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117

코마

로빈 쿡의 의학 스릴러 소설이다. 읽다 보니 기시감이 드는 내용인데 오래전에 출판된 책이라 예전에 접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책이 아니라면 영화를 봤을 수도 있다. 어쨌든 흥미롭게 읽었다. 뇌 기능이 정지돤 혼수상태를 '코마(coma)'라고 한다. 총명한 의대생인 수잔 윌러가 보스턴 메모리얼 병원에 연수를 갔다가 코마에 빠진 환자를 보면서 의문을 품게 된다. 자신과 동갑인 젊은 처녀가 자궁 이상 출혈로 소파 수술을 받다가 갑자기 코마 상태에 빠졌고, 한 청년이 무릎 이상으로 수술을 받다가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병원 자료를 살펴보던 수잔은 이런 사례가 수십 명에 이르는 것을 발견한다. 는 병원측의 거대한 음모를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마지막에는 수잔 자신도 코마의 대상이 되어 수술대..

읽고본느낌 2024.03.10

죽음을 결정할 권리

며칠 전에 MBC 'PD 수첩'에서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불치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소개하며 인간에게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방송되었다.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면 죽음을 결정할 권리도 달라는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들이 예상외로 많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프로그램에서는 척수염과 어지럼증을 앓는 두 분이 나온다. 그중 한 분은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에 의한 뇌염과 척수염으로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마약성 진통제가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환상통에 시달린다. 생을 마감하려고 스위스 조력사망 센터를 알아봤으나 포기했다고 한다. 스위스에 가자면 다..

참살이의꿈 2024.03.09

임께서 부르시면 / 신석정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 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아란 하늘에 백로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임께서 부르시면 / 신석정 한낮에 내리는 눈을 본다. 살포시 내리는 작은 눈송이는 땅에 닿자마자 녹으면서 흔적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것은 아니다. 고체에서 액체로 상태만 변했을 뿐이다. 사람의 죽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물끄러미 바라본다. 젊었을 때 이 시를 만났다면 '임'은 그리..

시읽는기쁨 2024.03.02

그곳에 빛이 있었다

부제가 '과학자의 눈으로 본 죽음 너머의 세계'지만 '천주교인'의 눈으로 본 사후세계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지은이인 파트릭 델리에가 의사이긴 하지만 가톨릭의 기적 검증국에서 상주 의사로 일하는 독실한 신자이기 때문에 철저히 신앙의 관점에서 쓴 책이기 때문이다. 는 아내의 책상 위에 있던 책으로 호기심에 잠깐 훔쳐봤다. 사후세계의 존재 여부와 임사체험은 UFO와 함께 늘 관심을 끄는 주제다. 1980년대였던 것 같은데 무디 박사가 쓴 를 읽었을 때의 놀라움이 아직 생생하다. 이 책은 임사체험에 대한 세인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불러일으켰다. 그 뒤로 임사체험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까지는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해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사례를 중심으로 임..

읽고본느낌 2024.02.26

작은 즐거움으로 슬픔을 덮고

이근후 선생의 5년 전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기사 제목에 나온 '작은 즐거움으로 슬픔을 덮고'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선생은 1935년생이니 지금은 90세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선생은 건강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 쓰고 인터뷰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계시다 우리는 모두 외롭고 가련한 존재들이다. 인생은 고달프고 행복은 신기루다. 쉽게 사는 사람은 없다. 겉모습은 화려할지라도 속내는 누구나 쓰라리다. 다만 일상의 작은 즐거움으로 슬픔을 덮으며 살아갈 뿐이다. 원한이나 분노, 불안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작은 재미로 덮어둔 채 살아간다. 그러므로 슬픔을 잊고 가능한 한 재미있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선생의 신조다. 평생을 인간의 아픔과 마주한 정신과 의사로서 당연한 귀결일..

참살이의꿈 2024.02.21

어머니를 돌보다

정상뇌압수두증(正常腦壓水頭症)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관찰한 기록이다. '1994년 말, 어머니가 병을 얻었다'로 책은 시작한다. 뇌에 생긴 이상으로 인지장애가 생긴 어머니는 11년 동안 세 딸과 간병인들에 의지하며 자신의 뉴욕 아파트에서 지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지은이인 린 틸먼(Lynne Tillman)은 미국의 소설가로 병든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혼돈스러운 심경을 아프게 고백한다. 원제는 다. 지은이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케어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가족과의 마찰, 의사와 간병인과의 갈등, 불안, 낙담, 우울감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여타 간병 기록이 어두운 면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에 비중을 두지만, 지은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고..

