽이, 갈치 새끼는 풀치..., 그 작고 어린 새끼들이 시인의 이름보다 더 빛나는 시인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 어린 시인들이 시냇물이면 시냇물을 바다면 바다를 원고지 삼아 태어나면서부터 꼼지락 꼼지락 시를 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생명들이 다 시다. 참 착한 시다.

          - 착한 詩 / 정일근

어린 시절 고향 마을 앞 시내는 물도 맑았고 고기들도 많았다. 당연히 고기 잡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맨손으로 잡거나, 반도라는 그물로 잡고, 망치로 돌을 때려 잡는 것은 우리들이 하던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어른들은 여럿이 몰려와 약을 뿌렸다. 그러면 손바닥만 한 고기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고 떠올랐다. 아이들은 아래쪽에서 기다리다가 가끔씩 떠내려오는 고기를 건졌다. 어떤 사람은 전기 배터리를 등에 지고 와서 고기를 잡았다. 바위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고기들이 감전되어 떠올랐다. 자주 못 보던 고기들이 많았다. 드물게는 폭약도 터뜨렸다. 큰 폭발음이 나고 물줄기가 솟아오르면 폭음에놀란 물고기들이 하얗게 배를 드러내고 죽었다. 그때는 참 무지막지하게 고기를 잡았다.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아버지를 따라 고기를 잡은 경험이다. 아버지는 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가셨다. 막대기 끝에 솜을 뭉쳐 철사로 감고 석유통에적셨다 꺼내면 횃불이 되었다. 캄캄한 밤, 사위는 조용한데 강변에서 횃불을 들고 비쳐주면 아버지는조심스레 물에 들어가잠자는 물고기를 건져냈다. 물고기도 밤이면 잠을 자고 꼼짝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러나 수확은 별로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된다. 그래도 가끔씩 강가로 밤 나들이를 하신 걸 보면 고기잡이보다는 재미가 아니었나 싶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그렇게 고기를 잡아도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강은 생명으로 가득해졌다. 신기했다. 어디서 고기가 막 생겨나는 것 같았다. 맑은 물이 흐르고, 깨끗한 모래사장이 있고, 물고기가 많이 살던그 강도 이젠 죽었다. 고기도 살지 않고 고기 잡는 사람도 없다. 여름이면 발가벗고 놀던 놀이터였는데 이젠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 다리 밑 그늘에 더위를 피해 온 어른들만 가끔 보일 뿐이다.

예쁜 이름들도 이젠 거의 잊었다.꾸구리, 모래무지, 텅거리...., 그 많던 물고기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제발 인간의 눈에 띄지 않기를, 인적이 끊어진 곳에 꼭꼭 숨어라. 나중에 언젠가 세월이 좋아지거든 맑은 하천을 다시 너희들의 원고지 삼아 놀거라. 그때는 몰랐다. 곁을 떠나간 지금에 와서야 너희들이 귀한 시인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