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적응하기

샌. 2018. 5. 26. 16:29

딩동! "누구세요?" "실내 소독하러 왔습니다." 낮에 집에 있으면 현관 벨 소리에 응대해야 할 일이 가끔 있다. 방문자를 잘 파악해서 문을 열어줄지 말지를 빨리 판단해야 한다. 벨을 누른다고 다 문을 열어줄 수는 없다. 정기 소독이야 의심 없이 문을 열어주지만, 무슨 말인지 분명치 않은 사람은 십중팔구 귀찮게 하는 사람이다. 대면하면 뿌리치기 쉽지 않다.

 

이번에 소독하러 온 아줌마는 50대 중반쯤 되었다. 배수구에 분무기로 소독액을 뿌리는 간단한 작업이다. "다 됐습니다. 아버님, 여기 사인 좀 해 주세요." 헐! 아버님이라고? 내가 80대쯤으로 보인 모양이다. 내 여동생보다도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여자한테서 듣는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너무 생경했다.

 

제일 황당했던 건 전철을 탔을 때였다. 경로석 앞에 서 있는데 앉아 있던 노인이 쭈뼛쭈뼛 일어서며 자리를 양보하는 게 아닌가.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내 눈에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이었다. 아마 70은 넉넉히 되었을 것이다. 도대체 내 나이가 얼마로 보였기에 연상의 노인한테서 '어르신' 소리를 들으며 자리를 양보받아야 한단 말인가.

 

얼굴과 마음의 불일치가 심각하다. 거울을 보면 웬 중늙은이가 초점 잃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사진은 더하다. 이게 내가 맞나, 할 정도다. 젊었을 때는 동안(童顔)이라는 소리도 들었는데 세월은 가차 없다. 원흉은 백발이다. 40대 때부터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까맣게 염색하는 것은 질색이다.

 

고등학교 동기가 모이는 밴드에는 올해가 입학 50주년이 되는 해라고 행사 안내문이 자주 뜬다. 50이라는 숫자도 감이 잘 안 오지만, 밴드에 올라오는 동기들 모습을 보며 세월의 무게에 더 짓눌린다. 다들 그렇게 느끼는가 보다. 글에는 '어느새'라는 표현이 제일 많다. 세월이 야속하고 덧없다.

 

올해 들어 부쩍 늙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몸 상태도 전 같지 않다. '한 해가 다르다'는 말을 선배들이 자주 했는데 지금은 내 입에서 같은 말이 나온다. 몸은 낡아져도 정신은 잘 익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시원치 않으니 낙담이 크다. 어쨌든 지금은 노년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적응해 나갈 때다. 누구나 겪을 인생의 한 과정이다. '아버님'이나 '어르신' 같은 호칭에도 곧 익숙해질 것이다. 내 앞에는 회색의 내리막 길이 길게 뻗어 있다. 계절은 쓸쓸한 늦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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