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안락사를 부탁합니다

샌. 2018. 8. 4. 13:05

'오싱'을 쓴 하시다 스가코 작가는 1925년에 태어났으니 금년이 93세다. 지금도 수영을 하고 매년 몇 달간은 크루즈로 세계 여행을 즐기며 글을 쓰고 있다. 아흔이 넘어도 총기를 잃지 않고 여행을 한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이 책 <그리고 안락사를 부탁합니다>는 재작년에 나왔으니 91세에 썼다. 부제가 '후련하게 깨끗이 떠나는 10가지 종활 이야기'다.

 

종활(終活)이란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이다. 어느 시기가 되면 종활이 필요하다. 작가는 원고를 정리하고, 집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고, 사후에 부탁할 일은 '종활 노트'에 적어둔다. 동시에 이 세상을 떠날 마음의 준비도 한다.

 

작가의 마음가짐은 '없도록 애쓴다!'이다. 깨끗하고 후련하게 떠나기 위해서는 미련이 없어야 한다. 쓸데없는 기대도 하지 않는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후회 없이 인생을 마감하려는 것이 작가의 바람이다. 그래서 목차에도 전부 '없이'가 들어간다.

 

1. 장례식 없이

2. 명예욕 없이

3. 일 없이

4. 친구 없이

5. 부모 없이

6. 연애 없이

7. 남편 없이

8. 친척 없이

9. 자식 없이

10. 후회 없이

 

책에는 작가의 유년기부터 현재까지의 일생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열 가지 목차 제목은 작가가 노년에 접어든 때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그대로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20대 때 부모가 돌아가셨고, 늦게 결혼한 남편도 29년 전에 잃었다. 자식도 없고, 친척과의 교류도 없다. 게다가 긴 전화를 하거나 함께 차를 마실 친구도 없다. '없다'는 것은 반대로 무엇이든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천애고독의 몸이기에 누군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에게 기대를 걸 필요도 없다.

 

노인이 될수록 친구가 많아야 하고, 일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상식이다. 그러나 작가는 없어야 오히려 가볍고 후련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원망 없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천상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고독한 존재다. 그걸 잊어버리면 죽음을 앞두고 허무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작가는 안락사로 죽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여 일본 사회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깔끔하게 살았으니 깔끔하게 죽고 싶다는 소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책 제목으로 뽑힌 '그리고 안락사를 부탁합니다'라는 글이 책 끝에 나온다.

 

 

그리고 안락사를 부탁합니다

 

지금까지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지만, 아흔 한 살이 되니, 이 세상에서의 여행도 끝나는 것이 그리 멀지 않다고 각오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를 걱정한 가정부들로부터 "AED를 집에 둡시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AED는 갑자기 심장마비가 일어났을 때. 전기를 흘려서 심장의 움직임을 정상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의료기기, 10년 정도 전부터 학교나 역에도 두고 있는 것 같으니까, 본적이 있는 분도 계실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지자체가 빌려준다고 합니다. 사용법 강의를 들으러 가서 빌리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걱정해주는 것이 기쁘고, 가정부들의 호의를 헛되게 하는 건 아니지만, 심장이 정지하면 그때는 그때, 오히려 통증도 없이 죽을 수 있다면, 그대로 죽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왜냐면 이 세상이 미련이 더 이상 없거든요.

AED보다 오히려 궁금한 것은 안락사입니다. 안락사는 스위스를 비롯하여 네델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미국의 여섯 개주에서 합법화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외국인의 안락사를 받아들이는 곳은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라고 하는 단체 뿐. '디스니타스'는 의료 기록을 분석한 뒤,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에 한해서만, 약을 처방해서 안락사를 도와준다고 합니다.

스위스의 취리히에 있는 법의학연구소에 따르면, 안락사를 목적으로 스위스를 방문한 '자살 여행자'의 수는 2008~2012년의 5년 간, 611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디그니타스'에서 안락사 제공을 받는 데에는 등록비와 제반 비용을 포함하여 70만 엔 정도 드는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에서도 척수종양을 앓는 영국인 남성이 '디그니타스'에서 안락사 할 때까지의 과정을 추적한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살아있기엔 너무 가혹한 상태여서, 본인이 원한다면, 일본에서도 안락사라는 선택사항이 있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주간문춘>이 2014년에 한 안락사, 존엄사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안락사, 존엄사의 찬성파가 68.8%, 반대는 불과 10.2%였다고 합니다. 안락사 하겠다는 사람은 매우 많고, 힘들어도 살아있겠다는 사람은 소수파.

아는 이미 일본존엄사협회에 가입했습니다.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일본에선 이런 연명조치를 하지 않습니다. 단지 '소극적 안락사'는 허용돼도 치사 약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어렵다면, 적어도 법으로 인정받는 스위스에 가서, "내일 죽게 해주세요."라고 안락사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런 식으로 죽고 싶은 겁니다.

안락사에 관해서는 각국에서도 논의가 시작되고 있지만, 나는 연명조치를 하면서까지 살아있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고령자가 늘어가는 일본에서, 연명조치를 받는 사람이 계속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병원침대는 만원. 집에서 간호한다고 해도 힘든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죠. 어느 쪽이든 간호의 손길이 필요하게 됩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는, 돈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며 최후를 맞이하려고 하는데, 벌써 간호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니, 돈이 있어도 사람을 구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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