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 22

양양, 속초 여행(1)

아내와 2박3일로 양양과 속초 여행을 다녀왔다. 첫날은, 양양으로 가서 남대천을 걸었다. 2월 하순이지만 바닷바람이 너무 거세고 차가워서 오래 걷지는 못했다. 대신에 양양 5일장이 서는 날이라 전통시장을 구경했다.  이어서 하조대해수욕장을 찾았다. 하조대전망대에서 바다 풍경을 구경하고, 백사장을 밟으며 산책을 했다.  4시쯤 낙산비치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낙산해수욕장과 동해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젊었을 때 낙산에 놀러 오면 늘 바닷가 민박이나 모텔에 묵었다. 언덕 위에 있는 하얀색의 비치호텔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기에서 잠잘 때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이제야 이루어졌다.   객실에서 바다 일출을 보았다. 운좋게 오메가 일출을 보는 행운이 찾아왔다.  호텔에서 뷔페식 조식을 먹고 바로 옆에 ..

사진속일상 2025.02.28

낙산사 복수초(25/2/25)

길게 이어지는 2월 추위로 전국의 봄꽃 개화 시기가 늦다. 낙산사 복수초도 다른 해에 비해 늦은 편이다. 아직 꽃봉오리 상태인 개체도 눈에 띈다.  낙산사를 찾은 날은 춥고 바람이 거셌다. 강풍주의보까지 내려졌다. 꽃잎을 열었지만 복수초도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듯하다. 차가운 눈을 뚫고 꽃을 피우는 복수초이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어쨌든 예년 같으면 만개해서 끝물이 되었을 시기다. 다른 지역 복수초도 예년 같은 싱싱함은 보여주지 못한다. 날씨 변화는 요량하기 힘들다. 날씨만큼이나 시국도 얼어붙고 뒤숭숭한 이즈음이다. 그래도 봄은 기어코 찾아오고야 말리라. 자연의 순리에 거역할 힘을 누가 가지고 있으랴. 한 달 뒤에는 온누리에 대자연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꽃들의향기 2025.02.27

토지(13, 14)

4부의 시작인 이 두 권은 일본의 식민 지배가 고착화되면서 지식인들은 좌절하고 패배 감정에 젖게 되는 시기다. 처세를 위해 친일에 영합하는 부류도 많이 생겨나고, 민중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13권의 서두에서는 이때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훌륭한 개명파 지식인들, 일본을 마시고 서양서 온 기독교에 목욕한 사람들, 미신타파를 외치고 민족개조를 외치고 조선인을 계몽하려고 목이 터지는 사람들, 미신타파하면 땅을 찾고 수천 년 내려온 조선의 문화를 길바닥에 내다 버려야 땅을 찾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이만하면 대장부 살림살이, 대신 사탕 빨고 우동 사 먹어야 땅을 찾을 것이던가, 사실은 긴구치나 히마키를 피우는 족속, 금종이 은종이에 싼 과자 먹는 족속, 우리 것을 길바닥에 내다버리는 족속 때문..

읽고본느낌 2025.02.23

배우의 죽음

김새론 배우를 처음 안 건 10여 년 전 영화 '여행자'를 통해서였다. 영화에서 김새론은 해외입양을 기다리며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진희 역을 맡아 진한 감동을 주었다. 어린이임에도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는 뛰어난 연기로 나중에 대배우가 될 거라는 예감을 가졌고, 이 배우를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16일에 김새론 배우가 극단적 선택을 하여 유명을 달리했다. 한창 뻗어나갈 25살의 아까운 나이였다. 보도로는 3년 전 음주운전 사고로 작품 활동이 중단된 후 악플과 생활고에 시달렸다 한다. 짧은 보도만으로 저간의 사정을 헤아리기 힘들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실수를 한 인간에 대해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닌지를 묻는다. 그렇다고 음주운전을 변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잘..

