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118

어느 정치인의 죽음

그저께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노 의원은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 중 한 분이었다. 노동자와 서민 편에 섰던 분을 잃게 되어 안타깝고 비통한 심정이다. 그분을 자살로까지 내몬 정황이 그렇게 심각했는지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라는 의문이 자꾸 든다. 고인은 드루킹으로부터 4천만 원을 불법으로 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한다. 액수가 많지도 않다.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이런 일은 정치판에서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러나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고인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수모였는지 모른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정의당과 진보 정치에 대한 염려가 담겨 있다. 아마 본..

길위의단상 2018.07.25

팽나무가 쓰러지셨다 / 이재무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 지켜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러운 곡哭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케키 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들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 팽나무가 쓰러지셨다 / 이재무 장마가 시작된 어제였다. 수원 영통의 500년 느티나무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불과 한 달 전에 이 나무를 찾아갔었다. 우람하고 멋진 모습에 반했는데 무슨 변고..

시읽는기쁨 2018.06.27

어떻게 죽을 것인가

데이비드 구들이라는 104세 된 호주의 과학자가 안락사를 선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구들 박사는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로 가서 스스로 주사액이 들어가는 밸브를 열었다. 불치병이 없으면서 단지 고령이라는 이유로 안락사가 허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구들 박사는 90세에도 테니스를 할 정도로 건강했다고 한다. 그러나 100세를 넘으면서 기력이 떨어졌고 눕거나 앉아 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런 식으로 삶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고 판단했다. 구들 박사는 '추하게 늙는 것(Aging Disgracefully)'을 피하고자 안락사를 선택했다. 마지막 순간에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졌다. 그가 선택한 곡이었다. 구들 박사는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 나를..

참살이의꿈 2018.05.14

로마인의 묘비명

고고학자들은 로마 시대의 공동묘지를 발굴하고 묘비를 찾아낸다. 돌에 새겨진 묘비명은 2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다른 것에 비해 잘 보존될 수 있다. 무덤의 비문을 통해 옛 로마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더듬어볼 수 있다. 라는 책에 나오는 로마인의 비문을 옮겨 본다. 나, 레미소 여기에 묻히다. 단지 죽음만이 나를 일로부터 떼어놓았다. 거기 지나가는 당신, 이리로 오게. 잠시 쉬었다 가게.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보니, 싫은가? 어쨌든 당신은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네. 18세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부친을 사랑했고, 모든 친구들을 사랑했네. 농담하고, 즐기고, 당신도 그렇게 하기를. 여기 이곳은 너무도 엄숙하다네. 이 글을 읽는 당신, 건강하게 살게. 그리고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참살이의꿈 2018.01.04

잘 지는 법

이기고 지는 것은 기자지상사(棋者之常事)다. 이기면 좋지만 늘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번 이기면 한 번 진다. 바둑을 두면서 요사이 깨달은 점은 질 때 잘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는 것보다 어떻게 지느냐가 중요하다. 패한 바둑에서 배우는 게 더 많다. 바둑이 수세로 몰리면 마음이 흔들린다. "졌습니다" 하고 깔끔하게 돌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도 별 위로가 안 된다. 이럴 때 감정을 추스르고 냉정하게 패배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졌을 때의 태도에서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난다. 지더라도 상큼하게 지자고 다짐하며 바둑판 앞에 앉는다. 자꾸 연습하다 보면 습관이 되기도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기고 지는 데서도 벗어나고 싶다. 이겨도 좋고 져도 좋다. 잘 지는 훈..