읽고본느낌 2023.12.21

어머니에게 다녀오다

어머니 표정이 어두웠다.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방에 들어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틀 전에 꾼 꿈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나타나서 어머니가 오기를 기다리더라는 것이었다. 꿈에서는 이심전심으로 느껴지니까. "나 금방 갈 께요" 하니 외할머니는 아무 대꾸 없이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곧 죽을 것 같다."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하셨다. "그건 아직 갈 때가 안 됐다는 뜻이에요. 외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서 오라고 해야 데려가는 거지요. 외면하며 뒤돌아서 갔잖아요." 내 말에 어머니는 미심쩍어하면서도 다소 안도하셨다. "빨리 죽어야지" 하면서도 막상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망설이며 주춤한다. 생(生)에의 본능이 그만큼 질긴 것이리라. 나는 안다. 지금 같은 어머니 건강 상태라..

사진속일상 2023.12.07

영정사진과 장수사진

4년 동안 여권 없이 지내다가 이번에 다시 신청했다. 겨울에 손주와 앙코르와트에 갈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아내도 여권을 새로 만들어야 했기에 같이 사진관에 들렀다. 처음에는 집에서 사진을 찍어 인터넷으로 신청해 봤으나 두 번이나 반려를 당했다. 내 실력으로는 여권 사진 기준에 맞추기가 어려워서 헛심만 쓰다가 포기했다. 사진을 찍은 뒤 젊은 사장이 컴퓨터 앞에서 클릭 몇 번을 하니 금방 깔끔한 사진이 나왔다. 옛날에는 필름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친 뒤 사진을 찾자면 며칠이 걸렸다. 사진을 다루는 데는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다. 디지털 처리를 하는 지금은 모든 것을 프로그램이 처리해 준다. 5분 만에 보정까지 마친 따끈따끈한 사진을 받아볼 수 있다. 좋은(?) 세상이 되었다. 사진에 만족한 아내는 뜬금없이..

길위의단상 2023.11.25

H 선배를 추모함

"가장 선한 상인보다는 가장 악한 공무원이 더 선하고, 가장 선한 공무원보다는 가장 악한 교사가 더 선하다." 사범대학에 입학해서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 어느 교수가 한 말이다. 당시에 너무 의아하게 들린 발언이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비유가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사실이지도 않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여러 동료 교사들을 만났다. 교사 집단이라고 해서 더 선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교사들이 다른 직업의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목표와 이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여느 집단과 마찬가지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람도 있다. 내가 만난 동료 교사들을 돌아볼 때 서너 명의 존..

길위의단상 2023.11.15

벚나무 잎이 천천히 떨어지며 남기고 간 사소한 것들 / 김산

앞마당의 벚나무 잎이 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진다 큰 빗자루를 들고 떨어진 잎들을 쓸기 시작하면 바스락거리며 오그라든 당신의 지문이 조각조각 바서진다 바람과 빛과 물이 일제히 분열하며 공중으로 흩어진다 검지까지 쭉 뻗은 감정선과 손목으로 가다 끊긴 생명선 그래, 생각이 많으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말은 틀림없다 빗자루가 쓸리면서 빗자루가 아플 것이라는 생각에 빗자루질을 멈추고 떨어지는 잎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겨우겨우 붙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벚나무 잎을 보면서 어디서 불어왔는지 찬바람이 오른뺨을 할퀴고 간다 뺨으로 누구를 때렸다거나 해코지를 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 기껏해야 뺨은 누군가의 뺨을 비비거나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잠시 온기를 나누는 게 다일 뿐, 다시 빗자루를 잡고 떨어진 벚나무 잎들을 쓸..

