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밝은 저녁에 학교 마당에
오빠가 자전거를 배웁니다.
비뚤비뚤 서투른 오빠 자전거
뒤를 잡고 밀어주면 곧잘 가지요.
중학교 못 가는 우리 오빠는
어제부터 남의 집 점원이 되어
쏜살같이 심부름 다닌다고
달밤에 자전거를 배운답니다.
- 자전거 / 이원수
자주 나가는 야탑역 광장 한편에 '이동노동자 간이쉼터'가 있다. 컨테이너로 된 작은 건물인데 볼 때마다 마음이 따스해진다. 이름 그대로 배달 기사나 대리운전기사를 위한 짧은 쉼터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작지만 이런 배려를 할 수 있다는 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이 동시는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에 발표되었다. 그때는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한 1960대 중반에도 우리 반에서 중학교에 진학한 아이는 1/3 정도였다. 나머지는 어릴 때부터 농사를 짓거나 도시의 공원(工員), 또는 점원으로 나가 일을 해야 했다. 한밤중에 자전거를 배우는 오빠와 이를 도와주는 오누이 모습이 안쓰러우면서 정겹다.
지난 주말에 남태령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농민 트랙터 시위대를 경찰이 차벽으로 막는 일이 벌어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남태령에 모여 농민들과 함께 추운 밤을 지새우며 시위를 했다. 시민들 중 다수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윤석열의 얼토당토 않은 계엄으로 인한 지난 20일간의 시위에는 MZ 세대의 여성이 주축을 이룬다는 점이 특별하다. 권력자가 총칼을 앞세워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짓에 약자와 어린이를 보듬는 여성의 본능이 깨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의 아픈 기억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영원한 여성성이 인류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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