참살이의꿈 2017.12.09

몇 평생 다시 살으라네 / 이오덕

밤낮 침대에 누워 있자니 등뼈가 아파서 견딜 수 없다. 그래도 낮에는 정우가 안아서 잠시라도 앉아 있지만 밤에는 누워서 꼼짝 못 한다. 수건을 등뼈 양쪽 깔아 달라 해서 겨우 견디는데 이번에는 발뒤꿈치조차 아프다. 그래도 꼼짝 못 한다. 이건 아주 관 속에 들어가 있는 산 송장이다. 정말 밤마다 나는 관 속에 들어가 생매장되어 있다가 아침이면 살아난다. 죽었다가 살아나고 또 죽었다가 살아나고 고것 참 재미있구나. 하루가 새 세상 새 한평생 앞으로 내가 몇 평생 살는지 고것 참 오래 살게 되었네. - 몇 평생 다시 살으라네 / 이오덕 2003년 8월 20일에 쓴 선생의 마지막 시다. 그로부터 닷새 뒤인 8월 20일 새벽에 선생은 숨을 거두었다. 8월 14일에 암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선생은 검사도..

시읽는기쁨 2017.10.09

끼니 / 고영민

1 병실에 누운 채 곡기를 끊으신 아버지가 그날 아침엔 밥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너무 반가워 나는 뛰어가 미음을 가져갔다 아버지는 아주 작은 소리로 그냥 밥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아주 천천히 오래오래 아버지는 밥을 드셨다 그리고 다음날 돌아가셨다 2 우리는 원래와 달리 난폭해진다 때로는 치사해진다 하찮고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가진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한겨울, 서울역 지하도를 지나다가 한 노숙자가 자고 있던 동료를 흔들어 깨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먹어둬! 이게 마지막일지 모르잖아 - 끼니 / 고영민 얼마 전 모임에서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보았다는 이가 여럿 있었다. 정신력이 강하면서 존경을 받던 분이..

시읽는기쁨 2017.09.30

나이듦과 죽음에 대하여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노년과 죽음 부분을 발췌한 선집이다. 몽테뉴 수상록은 대학생 때 문고판으로 읽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지금 기억에 남는 내용은 거의 없다. 그런데 수상록은 젊을 때보다는 흰머리 희끗희끗해질 때 읽어야 제맛이 나는 건 사실이다. 몽테뉴(1533~1592)는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선택된 교육을 받고 고등법관이 되었다. 그러나 공직에 대한 부담과 환멸로 37세의 나이에 사임하고 몽테뉴 성에 은둔하며 생의 후반은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조용히 살면서 정신을 성숙하게 하고,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해서였다. 몽테뉴가 살았던 시기는 종교 전쟁이 한창인 때였고, 개인적으로도 주변에서 죽음을 많이 접했다. 그런 점이 몽테뉴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게 한..

읽고본느낌 2017.01.04

죽어가는 자의 고독

죽음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건 병과 고통이다. 죽음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다. 생명은 반드시 소멸한다. 누구도 예외가 없으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죽음 전에 찾아오는 고통과 상실감이 죽음을 두렵게 한다. 정신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깨끗하고 품위 있게 가고 싶다. 은 고통보다는 고독의 측면에서 죽음을 바라본다. 사실 고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죽어가는 자에게는 육체의 고통과 함께 정신적 고독도 상당히 심각하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하고 부담만 주고 있다고 느낀다면 참으로 외로울 것이다. 현대에 들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수명의 증가, 격리 시설, 개인주의 등이 전 시대와 달리 고..

읽고본느낌 2016.11.23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명료한 의식으로 죽음과 대면하고 싶은 게 내 바람이다. 죽기 직전까지 건강한 심신이 유지되면 더할 나위 없지만, 몸은 병들어도 정신만은 분별력을 지녔으면 좋겠다. 그래서 죽음이 찾아오는 과정을 냉철하게 관찰하고 싶다. 이 책을 쓴 영국 작가인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가 바로 그러했다. 1949년생인 히친스는 식도암에 걸려 2011년에 세상을 떴다. 1년 반 정도 첨단 의료의 도움을 받으며 치료를 받았지만 인간의 운명은 어찌 할 수 없었다. 그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는 죽음을 맞이하는 한 무신론자의 자기 고백이다. 원 제목은 다. 죽을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읽힌다. 히친스는 병에 걸려서도 뛰어난 문장력과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 ..