시읽는기쁨 2023.09.20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선생이 신문에 발표한 칼럼을 모은 책이다. 신문 칼럼이 다루는 다양한 소재의 글감을 일상, 학교, 사회, 영화, 대화의 5부로 나누어 실었다. 선생의 세상을 보는 시니컬하면서 유머러스한 글맛을 느낄 수 있다. 5년 전 이맘때 경향신문에 실렸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은 세간의 화제를 끌었던 모양이다. 선생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추석에 만나는 친척들에게도 원용해보라고 충고한다.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한다.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

읽고본느낌 2023.09.16

고독사에 대한 보고서 / 공광규

시골 재당숙이 혼자 살다 돌아가셨다 집안 역사교과서 한 권이 동네 이야기책과 지적도 한 책이 신명꾼 하나가 사라졌다 혈관부에 피가 돌던 굽은 나무 한 그루가 평생 동네를 떠나본 적 없는 말뚝 하나가 뽑혔다 매일 아침 열리던 대문이 며칠째 닫혀 있자 독거노인 둘이 방문을 열었다고 한다 산비탈에 황토 구덩이를 파놓고 대전으로 부검 받으러 떠난 시체를 기다리는 노인들 혼자 살다 죽으면 칼로 배가 갈려 한 번 더 죽어야 한다며 노을이 번질 때까지 투정하는 인부들 땅을 향해 몸이 자꾸 꼬부라지는 노인들이 겨우겨우 무덤 가까이에 친 천막에 올라와 고인이 나이롱 뽕을 좋아하고 '갈대의 순정'이 십팔번이었다고 회고했다 동네에 들어와 사는 타지 출신 중늙은이 몇과 시골노인들이 보는 앞에서 관을 들고 비탈에 올라 청태산 ..

시읽는기쁨 2023.08.09

고단(孤單) / 윤병무

아내가 제 손 잡고 잠든 날이었습니다 고단했던가 봅니다 곧바로 아내의 손에서 힘이 풀렸습니다 훗날에는 함부로 사는 제가 아내보다 먼저 세상의 손을 놓겠지만 힘 풀리는 손 느끼고 나니 그야말로 별세(別世)라는 게 이렇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날 오면 아내의 손 받치고 있던 그날 밤의 저처럼 아내도 잠시 제 손 받치고 있다가 제 체온에 겨울 오기 전에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아내 따라 잠든 제 코 고는 소리 못 듣듯 세상에 남은 식구들이 조금만 고단하면 좋겠습니다 - 고단(孤單) / 윤병무 존재의 쓸쓸함을 자주 느낀다. 한밤중에 잠이 깨서 사위는 적막한데 사근거리는 내 숨소리를 듣고 있을 때라든가, 밖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돌아오는 어두운 길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라든가 문득문득 사는 일이 ..

시읽는기쁨 2023.06.30

짧은 죽음 / 유자효

영화 '쿼바디스'에서 보았다 고대 로마 원형 경기장 사자 무리에 맞서 공포에 떠는 기독교도들에게 나이 든 여성이 달래는 말 "두려워 마요. 금방 끝날 거예요" 이때의 죽음은 자비 빨리 끝내주는 것이 은혜가 되는, 절망적인 병과 마주 섰을 때 고통과 공포에 떠는 환자에게 이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를 가장 사랑하는 이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마주 서야 할 시간에 연약한 영혼을 달래주는 것은 최후의 은총 짧은 죽음 - 짧은 죽음 / 유자효 품위 있는 죽음이라거나 웰 다잉 같은 말을 이제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 노화와 죽음이 어떻게 한 인간을 허물어뜨리는지 알기 때문이다. 멀쩡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치매가 찾아와서 기억이 통째로 사라지고 인간관계가 불가능해진다. 존경받던 선배 한 분은 이태째 정신줄을..

시읽는기쁨 2023.05.21

숨결이 바람 될 때

부제가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다. 이 책을 쓴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는 1977년 뉴욕에서 태어나서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다. 문학과 철학에 관심을 보인 그는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자 예일 의과대학원에 입학해 신경외과 의사의 길을 걸었다. 의사로서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던 중 암이 찾아왔다. 투병 중에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는 등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치열하게 살다가 2015년에 사망했다. 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쓴 책이다.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의 진솔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짧지만 뜨겁게 살다 간 아름다운 영혼을 만날 수 있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

읽고본느낌 2023.05.14

조만간 죽는다

"조만간 죽는다." 생략된 주어는 당연히 '나는'이다.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간도 짧은 지상의 삶을 누리다가 반드시 죽는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은 외면하려 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애써 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죽음에 대한 의식은 불안을 동반한다. 살아 있는 인간은 죽음이라는 완전 소멸을 감당하기 힘들다. 공자마저 죽음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며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철학은 다른 말로 하면 죽음을 직시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불안과 부조리가 죽음이라는 숙명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아는 것이 병이다. 죽음을 예견하지 못..