길위의단상 2025.02.22

어느 하루

일주일에 한 번 분당에서 당구 모임이 있다. 이날은 일부러 목적지보다 대여섯 정거장 전에서 버스를 내린다. 걷기 위해서다. 천변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좋은 산책로가 있는데, 매번 이 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30여 분 걸을 뿐이지만 나에게는 하루를 시작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당구는 11시부터 시작한다. 회원은 아홉이나 보통 대여섯 명 정도 모인다. 두 테이블로 나누어 4구와 3쿠션 게임을 한다. 나는 하수지만 주로 3쿠션을 친다. 수지는 몇 년째 10이다. 작년에는 책과 유튜브를 보면서 연구를 했지만 별 진척이 없다. 공 다루기가 당구만큼 어려운 종목도 없다. 나이 들어서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절감한다. 이젠 실력이 느는 건 포기했다. 그저 즐기기로 하니 마음이 편하다. 오후 2시경..

사진속일상 2025.02.21

노예 12년

전에 영화로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책으로 읽었다. 뉴욕주에서 살던 솔로몬 노섭이라는 자유인 신분의 흑인이 있었다.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중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어 남부로 팔려가고, '플랫'이라는 새 이름으로 12년간 여러 주인을 거치며 끔찍한 노예 생활을 한다. 고통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탈출을 계획하던 중 백인 의인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루이지애나 주의 목화밭에서 구조되는 이야기다. 1853년에 노섭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자서전인 을 써서 노예 제도의 문제점과 노예들의 비참한 실정을 고발했다.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하기 10년 전이었으니 노섭의 이 책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영화로 대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책으로 읽으니 훨씬 실감나면서 야만적인 노예 제도의 실..

읽고본느낌 2025.02.21

수동리 팽나무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팽나무가 4그루 있다. 그중 하나가 고창군 부안면 수동리에 있는 이 팽나무다. 안내문에는 우리나라 팽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고 적혀 있다. 나무 높이는 12m, 줄기 둘레는 6.6m, 나뭇가지가 펼쳐진 너비는 26m에 이른다. 수령은 400여 년으로 추정한다. 이 팽나무는 정월 대보름에 마을 사람들이 당산제를 지내면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던 당산나무로, 오랫동안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자 마을을 지켜주는 신으로 여겨졌다. 예전에는 나무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갯골을 따라 들어온 배가 이 팽나무에 밧줄을 감아 정박했다고 한다. 지금은 간척이 되어 주변이 너른 평야로 변해 있다. 팽나무가 위치한 곳이 인가에서 조금 떨어진 얕은 언덕 위다. 주위에는 다른 큰 나무가 ..

천년의나무 2025.02.20

모양성 용트림소나무

고창 모양성 안에 맹종죽림(孟宗竹林)이 있다. 맹종죽은 1938년에 유영하 선사가 불전의 포교를 위해 절을 지으면서 심었다고 한다. 맹종죽림과 송림의 경계에는 일부 소나무가 대나무과 얽혀 자란다. 대나무 사이을 뚫고 자라는 소나무 모습이 승천하기 위해 용트림하는 것 같다. 이 광경을 보면서 '적대적 공생'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하늘을 가리는 대나무가 얄미웠을 것이다. 대나무는 소나무의 생명력을 전투적으로 부추겼고, 소나무가 승천의 꿈을 꾸게 만들지 않았을까. 소나무와 대나무는 이제 둘도 없는 동반자가 된 듯싶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 빚은 아름다운 풍경이다.

천년의나무 2025.02.19

전주, 군산, 고창

전주 구시가지에는 6, 70년대에 지은 단독주택이 많이 남아 있다. 일부는 빌라나 다세대주택으로 변했지만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한 집이 상당하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할 여력이 안 되는 동네다. 전주에는 한옥마을이 유명하지만 특정 지역일 뿐이고 대부분은 시멘트로 지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골목길을 걸으며 옛집들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담장 너머로 작은 마당이 있으며 대개 유실수 몇 그루가 지붕까지 닿아 있다. 벽이 도로에 맞닿아 옹색한 집도 있다. 서로 이마를 맞대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어수선해 보여도 사람 살아가는 향취가 느껴진다. 전주의 골목길을 산책한 이른 아침이었다.  장모님이 소환해서 형제들이 모두 모였다. 파티가 열렸고, 하사하는 금일봉을 받았고, 밤늦게까지 시..