읽고본느낌 2016.10.28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한 소설가 이상운 씨의 간병 기록이다. 80대 후반의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고열로 시작해 섬망 증세를 보이며 병원 신세를 지는 환자가 되었다. 서울에 있던 아들은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포항 고향집으로 내려온다. 돌아가시기까지 3년 반 동안 병든 아버지와 동행하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고통의 현장과 함께 한다. 요양원 대신 집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수년을 지킨 행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병원이나 요양원을 싫어한 것도 한 원인이겠지만, 가족을 서울에 남겨 두고 혼자 고향에서 아버지를 모신 것만으로도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지은이는 그 과정에서 삶과 노화와 질병과 죽음,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많은 배움과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한다..

읽고본느낌 2016.10.02

가장 존엄한 파티

'한겨레21'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실렸다. 존엄사를 택한 한 여성의 이야기다.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화가인 베치 데이비스(41)는 3년 전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루게릭병은 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이 차례로 파괴되면서 근육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결국은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병이다. 환자의 50% 가량이 3~4년 안에 세상을 떠난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택했다. 지인들을 초대한 이별 파티를 준비한 것이다. 마침 캘리포니아 의회는 작년에 미국에서 5번째로 의료안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의 핵심은 '삶을 끝내는 선택' 조항이다. 18세 이상의 성인으로, 치명적인 병에 걸려, 남은 삶이 6개월 미만이며, 온전..

참살이의꿈 2016.09.12

자유죽음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한들 실제 죽을 때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과 같다. 옛날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개선행진을 할 때 노예에게 이렇게 외치게 시켰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어찌할 수 없는 병에 걸려 고통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연사보다는 태반이 이런저런 병으로 인하여 세상을 뜬다. 옆에서도 힘든데 당사자는 오죽하랴 싶다. 그럴 때마다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죽느냐가 정말 심각한 문제다. 몇 해 전에 본 인도 영화 '청원'이 생각난다. 전신마비가 되어 마지못해 살아가는 전직 마술사인 주인공은 안락사를 시켜 달라고 법원에..

참살이의꿈 2016.05.30

부제가 '죽음을 통해서 더 환한 삶에 이르는 이야기'다. 능행 스님이 썼다. 스님은 불교계 최초로 호스피스 전문병원을 설립하고 20년 넘게 죽음과 함께 하는 생활을 했다. 이 책은 스님이 직접 죽음의 현장에서 부딪치고 성찰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죽음을 말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죽지만 죽음을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먼 미래에 닥칠 일이라고 여긴다. 불길하다고 느껴서인지 죽음을 입에 올리기를 꺼린다. '4'가 '죽을 사' 자와 발음이 같다고 기피하는 것만 봐도 안다. 그러나 준비 안 된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당황하게 되고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자기 죽음에 대해 직시하며 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수많은 죽음을 곁에서 목격한 스님은 말한다. 잘 살면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

읽고본느낌 2016.05.08

크로닉

인간이 감내해야 할 생로병사의 굴레를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중년 남자인 데이비드는 말기 환자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돌보미다. 환자와 가족 이상으로 일체가 되어 고통을 함께한다. 환자를 자기 아내나 형으로 지칭할 정도다. 데이비드 같은 호스피스와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영화에는 설명이 안 나오지만 데이비드가 돌보미의 삶을 사는 데는 아픈 과거가 있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가정은 붕괴되었다. 스스로 아들을 안락사시킨 것으로 보인다. 타인의 죽음에 동행자가 되려는 봉사는 그런 죄책감에서 나오지 않았나 추측된다. 데이비드는 세 번째 환자에게도 안락사 시술을 한다. 그것이 결국 영화의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과 연결된다. 병들고 죽는 건 인간의 숙명이다. 많은 사람이 죽음에 ..

