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소설 읽기가 제일이다. 요즘처럼 찜통더위가 계속될 때는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소설을 벗하는 게 최고의 피서다. 전기료가 걱정된다지만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싸게 먹힌다. 재미있는 소설을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여름을 보낼 수 있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는 이기호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최근에 이기호 작가의 작품을 자주 읽는데 이야기가 경쾌하면서 생생하게 살아 있어 좋다. 그러면서 단단한 뼈대를 숨기고 있다. 쉽게 읽히지만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이 책에서는 '탄원의 문장'이 제일 인상 깊었다. 대학교에서 일어난 과실치사 사고와 관련된 이야기다. 후배들 기강을 잡는다고 선배들이 강압적으로 술을 마시게 하고 훈계를 했다. 그중 한 여학생이 집으로 돌아간 뒤 아침에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모임을 주도한 선배 P는 금고형을 받게 되는데, 제자를 위해서 지도교수인 주인공이 탄원서를 쓰게 된다.
피해자도 제자이건만 교수는 인간적으로 P에 가깝다. 그는 냉정할 정도로 한편으로만 쏠린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우리가 보는 게 대체로 그러할 것이다. P의 옛 애인이 쓴 탄원서를 보고 교수는 눈에 띄지 않는 다른 면이 있음을 인식한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는 고개를 돌린다. 그것을 '외면한 사실'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우리가 세상의 다른 사건을 접하는 태도 역시 이 지도교수와 닮은 건 아닐까. 객관적인 평가라는 명목으로 사건에 존재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무시한다. 연민의 눈으로 보면 짧은 단어 하나에도 의미가 들어 있다. "이 선배가 왜 이렇게 자꾸 술을 따라 주실까?"에서 '이'가 가슴에 사무치는 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에 실린 작품은 쉽게 읽히지만 여운이 남는다. 이 뜨거운 여름에 재미나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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