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기러기 / 메리 올리버

샌. 2025. 4. 30. 10:03

착해지지 않다고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 기러기 / 메리 올리버

 

 

위안이 되는 따스한 시다. 처음에 나오는 "착해지지 않아도 돼(You do not have to be good)"에서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느낀다. 한참을 그 문장에 머물러 있게 된다. 메리 올리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얼굴이나 삶을 보면 시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연이라는 대가족의 일원이 아닌가. 세상의 의무와 규율에서 벗어나 그 품에 안길 때 우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하는 게 아닐까.

 

이 시에 나오는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김연수 작가의 소설 제목으로 쓰였다. 소설의 첫 페이지에 이 시가 인용되어 있다. 

 

번역의 다른 버전이다. 실은 이 번역이 더 마음에 든다.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 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초원들과 울창한 나무들

산들과 강들 위로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

다시 집으로 향하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저 기러기들은 거칠고 흥겨운 소리로 너에게 소리치지 -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네가 있음을

거듭거듭 알려주지

 

 

참고로 시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You do not have to be good.

You do not have to walk on your knees

for a hundred miles through the desert, repenting.

You only have to let the soft animal of your body love what it loves.

Tell me about despair, yours, and I will tell you mine.

Meanwhile the world goes on.

Meanwhile the sun and the clear pebbles of the rain

are moving across the landscapes,

over the prairies and the deep trees,

the mountains and the rivers.

Meanwhile the wild geese, high in the clean blue air,

are heading home again.

Whoever you are, no matter how lonely,

the world offers itself to your imagination,

calls to you like the wild geese, harsh and exciting -

over and over announcing your place

in the family of things.

 

- Wild Geese / Mary Oliver

 

 

역시 원어로 읽어야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면서 뜻이 명확해진다. 이 시에서 세 차례 나오는 'Meanwhile'이 이렇게 포근한 단어인 줄 몰랐다. '그러면' '그러는 사이에도/동안에도'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의미상 후자가 나아 보인다. 좋은 시를 만나서 기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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