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주막 / 백석

샌. 2025. 3. 16. 10:35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八)모알상이 그 상 우엔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잔(戔)이 뵈였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군들을 따라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 주막(酒幕) / 백석

 

 

장날 주막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장날이 되면 주막은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동무의 집에서 주막을 했던 모양이다. 거기서 얻어먹던 붕어곰의 맛이며, 주막 안팎의 광경이 정겹게 다가온다. 어릴 적에 어른들을 따라 장에 갔을 때 봤던 주막의 모습도 어슴프레 떠오른다. 어린 나는 주막에 딸린 작은 방에 들어가 따끈한 국수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문 밖에서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드물게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나는 놓치지 않으려 했다.

 

당시의 주막도 전통적인 주막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주막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 읽고 있는 <토지>에서도 하동에서 영산댁이 하는 주막이 자주 등장한다. 당시 주막은 남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곳이다. 막걸리에 국밥으로 요기하며 정보를 나누고 때로는 주모와 걸찍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시내에는 일본식 주점인 '다치노미(立飮店)'가 나온다. 이름으로 보건대 서서 마시기도 하는 간이주점 같다. 아마 목로주점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민족 정서를 백석만큼 정겹게 묘사하는 시인은 없는 것 같다. 단 네 줄로 이웃과 동물이 어우러지는 주막의 풍경을 따스하게 그려냈다. 

 

* 붕어곰: 붕어를 졸여서 만든 붕어찜

* 팔(八)모알상: 팔각형의 개다리소반

* 장고기: 조그마한 민물고기

* 울파주: 수수깡, 싸리 등으로 엮은 울타리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창을 열면 / 조오현  (0) 2025.03.08
오우가 / 윤선도  (0) 2025.03.03
좋을 대로 해라 / 김규동  (0) 2025.02.15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 손영호  (0) 2025.02.05
설날 마누라랑 장보기 / 서봉교  (1) 2025.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