참살이의꿈 2023.05.08

아버지의 팔자 / 김나영

'아들아, 나는 가만히 앉아서 먹고 자고 테레비나 보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팔자가 상팔자다'던 아버지 그 좋은 팔자도 지긋지긋했던 모양이네 온 식구들 불러 모아 놓고 사돈에 육촌 아재까지 불러놓고 그것도 부족해서 내 친구들까지 죄다 불러놓고 큰 홀 빌려서 사흘 밤낮 잔치를 베푸시네 배포 큰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새 옷도 한 벌씩 척척 사주고 아버지도 백만 원이 넘는 비싼 옷으로 쫘-악 빼 입으시고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리무진까지 타시고 온 식구들 대절버스에 줄줄이 태우고 수원 찍고 이천으로 꽃구경까지 시켜 주시네 간도 크셔라 우리 아버지 이천만 원이 넘는 돈을 삼 일 만에 펑펑 다 써 버리고 우리들 볼 낯이 없었던지 돌아오시질 않네 잔치는 끝났는데... 아마도 우리 아버지 팔자 다시 고쳤나 보네 -..

시읽는기쁨 2023.03.27

산 대로 죽는다

"엄마의 죽음의 과정은 삶의 과정과 직결되어 있었다. 즉 엄마가 평생 살아온 과정과 방식이 죽어가는 과정과 방식을 결정했다.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평생 늘 해오신 말들을 했고 늘 해오신 걱정들을 했으며 늘상 눈을 주곤 했던 대상들에 눈을 주셨다. 엄마 평생의 사랑의 방식은 죽어가는 과정에도 관철되었다. 나는 이 점을 감동적으로 지켜봤다." 박희병 선생이 어머니의 마지막 1년을 옆에서 간병하며 지켜본 끝에 내린 결론이다. 의 에필로그에 적혀 있다. 선생의 어머니는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장애를 앓다가 돌아가셨다. 한 인간이 살아온 삶의 방식과 태도가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생로병사는 생명체의 숙명이다. 그중에서도 인간은 자신이 죽을 존재임을 살아 있을 때부터 인식한다. 다른 동물은 현재만 살뿐 ..

참살이의꿈 2023.01.12

엄마의 마지막 말들

지은이의 어머니는 아흔 즈음에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저하증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전전하며 생의 끝을 보내셨다. 이 책은 아들이 엄마의 마지막 1년을 지켜보며 쓴 간병 기록이다. 엄마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다.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인 박희병 선생이다. 이 책을 통해 죽어가는 시간도 귀하고 값진 인생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선생은 어머니만 아니라 여러 병실에서 만난 환자들을 통해서 지켜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가족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 그리고 적절한 의료체계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선생의 어머니는 행복하신 분인 것 같다. 아들은 직장을 휴직하면서 어머니를 지켰다. 이라는 책 제목이 말하듯 ..

읽고본느낌 2023.01.06

만약은 없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이라는 부제 그대로 병원 응급실에서 일어난 사건과 사연들을 날것 그대로 기록한 책이다. 긴박한 죽음을 마주하는 응급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매순간 선택에 직면한다. 만약 다른 처치를 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라는 의문과 후회는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는 일회성인 인간의 삶과 죽음을 대변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응급의학과를 전공한 남궁인 선생이 썼다. 책에 실린 38개의 이야기는 인간의 고통과 실존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수많은 죽음을 직접 접하면서도 지은이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죽음에 대해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것이 타인의 문제이건 혹은 자신의 문제이건 간에 아무도 ..