사진속일상 2025.02.19

좋을 대로 해라 / 김규동

천상병이 좋아한 것은 막걸리공초 오상순은 그저 담배문익환이 사랑한 것은 반독재 집회김정환은 철학과 맥주에즈라 파운드가 좋아했던 것은 시경말로가 흠모한 것은 영웅이다정지용이 사랑한 것은 말을 만드는 일과 염소수염이상이 그리워한 것은 인간의 사랑이다이병기가 사랑한 것은 난초김기림은 지성을권정생이 사랑한 것은 길가의 민들레꽃김남천이 사랑한 것은 노동자 농민이고임화가 사랑한 것은맨발로 뛰어다니는 한국의 아이들이다여운형이 가장 좋아한 것은 대중을 만나는 일손기정이 좋아한 것은 끊임없이 달리는 것김구가 사랑한 것은 나라의 독립이다 얘들아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집에서 학교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아너무 괴로워하지는 마라네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그것만이 너 자신을 살리는 길이니라천재는 거기 있다좋을 대로 해라 좋을 대로 ..

시읽는기쁨 2025.02.15

최선의 삶

이런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도 있구나,라고 가슴 아프게 읽었다. 범생이로 보낸 나로서는 전혀 다른 세상을 대하는 충격이 컸다. 은 소설이지만 작가의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둔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중학생 때 가출하고 고등학교는 중퇴해서 24세 때 한예종에 들어간 작가의 이력이 소설의 구성과 비슷하다. 임솔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작가가 방황하던 16살 때부터 10년간 써 온 소설이라고 한다. 오랜 기간 놓지 못한 것은 글로 드러냄으로써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란 간절함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작가가 다시는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기를 바란다. 소설은 강이, 아람, 소영 세 소녀의 심한 성장통에 시달린 중고등 시절 이야기다. 강이는 뚜렷한 이유 없이 친구 따라 가출해서 험..

읽고본느낌 2025.02.14

경안천 버들(250211)

경안천에서 가장 애호하는 장소가 된 이유는 이곳에 '나'의 나무, 경안버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내가 좋은 둑방길을 버리고 강변으로 내려가는지 모른다. 다정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가능하면 가까이에서 보고 싶기 때문이다. 손이라도 잡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대와 나 사이에는 강물이 가로막고 있다. 마음 놓고 건너갈 수 있을 정도의 꽝꽝 얼음이 어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겨울인가 그런 때가 있기는 했으나 몇 걸음 떼어놓다가 겁을 먹고 되돌아섰다. 사랑은 용기라고 하는데 이러다가는 짝사랑만 하다가 끝날지 모르겠다. 나의 나무여, 오늘도 안녕!

천년의나무 2025.02.12

경안천의 큰부리큰기러기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서 기러기를 가까이서 만났다. 기러기 중에서도 큰부리큰기러기로 매년 겨울이면 이곳으로 찾아오는 손님이다. 얘들은 시베리아에서 지내며 번식을 하고 월동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다.  기러기는 얼음이 얼지 않은 곳에 무리로 모여 수초 사이에서 열심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내지르는 소리가 봄철 개구리 합창처럼 요란했다. 둘레에는 몇 마리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아마 보초병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새들이 그러하듯 기러기도 경계심이 크다.  얼음판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다른 무리가 있고,   심심한 하늘에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고,  다른 쪽에는 고니와 함께 쇠오리들이 모여 있었다.   단톡방 세 군데에 오늘 찍은 기러기 사진을 올렸다. 사람마다 각각의 반응을 보..

