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이 좋아한 것은 막걸리
공초 오상순은 그저 담배
문익환이 사랑한 것은 반독재 집회
김정환은 철학과 맥주
에즈라 파운드가 좋아했던 것은 시경
말로가 흠모한 것은 영웅이다
정지용이 사랑한 것은 말을 만드는 일과 염소수염
이상이 그리워한 것은 인간의 사랑이다
이병기가 사랑한 것은 난초
김기림은 지성을
권정생이 사랑한 것은 길가의 민들레꽃
김남천이 사랑한 것은 노동자 농민이고
임화가 사랑한 것은
맨발로 뛰어다니는 한국의 아이들이다
여운형이 가장 좋아한 것은 대중을 만나는 일
손기정이 좋아한 것은 끊임없이 달리는 것
김구가 사랑한 것은 나라의 독립이다
얘들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집에서 학교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아
너무 괴로워하지는 마라
네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
그것만이 너 자신을 살리는 길이니라
천재는 거기 있다
좋을 대로 해라 좋을 대로 해라
- 좋을 대로 해라 / 김규동
첫째 손주가 중학교에 입학한다. 어느새 이렇게 컸는지 대견하다. 반면에 성적에 신경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보면 딱하다. "공부 못한다고 큰일 나지 않아."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돼." 아내가 손주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나도 옆에 있을 때면 고개를 끄덕여준다.
할머니의 말에 아이의 짐이 덜어질 리 없다는 걸 잘 안다. 학벌주의가 기세를 떨치는 시스템하에서는 공허한 말장난 같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스스로 학업의 무게를 벗어던질 줄 안다면 이런 충고도 필요 없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대부분 청소년기를 보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이 말을 마음에 담아 둔다면 좋겠다. 너는 점수로 평가되는 하찮은 아이가 아니니까.
"얘들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집에서 학교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아
너무 괴로워하지는 마라
네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
그것만이 너 자신을 살리는 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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