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어떤 관료 / 김남주

샌. 2011. 8. 26. 10:23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 어떤 관료 / 김남주

 

근면, 정직, 성실, 공정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학교 교훈에 이런 낱말이 들어있지 않은 경우는 드물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주입 받는 보편적 가치들이다. 시에 등장하는 어떤 관료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직장에서는 능력 있고, 가정에서는 다정한 가장이었을 것이다. 착한 사람이라고 칭찬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유하지 않는, 아니 못하는 인간이었다. 성찰하고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개와 같다고 시인은 조롱한다. 개밥을 주는 자가 누구든 성실하게 충성하고 복종한다. 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친구와 얘기를 나누었다. 벽을 느꼈다.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보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깊이 사유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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