사진속일상 2025.02.12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어쩌다 새벽에 깰 때가 있다. 새벽이라야 6시쯤이지만 보통 때보다는 한두 시간 일찍 눈을 뜨는 셈이다. 이불속에서 빈둥거리기도 하고 부지런을 떨며 책을 펼칠 때도 있다. 오늘은 김봄 작가의 에세이 를 읽었다. 이런 시간에는 무거운 주제보다는 가벼운 에세이가 적당하다.  우선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이 맘에 들었다. 일상의 에피소드를 가벼운 터치로 유머러스하게 잘 그려냈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부모와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도 여럿 나온다. 심각한 것을 심각하지 않게 대처하고 쓰는 것이 작가의 재주인 것 같다. 작가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산다.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결혼하지 않은 작가는 정치적으로 좌파이고 부모는 우파다. 사사건건 부딪..

읽고본느낌 2025.02.11

골골 팔십

지인이 급작스레 죽었다. 일흔이 넘어서도 백두대간을 타고, 등산 모임의 대장을 맡을 정도로 건강을 자신했는데 갑자기 심정지가 왔다. 산에서 일어난 일이라 손 쓸 새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의 목숨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 할 수밖에 없다. 건강하다고 오래 사는 게 아니다. 약골이라고 단명하지도 않는다. '골골 팔십'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현대식으로 바꾸면 '골골 백살'이라고 해야 옳겠다. '무병단명(無病短命) 유병장수(有病長壽)'라는 말도 있다. 이런 말들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몸이 약하면 아무래도 조심을 하게 된다. 기력이 떨어지니 무리를 할 수가 없다. 반면에 튼튼한 사람은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기 쉽다. 과로나 과음을 겁내지 않는다. 이런 지나침이 쌓이면 한순간에..

참살이의꿈 2025.02.10

사기[37]

패공은 고양의 객사에 이르자 사람을 보내 역생을 불렀다. 역생이 객사에 이르러 패공을 만나러 들어갔을 때, 패공은 마침 침상에 걸터앉은 채 두 여자에게 발을 씻기게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으로 역생을 만났다. 역생은 들어가서 길게 읍한 뒤 절을 하지 않고 말했다."당신은 진나라를 도와 제후들을 치려고 하십니까? 아니면 제후들을 이끌고 진나라를 치려고 하십니까?"그러자 패공은 역생을 욕하며 꾸짖었다."이 유생 놈아! 천하 사람들이 한결같이 오랫동안 진나라에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제후들이 서로 손을 잡고 진나라를 치려 하고 있는데, 어째서 진나라를 도와 다른 제후들을 친다는 말을 하느냐?"역생이 말했다."진실로 사람들을 모으고 의병들을 합쳐서 무도한 진나라를 쳐 없애고자 하신다면 거만한 태도로 장자를 만나서는..

삶의나침반 2025.02.09

토지(11, 12)

11, 12권은 3부 후반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환과 봉순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나온다. 동학군의 장수였던 김개주의 숨은 아들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산 환의 죽음은 너무 뜻밖이고 허무하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인데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환의 죽음은 그동안 숨어 버티던 동학 운동의 몰락이었다.  박복하고 가련한 여인인 봉순 역시 섬진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제 마음만 잘 다스렸으면 딸을 키우며 그런대로 남은 삶을 영위할 수 있었으련만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웠던 것 같다. 뭇 수컷들이 기생을 노리개로 여기며 데리고 놀다가 버렸다. 그나마 마지막에 서희가 봉순이를 챙겨주는 마음이 따스했다. 길상은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투옥되고, 서희가 하동에서 경성을 오가며 면회를 ..

읽고본느낌 2025.02.08

물닭을 지키는 고니

겨울 철새가 모이는 경안천에는 이들을 노리는 맹금류가 모여든다. 덩치가 큰 고니는 어찌할 수 없어도 물닭 같은 작은 새는 좋은 먹잇감이다. 어제 아침에 경안천에 나갔다는 흥미로운 광경을 봤다. 물닭을 호시탐탐 노리는 수리를 고니가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 왼쪽에 까만 작은 새가 물닭이다. 아직 새끼인 듯한데 어미는 보이지 않는다. 수리에게는 이만한 표적이 없다. 그런데 고니 세 마리가 물닭 옆을 둘러싸고 수리가 다가오지 못하게 지켜주는 것이었다. 수리는 한참을 어슬렁대다가 결국 포기하고 나무 위로 날아갔다.   연약한 생명을 지키려는 고니의 행동에 감동을 받았다. 종을 떠나서 약자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본능적으로 작동되었던 것 같다. 수리가 떠나고 고니가 자리를 옮기자 물닭도 어미를 따르듯 고니 뒤를..

