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저만 모른다

샌. 2018. 8. 22. 09:26

고등학교 동기 밴드에 쓴웃음을 짓게 하는 유머 글이 하나 올라왔다.

 

동네 치과에서 진료를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 있던 중 의사의 치과대학 졸업장을 봤다. 의사의 이름은 반세기 전 고등학교 시절의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이름과 같았다. 그는 키도 크고 멋진 친구였는데 혹시 이 사람이 그 당시 나와 친했던 그 친구인가, 하고 있는데 의사를 본 순간 그런 생각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대머리에다 몇 낱 안 남은 흰 머리카락, 그리고 주름살이 깊게 파인 얼굴이 내 동급생이기엔 너무 늙어 보였기 때문이다. 진료가 끝난 후 나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00고등학교에 다니지 않았습니까?"

"네, 다녔습니다. 그때 좀 우쭐댔었지요"라고 말하며 치과의사는 활짝 웃었다.

"언제 졸업했습니까?"하고 다시 물었다.

"1967년입니다. 왜 그러시죠?" 라고 반문하기에 "그럼 우리 반이었네!"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대머리에 주름 가득한 그가 나를 자세히 바라보더니 물었다.

"잘 생각이 안 나는데 혹시 그때 무슨 과목을 가르치셨는지요?"...... Oh! My God!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청춘이니 내가 나를 보는 한 늙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내가 이렇게 늙었나, 제일 쇼크 받을 때는 학교 동기들이 모인 SNS에서 벗들의 사진을 볼 때다. 다른 사람이 날 볼 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이 정도로 쭈구렁방탱이가 되었나, 맥이 탁 풀리고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며칠 전에 당구장에 갔는데 미리 와 있던 친구들이 쳐다보면서도 알은체를 안 한다. 웬 80대 노인이 들어오나, 하고 의아해했다는 것이다. 한 달에 두 번씩 만나면서도 그렇다. 하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경로 대상자인지를 묻는 경우는 50대 때부터 있었다. 그때는 나이 들어보이는 게 당당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수런거리는 걸 보니 진짜 나이가 들어가긴 하나 보다.

 

제가 저 자신을 잘 모르는 게 외모만이겠는가. 그래서 감어인(鑒於人)'이라는 말도 있다. 인간은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의 거울은 적당히 외면할 줄 알아야 용감해질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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