읽고본느낌 2016.05.02

좌탈 / 김사인

때가 되자 그는 가만히 곡기를 끊었다. 물만 조금씩 마시며 속을 비웠다. 깊은 묵상에 들었다. 불필요한 살들이 내리자 눈빛과 피부가 투명해졌다. 하루 한 번 인적 드문 시간을 골라 천천히 집 주변을 걸었다. 가끔 한 자리에 오래 서 있기도 했다. 먼 데를 보는 듯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저녁별 기우는 초저녁 날을 골라 고요히 몸을 벗었다 신음 한 번 없이 갔다. 벗어둔 몸이 이미 정갈했으므로 아무것도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개의 몸으로 그는 세상을 다녀갔다. - 좌탈(坐脫) / 김사인 이렇게 저세상으로 갈 수는 없을까? 동물의 죽음에서 성자의 모습을 본다. 인간계에서는 생사를 깨친 선승만이 좌탈입망(坐脫立亡) 할 수 있다고 한다. 요사이는 웰빙보다 웰다잉(well-d..

시읽는기쁨 2016.04.10

통영

꽃이 피면 지는 게 자연의 원리지만, 다음 해에는 다시 화사한 모습으로 찾아올지 알지만, 오늘의 낙화는 언제나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 역시 한 송이 꽃, 언젠가는 땅으로 돌아갈 날을 맞아야 할 것이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기에 천 년을 살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고 있을 뿐이다. 통영에서 1박을 한 아침, 숙소 화단에 떨어진 동백이 붉었다. 벚꽃이 거리와 산하를 환하게 덮은, 그렇지만 꽃구경할 엄두가 나지 않은 봄날이었다.

사진속일상 2016.04.07

죽는 게 뭐라고

죽음을 앞두고 어쩌면 이처럼 담담할 수 있을까.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초연한 삶의 자세가 경이롭다. "나는 처음에 암에 걸렸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암 선고를 받고도 태연자약했다. 암은 좋은 병이라며, 자신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의 목숨이 우주보다도 귀하다는 데 의문을 제기했다. 는 일본 작가인 사노 요코(佐野洋子) 씨가 암과 동행하며 쓴 에세이집이다. 지은이는 유방암이 온몸으로 전이되어 2010년, 72세에 세상을 떠났다. 책의 원제목은 다. 삶을 열정적으로 살았기에 죽음도 미련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모른다. 사랑을 모조리 쏟아부었다면 오히려 생과 사에 초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산 사람만이 잘 죽을 권리를 가진다. 목숨에 집착하는 걸 생명의 본성이라고 단정..

읽고본느낌 2016.02.02

논어[178]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람 하나도 섬길 수 없으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나!" "죽음은 어떤가요?" "삶도 모르면서 죽음을 어떻게 안담!" 季路問 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 先進 7 공자는 관념적인 철학자가 아니다. 땅에 기반을 둔 현실적인 실천가다. 나를 완성해나가며 어떻게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드느냐가 공자의 과제였다. 귀신이나 죽음 같은 미지의 질문은 관심 밖이었다. 귀신을 섬기려면 사람을 잘 섬기면 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사람도 못 섬기면서 귀신을 언급하는 게 공자의 눈에는 가당찮아 보였을지 모른다. 이는 이웃 사랑이 하느님 사랑이라는 예수님 말씀과도 일치한다. 또한, 죽음과 삶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죽음이 어떤가를 묻기 ..

삶의나침반 2016.01.20

부음 / 함기석

첫눈이다 생선장수 트럭이 지나간 복대놀이터 골목 유모차에 내리는 흰 사과 꽃이다 아기가 살짝 맨발로 디디면 사과 향, 차고 흰 웃음이 간질간질 발가락을 타고 얼굴로 올라와 팔랑팔랑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첫눈이다 먼 훗날, 죽음이 빈 배를 나의 집 마당으로 밀고 올 때 노을 속에서 들려올 물새소리 오늘밤 그 소리 뒤뜰에 차곡차곡 쌓인다 - 부음 / 함기석 첫눈을 죽음의 소식과 연관시킨 시인의 발상이 기발하다. 첫눈과 아기와 나비로 연상되던 이미지가 홀연히 죽음으로 치환된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하고 의아해하다가 첫눈에 대한 환호나 부음에 놀라는 마음이 서로 멀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과연 '죽음이 빈 배를 나의 집 마당으로 밀고 올 때' 첫눈처럼 맞이할 수 있을까? 아득해진다. 가까운 분의 부음이..