읽고본느낌 2022.11.28

나의 장례식 / 임채성

눈물은 보이지 마라 내 앞에선 누구라도 슬픔을 꾸미려는 곡소리도 내지 마라 비로소 삶의 완성판 무아無我에 들었으니 추모를 꼭 하려거든 헤비메탈을 울려 다오 회심곡 장송곡이 빈소에 들지 못하도록 이승의 마지막 축제 걸판지게 놀아보자 빛깔부터 마뜩찮은 수의는 입지 않을래 리바이스 청바지에 빨간색 폴로셔츠면 물놀이, 꽃놀이 가듯 발걸음도 가볍겠다 다비 후 뼛가루는 먼바다에 뿌려 다오 내게 먹힌 광어 숭어 그 넋 다시 돌려 놓듯 그들의 살과 피가 돼 태평양을 누벼보게 - 나의 장례식 / 임채성 초등 동기인 S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왔다. 다행히 위험한 고비는 넘겼고 예후를 살핀 후 수술 여부를 결정한단다. 이제 우리는 노(老), 병(病), 사(死)의 단계에 진입했으며 그 과정을 거쳐 가야 한다. 시기의 ..

시읽는기쁨 2022.11.22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인 로버트 판타노는 삼십대 중반에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단편적인 사색을 일기 형식의 에세이로 기록했다. 이 문서는 그가 죽고난 뒤 그의 노트북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원제는 '모든 것들의 끝에서 남긴 메모(Notes from the End of Everything)'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쓴 글이라 책은 전체적으로 우울하면서 세상에 대한 비관이 담겨 있다. 그는 존재의 불안, 인생의 혼란과 부조리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한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두 가지 필연적인 경험을 대동하는데 바로 삶과 죽음이다. 실로 이 두 가지는 살벌하고 무시무시하다. 그러면서 세상의 끝에서 어떤 가치와 ..

읽고본느낌 2022.11.15

인섬니악 시티

책 내용이나 지은이인 빌 헤이스(Bill Hayes)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 없이 읽었다. 그러다가 엉뚱한 데서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눈치를 못 채고 그나마 책의 뒷부분에 가서였다. '십육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아기처럼 자는 남자하고 살았다.' 책의 초반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러니 지은이를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 남자를 남편이 아닌 '파트너'라고 지칭하는 게 약간 이상하긴 했으나 서양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책의 부제가 '뉴욕, 올리버 색스 그리고 나'다. 파트너였던 스티브가 죽고 뉴욕으로 주거를 옮긴 지은이는 올리버 색스를 만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는 - '불면의 도시'라는 뜻으로 뉴욕을 가리킨다 - 흥미로운 뉴욕 생활과 올리버 색스와의 일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읽고본느낌 2022.10.27

솔로몬의 계절 / 이영균

가을, 황금 들녘, 천고마비 풍요의 계절입니다. 아닙니다. 추풍낙엽, 스산한 산천 슬픔의 계절입니다. 그래요. 희로애락, 풍요와 빈곤 이율배반의 계절입니다. 미묘한 생각의 차이가 삶의 무게를 달리합니다. - 솔로몬의 계절 / 이영균 어제 친구와 통화하면서 옛 동료의 투병 소식이 화제에 올랐다. 누구보다 총명했던 분인데 지금은 인지 능력이 떨어져 친지도 알아보지 못하고 횡설수설하신다는 전언이다. 세월 앞에서 누구나 스러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러면서 친구가 말했다. 통계에 의하면 80세까지 생존 확률이 30%라는 것이다. 지금 얼굴을 맞대는 친구들의 70%가 저 세상으로 간다는 뜻이다. 그때가 10년도 안 남았다. 물론 내가 포함될 확률도 70%다. 100세 시대라고 떠들면서 오래오래 살 것 같..

시읽는기쁨 2022.10.25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임사 체험 후 깨닫게 된 인생에 대한 통찰을 담은 책이다. 지은이인 아니타 무르자니(Anita Moorjani)는 인도 여성으로 어린 시절부터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살면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접하며 성장했다. 결혼한 후에 임파선암이 발견되어 4년간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던 중 마지막에 신체의 기능이 멈추었고 임사 체험 상태에 들어갔다. 30시간 동안의 임사 체험은 삶에 대한 시각을 바꾸었고 병도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 는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사람이 또 다른 감각에 눈을 떠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지각한다는 임사 체험은 많이 알려져 있으며 대체로 비슷한 패턴을 띄고 있다. 아니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죽은 자신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평안과 행복에 잠..

