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쇼팽의 야상곡

샌. 2018. 6. 24. 12:38

클래식을 다시 듣게 된 건 순전히 윗집 덕분이다. 이음치음(以音治音)이라고 할까, 한밤중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잊기 위해서 음악을 더 크게 튼다. 처음에는 교향곡 같은 데시벨 높은 음악에 의지하지만, 천장의 소음이 잔잔해지면 잔잔한 피아노곡으로 바꾼다. 그러다가 슬며시 잠이 드는 날은 대성공이다.

그중에서 제일 자주 듣는 곡이 쇼팽의 야상곡(夜想曲)이다. 녹턴이라고 부르는 야상곡은 피아노 소품인데 밤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음악이다. 수면제 역할로 이만한 게 없다. 쇼팽의 야상곡 전곡은 1시간 30분 가량 되는데, 대개 30분 정도만 듣고 있으면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쇼팽은 예민하고 수줍은 성격이었던 것 같다. 예술가들한테는 늘 여자들이 따라 다니는데 쇼팽은 수동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 못하고 속앓이만 했다. 약혼까지 한 '마리아 보진스키'와는 능력 없고 병약하다는 이유로 부모가 반대해서 관계가 깨졌다.

결국 쇼팽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한 여자는 6살 연상인 '조르주 상드'였다. 자유분방했던 상드는 두 남매를 가진 이혼녀로 살롱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처음 쇼팽을 만난다. 상드의 모성애적 사랑에 쇼팽은 위로를 받으며 9년간 함께 산다. 그러나 가정불화와 쇼팽의 건강 악화로 둘의 관계는 파탄 나고 쇼팽은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폐질환으로 사망한다. 쇼팽과 상드는 성격상 어울리는 쌍은 아니었다.

쇼팽은 키가 170cm가 넘는데 몸무게는 50kg이 안 되었다고 한다. 약골로 태어나고 성격마저 유약했다. 야상곡을 들으면 선율이 슬프고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선입견 탓인지 모른다. 39년의 일생 중 그나마 상드와의 결혼 생활이 제일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몽롱한 가운데 쇼팽의 야상곡을 듣다 보면 쇼팽이 조곤조곤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듯하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빠진다. 쇼팽의 야상곡은 윗집이 준 고마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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