시읽는기쁨 2015.12.13

논어[151]

선생님이 광 지방에서 불의의 재난을 당하여 말하기를 "문왕은 돌아가셨지만 문화는 여기 있지 않느냐? 하늘이 이 문화를 없애자 들면 뒷사람인들 어찌할 수 없지만 하늘이 아직 이 문화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면 광 사람인들 나를 어떻게 할까보냐?" 子畏於匡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 子罕 5 공자가 광 땅에서 어려움을 겪은 이야기는 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생사의 갈림길에 처했을 때 보여준 공자의 태도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이런 자부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공자는 나이 50이 되면서 지천명(知天命)할 수 있다 했는데, 천명에 대한 신뢰가 앎만이 아니라 몸으로 체화되어 있음이 보인다. 동시에 주..

삶의나침반 2015.07.19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죽음을 다룬 책인데 시종 미소를 띠며 읽힌다. 구성도 특이하다. 나이별로 인체의 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가 제시되는 사이에 저자와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에세이가 등장한다. 그리고 나이듬과 죽음에 대한 여러 경구들이 인용되고 있다. 셋이 어긋나지 않고 잘 조화를 이룬다. 저자인 데이비드 실즈(David Shields)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책을 덮으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죽음에 대한 가르침보다도 이런 스타일의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과학적 사실과 정서적 느낌을 연결시키면서 개인의 경험을 함께 녹여내는 형식이 마음에 든다. 주제를 잘 골라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만큼 명확한 진실은 없다. 그러나 누구도 자기 죽음에 대해서는 짐짓 외면하..

읽고본느낌 2015.06.27

들어간 사람들 / 이진명

외할머니 일흔일곱에 들어갔다 한 해 뒤 어머니 마흔일곱에 들어갔다 두 사람 다 깊은 밤을 타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1년씩 1년 반씩 병고에 시달렸지만 들어갈 때는 병고도 씻은 듯이 놓았다 두 사람 들어간 문은 좁은 문은 아닌 것 같다 일흔일곱도 받고 마흔일곱도 받은 걸 보면 좁은 문은 아니나 옷보따리 하나 끼지 못하게 한 걸 보면 엄격한 문인 것 같다 두 사람 거기로 들어간 후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았다 거기 법이 그런가 보았다 하긴 외할머니 어머니 여기서도 법도 잘 지키던 사람들이었다 들어왔으면 문 꼬옥 닫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 들어간 사람들 / 이진명 이쪽에서 보면 들어갔지만, 저쪽에서 보면 들어왔다다. 이쪽에서 말할 때는 돌아가셨지만, 저쪽에서 말할 때는 돌아오셨다가 된다. 죽음이 별스러운 게..

시읽는기쁨 2015.05.13

낙타 /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 낙타 / 신경림 너무 재미만 찾으면 안 되리. 인생의 어느 시기는 낙타 같은 고행의 길도 있어야 하리. 지금이 그때인지도 모르는 것이니,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는지 모르는 가엾은 사람이 되는 것도 괜찮으리. 그런 저승길은 얼마나 홀가분하고 편안할까, 지상에 미련 남기지..

시읽는기쁨 2015.01.04

목숨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아마 목숨일 것이다. 건강, 돈, 명예, 모두 목숨이 붙어있을 때의 얘기다. 목숨이 끊어진다는 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이고, 개인에게는 우주의 종말과 다름없다. 우리는 언젠가는 이런 마지막 때와 대면해야 한다. 죽음은 인생에서 단 하나의 확실한 진실이다. 영화 '목숨'은 포천에 있는 모현 호스피스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사십 대 가장, 두 아들의 엄마, 전직 수학 선생님과 쪽방촌 외톨이 할아버지가 그들이다. 암에 걸려서 치유 불가능한 판정을 받고 생의 마지막을 보내려고 호스피스에 들어왔다. 가족의 사랑과 주변의 도움 속에서 이별 의식을 갖는 이들은 어쩌면 행복한 사람들이다. 가슴 아프고 아리고 슬픈 영화다. 산다는 게 뭔지를 묻고 ..

