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어느 정치인의 죽음

샌. 2018. 7. 25. 11:10

그저께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노 의원은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 중 한 분이었다. 노동자와 서민 편에 섰던 분을 잃게 되어 안타깝고 비통한 심정이다.

 

분을 자살로까지 내몬 정황이 그렇게 심각했는지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라는 의문이 자꾸 든다. 고인은 드루킹으로부터 4천만 원을 불법으로 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한다. 액수가 많지도 않다.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이런 일은 정치판에서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러나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고인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수모였는지 모른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정의당과 진보 정치에 대한 염려가 담겨 있다. 아마 본인보다도 당과 진보 정치에 끼친 누에 더 마음 아파했던 것 같다. 그래도 살아서 용서를 구하고 새롭게 출발할 수는 없었을까? 돈 4천만 원을 받은 사건이 본인과 정의당에 얼마나 치명적으로 작용할까? 처리 여하에 따라서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죽음만이 해법이 아니라는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고인의 자살로 진보 정치인에 대한 비난은 잠잠해질 수 있지만 미미한 효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정치 발전에 기여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썩은 정치인들이 고인의 죽음을 보며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할까? 그럴 수 있다면 정치판은 이미 오래전에 정화되었을 것이다.

 

자살은 책임을 지는 자세 같지만 다른 면으로는 굉장히 무책임한 행동이다. 자신의 고통은 한순간에 끝나지만 가족이나 주변인에게 남긴 상처는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이 짊어져야 할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노 의원은 대중성 있는 인기 정치인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명예나 이미지 추락은 어느 무엇보다 감내하기 힘들었으리라. 도덕적 순결주의는 위기가 닥치면 약점이 된다. 그보다는 거센 파도를 헤쳐나갈 맷집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다시 되돌릴 수 없지만 만약 고인이 솔직히 고백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면 박수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오리발 내밀고 발뺌하는 게 이때까지 우리가 본 정치인 행태였다. 살면서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오를 인정하는 자세다. 고인도 처음에는 돈을 받은 사실을 부정했다. 여기서부터 잘못되지 않았나 싶다.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 진보 정치는 고인 같은 대중성 있는 스타 정치인이 필요하다. 누가 그 빈 자리를 메꿀 것인가. 죽어야 할 사람은 멀쩡히 살아가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미리 떠나간다. 그 점이 야속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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