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선택과 과보

샌. 2018. 7. 5. 12:46

한 판의 바둑은 인생과 닮았다. 포석 단계는 청소년기와 비슷하다. 처음 둘 때 정석이 등장하듯, 인생 초반도 정해진 교육 과정을 이수하는 시기다. 중반전이 되면 전투가 벌어지는데, 그 치열함은 삶의 현장과 닮았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건 바둑이나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바둑에서 어떤 수를 둘까 선택을 해야 하듯 인생도 그렇다. 바둑이나 인생이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수를 택하느냐에 따라 바둑은 천변만화한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오늘 무엇을 먹을까, 라는 사소한 선택에서 결혼 같은 중차대한 선택도 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듯 어떤 선택은 인생 행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분명한 것은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사실이다. 바둑의 경우에는 잘못된 한 수 때문에 바둑이 끝날 때까지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삶에도 이런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만약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상상을 해 본다. 아마 다른 무대가 펼쳐졌을 것이다. 상상은 대개 아쉬움으로 귀결된다.

 

바둑에서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있다. 일껏 심사숙고했는데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다. 돌이 바둑판에 놓인 이상 후회해도 늦었다. 이것저것 재다가 쥐약을 고르는 경우가 우리 삶에서도 가끔 생긴다. 나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가, 라고 통탄한들 소용없다. 온전히 자기 책임이다.

 

그런데 악수로 보이던 것이 묘수가 되기도 한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 앞길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불안하기도 하지만 바둑이나 인생이 흥미로운 이유다. 일 더하기 일이 이만 된다면 무척 삭막할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잘못 둔 수를 최선의 수로 바꿀 수 있는 자가 고수다. 인생의 고수도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바둑은 상대방이 있으니 패가 단순하다. 그러나 인생은 원인이 무엇이고 결과는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바둑보다 천 배 만 배 복잡하다. 그래서 점집을 찾고 운명을 믿으려고 한다. AI가 인간계의 바둑 고수를 이겼듯 앞으로 나올 더 진화한 AI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

 

바둑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은 반드시 과보를 낳는다. 욕심을 부리면 화로 돌아온다. 흑백의 돌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인생의 원리도 같다고 본다. 무슨 선택이든 흔적이 남는다. 선택 뒤에 따르는 과보를 회피하려 한다면 도둑놈 심보다. 거기서 괴로움이 생긴다. 나는 선택하고 그에 따른 과보를 받겠다. 이렇게 쿨하게 생각한다면 인생의 짐이 훨씬 가벼워지지 않을까. 적어도 억울한 심정은 가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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