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가에 꽃모종을 심는 일입니다
한 번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들이 길가에 피어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꽃을 제 마음대로 이름지어 부르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에게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이 혼자 눈시울 붉히면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그 꽃에 다가가
시처럼 따뜻한 이름을 그 꽃에 달아주는 일입니다
부리가 하얀 새가 와서 시의 이름을 단 꽃을 물고 하늘을 날아가면
그 새가 가는 쪽의 마을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마을도 꽃처럼 예쁜 이름을 처음으로 달게 되겠지요
그러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이미 꽃이 된 사람의 마음을 시로 읽는 일입니다
마을마다 살구꽃 같은 등불 오르고
식구들이 저녁상 가에 모여 앉아 꽃물 든 손으로 수저를 들 때
식구들의 이마에 환한 꽃빛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어둠이 목화송이처럼 내려와 꽃들이 잎을 포개면
그날 밤 시집 온 신부는 꽃처럼 아름다운 첫 아일 가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 혼자 베갯모를 베고
그 소문을 화신처럼 듣는 일입니다
- 내가 바라는 세상 / 이기철
무너지는 나라를 구해야 한다며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충심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너무 과한 관심과 행동이 서로간의 적대감을 부추기고 갈등을 키우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과연 얼마나 세상을 선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한 발 물러서야 세상을 좀 더 너그럽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를 유심히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거리 말이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선악의 구도로 나누어지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 우리가 분별하고 가치 판단을 할 뿐이다. 어쩌면 허깨비 놀음에 속아 어릿광대 춤을 추며 갈팡질팡 하고 있는지 모른다.
시인의 소망과 같은 작은 마음들이 모일 때 우리들 살아가는 세상이 따스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렁찬 외침 대신 작은 속삭임, 핏발 선 시선 대신 다정한 눈길, 거대한 담론 대신 일상의 사소한 대화가 진정 필요한지 모른다. 우리의 마음 속에 욕망 대신 꿈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 꿈이 영글어 예쁜 꽃으로 피어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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