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가야 된다고 궁시렁대는 마누라를 위해
설거지며 빨래 널고 개고
청소기 돌린 후
이불 깔고 마트 갔는데
그놈의 잔소리는 쉴 줄 모른다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안 보길래
살짝 알밤을 한 대 주고는
혼자 보라고 나오면서
다음 생에 환생해서 당신과 결혼하면
벙어리였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차례 지내러 새벽 춘천 가는 길
아무 말 없다
자냐고 물어도 대답 없고
아마 잔뜩 부은가 보다
도착해서 한 마디
당신도 꽤 시끄럽거든
그리고 난 환생 같은 거 안해
- 설날 마누라랑 장보기 / 서봉교
내일이 설날이다. 어제부터 눈이 엄청 내리고 있다. 창밖의 소나무 가지는 무거운 눈을 인 채 힘겹게 버티고 있다. 곧 부러질 듯 아슬아슬하다. 올 설은 고향에 안 가기로 했지만, 이런 날씨라면 내려갈래도 움직이기 어려웠을 것 같다.
명절 스트레스니 명절증후군이니 하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 되었다. 특히 여성이 심하다(남성도 결코 예외가 아니지만). 조사에 따르면 무려 90%가 명절 전후로 신체적, 정신적 피로를 겪는다고 한다. 오죽하면 명절 뒤에 이혼이 급증한다는 말이 있겠는가. 반면에 설날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떠나는 팔자 좋은 사람도 많다. 세대가 바뀌면서 명절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멀어 보인다.
명절은 계륵 같다. 함께 모이면 피곤하고, 그렇다고 빠진들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설날에는 노모가 계신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고 했더니 다른 친구들은 하나같이 부럽다고 쳐다보는 것이었다. 같은 설날이지만 처지에 따라 이렇게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지금의 나는 명절이나 기념일 등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바란다. 이제는 고향도 옛 고향이 아니고, 친지들도 옛날의 그 사람들이 아니다. 만난들 진실된 속마음을 나눌 사이도 아니다. 그렇다면 명절 스트레스는 일보다 사람 관계에서 오는 건지 모른다. 우리 사회가 개인화, 물질화된 영향이 클 것이다. 씁쓸하게 설날 명절을 맞으면서 이 역시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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