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 7

사기[37]

패공은 고양의 객사에 이르자 사람을 보내 역생을 불렀다. 역생이 객사에 이르러 패공을 만나러 들어갔을 때, 패공은 마침 침상에 걸터앉은 채 두 여자에게 발을 씻기게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으로 역생을 만났다. 역생은 들어가서 길게 읍한 뒤 절을 하지 않고 말했다."당신은 진나라를 도와 제후들을 치려고 하십니까? 아니면 제후들을 이끌고 진나라를 치려고 하십니까?"그러자 패공은 역생을 욕하며 꾸짖었다."이 유생 놈아! 천하 사람들이 한결같이 오랫동안 진나라에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제후들이 서로 손을 잡고 진나라를 치려 하고 있는데, 어째서 진나라를 도와 다른 제후들을 친다는 말을 하느냐?"역생이 말했다."진실로 사람들을 모으고 의병들을 합쳐서 무도한 진나라를 쳐 없애고자 하신다면 거만한 태도로 장자를 만나서는..

삶의나침반 10:38:35

토지(11, 12)

11, 12권은 3부 후반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환과 봉순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나온다. 동학군의 장수였던 김개주의 숨은 아들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산 환의 죽음은 너무 뜻밖이고 허무하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인데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환의 죽음은 그동안 숨어 버티던 동학 운동의 몰락이었다.  박복하고 가련한 여인인 봉순 역시 섬진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제 마음만 잘 다스렸으면 딸을 키우며 그런대로 남은 삶을 영위할 수 있었으련만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웠던 것 같다. 뭇 수컷들이 기생을 노리개로 여기며 데리고 놀다가 버렸다. 그나마 마지막에 서희가 봉순이를 챙겨주는 마음이 따스했다. 길상은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투옥되고, 서희가 하동에서 경성을 오가며 면회를 ..

읽고본느낌 2025.02.08

물닭을 지키는 고니

겨울 철새가 모이는 경안천에는 이들을 노리는 맹금류가 모여든다. 덩치가 큰 고니는 어찌할 수 없어도 물닭 같은 작은 새는 좋은 먹잇감이다. 어제 아침에 경안천에 나갔다는 흥미로운 광경을 봤다. 물닭을 호시탐탐 노리는 수리를 고니가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 왼쪽에 까만 작은 새가 물닭이다. 아직 새끼인 듯한데 어미는 보이지 않는다. 수리에게는 이만한 표적이 없다. 그런데 고니 세 마리가 물닭 옆을 둘러싸고 수리가 다가오지 못하게 지켜주는 것이었다. 수리는 한참을 어슬렁대다가 결국 포기하고 나무 위로 날아갔다.   연약한 생명을 지키려는 고니의 행동에 감동을 받았다. 종을 떠나서 약자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본능적으로 작동되었던 것 같다. 수리가 떠나고 고니가 자리를 옮기자 물닭도 어미를 따르듯 고니 뒤를..

사진속일상 2025.02.07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 손영호

인생길에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난들 또한 다른 사람 마음에그리 꼭 맞으랴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내 귀에 들리는 말들 어찌 다 좋은 말 뿐이랴내 말도 더러는 남의 귀에 거슬리리니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세상이 어찌 내 마음에 꼭 맞추어주랴비록 속 상하고 마땅찮은 일 있어도 세상은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사노라면 가깝고 다정했던 사람들어느 날 멀어져 갈 수도 있지 않으랴온 것처럼 가는 것이니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무엇인가 안 되는 일 있어도 실망하지 말자때로는 잘 되는 일도 있지 않았던가그냥 그저 그럴 때도 있으려니 하고 살자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좋지만가끔은 떠나고 싶은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예수님도 사랑을 피하신 적도 있으셨다는데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사람이 주는 상처에 너무 아파..

시읽는기쁨 2025.02.05

설 지나서 어머니를 찾아뵙다

올 설날 연휴는 임시공휴일까지 겹쳐 6일이나 되었다. 회사에 따라서는 9일간 쉬는 곳도 있었다. 덕분에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이 몰린 인천공항만 북적였다고 한다. 폭설에 날씨가 험한데다 정국 상황과 맞물려 국내는 어수선했다. 설날이 지난 나흘 뒤에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좋아하시는 피자와 도너츠를 사가지고 갔는데 맛있게 먹다 보니 저녁 대용이 되었다. 전에 쓰던 카세트가 고장 나서 새로 작은 라디오를 사다 드렸다.   초저녁 하늘에는 초생달과 금성이 나란히 떠 있었다. 밤에 눈이 살짝 지나갔다.  다음날, 찬바람이 거세 산소에는 혼자 다녀왔다. 산소가 있는 자리는 바람이 막히고 아늑해 마른 잔디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땅 속에 계신 이분들과 함께 지낸 어린 시절이 아련했다. 추모란 타인을..

사진속일상 2025.02.04

다읽(23) - 몽테뉴 수상록

몽테뉴는 30대 후반에 공직을 은퇴하고 자신의 영지로 돌아와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 덕에 오로지 자신을 성찰하며 고독하지만 행복한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16세기 후반은 프랑스에서 종교전쟁의 광풍이 불던 때였다. 그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성에 은둔하며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런 사색의 결과로 나온 책이 이다. 은 몽테뉴가 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후에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자신에 대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집필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미화하거나 꾸밀 필요가 없이 본인의 진실된 모습을 거짓 없이 기록할 수 있었다. 나중에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는 "이런 하찮고 부질없는 주제에 여러분의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라"라고 당부한다. 이런 솔직함이 독자들..

읽고본느낌 2025.02.02

오는 년이나 가는 년이나

7학년이 되니 새해가 되어 주고받는 인사조차 덤덤하다.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도 예전 같이 시끌하지 않다. 어쩌다 새해 인사가 올라오지만 반응이 심드렁하다. '오는 년이나 가는 년이나' 별다르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신정과 설날이라는 두 번의 새해가 있어 덕담 주고받기도 과유불급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한 친구는 그래도 기념일인데, 라며 동의를 못하는 표정이었다. 자주 안부를 전할 수 있으니 좋지 않냐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다니 부럽기도 하다. 아무래도 나는 세상사에 대해 시니컬한 측면이 있다. 인사치레라지만 마음에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게 싫다. '복(福)'이 너무 남용되어 싸구려로 전락한 느낌도 싫다. 설 연휴 당구장은 문전성시였다. 영감들이 집에 있지 않..

사진속일상 2025.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