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솟구쳐 오르기 1 / 김승희

샌. 2025. 1. 11. 11:29

억압을 뚫지 않으면

억압을

억압을

억압을

 

악업이 되어

악업이

악업이

악업이

 

두려우리라

 

절벽 모서리에 뜀틀을 짓고

절벽의 모서리에 뜀틀을 짓고

내 옆구리를 찌른 창을 장대로 삼아

하늘 높이

장대높이뛰기를 해보았으면

 

눈썹이 푸른 하늘에 닿을 때까지

푸른 하늘에 속눈썹이 젖을 때까지

 

아, 삶이란 그런 장대높이뛰기의 날개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상처의 그물을 피할 수도 없지만

상처의 그물 아래 갇혀 살 수도 없어

 

내 옆구리를 찌른 창을 장대로 삼아

장대높이뛰기를 해보았으면

억압을 악업을

그렇게 솟아올라

아, 한번 푸르게 물리칠 수 있다면

 

- 솟구쳐 오르기 1 / 김승희

 

 

알고리즘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갖는다. 구체적으로는 유튜브를 볼 때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알아서 찾아주니 편리하긴 한데, 세상을 보는 시야를 좁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유튜브만이겠는가. 세상에 길들여진 어항 속 물고기가 아닌가 싶어서다. 어항을 세계의 전체로 착각하고 위에서 떨어지는 먹이를 받아먹고 기다리는 물고기의 행복도 행복일까,라는 생각도 한다. 탈출을 꿈꾸는 물고기는 불행한 걸까?

 

베이컨은 네 개의 우상을 지적했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다. 인간이 이런 오류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강화되는 현상을 도처에서 본다. 편협한 경험과 확증편향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만이 이런 우상에서 자유로운지 모른다.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예수의 말씀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세상은 점점 매트릭스로 되어 간다. 인간은 알고리즘에 갇힌 노예에 불과한지 모른다. 시인의 "억압을 뚫지 않으면 / 악업이 되어 / 두려우리라"라는 외침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 볼 수도 있겠다. 어떻게 해야 높이 뛰어올라 푸른 하늘로 솟아오를 수 있을까. 아, 한번 푸르게 물리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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