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사는 이가
잠깐 땅에 내려서는 것도
미안하게 여겨
외다리 맨발 한쪽만 딛고 서는
저 겸손과 염치 있음에
가슴 뜨끔해져
있는가 아직도 용서 받을 여지가
- 두루미를 보다가 / 유안진
지난주에 철원에 가서 두루미를 봤다. 논에 산재해서 먹이를 먹고 있는 많은 두루미 가족을 보았다. 두루미 탐조대에서는 수백 마리가 모여 있는 장관이 펼쳐졌다. 두루미와 만났으니 올 겨울도 가득 찬 셈이다.
두루미를 보면서 인간이 어떤 경지에 올라야 그들처럼 우아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그런 것이었다. 시인은 겸손과 염치를 떠올리며 가슴 뜨끔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용서 받을 여지가 있을지를 묻는다. 정작 용서를 빌어야 할 놈은 철면피를 한 채 큰소리를 떵떵 치는 세상이다. 인간으로 산다는 게 부끄럽고 참담한 시절이다.
두루미에 관한 다른 시 한 편이다.
삵 같은 천적 피하기 위해
얕은 물에 발을 잠그고 자는 두루미는
추위가 몰려오면
한 발은 들어 깃 속에 묻는다
외다리에 온몸 맡긴 채
솜뭉치처럼 웅크린 두루미의 잠
자면서도 두루미는
수시로 발을 바꿔 디뎌야 한다
그래야 얼어붙지 않는다
그걸 잊고 발목에 얼음이 얼어
꼼짝 못하고 죽은 새끼 두루미도 있다
한탄강이 쩡쩡 얼어붙은 겨울밤
여울목에 자리 잡은
두루미 가족의 잠자리 떠올리면
자꾸 눈이 시리고 발목도 시려온다
- 두루미의 잠 / 최두석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솟구쳐 오르기 1 / 김승희 (0) | 2025.01.11 |
---|---|
인생은 아름다워 / 쥘 르나르 (0) | 2025.01.02 |
자전거 / 이원수 (0) | 2024.12.24 |
저들에겐 총이 우리에겐 빛이 / 박노해 (0) | 2024.12.16 |
거인의 나라 / 신경림 (0) | 2024.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