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벗이 몇인고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떠오르니 그 또한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빛이 좋다 하나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소리 맑다 하나 그칠 때가 많은지라
좋고도 그칠 때가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찌하여 푸르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하여 눈과 서리를 모르느냐
땅속 깊이 뿌리가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러고 사철을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비추니
밤중에 밝은 빛이 너만 한 것 또 있겠는가
보고도 말이 없으니 내 벗인가 하노라
- 오우가(五友歌) / 윤선도
꽃을 품평하여 등급을 매기는 일이 우습듯, 자연물에 호오의 감정을 투영하는 일 또한 유한계급의 한가한 놀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이 있으니 굳이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리라. 고산(孤山)이 수(水), 석(石), 송(松), 죽(竹), 월(月), 다섯을 벗으로 삼은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자신의 신념, 선비로서 지향하는 목표와 관계가 있으리라. 친구를 보면 인간됨을 알 수 있으니까.
어쨌든 나이가 드니 사람 친구는 멀어지고 자연의 친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변덕스러운 인심이나 세상에서 도피하고픈 마음 때문이리라. 고산이 왜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가진 수석과 송죽, 달을 벗으로 삼았는지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불변에 대한 애착 또한 무상이지 않은가. 구름과 바람, 꽃과 풀 역시 나의 귀한 벗이며 스승인 것을.
이 시조는 고등학생 때 낯선 고문으로 교과서에서 배웠다. 당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밑줄을 긋고 단어를 분석하며 외우는 데 바빴을 것이다. 그때로부터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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