읽고본느낌 2014.12.10

엔딩 노트

회사원으로 열심히 살았던 주인공은 정년퇴임을 하자마자 위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되어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주인공은 갑자기 닥친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세상과의 이별 의식을 준비한다. '엔딩 노트'는 막내딸이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직접 찍어서 만든 '아빠의 해피엔드 스토리' 영화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누구나 죽지만 죽음을 맞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영화의 주인공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안달하지 않는다. 장례식 준비도 직접 챙기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에서 가족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특히 손녀들과는 최대한 많이 놀아주려 한다. 눈물보다 웃음이 더 많다. 죽음은 '엔딩'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가는 '오프닝' 같다. ..

읽고본느낌 2014.09.16

연장통 / 마경덕

장례를 치르고 둘러앉았다. 아버지의 유품을 앞에 놓고 하품을 했다. 사나흘 뜬눈으로 보낸 독한 슬픔도 졸음을 이기진 못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무상자는 관처럼 무거웠다. 어서 짐을 챙겨 떠나고 싶었다. 차표를 끊어둔 막내는 자꾸 시계를 들여다봤다. 이걸 어쩐당가, 마누라는 빌려줘도 연장은 안 빌려 준다고 해쌓더니.... 엄니는 낡은 상자를 연신 쓰다듬었다. 관 뚜껑이 열리듯 연장통이 열리고 톱밥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과 땀에 절은 아버지, 먹통, 끌, 대패, 망치를 둘러매고 늙은 사내가 비칠비칠 걸어나왔다. 몽당연필을 귀에 꽂은 아버지, 대팻밥이 든 고무신에서 고린내가 풍겼다. 자식 농사만은 대풍을 거두셨다. 망치는 부산으로, 톱은 서울로, 줄자는 울산, 말라붙은 먹통은 분당으로, 아버지는 그렇게 ..

시읽는기쁨 2014.08.08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종합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19년 동안 근무했던 지은이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좋은 죽음'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책이다. 병원 중환자실은 생사의 경계에 선 환자가 격리 치료를 받는 곳이다. 보호자는 정해진 시간에만 면회가 되고, 의식이 혼미한 환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의료적 처치를 받는다. 기본적으로 보호자의 동의하에 이루어지지만, 환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너무 괴로워 결국은 병원을 떠났다. 책에는 지은이가 직접 경험한 여러 사례가 실려 있다. 중환자실이라는 의료 현장에서 인간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고뇌하는 내용이다. 중환자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공호흡기와 기관절개술을 사용한다. 호흡을 쉽게 해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기..

읽고본느낌 2014.02.25

나의 삶 / 체 게바라

내 나이 15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 가를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 나의 삶 / 체 게바라 공자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했는데, 체 게바라는 열다섯에 죽음에 대해 존재론적 고민을 했다. 죽음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고민과..

시읽는기쁨 2013.11.14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장준하 선생의 유해가 경기도 파주시 장준하 공원에 안장되었다. 옛 산소의 축대가 무너지고 이장하는 과정에서 선생의 유골이 38년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선생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무성했는데 결국 외부 가격에 의한 두개골 함몰로 사망하였음이 거의 밝혀졌다. 박정희 독재 정권이 저지른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의 사망 원인을 직접 조사한 고상만 씨가 당시의 조사 상황과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장준하 의문사 사건 조사관의 대국민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짧은 조사 기간과 대통령 탄핵에 따른 정치적 상황으로 그때는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의문사위원회에서는 사건에 대해 '인정'이나 '기각', '진..

읽고본느낌 2013.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