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샌. 2016. 10. 28. 12:48

명료한 의식으로 죽음과 대면하고 싶은 게 내 바람이다. 죽기 직전까지 건강한 심신이 유지되면 더할 나위 없지만, 몸은 병들어도 정신만은 분별력을 지녔으면 좋겠다. 그래서 죽음이 찾아오는 과정을 냉철하게 관찰하고 싶다.

 

이 책을 쓴 영국 작가인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가 바로 그러했다. 1949년생인 히친스는 식도암에 걸려 2011년에 세상을 떴다. 1년 반 정도 첨단 의료의 도움을 받으며 치료를 받았지만 인간의 운명은 어찌 할 수 없었다. 그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한 무신론자의 자기 고백이다.

 

원 제목은 <Mortality>다. 죽을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읽힌다. 히친스는 병에 걸려서도 뛰어난 문장력과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 고문을 받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그런 정신력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그는 자기연민이나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이성적인 사고 능력을 믿었다. 자신과 세계를 끝까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

 

히친스는 병이 나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에서 시도한 모든 처치를 다 받았다. 대신에 심각한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남은 시간이 1년여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래도 의사 말을 따랐을지는 의문이다. 아마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거기에 대한 히친스의 생각은 책에 나오지 않는다. 현대 의료에 대한 문제점과 함께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죽음은 어떻게 우리를 찾아올지 모른다. 죽음에 대응하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그 길이 어떠하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적 존엄과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을 믿는 것이 품위 있는 죽음에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신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을 히친스와 같은 지식인이 보여주고 있다. 무신론자라고 허무주의에 떨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어떠한지 우리는 모른다. 상상만 할 뿐이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히친스는 이런 단문을 남겼다.

 

산소통, 들것, 구급차를 가져온 친절한 남자들이 나를 건강한 나라의 경계선 너머 다른 나라로 추방한다.

 

우리가 '숨이 차다'는 말을 얼마나 무심하게 사용하는지 생각하면 우습다. 숨을 쉴 수 없다!

 

콧털이 사라졌다. 콧물이 줄줄 흐른다. 변비와 설사가 번갈아가며....

"구질서가 변해서 새로운 질서에 자리를 내주고, 신은 여러 면에서 자신의 뜻을 이룬다. 그리고 곧 나는 비열한 종양에 휩쓸려가리라."

 

약간의 동정이 서린 말은 의도와 달리 최종적인 느낌을 준다. 과거시제, 또는 마치 고별사 같은 느낌이다. 꽃을 보내는 것은 생각만큼 좋은 일이 아니다.

 

나는 암과 싸우고 있지 않다. 암이 나와 싸우고 있다.

 

솔 벨로: 죽음은 우리가 거울로 뭔가를 보기 위해 거울 뒤에 발라야 하는 어두운 물질과 같다.

 

옛 동영상이나 유튜브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비참함....

 

고문을 묘사하고 몸을 고통의 저장소로 본 심보르스카의 시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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