읽고본느낌 2022.10.06

스님이 선택한 죽음

며칠 전 연관(然觀) 스님의 영결식이 열렸다는 기사가 나왔다. 연관 스님은 불교계의 큰 어른이셨고, 특히 한문에 조예가 깊으셨다. 스님은 독거 수행승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1년에 8개월 정도는 선 수행을 하신 분이시다. 또한 도법, 수경 스님과 지구 환경과 생명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 참여하셨다. 스님이 화제가 된 것은 돌아가신 방식 때문이다. 돌아가실 때가 되었음을 인지하신 뒤에는 항암치료 대신 곡기를 끊고 물도 마시지 않으면서 마지막을 맞으셨다고 한다. 마지막 일주일 전쯤부터 곡기를 끊고 물과 차만 마시다가, 마지막 사흘간은 아예 물도 끊으셨다. 여느 사람들이 마지막에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과 달리 스님은 평생 수행을 해 온 분답게 입적 하루 전까지도 의식이 또렷했고, 찾아온 사람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고..

참살이의꿈 2022.06.21

임사선(臨死船) / 다니카와 슌타로

모르는 사이에 저승행 연락선을 타고 있었다 제법 붐비고 있다 늙은이가 많지만 젊은 사람도 있다 놀랍게도 아기의 모습도 드문드문 보인다 혼자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겁에 질린 것처럼 서로 붙어 있는 남녀도 있다 저승에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이대로 이 배 위에서 흔들리고 있기만 하면 된다면 너무 편하다 하고 생각했으나 왠지 허전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지 잘 모른다 죽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이란 원래 그런 것이었는지 문득 위를 올려다봤더니 여기에도 하늘이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한 초가을의 늦은 오후의 빛이다 바랜 청색을 아련한 주황색이 베일처럼 덮어 있다 깰 것 같으면서도 깨지 않는 꿈 같다 배는 낮고 고풍스러운 기관음을 내고 달린다 저승이 아직 멀었나 옆에서 노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시읽는기쁨 2022.03.24

아, 시원하다!

엔도 슈사쿠의 글에서 본 대목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90세가 넘은 할머니가 있었다. 정신도 좋고 정정한 분이었는데 하루는 며느리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갔다고 한다. 할머니는 먼저 옷을 벗고 욕탕 속으로 들어가더니 탈의실에 있는 며느리를 향해 말했다. "아, 시원하다!" 잠시 후에 며느리가 욕탕 속으로 들어가니 시어머니는 욕조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걱정이 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런 데서 주무시면 안 돼요." 그러나 할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미 숨을 거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할머니가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 이렇게 행복한 죽음도 있을 수 있구나,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이 "아, 시원하다!"로 너무나 행복하고 평온하게 세상을 뜨신 것이다. 글자 ..

참살이의꿈 2022.02.17

에브리맨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한 줄이다. 작가가 인간의 늙음과 병,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병과 죽음을 자연의 순리라 여기는 동양의 사고방식과 다르다. 그것은 배척되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현대 의료가 병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과 비슷하다. 은 미국 작가인 필립 로스(Philip Roth)가 쓴 장편소설이다. 에브리맨(Everyman)은 '모든 사람', 또는 '보통 사람'이란 뜻이다. 소설 주인공은 이름 대신 '그'라는 호칭으로 쓰인다. '그'는 너와 나,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다. 소설의 구성은 단순하다. '그'라는 한 인간이 늙고 병들어서 죽는 이야기다. 중간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삽입되지만 그것 또한 병이나 죽음과 연관..

읽고본느낌 2021.12.26

죽음을 배우는 시간

부제가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이다. 지은이는 한림대학교 류마티스내과 교수로 근무하는 김현아 선생이다. 의료 현장에서 여러 죽음을 본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 있을 때 죽음을 배우고 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병원의 '죽음 비지니스'에 속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사실 죽음은 개인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나만은 병과 죽음에서 예외인 듯 행동한다. 지은이의 말대로 사람들이 새 자동차를 구입할 때보다도 죽음에 대한 준비는 소홀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화와 죽음을 병원의 일로 만들고, 그 시간에 노동을 하고 재화를 축적하거나 소비 생활로 삶을 즐기도록 선동한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노화와 죽음은 개인을 ..

읽고본느낌 2021.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