사진속일상 2025.02.07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 손영호

인생길에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난들 또한 다른 사람 마음에그리 꼭 맞으랴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내 귀에 들리는 말들 어찌 다 좋은 말 뿐이랴내 말도 더러는 남의 귀에 거슬리리니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세상이 어찌 내 마음에 꼭 맞추어주랴비록 속 상하고 마땅찮은 일 있어도 세상은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사노라면 가깝고 다정했던 사람들어느 날 멀어져 갈 수도 있지 않으랴온 것처럼 가는 것이니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무엇인가 안 되는 일 있어도 실망하지 말자때로는 잘 되는 일도 있지 않았던가그냥 그저 그럴 때도 있으려니 하고 살자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좋지만가끔은 떠나고 싶은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예수님도 사랑을 피하신 적도 있으셨다는데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사람이 주는 상처에 너무 아파..

시읽는기쁨 2025.02.05

설 지나서 어머니를 찾아뵙다

올 설날 연휴는 임시공휴일까지 겹쳐 6일이나 되었다. 회사에 따라서는 9일간 쉬는 곳도 있었다. 덕분에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이 몰린 인천공항만 북적였다고 한다. 폭설에 날씨가 험한데다 정국 상황과 맞물려 국내는 어수선했다. 설날이 지난 나흘 뒤에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좋아하시는 피자와 도너츠를 사가지고 갔는데 맛있게 먹다 보니 저녁 대용이 되었다. 전에 쓰던 카세트가 고장 나서 새로 작은 라디오를 사다 드렸다.   초저녁 하늘에는 초생달과 금성이 나란히 떠 있었다. 밤에 눈이 살짝 지나갔다.  다음날, 찬바람이 거세 산소에는 혼자 다녀왔다. 산소가 있는 자리는 바람이 막히고 아늑해 마른 잔디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땅 속에 계신 이분들과 함께 지낸 어린 시절이 아련했다. 추모란 타인을..

사진속일상 2025.02.04

다읽(23) - 몽테뉴 수상록

몽테뉴는 30대 후반에 공직을 은퇴하고 자신의 영지로 돌아와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 덕에 오로지 자신을 성찰하며 고독하지만 행복한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16세기 후반은 프랑스에서 종교전쟁의 광풍이 불던 때였다. 그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성에 은둔하며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런 사색의 결과로 나온 책이 이다. 은 몽테뉴가 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후에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자신에 대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집필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미화하거나 꾸밀 필요가 없이 본인의 진실된 모습을 거짓 없이 기록할 수 있었다. 나중에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는 "이런 하찮고 부질없는 주제에 여러분의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라"라고 당부한다. 이런 솔직함이 독자들..

읽고본느낌 2025.02.02

오는 년이나 가는 년이나

7학년이 되니 새해가 되어 주고받는 인사조차 덤덤하다.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도 예전 같이 시끌하지 않다. 어쩌다 새해 인사가 올라오지만 반응이 심드렁하다. '오는 년이나 가는 년이나' 별다르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신정과 설날이라는 두 번의 새해가 있어 덕담 주고받기도 과유불급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한 친구는 그래도 기념일인데, 라며 동의를 못하는 표정이었다. 자주 안부를 전할 수 있으니 좋지 않냐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다니 부럽기도 하다. 아무래도 나는 세상사에 대해 시니컬한 측면이 있다. 인사치레라지만 마음에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게 싫다. '복(福)'이 너무 남용되어 싸구려로 전락한 느낌도 싫다. 설 연휴 당구장은 문전성시였다. 영감들이 집에 있지 않..

사진속일상 2025.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